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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착했을 때는 피아니스트 이희아가 막 연주를 마치고 뜻밖에도 노래를 부르던 시점이었다. 이어서 여러 시인들이 단위에 올라왔고, 자신들이 쓴 시를 거의 울면서 읽어냈다. 시인의 육성으로 듣는 시는 그 자체로도 뜨거운데, 그것이 하물며 침몰된 사람들을 향해서 쓴 것이니 오죽이나 절절할까. 


기다리래

김기택

 

  기다리래​. 6835톤 배가 뒤집히는 동안, 뒤집힌 배가 선수 일부분만 남기고 가라앉는 동안, 기다리라는 방송만 되풀이 하고 선장과 선원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꼼짝 말고 기다리래. 해경은 침몰하는 배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고 급히 구조하러 온 UDT대원들과 민간 잠수사들을 막고 있지만, 텔레비전은  열심히 구조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기다리래.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지친 컴컴한 바닷물이 먼저 밀려들어 울음과 비명을 틀어막고 발버둥을 옥죄어도, 벗겨지는 손톱과 부러지는 손가락들이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잡아당겨도, 질문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래. 바닷물이 카카오톡을 삼키고, 기다리래를 삼키고, 기다리래를 친 손가락을 삼켜도, 아직 사망이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래. 엄마 아빠가 발 동동 구르며 울부짖어도, 구조된 교감 선생님이 터지는 가슴에다 목을 매어도, 유언비어에 절대로 속지 말고 안내 방송에만 귀 기울이며 기다리래. 죽음이 퉁퉁 불어 옷을 찢고 터져 나와도, 얼굴이 부풀어 흐물흐물해져도, 학생증엔 앳된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잇으니, 손아귀에 그 얼굴을 꼭 쥐고서 기다리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맹골수도 물속에서 기다리래.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방송은 안 나와요" 2014. 4. 16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




[출처] 기다리래 / 김기택|작성자 dust47




아기단풍

 

 

                                         김해자

 

 

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물에 찍힌 음계를 밟고 나는 한 계단씩 내려가마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춤을 밟고 너는 오렴 오오 노래하며 와주렴

기다려 주렴 평생을 다해 네게로 헤엄쳐 가리니

벽이 된 바닥 미끄러지는 하늘 기어서 가리니

  


얼마나 추웠니 아가야 이리 오렴 젖은 기저귀 갈아줄게

다리 힘차게 차며 발랑거리는 아가,

알처럼 동그란 네 배는 내일을 낳지 못하겠구나

하나 피워 하나 지우는 물의 나이테처럼 영영 나이먹지 않겠구나

사랑해요 저를 용서하세요,

물에 찍힌 마지막 말.

말이 되지 못한 공기방울

사랑한다 아아 아가야 용서해다오 온통 눈물뿐으로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우우 우릴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기다려 너에게로 갈게.............

맹서뿐인 말이 끝난 곳

오늘을 불러올 태양이 없는 저 너머,

잎도 꽃도 피우지 않는 얼음정원

눈시울 붉은 아기단풍 꽃 꽃 꽃들


 소금 속에 눕히며 

 

                            문 동 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아,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 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가장 목메이게 했던 순서는 성우 안현서 씨와 영상 속 아이가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내용이었는데, 함께 했던 야곱도 나도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한참 들썩였다. 맙소사, 오 맙소사...



감탄을 자아내는 샌드아트. 그러나 그 내용을 생각하면 서러워서 다시 눈물바람. 


유가족분들 몇이 무대 위로 올라왔는데, "엄마,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말했던 학생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아, 그 육성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금 마음이 무너졌다. 어쩌지, 정말 어쩌지...



손에 찍은 스탬프가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이 시작되는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손등에 남아 있다. 스탬프는 지워져도 기억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모르겠다. 10만 명을 소원했지만, 2만에서 5만까지, 매체마다 추정하는 인원이 다 다르다. 

