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과 함께 한 시사부흥대성회
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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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대한민국 보수를 파고들었다. 깊이, 아주 깊이! 제목은 몹시 중의적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상품 보수! 건국 이래 거의 대부분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보수를 판다는 의미도 되는 거니까. 실제로 그랬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정말 '보수'인가는 접어두더라도, 일단 보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이들은 천하무적이었다. 그들은 '빨갱이'라는 창을 휘두르며 보수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재단하고 역사를 난도질해 왔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보수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김용민은 대한민국의 보수를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무지몽매 보수! 이중 모태 보수는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아쉬울 게 없이 자라온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정몽준을 떠올리면 되겠다. 기회주의 보수는 대체로 보수와 다른 길, 혹은 반대편 길을 걷다가 어떤 계기로 급작스럽게 보수로 돌아선 사람을 가리킨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재오, 김문수도 모두 이 자리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무지몽매 보수는 흔히 '까스통 할배'라고 지칭되는 부류들이다. 보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고 언제나 보수에게 착취당하지만 보수에게 마음껏 이용당하는 안타까운 이들이다.

 

김용민은 이들을 구분하기 쉽게 분류해 두고 이들의 속성을 또 쉽고 자세히 설명해 준다. 여유롭지만 나약한 모태 보수, 끈질기지만 조급한 기회주의 보수로 말이다. 이들의 뿌리와 성향을 알고 나면 이들의 행보가 쉽게 설명된다. 현실 정치인들이 모델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무척 극적이다.

 

보수를 셋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굳이 저 범주와 함께 나누지 않은 까닭은 마지막에 설명하는 자본가 보수가 보수 위의 보수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 종류의 보수 모두의 배경에 있으면서 심지어 보수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까지 장악력을 가졌다. 이들 자본가 보수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서 가장 몸이 달아 있는 부류는 당연히 기회주의 보수다. 그러니 대한민국 역사 속의 보수 정부는 자본가 보수를 배경으로 한 기회주의 보수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자본가 보수를 생각하니 이제 종방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추적자'의 박근형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경제를 한손으로 쥐고 흔드는 한오 그룹 총수 서회장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경제를 뒤흔들며 세력 과시를 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평민이 뽑은 로마 호민관에, 그리고 자신은 원로원과 집정관도 넘어서 '황제'로 비유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할까? 실제로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자본가 보수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떠올리 수 있지 않은가. 역시 드라마 속 권력의 화신 김상중도 그런 말을 했다.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 서회장이 앉은 그 자리가 자신의 목표라고. 대한민국의 자본가 보수는 정당도, 언론도, 그리고 경제도 모두 쥐고 뒤흔들지 않던가. 되새길수록 끔찍한 일이다.

 

진보에 대한 쓴소리도 피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경직된 진보의 자세가, 눈앞의 이익을 내놓는 보수 앞에서 필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속상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눈앞의 이익 앞에 당위성을 내려놓기 얼마나 쉬운 존재인가. 이 부분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더 적나라하게 설명되어 있다. 미안하지만 그 책에서 업어 왔다.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222쪽

 

언론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실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드라마 추적자에서 김상중이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결심한 것이 바로 언론을 틀어쥐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할 테니까. 드라마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는 뉴스에서 신문에서 언론의 비상식적인 행보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자가 뱉은 말은 검증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받아 적는 우리의 언론. 그 씁쓸함에 대해서 7월 16일자 변상욱의 기자 수첩에서 제대로 다루고 있다. 졸면서 듣는 바람에 다시 듣기 세차례나 반복했지만 새겨들을 메시지였다.

 

 

 

이 땅에서 기적적으로 진보 정권이 승리를 한다고 하여도 언론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또 다시 제2의 노무현이 나오지 말란 법 없을 것이다. 상상으로도 섬뜩하고 비참하다.

 

김용민은 뼛속까지 친일 친미로 통하는 이 땅의 보수에 대해 그들은 뼈가 없다고 한다.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그들에게 뼈란 당치도 않다. 항시 어딘가에 기대려고만 하는 이들이, 이 땅의 자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력이 이 나라에선 감히 '보수'라는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다. 소가 웃을 일이다.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관료사회에 대한 분석도 곁들였다. 노무현 정권이 많은 개혁을 시도하고도 성과 없이, 혹은 후폭풍을 더 맞으며 침몰한 원인에 바로 이 관료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패착이 있다고 본다. 그는 권력을 나눠주거나 혹은 돌려주면서까지 개혁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영혼이 없다고까지 손가락질 받는 관료들에게 '자율성'은 택도 없는 소리였다. 하물며 연정이라니...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종교는 또 어떤가. 이 정권 들어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개신교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이 방향으로 또 빠삭한 목사 아들 시사 돼지가 아니던가. 이 나라의 개신교는 신라 시대 '호국불교'를 떠올릴 정도의 호국기독교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교회의 세와 권력을 확장시키는 것에만 혈안된 그릇된 이들의 행보가 과연 이 나라에 덕이 되겠는가, 독이 되겠는가. 역시 입맛만 쓸 뿐이다.

 

저자가 자주 강조하듯이, 이제 진보 운동은 변화가 필요하다. 심각하게, 인상 써가면서 투쟁하던 시절은 갔다. 힘들어서 그렇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길게 내다보고 즐기면서, 유쾌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진보는 좀 더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진정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지혜롭게 굴었으면 한다. 야무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재밌게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북콘서트의 의미로 시사 부흥회를 가졌다. 당첨되어서 다녀왔는데, 그날 현장에서도 무척 의미있게 강연을 들었고, 대담회도 인상 깊게 보았더랬다. 시간 관계상 깊이 듣지 못했던 부분들을 책을 통해서 알차게 복습을 하고 나니 보수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고, 진보에 대한 영양 보충이 된 기분이다. 빠르고 쉽게 읽히지만 액기스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다. 2012년,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길 원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일독을 권한다. 유쾌하고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덧글) 오타가 있다.

82

우리 경제를 사단 내는 >>>사달 내는

191

이명박은 사람들에 절정의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에게

 

배운 것도 있다. '개기다'로 알고 있었는데 '개개다'가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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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7-1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야하나 말아야 하나...이 책에 대한 미련을 끊었는데 마노아님 때문에 또....흠....

마노아 2012-07-17 18:03   좋아요 0 | URL
보수 진보 입문서 정도로 보여요. 대중 교양서로 좋지요. saint236님께는 너무 쉬운 것 아닐까 몰라요.^^

꼬마요정 2012-07-1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흠...

마노아 2012-07-17 18:03   좋아요 0 | URL
나는 꼼수다 뒷담화는 그냥 그랬는데 이 책은 좋았어요. 쉽게 읽히고 재밌거든요.^^

아무개 2012-07-1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의 5.16은 최선의 선택이였다는 말을 듣고
역사가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게 맞는걸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라니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요. 에구........

브론테님께 한국사 관련 서적 추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역사쪽은 마노아 님이 전문이라고 해서
서재에 방문했다가 좋은 역사책 정보 얻고서도 인사글은 처음 인것 같네요. ^^

마노아 2012-07-18 13:2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중물 님^^
박근혜의 이름이 연일 거론되는 와중에 대선 정국이 점점 걱정되는 요즘이에요.
이번만큼은 역사에 진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할 텐데요. 갈길이 참 머네요.ㅜ.ㅜ
어이쿠! 전문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