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서평가 로쟈님의 명성을 익히 아는 관계로 이분의 책을 고른다는 건 심호흡이 필요했다. 여러 책 중에서 그나마 이 책을 골랐던 것은 제목이 주는 평이함의 평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적중했다. 필요 이상으로 겁을 냈다는 듯이 아주 쉽게,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책은 로쟈님이 강연을 했던 내용들을 입말로 옮긴 것이다. 마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을 때처럼 내가 현장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 읽어주는 교수님, 아니 책을 풀어주는 서평가라니, 참으로 근사하다. 


작품은 크게 두줄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학 속의 여자, 또 하나는 문학 속의 남자다. 여자 편이든 남자 편이든 내키는 쪽으로 먼저 읽어도 무방하지만, 섞지는 않고 읽기를 저자가 권했다. 읽어 보니 까닭을 알겠다. 흐름! 이어지는 그 흐름을 타보니 더더더 책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마담 보바리'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소설인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계층 의식이 흥미로웠다. 아주 표나게 잘살지도 못하고, 아주 드러나게 못살지도 않았던 중산층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무료함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 엠마가 꼭 그랬다. 

삶이 권태에 빠지는 이유는 시골에 살아서만은 아니고, 무능한 남편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 탓도 있습니다. 권태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입니다. 그보다 상류층이거나 빈곤층이라면 권태롭지 않아요. 빈곤층은 먹고살기 바쁘니까 권태로울 여유가 없고, 상류층은 정치 활동이나 사교 활동이 많아서 일상생활을 관조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층이 문제입니다. 중산층은 대개 먹고살 만은 하지만 아주 풍족하지만은 않은 상인 집단입니다. 권태라는 건 이렇듯 특정한 사회적·시대적 조건 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25쪽

출산은 엠마에게도 현실에 만족하면서 주저앉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입니다. 육아를 하며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다른 일은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엠마는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 유모에게 맡기는 바람에, 주저앉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놓칩니다. 하층민은 직접 아이를 돌보지만, 중산층 이상은 보통 유모가 대신 돌보죠. 어머니는 아이를 가끔 보러 갈 뿐이에요. 육아도 하지 않고, 노동도 하지 않으니 남은 시간은 권태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변변찮다면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27쪽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은 '주홍글씨'라고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한 제목은 '주홍글자'이다. 그때는 제목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의문을 갖지 않았는데, '주홍글자'라고 다시 각인하고 읽게 되니 원문의 느낌은 주홍글자가 맞다고 동의하게 되었다. 이런 수정과 교정도 반갑다. 내가 한 사색은 아니지만, 어쩐지 나도 좀 더 고민해 본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영화로 보았다. 이 책에서도 잠시 언급한 영화였는데 당시 관람하면서 나쁘지 않았지만 크게 좋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원작을 읽고서 보았더라면 느낌이 좀 달랐을 것이다. 지금 이 책에서 소개한 짧은 분량으로도 영화가 더 좋았다고 기억이 조정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톨스토이 작품에서는 ‘적게 먹고, 가급적이면 육식을 자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채식주의를 주장한다기보다 육식에 반대하는 것인데, 이유는 육식을 통해서 많은 열량을 얻으면 에너지가 남아도니까 욕정을 품게 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절식을 해야 하고, 그래도 에너지가 남으면 노동으로 소진해야 합니다. 톨스토이에게 도덕적 삶이란 그런 구체적인 삶입니다. 로렌스는 도덕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건강한 욕정을 억압하는 게 오히려 부도덕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적인 본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건강이라고 봅니다. 로렌스가 쓴 편지를 보면 톨스토이를 꽤나 탐독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렌스는 《안나 카레니나》같은 작품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작가가 모두 성을 중요한 문학적 화두로 다루지만 결론은 서로 다릅니다.  -97쪽

톨스토이와 로렌스를 비교한 이 부분이 좋았다. 육식으로 인한 에너지의 과잉이 욕망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에 어쩐지 동의하게 된다. 현대인의 식생활은 지나치게 육식으로 변해버렸다. 학교 급식의 경우 일주일에 4-5회는 고기가 나온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그나마 2주에 한번 나오던 생선도 거의 안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채소 위주의 식단은 나부터도 오늘 찬이 좀 부실하네~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축적된 과잉 에너지를 어찌 풀꼬! 폭력적 성향의 게임을 선호하는 것도 어쩌면 육식과 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로렌스의 입장 또한 지지하게 된다. 예전엔 야동의 야자도 못 꺼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오히려 그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건강한 것이라는 공감이 조성되어 있지 않던가. 성자스러운 톨스토이에게 경배를 바치지만, 세속에 가까운 로렌스 쪽이 더 흥미롭다고 여기는 건, 역시 육식 탓이야...;;;;;


남자 쪽 이야기로 건너가 보자. '햄릿'의 긴 망설임에 대해서 얘기할 때 푸훗! 웃고 말았다. 아, 이 진지한 글에 이런 유머라니!!!


