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립간 ‘과학의 변호’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3

* “마립간 ‘과학의 변호’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의 댓글에 대한

 
첫 번째 댓글의 ‘과학과 신학’이나 ‘의사와 독재자’의 극단적인 비유가 논의를 과학적 논의를 유지 못하고 감정적이게끔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대학생 때의 일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여럿의 자녀에게 동일하냐는 논의를 하였습니다. 사랑이 동일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친구에 다음과 같은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 어머니와 아들, 딸이 있는데 어떤 나쁜 놈들이 아들과 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다른 하나는 죽이겠다고 한다. 선택을 못하면 둘 다 죽이겠다고 한다. 이럴 경우 조금 더 사랑하는 자녀를 살리고 덜 사랑하는 자녀를 죽이지 않겠느냐.

 
친구는 이 비유를 듣자마자 흥분해 하며 그런 경우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으며 그 비유를 만들어 낸 제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성적 토의 중단되었고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친구와 어이없어 하는 저는 그 자리를 파했습니다.
 
위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소피의 선택>이라는 소설 또는 영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상황을 극단적인 경우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위 경우도 그 한 경우가 되겠지요.) 물질의 본질을 확인하기 위해 절대 온도 0K에 접근하기도 하고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실감할 수 없는 수십억 광년의 은하계나 100억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는 시간, 우주,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의 상황에서 새로운 이론이 나오거나 본질에 관한 힌트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marine님의 <인간은 왜 늙는가>의 서평 ‘노화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09537183/1754734)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저자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지켰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와 비과학자의 차이일 것이다.
과학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지키는 것이 바로 엄격한 회의주의임을 새삼 확인한 기분이 든다.

 
(일단 제가 느끼기에 드팀전님의 불편하게 생각하신) 의사와 독재자의 비유는 윤리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가족이 독재자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거나 앞에 총부리가 있다고 해서 질문의 의미하는 바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의사의 선택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윤리적 객관적인 기준이 있느냐 아니면 상황 윤리로 끝나는 것이냐’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진정 반대했다는 것에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도 질문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비유 ‘자본과 이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과학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는 드팀전님이 주장한 것이 아니고 저의 질문입니다. 드팀전님이 ‘하지 말라’라고 답하시면 일차적 윤리적 물음은 종료됩니다. (2차적 질문이 생태근본주의 및 과학포기에 관한 질문이 될 수 있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질문입니다.) 드팀전님이 ‘할 수 있다’고 답하시면, 저는 다시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영향이 10%면 만족할 만한 독립인가, 아니면 1%면 만족할 독립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에 관한 질문이 아니고 윤리 본질에 관한 의문과 회의를 던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는 0.001%로부터 99.999%까지 극단으로 몰 수 있습니다. % 정해진다면 정해진 근거를 묻겠지요.

 
영화 <둠스데이; 지구의 최후의 날>의 시작은 여의사 한 분이 바이러스를 통해 암이 정복되었다는 뉴스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인류를 망하게 합니다. 영화에서의 여의사는 선의善意를 갖고 연구를 했겠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똑 같은 윤리적 의문을 갖게 합니다.

 
다시 한번 ‘드팀전’님에게 감정적 상처를 줄까 조심스럽지만, 의사와 독재자 환자의 이야기는 ‘초월성에 대한 반감입니다./그가 진정 반대했다는 것에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부르주아-테크노라트’의 글로 보아 치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 페이퍼 ‘과학과 신학’의 비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의 페이퍼가 ‘드팀전’님의 감성을 상하게 했다면 다시 한 번 사과를 들이며, ‘사과하는 사람이 이런 글을 다시 쓰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지만 오해는 풀어야겠기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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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5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12-20 19:04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5 * ‘마립간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2,3’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 보수와 PD사이의 회색인  앞 편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자유에 대한 생각은 꾸준히 독서를 통해 보충하고 있지만 PD를 포함한 NL, CA 등은 아는 정도가 인터넷상에 떠있는 A4용지 한 장 분량도 안 될 만큼의 지식이라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연치 않게 ‘드팀전’님과 대화에서 공개하게 되
  2.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4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12-20 19:05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4 * “마립간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2,3’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우선 ‘드팀전’님께 감정적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은 저에도 다행입니다. 이성적인 상처?(견해 차이가 더 적절한 단어 같군요.)가 한 두 번의 의견 교환으로 해소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드팀전을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드팀전님을 비롯한 다른 알라디너가 저의 잘못을 지적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지
 
 
드팀전 2008-12-20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슬라보예 지젝과 한번 만나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영화적 질문에 '폭력의 소거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해방을 기획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우생학적으로 떨어진다.자린고비다.너희들의 딸과 손녀들을 강간한다...나치는 그런 주장을 하고 그것에 대한 통계적 자료를 만들어냅니다. 지젝이 뛰어난 지점은 그 질문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방식은 무엇이냐하면 '과연 유태인은 우생학적으로 떨어지는가? 정말 자린고비인가? 강간을 즐기는가?' 를 입증하려고 찾아 다니는겁니다. (마립간님의 그간의 입장으로 보자면 과학은 그걸 찾아야된다고 할 수 도 있겠습니다. 유태인의 본질을 알기위해..^^ ) 지젝은 '서사할 권리'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그런 상황에서 과학이 한다는 것이 결국 그런 '서사할 권리'라는 것이겠지요.) 반유대주의에 대한 가장 옳바른 답은 그 질문 자체를 거부하는 겁니다.(행여 과학적으로 가장 올바른 답이 '유태인은 인종적으로 떨어지는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찾아서 그렇다 아니다.'를 밝히는 거라면 부디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하구요.)

영화와 소설의 예를 몇 가지 드셨으니..^^
도르프만의 희곡<여인들>에서는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군부에 자기와 손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택합니다.지키고자 하는 다른 신념때문이지요. 영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의 부인은 동전 던지기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질문 자체를 소거시킵니다. 영화<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은 '자기 구타'라는 형식으로 권력이 작용하는 지점에서 해방을 기획합니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 주인공중 하나는 마지막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알약을 타인에게 주고 자신은 불구덩이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모두 그냥 그런 문제가 아니라 마립간님이 말한 '윤리적인 주체'의 문제입니다. 윤리적 선택을 하는 겁니다. 대신 마립간님의 말처럼 주어진 것 중에서 고르는 방식이 아니라것이 낯서실 수는 있겠지요.

이것 말고도 '주체의 자기희생'이라는 비합리적 선택의 예는 영화나 소설에 수두룩할겝니다. 이 모든 것에 과학적 통계를 제시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런건 영화니까 가능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영화의 예를 드시건 마립간님이니까요.

감정을 상하지는 않았구요.그 정도에 감정 상하면 실험실 바깥에서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제 주변의 상대들은 마립간님처럼 예의바르지도,젠틀하지도,자상하지도 않습니다.

^^ 보수주의자와 PD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과거PD였다가 지금은 보수주의라는 거면 이해가 됩니다. 뉴라이트에는 많으니까.그런데 친척분의 질문은 최근 몇 년사이의 일인듯한데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지지하면서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과학을 주장하시면서 자연과학 이외의 개념들에 대해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마립간님과의 대화가 재미는 있었지만...마립간님의 과학적 본질주의에의 추구와 제가 가는 세속의 길은 다른 듯 합니다. 그 정도 확인으로 긴 대화를 마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