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가탄신일은 휴일이었고, 모처럼 집에 있던 날이었다. 되도록 약속을 잡아서 나가려고 했던 것은, 집에 있으면 이래 저래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갑자기 늘어난 식구, 높아진 소음 등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었다. 언니네가 들어오고 한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는데 기어이 충돌이 있었다. 엄마랑 언니랑 대판 싸웠는데 불똥은 나한테 튀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경우다. 잠 못 이루는 며칠을 보내야 했다.

 

2. 화요일에는 월요일이 휴일이어서 하지 못한 전체 교직원 회의를 수요일에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아아, 한주도 건너 뛰지를 않는구나. 둘째를 출산한 친구에게 가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개화산 역에서 회의가 잡혔으니 친구에게 가보기로 결심했다. 회의 시작은 7시 반, 나는 5시 반에 기상해서 6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회의는 8시 40분에 끝났다. 전날 늦게 퇴근하고 다음날 일찍 출발했으니 선물 살 시간이 없었다. 시간도 많이 떴고, 선물도 사기 위해서 김포공항 역으로 갔다. 그 시간에 맞춰 볼 수 있는 영화는 '스노우 화이트 앤더 헌츠맨' 정도였다. 별 기대 없이 보았지만, 역시 별로 볼 것 없이 끝났다.(이 영화는 왜 만든 걸까?)

 

3. 배가 고팠다. 전날 롯데리아 콤보 세트를 구입해둔 게 있어서 공항에 있는 롯데리아를 가려고 쿠폰을 꺼내봤는데, 제외 매장에 떡하니 '공항'이라고 적혀 있다. 끄응..... 그래서 옥탑방 왕세자를 추억하며 오무라이스를 시켰다. 아, 기름만 좔좔 흐르고 맛은 없다. 느끼해...;;;;; 공항 쇼핑몰에서 아기 내복을 구입하고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개화산 역으로 갔다. 내가 검색해 본 네이년 길찾기에서 개화산 역 1번 출구로 나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시간 안에 도착할 것 같다고 알렸다. 전화를 끊고 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굽이 있는 샌들이어서 조심조심 걸었다. 1번 출구에서 235미터를 걸어가란다. 허걱, 뭐가 이렇게 멀어? 한참을 걸었는데 하필 내가 간 방향이 아니다. '방화도시개발11단지'라고 했는데 내가 가본 방향은 12단지였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500미터는 걸었겠지? 멀리 도로가 보이고 그 앞에 질러갈 수 있는 주차장이 보인다. 힘들어서 주차장 안으로 가로질러 가는데, 반대편에 출구가 없다. 하아... 다시 돌아 나와야 해....

 

4. 힘겹게 찾은 버스 정거장은 개화산역 2번 출구였다. 뭐 이래? 처음부터 2번 출구로 나가라고 할 것이지..;;; 투덜거리며 버스를 탔다. 세상에, 이 버스가 김포공항역을 지나간다. 게다가 몇 정거장 더 가니까 처음 타라고 했던 '방화도시개발11단지'도 나온다. 아니 그럼 개화산역에서 이 먼데까지 걸어오란 소리였어???? 여러모로 잔망스런 네이년이었다.

 

비가 점점 더 많이 온다. 김포 시청 앞에서 내렸다. 친구랑 지난 주에 통화했을 때 서울 여성 병원에 있다고 했다. 병원은 길 건너에 있었고, 육교를 건너면서 몇 호실이냐고 전화를 했다. 친구가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 어떡하니. 난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조리원은 병원이랑 붙어 있질 않아. 하아...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비는 오고, 가방은 무거웠고, 신발도 불편했고.... 다시 육교를 되돌아 나오며 여기서 몇 번을 타면 되냐고 물으니 길 건너가서 택시 타라고 한다. 하아... 건너다가 되돌아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해.....ㅠ.ㅠ

 

5. 다시 길을 건너서 택시를 잡았는데 승차 거부 당했다. 서울 나가는 택시란다. 멀지 않으니 마을 버스 타라고 길을 알려주신다. 마을버스는 좀 돌아가는 편이었지만, 어쨌든 친구가 있는 조리원에 도착했다. 나와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곳에는 친구의 중학교 동창 두 명도 와 있었다. 대화하다가 알게 된 일인데, 그곳은 '계양역'에서 가까웠고, 계양역은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김포공항 역에서 한 정거장이라고...ㅜ.ㅜ

