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3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5
* ‘마립간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2,3’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 보수와 PD사이의 회색인
앞 편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자유에 대한 생각은 꾸준히 독서를 통해 보충하고 있지만 PD를 포함한 NL, CA 등은 아는 정도가 인터넷상에 떠있는 A4용지 한 장 분량도 안 될 만큼의 지식이라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연치 않게 ‘드팀전’님과 대화에서 공개하게 되었으니 해명내지 변명을 해야겠습니다.
우선 어렸을 때 생각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남이 저에게 뭐라고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의 통제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집권세력적인 심정이 들었지요. (반국가나 반체제가 아님.) 저는 제가 좌파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회제도의 불합리에 일본 식민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친일청산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을 갖게 되었고, 자유의 극단에 무정부주의Anarchism을 동경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좌파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서량이 늘면서 이런 저의 성향이 우파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보수(우파), 진보(좌파) 등의 용어가 저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사용됩니다. 저는 자유민주연합을 지지한다고 해서 보수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NL과 PD도 말로써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를 나누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 중에서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 엄격과 관용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 딱 두가지입니다. (관용寬容은 손자가 말한 인仁이고 엄격嚴格은 손자가 말한 엄嚴에 해당합니다.)
일제 청산을 원하면 사회적으로는 진보에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제 기준에 의하면 보수입니다. 유신독재에 관련하여 그 대상자들이 댓가를 치러야 된다고 생각하면 역시 보수에 해당합니다. 북한 정권 역시 그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보수인데, 이것은 사회적 통념과 일치합니다.
(이글을 읽게 되면 당사자 알라디너는 본인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것이고 마음의 상처를 줄까 조심스럽지만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알라디너 ###님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합니다. 일제 청산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을 진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확인한 것이 사형제도에 의한 의견입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가 ‘생명이 고귀하고 범죄자라고 하여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생명이 빼기는 것이 가슴 아파서’라고 이야기 하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라디너 ###님은 본인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고 사형을 통해 징벌이 종료되므로 사형을 반대한고 하셨습니다. 같은 사형제도의 반대이지만 저의 판단은 반대입니다.
이론적으로 진보의 관용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모순의 명제를 남깁니다. ‘관용은 불관용까지 관용하는가?’ (이것도 아마 바칼로레아에 있는 명제일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도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정치와 과학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러나 선택은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두기둥’ 페이퍼 http://blog.aladin.co.kr/maripkahn/909955)
자유에 대한 선택은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형성하는데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NL이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민족주의(보수)라는 변형이라는 생각입니다. (앞 문장은 NL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지적에 저에게 항변할 지식은 없습니다.) 국가이든 민족이든 개인의 자유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를 제외한 그 외의 생명은 동등합니다. 민족을 떠나서 인종을 떠나서. 심지어는 동식물을 포함한 생명이 있는 것을 포용하려 합니다. 북한을 왜 돕느냐고 물으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돕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굶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아마 드팀전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을 돕는다는 것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돕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분법적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선택은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만원을 기부하려 하는데, 북한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아프리카를 도울 것인가. 똑 같은 논쟁이 초등학교 한자 교육에서 있었습니다.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은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국어(한글)를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은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합니다.
PD는 비자산가와 자산가라는 이분법을 택하지만 현실적인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인식의 확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범위를 넘은 인식으로 아테네에 한정된 인식을 갖은 귀족과 논쟁을 벌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민족의 해체’ 페이퍼 http://blog.aladin.co.kr/maripkahn/911579)
(‘혈연사자’ 페이퍼 중 ‘혈연’ http://blog.aladin.co.kr/maripkahn/790086)
결론적으로 저는 평등 보다는 자유를 중하게 생각했다는 데서, 관용보다는 엄격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보수’이며, 저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전 세계적 평등으로 보면, NL보다는 PD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PD를 지지합니다. (이글은 논리적 비약 있거나 용어의 엄밀성이 없으므로 글 보충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 주시면 기꺼이 읽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50:50으로 선택을 하지 못한 주제는 낙태입니다.
cf 의사와 독재자 환자 ; 참조 페이퍼 ‘변호사’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7040)
그래도 보수와 PD가 연결되지 않는 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념 보수주의'가 더 싫습니까 아니면 '시장 보수주의'가 더 싫습니까. 아니면 둘다 너무 싫어 기권을 통한 '탈정치화'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