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영화 추천 제도가 사라졌다. 알라딘에서 영화 서비스 자체를 안 하게 된 것일가? 음원 서비스처럼?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내가 추천하려던 영화가 있었으니까 일단 써 보자.^^

 

1월 둘째 날에 시사회로 올해의 영화를 열어준 것은 '원더풀 라디오'였고, 두번째 시사회 당첨작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이다.

 

 원더풀 라디오를 함께 보았던 친구와 또 나란히 앉아서 보게 되었다. 맷 데이먼이 선택한 영화이니, 시사회가 당첨되지 않았어도 보았을 영화지만, 시사회로 보아서 더 만족스러웠던 작품!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고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 칼럼니스트 벤자민 미(맷 데이먼)는 모험심이 강한 사나이였다. 그가 썼던 칼럼들 중에는 때로 목숨을 내놓고 취재한 것들이 있을 정도였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직장에선 그에게 온라인 칼럼을 요청했지만, 동정받는 게 싫다고 선언한 벤자민은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로테스크한 그림들만 그리면서 반항을 일삼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큰아들 딜런과, 달에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는 어린 딸 로지, 그리고 그 자신 모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긴 벤자민은 이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집을 찾아다니다가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고 말았다. 드넓은 대지를 낀 이 집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당장 계약을 하려고 했는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동물원이지 뭔가.

 

동물원을 그대로 인수하는 조건으로 집이 싸게 나온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모험! 어린 딸은 만세를 부르며 신나 하고, 시크한 큰아들은 말도 안 된다며 성을 내는 가운데 벤자민은 이번에도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폐장된 동물원을 다시 개장할 수 있도록 재건하는 일은 보통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고, 병든 동물들에게 의사를 대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도 긁어서 신용카드가 너덜너덜해질 지경.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가야하는 동물들과 '안녕'을 고하는 일이다. 반면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도 자신은 안녕 할 수 있다고 안락사를 요구하는 조련사 켈리(스칼렛 요한슨)는 벤자민보다 더 현실적이고 보다 용감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동물원은 성공적으로 개장한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무척 유쾌하고 상냥하고 따뜻하다. 늘 자극적인 영화들에 싸여 있다가 이렇게 포근한 영화를 만나니 보는 내내 얼마나 흐뭇하고 미소가 지어지던지...  10초만 용기를 내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why not? 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기도 한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큰 용기가 생기고, 이런 영화를 고를 줄 아는 맷 데이먼은 더 사랑스러워진다.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자기 인생의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용감히 미션을 수행해 낸 벤자민과 동물원의 동료들. 그들은 기적을 일구어나갔고, 그 기적을 주변에 퍼뜨렸다. 아름다운 일이다.

 

★★★★★

 

 

 

우리 동네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맥스 무비에서 예매를 하고 나면 다음 날 관람 만족도를 조사하는 메일이 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 영화관의 '만수무강'을 외친다.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오래오래 살아남아 주기를!

그리하여 그 극장에서 본 영화는 이거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과 제목이 자꾸 헷갈리게 된다. 이 사랑스런 영화는 진정으로 '기적'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산이 있는 할머니 댁에서 엄마와 살게 된 코이치의 소원은 화산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되고, 아빠와 동생 류노스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온 가족의 재회만 꿈꾸는 아이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신칸센)아 교차할 때 어머어마한 에너지가 생기는데 그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소년의 소원 빌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신칸센을 타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을 규합하고, 학교에서 무사히 땡땡이를 치는 것까지, 나름 치밀한 계획 하에 움직이는 아이들!

 

저마다의 소원은 달랐다. 동생 류는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고, 누군가는 도서관 선생님과 결혼하기를 꿈꾼다. 그게 안 되면 양호 선생님도 좋다나...;;; 이치로 같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도 있고,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도 있다. 모두들 다른 꿈을 꾸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절박함이 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은, 때로 더 숭고한 소원으로 바뀌기도 한다.