그러나 이 정도 인원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이 정부...



오세훈 때는 이 광장을 딛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젠 시청 광장쯤은 힘들이지 않게 빌린다며 야곱과 얘기 나눴는데, 그 얘기가 무색하게 이리 장막 속에 갇혀 버렸다.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그 짧은 길을 기어이 못가게 한다고 이렇게 막아버렸다. 비는 거세게 왔고, 경찰들은 요지부동.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비키라고 외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날 추모 공연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승환은 그렇게 얘기했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린 어느 순간부터 참 불쌍한 국민이 되었다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린 너무 알아채버려서

많이 알아채버려서

불쌍한 국민이 된 듯한 느낌

 

국가가 우릴 지켜주지 못하는

혹은 지켜주지 않는

국가의 무능함과 무심함을 알아채버린

 

그리고 어떤 일에도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그런 곳임을 알아채버린  

그리고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지 않으려는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이상한 곳임을

알아채버렸기 때문입니다.....”



결코 먼저 지치지 않을 각오를 다시 새겨본다. 다시 100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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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7-2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마노아님의 님
이러다가 진짜 방송 출연은 못하겠는데요. ^^::::::

접힌 부분 펼치지 말껄 이런..아침부터 또 눈물바람.......

마노아 2014-07-28 11:55   좋아요 0 | URL
이 정권 하에서 내 님의 공중파 출연은 언감생신이 아닐까 뭐....;;;;
시집 읽고 있는데 계속 눈물 나요. 진정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어요.ㅜ.ㅜ

세실 2014-07-28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거기 모인 분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글만 읽어도 그렁그렁 눈물이 고입니다.

마노아 2014-07-28 11:57   좋아요 0 | URL
우린 이제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린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어요.ㅜ.ㅜ

꼬마요정 2014-07-2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를 참사로 만든 정부가... 자신들은 아니라고 자꾸 우리 더러 종북 좌파라며 손가락질 하네요.
어디 누워 있던 시체 한 구 가져다 놓고 유병언이라며, 그래서 유병언이든 누구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솔직히 세월호의 참사는 유병언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배 수명 늘리고, 책임 소재 파악은 커녕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혼자 저 위에서 고개 돌리고 있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닌가요?

그나저나.. 공중파에서 이승환 보고 싶은데.. 이번 앨범 참 좋던데.. 안타깝네요.. 가을에 나오는 앨범도 기대됩니다.

마노아 2014-07-28 22:27   좋아요 0 | URL
유병언은 믿기지 않는 시체로 돌아오고, 유병근의 경호원 팬카페가 생기고, 이석기는 징역 20년을 선고 받고... 아직도 놀랄 게 남아 있다는 게 충격적인 오늘의 대한민국이에요. ㅠ.ㅠ

이승환 11집은 '전'과 '후'로 나뉘어 발매할 생각이었는데 '후'의 발매는 불투명해졌어요. '전'이 잘 되어야 그 후원으로 만들 수 있는데 들인 돈에 비해 잘 되지 않았거든요. 드림팩토리는 문 닫았고, 내 님의 새 앨범은 깜깜합니다. 크흑...ㅜ.ㅜ

코코죠 2014-07-2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쩌나... 어떡해요.... 눈물이 그치질 않아요....

마노아 2014-07-28 22:28   좋아요 0 | URL
오즈마님, 우리 실컷 울고 다시 기운 내요. 갈 길이 너무 멀어요.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보다 안전하고 바른 세상이어야 하니까요. 불끈!

순오기 2014-07-2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지요.ㅜ
인간이기를 포기한 저 자들~~~ 응징하고 새로 시작해야 되는데...

마노아 2014-07-29 21:45   좋아요 0 | URL
특별법 제정 촉구를 외치던 생존 소녀 두명을 에워싸고 어버이 연합이 막말을 해댔더라구요. 세상에, 정말 인간이 아닌 걸로 보여요.ㅜ.ㅜ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724180209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