 

6. 내 친구만 출산을 했지만, 그 친구의 두 친구들도 결혼은 이미 했다. 주로 부인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3년 만에 만난 친구의 근황도 듣게 되었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서 친정과 아래 위층 아파트를 살았다. 큰 애가 태어나고 둘째를 가지면서 집을 옮겨서 살림을 합쳤다고 한다. 넓은 집이었고, 친구 신랑도 사업이 잘 나가고 있었고, 여러모로 우리집 상황과는 대조적인 이야기였다. 우울한 날에 더 우울해지는 순간이었다.

 

7. 하일라이트는 학교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1002번 버스를 타면 송정역까지 가고, 송정역에서 화곡까지는 4정거장이다. 하여 나는 버스를 타고 피곤한 눈을 잠시 붙였다. 30분쯤 달렸을까. 방송에서 이번 역은 이 버스의 종점이라고 알려온다. 뭐라고라???? 기사님께 이 버스 송정역 가지 않냐고 물으니, 1002번이 맞기는 하지만 이 버스는 반대 방향이라고 한다. 하하하하... 이젠 눈물도 나지 않아. 오히려 웃음이 나오고.... 해서, 나는 그 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을 달려야 했다. 기사님이 내가 내리기도 전에 단말기 꺼버리셔서 환승 할인도 못 받았다. 5월 달에 나는 좌석 버스도 타지 않고 택시도 타지 않고 순전히 지하철과 버스만 타고 이동했지만 교통비가 9만원이 넘게 나왔다. 먼 거리를 통근해서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삽질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슬프다.

 

8. 헬쓰를 등록했다. 그 첫날이 지난 금요일이었다. 오전 중에 신발장 주문한 것이 온다고 해서 예상보다 한 시간 일찍 센터로 이동했다. 스트레칭을 30분 하고, 인바디 체크를 하고 런닝 머신 10분을 걸었을 뿐인데 벌써 집에 갈 시간이다. 샤워도 못했다. 헌데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신발장이 오후에 온다고. 그래서 다시 런닝 머신을 걷다가 뛰다가 걷다가 했다. 내가 뛴 거리는 모두 4km 정도였고, 소비한 칼로리는 대략 400kcal정도? 소보루 빵 하나면 무너질 수치구나. 인바디 체크 결과 내 신체 대사는 하루에 1300 정도를 소비할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이상 먹고 산다. 근육아 근육아 잭의 콩나무처럼 자라 주렴!

 

9. 토요일에는 6개월 만에 약속이 잡힌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 대략 두 시간이 남았고, 나는 그 시간에 영화 '컬러풀'을 보기로 했다. 우리 동네의 지역 도서관이자 영화관인, 맨날 나 혼자 영화 보고 나오던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이 극장은 해마다 5월 31일에 모든 포인트가 사라진다. 심지어 그 달에 적립한 것도 모두 사라진다. 영화를 보지 못하고 교환권으로 포인트를 바꾸고도 2900점이 날아갔다. 언니는 6900점이 날아갔다.(7000원부터 사용 가능하다.) 교환한 영화 관람권으로 컬러풀을 보러 갔는데(현장 예매만 쓸 수 있다.) 상영관 영사기 고장으로 독립 영화가 모두 상영 불가라고 한다. 난 집에서 이미 나왔고, 약속 시간까지 2시간 반이 남았고, 날은 더웠고!!!

 

그래서 전에 표를 구입해 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회를 갔다. 세종문화회관이다. 결정적 순간의 5가지 순간이란 제목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다. '찰나의 미학', '내면적 공감', '거자으이 얼굴', '시대의 진실', '휴머니즘'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그와 관련된 각종 인쇄물과 사진, 기자증, 편지와 원고 등도 전시되어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훨씬 더 충만한 시간이었다. 다리가 좀 아팠지만 기꺼이 감수할 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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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도슨트가 없어서 아쉬웠다.

 

평일 오후 4시, 큐레이터의 전시설명이 있습니다.