 

영화는 무척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소소한 데서 큰 재미를 준다. 실제 형제이기도 한 마에다 코키와 마에다 오시로 형제는 캐릭터가 잘 살아 있는데, 아버지를 닮은 류의 성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척 엉뚱하면서 대책 없는 아버지 역할의 오다기리 죠는 또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장동건에게 다시 부탁하지만, 이런 캐릭터를 소화하는 모습도 좀 보여달란 말이지...;;;;

 

비록 꿈처럼 화산이 폭발하지도 않고, 죽은 강아지가 살아나지도 않지만, 아이들은 이 여정을 통해서 분명히 성장했다. 게다가 이들의 단단한 모험담은 누군가에게 또 선물이 되어준다. 기차가 교차되면서 일으킨 에너지가 아니라, 아이들의 진심이 보여준 에너지가 사람들의 일상에 소소한, 혹은 그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곧 기적이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공기인형'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는데, 이런 따뜻함을 추구하는 감독의 성향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내가 꿈꾸는 기적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시사회에 가게 된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바로 댄싱퀸!

달랑 한 번 응모해서 당첨이 된 언니는 큰 조카와 함께 앉아서 영화를 보았고, 강냉이를 쏟아 붓고 당첨이 된 나는, 앞의 영화 세편과 함께 이 영화도 같은 친구와 보았다. 으하핫, 1월엔 거의 이틀 간격으로 만난 것 같다.ㅎㅎㅎ

 

주인공 황정민과 엄정화는 극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초등학교 시절 정화네 반으로 전학온 정민, 게다가 집은 정화네 집에 세들어 사는 처지. 짝꿍 자리에 앉기 위해서 '민주주의적 투표'를 거치며 거창하게 만났던 두 사람의 인연은 시간을 건너뛰어 대학생 때까지 이어진다. 그것도 고대 법학생과 연대 사회 체육과 학생으로.

 

두 사람이 데모 현장에서 본의 아니게 민주 열사로 거듭나는 장면은 엄청나게 배꼽을 잡게 한다. 물론, 그 장면에서 울려퍼진 80년대 유행했던 롤러장 음악과 시위대의 폭력과의 교차는 영화 '써니'에서 이미 써먹은 대목이었지만, 그 다음에 언론 플레이로 졸지에 민주 열사로 둔갑하는 장면은 기막히게 역설적이고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웃게 한다. 다시 시간을 건너 뛰어 이제는 변호사가 된 정민과 헬스클럽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일하는 정화가 나온다.

 

사람 좋은 탓에 보증 잘못 서서 파리 날리는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정민과, 전세금 1천 만원을 올려달라는 집 주인 때문에 또 다시 친정에 손을 벌려야 해서 속상한 정화. 이런 두 사람에게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본의 아니게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민중의 영웅으로 거듭난 정민은 서울 시장 후보로 변신하게 되고, 매일 쳇바퀴 돌듯 같은 생활만 반복하다가 왕녀에 포기했던 가수의 꿈에 재도전하게 된 정화가 조신한 시장 후보 사모님과 댄스 성인돌의 이중 생활을 감행한다. 그 사이사이의 일들은 또 얼마나 웃기게 진행되던지...

 

사실 영화의 전개는 무척 뻔하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수순으로 나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감동과 재미를 방해하지 않는다. 감독이 의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황정민의 캐릭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자가용이 고장나서 자전거에 딸을 태우고 출근을 하는 장면에서 손녀딸을 태우고 자전거를 타던 그 미소가 떠오르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점,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느냐고 호통치던 모습까지도 정확하게 겹친다.

 

TV 토론에서 황정민이 보여주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는 어떤 대책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애쓰려는 정치가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정치인에게서는 늘 실망만 맛보던 관객이 입장에서는 이런 영화같은 정치인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원래도 연기 잘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두 배우 황정민과 엄정화는 찰떡 호흡을 보여주면서 한창 물오른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엄정화가 여전히 섹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것도 참 보기 좋았고, 주인공은 아니지만 못지 않게 좋은 정치가로 기대된 정성화의 연기도 좋았다.

