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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품절
사놓고 한참을 잊고 있다가 뒤늦게 펼쳐든 책이다. 작가의 서재를 훔쳐보는 기획은 아마 2005년과 2006년에는 무척 신선했으리라. 지금은 달력에도 작가의 서재 사진이 붙어 있어 훔쳐보는 재미가 덜하지만, 그래도 사진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이문열의 서재다. 사진과 그림의 차이가 재미있다. 또 단면도도 함께 그려놓아서 사진이 많지 않아도 작가의 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85년에 집을 짓기 시작해서 86년에 완공했다고 하는데, 천만원 주고 이천에 땅 1400평을 샀다고 한다. 역시, 서울을 떠나면 집이 없는 게 아니다!
이문열에 심취해본 적이 없어서 그와 기자 박래부가 함께 나누는 대화들이 흥미로웠고 이문열의 이력과 세계관을 엿볼 수가 있어서 그 또한 재밌었다.
김영하의 학교 작업실이다. 고래 뱃속 같은 어둠이라고 표현했는데 피노키오나 요나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부러 어둡게 해서 집중하여 글을 쓰는 것은 여러 작가들에게서 나오는 공통 현상이다. 아마도 밤 시간이나 새벽에 집중해서 글을 쓰곤 하는 것과도 통하지 싶다.
계란판을 마치 잡동사니 정리함으로 쓴 게 이색적이다.
이베이에서 산 중국제 고가구는 생각 외로 저렴했고, 배편으로 도착한 배송비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수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좀 오르지 않았을까. 뭐 살 돈도 없고, 사도 둘 데도 없지만....;;;;
아내와 결혼할 때 허락받았던 이야기가 재미있다.
91쪽이다.
그가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장모가 될 분이 그의 직업을 물었다. 소설 쓰는 사람이라고 하자 책을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나를 파괴할...’을 갖다 드렸다. 그 책을 읽고 장모의 “존 파울즈 소설 같다”는 독후감과 함께 결혼이 성사되었다. 그의 장모는 영문학자는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어딘가에 꽂혀 있을 텐데 슬쩍 읽어볼 때가 되었나보다. 김영하는 나의 관심을 크게 끄는 작가가 아니었는데, 이 책에서 나눈 대화를 보고는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아졌다. 미술과 역사가 중첩된 그의 소설들이 한가득이다. 기대가 된다.
강은교 시인의 집이다. 여성 특유의 정갈한 느낌이 가득한 집이었는데, 징과 북이 눈길을 끌었다. 한 번은 시를 낭송하다가 힘껏 징을 쳤는데 그게 마이크를 잘못 잡은 거여서 마이크가 부서졌다는 에피소드가 같이 실렸다. 아하핫, 귀여우시다..^^
공지영 작가의 서재다. 잡학다독하는 취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서재였다.
작가가 가리면 쓰나. 많이 섭취하고 잘 소화시켜서 당신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면, 독자는 그저 고마울 뿐!
요리하기보다 요리책 보는 걸 더 좋아한다는 대목에서 나비님이 떠오르고 말았다.^^
노동운동에서 소설가로 바뀌는 과정이 참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그가 갔어야 할 길로 잘 찾아갔다는 느낌이다.
물병자리에 대한 소개가 재밌었다. 얼마나 근거가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물병자리 사람들과는 무척 흡사하다.
148쪽이다.
물병자리 사람은 지성적이고 머리 회전이 빠르며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가 걷는 인생도 매우 개성적이고 파란한장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에 잘 치우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한다. 신비롭고 독특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로맨티스트이며, 운명이나 신의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보다 앞선 재능을 가지고 있어 유명한 예술가나 천재가 많다. 많은 운명적 만남이나 계기도 인생에 아로새겨져 있어 그 안에서 많은 것을 흡수해 간다. 그런 것을 겪으며 성장하여 결국 깨달음에 도달한다.
섬진강을 품어 안은 김용택 시인의 서재다. 학교와 임실과 고향의 서재를 모두 보여주었다.
창호지를 발라놓은 창가의 볕이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그 아래 현대식 창과 견줄 것이 못 된다.
216쪽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호지는 요즘 같은 단절의 시대에는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창호지는 프라이버시와 커뮤니티가 절묘하게 타협된 건축 재료다. 방안에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으면서도 밖의 커뮤니티와 아주 단절된 것이 아닌, 한국적 혹은 동양적 조화를 이루게 하는 정겨운 재료다.
정말이다. 창호지도, 부채도, 전통 등불도... 종이로 만든 문과 바람과 불에 대한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인은 칠판 글씨조차도 정겹다. 보통의 선생님들에게서 나오는 꼬장꼬장한 글씨체가 아니다. 예쁘다!
지역 주민들이 땅팔아 보상금 받아 그곳을 떠나고 싶어해서 겪게 되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꽤 울컥하게 한다. 이 땅의 저 토건족들을 다 어찌할까. 최근에 나는 꼽사리다 골프장 편 이야기도 떠오른다. 참으로 심각해, 심각해....
신경숙 작가의 평창동 집이다. 우리 집에서 가깝네. 지금도 여기 사시려나?
삼각형 꼴 집 모양이 특이하다. 천장까지 닿은 계단의 책장도 근사하지만, '풍경'이 더 눈길을 끌었다. 아, 나도 갖고 싶다! 풍경과, 그 풍경을 달아 어울릴 만한 지붕 한자락!
두 사람이 살건만 식탁이 참 넓어서 절로 손님을 초대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테이블 한쪽 구석엔 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장의 등불도 작품 역할을 한다. 미적으로는 신경숙 작가의 집이, 서재가 가장 예뻤다. 여러 조각상들도 등장했는데, 역시 신작가님 방의 조각이 예뻤다.^^
인터뷰는 편하게 흘러간다. 작가와 작품과 관련된 것들을 묻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작가와 작품 세계를 함께 이해하게 도와준다. 다소 욕심을 부린 편이어서 주제의식이 확 와닿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뭉뚱그려서 통으로 다가가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나만의 서재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지금도 내 방은 책으로 가득하지만 내가 꿈꾸는 공간에서는 책들이 좀 숨을 쉬었으면 좋겠다. 나도 숨 좀 쉬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