주말은 도슨트가 없으며, 오디오 가이드로 이용 가능하십니다.
*오디오가이드 대여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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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추가 도슨트! (6/7~7/21)

1. 직장인을 위한 추가 도슨트: 목/금 PM7
2. 초중생을 위한 도슨트: 토 AM11

 

 

 

<국민당 최후의 날, 중국 1948>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유로크레온

 

 

<스리나가르, 카슈미르 1948>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유로크레온

여러 책자를 함께 팔고 있는데 가장 탐나는 책은 무려 99,000원이었다. 내가 산 프로그램은 만원.^^

사진은 적고 설명이 좀 더 많다. 사진이 적은 것은 아쉽지만, 원본 크기로 보고 왔으니 그걸로 만족하련다.

 

 

 

감정이 버거운 한 주를 보냈지만, 그래도 한 주의 마무리는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고마워요, 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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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늘 아침에 전체 문자가 왔다. 내일 아침 7시 반에 회의가 있다고... 다행히 30분 뒤에 회의 취소 문자가 왔다. 최소된 회의가 그 언저리에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쨌든 내일 아침은 회의가 없다. 내일 오전엔 다시 열심히 헬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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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6-0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삽질과 힘든 나날이지만 충만한 날이 있음에 감사를!^^
삽질을 줄이는 방법은 길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꼭 부탁해요!!

마노아 2012-06-04 01:19   좋아요 0 | URL
저게 엄청 검색하고 지도 전부 출력하고 난 다음의 결과랍니다.ㅜ.ㅜ
제 친구는 조리원이 병원이랑 같이 안 있다고 왜 말을 안 해주 줬는지...;;;;;
암튼, 확인에 또 확인은 필수예요.^^;;

turnleft 2012-06-0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요즘 좀 글이 뜸한 것 같아요. 삽질을 전보다 좀 덜 해서 그런거라면 용서해 드릴께요.

마노아 2012-06-04 16:22   좋아요 0 | URL
삽질로 인해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

울보 2012-06-0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고생많으셨네요,,
그런날 있어서 모든일이 자꾸 꼬이는날,,,,

마노아 2012-06-04 16:22   좋아요 0 | URL
제대로 머피의 법칙이었어요...;;;;;

nada 2012-06-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브레송 사진 정말 좋네요!
가고 싶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사진집이나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님의 여름 버전 삽질은 더 안타까워요!
얼마나 힘드셨을고..

마노아 2012-06-05 14:03   좋아요 0 | URL
브레송, 정말 위대한 작가로 보여요. 사진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요.^^
여름 버전 삽질! 아아아... 오늘도 회의가 있었어요. 삽질할까 봐 오늘은 일단 집으로 들어왔어요. 다시 출근해야 해요...;;;;

rosa 2012-06-0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마노아님의 내비게이션이 되고 싶군요.^^;
내비 사기 전까지.. 울 사무실의 내비게이션이 저였거든요.
마노아님, 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향기 좋은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기를 바랄께요.^^

마노아 2012-06-05 14:03   좋아요 0 | URL
아아아, 인간 내비게이션이 절실한 저랍니다.
운동 마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녹차 마루 하나 먹었어요.
피곤이 쫙 깔렸는데 이제 출근해야 해요.^^;;;;
언제고 우리 향 좋은 커피 꼭 나누도록 해요. 달달한 케이크도 곁들여요~

다락방 2012-06-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회사 직원이 에그 쓰는데 이거 방전이 빨리되구요 인터넷도 잘 안잡힌대요. 그리고 항상 휴대하고 다녀야 하는거라서 많이 불편할거라네요. 대부분 자가용 가진 사람들이 자가용안에 두고 쓴다구요. 물론 많이 생각해보시고 하시는 거겠지만 좀 더 잘 알아보세요. 괜히 더 피곤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노아 2012-06-08 18:08   좋아요 0 | URL
약정2년을 걸어야 금액이 반값 할인인데 고민이 좀 되네요. 현재로서는 그냥 지하철 안에서만 와이파이 잡아서 쓰고 있어요. 이거 언니가 신청해줘야 하는데 바쁘다고 안 해주고 있거든요. 정보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