 

국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그들의 열망을 읽어내고, 그 꿈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정치가를 만나는 것, 게다가 시장이 되는 것만큼이나 가수가 되는 꿈 또한 마찬가지 크기로 소중한 것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그런 사회, 그런 부부... 모두 기적처럼 기다린다. 그저 잠시 즐기기 위한 오락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

 

 

이번 설 연휴에는 볼만한 영화가 무척 많다. 부러진 화살과 페이스 메이커도 기대가 되고, 오늘은 '밍크 코트'를 볼 생각이다. 만수무강하길 바라는 우리 동네 독립영화관에서! 저녁을 먹고 쉬엄쉬엄 걸어갈 생각이다. 한 일곱 정거장 된다. 너무 춥지 않기만을 바란다. 손님도 없어서 난방도 못해주는 영화관인데 옷이라도 따땃하게 입고 가야지. 

 

덧글) 지난 주 토요일에는 '미남 선발대회'라는 연극도 보았는데, 이 작품 역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아주 재밌고 신나고, 볼거리도 가득이지만, 생각할 거리도 제법 준다.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한 참가번호 1번 때문에... 오늘 이 페이퍼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를 나는 한 친구와 모두 보았다. 우리는 어저께도 만났다. 그저께가 친구 생일이어서...ㅎㅎㅎ 누가 보면 연인인 줄 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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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랑 내일 이 영화 보러가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없어서 난방도 못해주는 영화관이라니, 난방을 해줘야 손님이 오지 않을까요?
일곱 정거장을 걸어서! 저도 대여섯 정거장 걸어본 적이 있긴 있네요. 나중엔 땀이 나던걸요.

마노아 2012-01-22 00:22   좋아요 0 | URL
신호등을 여섯 개 건너서 도착했어요~
오늘 저 혼자서 영화를 보았는데, 혼자 보는 영화관에 필름 돌아가는 것도 송구해서 난방은 꿈도 못 꿔요. 다행히 오늘은 별로 춥지 않았어요.^^

2012-01-21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2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2-01-2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적어주신 영화 세 편 모두 보고싶은 영화에요. 그런데 그게 맘대로 안되니 눈물만.. ㅠㅠ
다음주엔 출근 계획이 없으니 연휴 끝나고 호시탐탐 노려봐야죠 ^^

마노아 2012-01-22 00:23   좋아요 0 | URL
오오오, 호시탐탐 노리기 꼭 성공하셔요.
새해 복 만땅 받으시고용~

재는재로 2012-01-2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편중 댄싱퀸만 봤네여 나머지는 언제 볼지 동물원을 샀다는 보고 싶은데 실화라 더 감동적이라던데 ㅎㅎ
좋은 영화소개 감사 설연휴 잘보내세요

마노아 2012-01-22 00:23   좋아요 0 | URL
동물원을 샀다-는 책으로 보아도 감동적일 것 같아요. 전 영화로 보았으니 책으로 다시 보지는 않겠지만요.
재는재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휴도 즐겁게 보내셔요.^^

라로 2012-01-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 메이커 좋았어요,,,댄싱퀸 보고싶네요,,,,친정부모님과 함께 보러 갈까봐요~~~.
마노아님 댁 근처의 독립영화 전용관이 계속 남기를 바랍니다.
저희 대전에도 그런 곳이 있어요,,,저희는 난로라도 켜주는데...

마노아 2012-01-22 00:24   좋아요 0 | URL
요새 볼만한 영화도 무척 많고 보고 싶은 영화도 엄청 많아요. 무비꼴라쥬도 다 보고 싶고, 오페라의 유령도 3시간이나 되지만 보고 싶고요. 아, 맥스무비 쿠폰을 동냥해야겠어요.^^ㅎㅎㅎ

2012-01-22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2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2-01-2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물원 보았어요!!
생각보다 더 재미나더라고요 ㅎㅎ
마노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 ㅎㅎ

마노아 2012-01-22 20:15   좋아요 0 | URL
키티님, 오랜만이에요.
이 영화 좋지요? 주변에 강추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저조해서 안타까워요.
키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2012년 힘껏 달려요.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