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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434호 2016.01.09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이렇게 얇은데 이렇게 심도 깊은 기사로 충만할 수가 있나. 미용실에 가서도 잡지를 보지 않는데, 광고가 대부분이고 가십성 기사가 너무 많은 잡지가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잡지는 오로지 사은품에만 관심을...ㆀ)
그런데 시사인은 밀도가 매우 높아서 보통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만큼의 집중력을 요했다. 심지어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어야 해서 잡다한 음악 같은 것은 꺼야 했다.
표지를 장식한 소녀상의 처연한 표정 덕분인지,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더 깊게 다가왔다. 내가 줄 그은 부분만 옮겨오면 이렇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군인은 한순간의 즐거움에 목숨을 거는 짐승이 되기 마련이야. 전쟁을 벌이는 지도부(라고 쓰고 윗대가리라고 읽어라)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기꺼이 죽어가야 하는 병사의 동물적 본능을 충족시킬 방도를 찾기 위해 분주했고 무슨 비인간적인 상황이 빚어지든 상관하지 않았지.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자 징집에 응한 신병들이 떼로 몰려들었어. 대규모 훈련소가 설치되고 그 인근에는 어김없이 ‘군대에 필요한’ 여자들이 몰려들었지. ‘점잖은’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자 미군 장교가 했다는 말은 전쟁의 단면을 마치 수박 속 보듯 드러내준단다. “안 그러면 여러분의 딸들이 다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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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생 김학순 할머니라는 분이 계셨어. 그분은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렵게 살다가 1939년 양아버지에 의해 일본군에 넘겨졌고 ‘위안부’ 생활을 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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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은 전쟁에 내몰려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 모두의 기억과 눈물과 아픔의 상징이야.
김학순 할머니가 독립운동가의 자녀분인 것은 처음 알았다. 평범한 아버지의 딸이라고 덜 아플 리 없지만 기가 막힌 것은 사실이다. 지난 주에 '귀향' 시사회를 다녀와서 더 먹먹해진다. 영화 개봉은 아직 한달이 더 남았는데 꼭꼭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파리협정에 관한 기사도 꽤 집중해서 읽었다. 도쿄의정서를 대체할 새 기후변화협약도 궁금했고, 선진국이 앞서서 망가뜨린 지구 환경에 대해서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개도국들의 반발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눈길이 갔다.
미국은 2001년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에는 손상이 갔지만, 그게 다였다. 국제법 원칙으로 보면 조약의 가입과 탈퇴는 국가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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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이 되기까지 기온 상승 폭을 적어도 2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빗발치고 있었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210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75기가톤(Gt)으로 억제해야 한다. 현재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2100년은커녕 앞으로 30년 안에 도달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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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코드 그린>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일화를 썼다. 프리드먼은 2007년 중국의 ‘그린 카 대회’에서 연설하기로 했다. 그는 중국의 산업 엘리트들이 환경 이슈만 나오면 ‘역사적인 책임’ 문제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연설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옳다는 말을 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차례가 맞습니다. 마음껏 환경을 파괴하세요! 중국이 오염으로 숨 막혀 죽는 걸 막는 데 필요한 모든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도구를 우리가 발명해 여러분에게 파는데 5년이면 족할 겁니다. 그쪽 산업에서는 우리가 여러분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주세요!”
이 연설은 기후변화 이슈의 패러다임 변화를 포착한다. 탄소 감축 이슈는 거대한 새 시장을 창출할 것이고, 늦게 참가할수록 손해가 될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누가 더 의무를 지느냐로 다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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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개발 메커니즘(CDM:선진국이 개도국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를 선진국의 감축량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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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는 결국 고갈된다. 중동 산유국이 돈은 정말 많은데, 미래 먹을 거리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저탄소 시장이 형성될 때 선제 투자를 하면 중동의 미래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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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폰은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문제가 불거지자 대체물질 개발에 돌입했고, 몬트리올의정서 채택 시점에는 개발 직전 단계까지 와 있었다. 프레온 가스 사용을 규제하면 듀폰은 시장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새 시장이 열릴 참이었다. 환경과 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몬트리올의정서는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국제 환경협력 사례로 손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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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의 핵심 방향성은 탄소 감축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시장 메커니즘을 전면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탄소 배출이 지금보다 비싸지게 만들고, 저탄소 에너지 사용이 화석연료보다 유리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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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은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모으기로 했는데,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 지원과 저탄소 에너지 기술의 초기 투자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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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의 핵심 전략은 탄소 감축이 의무가 아니라 기회가 되는 세상을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행복한 교육’을 입에 달고 사는 어떤 나라- 기사는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크게 교차했다.
핀란드 헬싱키 외곽의 어느 학교를 방문했을 때다. 11학년(고2) 교실의 영어수업을 지켜보았다. 평이한 수업인데도 학생들의 집중력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업을 참관하다가 교사의 양해를 구하고 물었다. 학교에 오는 것,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냐고, 그런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놀랍게도 30명 정도의 반 학생 전체가 이상한 질문이라는 뜨악한 표정을 하면서 손을 든다. 내친김에 이 공부가 여러분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에도 당연히 그렇단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대로 사회나 인생과 연결된다고 믿는 아이들이 보이는 신뢰다.
부럽고, 부끄럽다.
기사들을 읽다가 관심이 가서 '찜'한 책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중 가장 눈길이 간 것은 고종석의 독서한담이었다.
<아주 낯선 상식>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호남의 세속화야. 왜 광주는 세속도시가 아니라 신성도시여야만 할까? 왜 호남 사람들은 제 세속적 욕망을 풀어놓으면 안 되는가? 왜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가? 한번 생각해보자고. 호남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 견줘 정치적으로 더 윤리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선거 때만 되면 이른바 개혁 정당에 몰표를 주고도, 그 몰표 때문에 지역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아야만 할까? 심지어 다른 지역 출신의 개혁 정당의 지도자는 왜 꼭 영남 사람이어야 하지? 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대통령선거에 나가선 안 되지? <아주 낯선 상식>은 이런 당연한 질문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을 시도하고 있어.
정말, 아주 낯선 상식이었다. 그러게... 왜 광주는 세속도시가 아닌 신성도시를 강요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도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게 느껴진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게 잡지라지만 글밥이 적은 책이 아니다. 게다가 주간지... 난 정기구독하면 200% 밀릴 거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