《햄릿》은 행수로 따지면 약 4000행 정도 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런 평도 가능했을 겁니다. 존 판던의 인용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젊은이에 관한 멋진 희곡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지독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연극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4시간을 넘겨버렸다. 거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연극이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빨리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인다! -138쪽

아하하핫,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까!


'돈키호테'에 붙은 소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 숭고한 광기에 대하여'라니! 광기와 숭고함이 동격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지만 상대가 돈키호테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흔히 ‘곱게 미치라’고 충고하지만 돈키호테는 ‘숭고하게 미친’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마주하게 되면 광기 없는 삶이란 무난한 공허에 불과한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일상의 안락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불쌍한 몰골’로 비칠 때 우리는 다시금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해가는 이 방랑기사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다면요. -193쪽

지나치게 안온하지 못한 일상 덕분에 늘 평온한 일상을 꿈꾸며 사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돈키호테의 숭고한 광기를 선망하기도 한다. 다들 그런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살지 싶다. 


'파우스트' 편을 읽다가는 무척 우울해지고 말았다. 이 대목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비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게 된다는 건데, 사실 요즘은 비극의 내용이 달라졌다고도 합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내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거라나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하잖습니까. 단, 계약 조건이 좀 특이하죠. 일도 해주고, 영혼도 파는 거니까요. -209쪽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이라니,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 문장 안에 서러운 '을'들의 모습이 보여서 울적했다. '흑집사'의 세바스찬 같은 악마는 역시 상상의 세계에서만 등장해야 하는가 보다.


등장하는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 들은 게 '석상 손님'이었다. 푸슈킨의 작품인데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대구'를 이용해서 풀어낸 문학적 감각에 감탄했다. 


헤어지면서 돈 구안은 돈나 안나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돈나 안나가 키스를 해주며 “자, 여기 이렇게”라고 말하는데, 러시아어로 키스는 남성명사라서 원문에서는 “여기 키스가 있어요”란 문장이 “여기 그가 있어요”로 표현됩니다(영어로 옮기면 “Here he is"입니다). 교묘한 이 중의적 의미 역시 푸슈킨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가 옵니다. 기사단장의 석상이죠.

251

돈 구안이 손을 내밀며 “자, 여기……”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돈나 안나의 “자, 여기 이렇게”와 대구를 이룹니다. 러시아어로 손은 여성명사라서 “여기 손이 있네”라는 돈 구안의 말은 “여기 그녀가 있네”라고 표현됩니다(영어로는 “Here she is"입니다). 여기서도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결국 돈 구안은 돈나 안나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습니다. -250쪽

나의 독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독서이건만, 그 바람에 나의 책 읽기가 더불어 즐거워지고 깊어지게 되었다. 얼마나 고맙고도 이로운 사적인 독서인가. 원래도 호의적인 인문학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서 더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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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9-1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샀는데...사놓고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요.ㅠ
도서관 책 구입할 때 리스트에 넣어야겠어요.

마노아 2013-09-10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방금 또 임호부님의 책을 장바구니에 투척!
매일매일 반성하고 또 지르고의 연속이에요.^^;;;

Mephistopheles 2013-09-1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렇게 비객관적인 리뷰라니...ㅋㅋㅋ

마노아 2013-09-10 14:48   좋아요 0 | URL
작품의 제목에 제대로 부합했군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9-1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국정원에 무엇이든 제보하면 국정원 시계를 준다 하는데 아무래도 전 마노아 님을
국정원에 고발해서 시계를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입말 > 이 북한말이라네요 ! 입말'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니 마노아 님은 아주 강골 주사파'입니다.
고발하겠어요 ! 씐난다, 야호 !!!



마노아 2013-09-11 08:48   좋아요 0 | URL
엄훠, 엄훠! 저 어저께 얼음보숭이 먹었는데 이것도 모두 신고 대상인가요? 꺄아, 무섭습니당!!!

프레이야 2013-09-1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녹음하고있는데 아주 명쾌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에요. 편안하게 쏙쏙ㅎㅎ 유머러스하기까지요.

마노아 2013-09-11 08:48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이렇게 유머러스한 분인줄 몰랐어요. 은근히 재밌고 웃기더라구요. 으하하핫^^ㅎㅎㅎ

transient-guest 2013-09-11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평입니다. 저도 로쟈님의 책은 무조건 사서 읽고 있지요. 가끔씩 꺼내서 다시 읽으면 제가 하고 있는 독서에 대한 견주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책읽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느껴요.

마노아 2013-09-11 08:49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한권 읽었는데 긴장 풀고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무척 재밌고 즐거웠답니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책읽기를 하고 그걸 풀어주는 분이 계신 게 고맙네요. 강연회를 직접 들어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2013-09-11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1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3-10-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집니다. 찜해 두어야겠어요.

마노아 2013-10-19 14:5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나만의) 재발견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