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경에 도착했는데 4시 도슨트가 5시 30분에 끝났다. 6시 폐장이기 때문에 남은 그림들을 서둘러 봐야 했다. 그만큼 볼 그림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최소 2시간 이상은 잡고 가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대부분이 우리나라 초상화지만, 중국과 일본 초상화도 간혹 섞여 있다. 전시 구성은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하늘과 땅'으로 임금과 신하를 의미한다. 권력의 핵심인 임금의 초상화를 통해 유교적 정치 이념을 구현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다. 무장 출신답게 떡 벌어진 어깨가 우람하다. 사진에선 작아서 안 보이지만 눈썹 위에 작은 사마귀까지 묘사할 만큼 극사실주의 기법을 연출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되 꾸미지 않는 것이 조선 그림의 특징이다. 이 그림은 1872년에 그려졌다. 조선초의 그림을 보고서 모사한 것으로 크기는 218x150이다. 보물 제931호인데 이 그림은 2주만 전시하고 다음주부터는 다른 어진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너무 귀해서 전시 기간도 짧다고 한다. 지난 주에 보고 온 것이 나의 행운이다.
임금의 곤룡포는 빨강색이 우리에게 익숙한데 태조가 입고 있는 파랑색은 고려의 유습이라고 한다. 담홍색 곤룡포는 명나라 법제를 따른 것으로 세종 때부터 입었다고 한다. 의복의 주름을 보면 굵기가 모두 동일한데 이를 '철선묘'라고 한다.
청나라의 권력자 오보이의 초상화다. 강희제 초기에 8년 동안 섭정을 했다. 얼굴 전체에 노회한 권력가의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고 있다. 이성계의 곤룡포에는 누워있는 용이 보이는데, 오보이의 옷에는 꼿꼿이 서 있는 용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은 당대에 그려진 것은 아니고 19세기에 후손들이 그린 그림이다. 때문에 후기 특징인 음영법이 도입되어 있다. 활을 쏠 때 착용하는 깍지를 오른 손가락에 착용하고 있고, 손을 감추는 조선 초상화와 달리 팔을 내놓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의 무늬가 화려하다.
반면 일본의 초상화는 복잡한 배경이 등장한다는 게 특징이다. 위 그림은 비교적 배경이 단순하게 나와 있는데 평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인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우리 그림은 주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비교되는 부분이다.
2부의 주제는 '인의예지'다. 성리학적 세계관을 가장 잘 담아낸 표제가 아닐까 한다. 충신의 대명사로 늘 손꼽히는 정몽주가 앞자리에 배치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정말 고려의 충신이었는가는 한 번쯤 갸웃거리게 되지만...
사모의 각도가 아래쪽으로 처진 것은 고려의 스타일이다. 조선 초에도 이런 스타일의 사모를 썼는데, 성종 때 가서야 두툼한 두께에 평행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그래서 사극 '대왕 세종'에서는 사모가 저렇게 처진 형태로 등장한다.)
조선과 달리 관복에 흉배가 없고 팔자 다리로 표현되지도 않았다. 오래된 그림일수록 의자의 팔걸이 높이가 낮다고 하는데, 확실히 조선의 그림보다 의자 팔걸이 높이가 낮다.
조선에선 총 28차례의 공신 책봉이 있었고, 이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풍습이 있었다. 성리학적 사고관이 확장되기 전에는 여인 초상화도 많았다고 하는데 명종 때부터는 확 줄어들었다고 한다. 문정왕후에게 너무 디었던 게 하나의 원인일까?
임진왜란 때 이름을 날린 계월향의 초상화다. 그림은 1815년에 제작되으니 실물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림은 확실히 어좁이다. 뭐, 어깨가 넓은 것보다는 한복 디자인에 더 어울리는 체구일 테지. 김응서의 애첩이었던 그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에게 몸을 버린 뒤 기지를 발휘해 김응서로 하여금 그자를 죽이게 한 뒤 자결했다고 한다. 만약 자결하지 않았다면 조선 시대에 그녀의 이름을 이렇게 높이 받들지 않았을 테지? 씁쓸한 일이다.
김은호가 상상해서 그린 논개다. 친일화가다 보니까 선입견이 개입되어서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 방해가 됐다. 게다가 최경회의 후처였던 논개를 '의기'로 표현한 것도 무척 거슬렸다.
홍경래의 난 때 군수 일가를 도운 최연홍, 일명 운낭자의 초상화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느낌으로 그림을 표현했다.
주세붕의 7대손인 주도복은 영조 때 인물로 효자로 유명했다. 어머니의 병 때문에 단지수혈을 했고, 영조가 승하했을 때는 3년상을 챙길 만큼 충효에 온 힘을 기울였다. 초상화 속에서도 그는 상복을 입고 있다. 자원봉사로 설명해 주시던 분이 '이인좌의 난'을 '이괄의 난'으로 잘못 얘기하셨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
이 부분을 설명하실 때 기로소 얘길 하셨는데 이 그림이 기로소에 든 것을 기념해서 그려진 것인지 확실히 기억나질 않는다.ㅜ.ㅜ '기로소'는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 일종의 고위직을 위한 양로원 쯤으로 이해된다. 나이가 70이 되면 기(耆), 80이 되면 노(老)라고 하였다. 임금도 나이가 들면 기로소에 들었는데 태조(60세), 숙종(59세), 영조(51세), 고종(51세)이 기로소에 들어 노신들과 사귀었다.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7백 여인이 기로소에 적을 두었는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으로 98세였으며, 다음 숙종 때 97세의 이구원, 96세의 민형남 등이 있다. 지금의 관점으로도 꽤 장수하신 분들이다. 어제 경복궁에 다녀왔는데 그 앞에 기로소터가 있어서 괜히 반가워 흐뭇했다. 걸어 나오면서는 교보문고 앞을 지났는데 그곳에는 고종의 재위 40년을 축하하는 칭경기념비가 있어서 또 괜히 연결시켜 구경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고종의 재위 40주년은 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캄캄했던 때이지만...
남인의 영수 채제공의 초상화다. 사팔뜨기 눈조차 수정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조선 초상화의 진수 중 하나. 못생긴 인물도 미화시킨 서양의 초상화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채제공이 73세 때에 그렸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오면 의복 속에 가려져 있던 손이 등장하는 변화가 나타나는데,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손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역사의 맞수' 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그림들이 재밌었다. 이를테면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배치한 것이 그것인데, 부러 그렇게 그린 것은 아니지만 사명대사 그림이 더 커서 어쩐지 눌러주는 느낌이랄까.ㅎㅎ
송시열과 허목, 송시열과 윤증을 배치해 놓은 것도 좋은 맞수의 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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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초상 이후 복건과 심의 착용한 유복화 초상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유학자들도 대세를 따랐다고 할까.
송시열은 풍채가 무척 좋은데,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이순재씨가 송시열 역할을 해서 체구가 비교된다...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미수 허목은 이름 그대로 눈썹이 새하얗다. 초상화를 그린 때에 이미 82세였다.
송시열의 문인이었던 윤증은 아버지 윤선거의 묘비명을 송시열이 무성의하게 써주자 과감하게 송시열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 사건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는 한 계기가 된다. 몹시 신경질적인 인상인데, 적어도 겉다르고 속다르게는 안 굴 것 같은 느낌이다. 탕건 안에 대머리가 훤히 비친다. 역시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조선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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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정의 대명사 한음 이덕형과 오성 이항복이다. 둘은 친구였지만 이덕형이 다섯살 연하다.(게다가 5년 먼저 죽기까지...ㅡ.ㅡ) 최연소 대제학을 지냈고, 38세엔 영의정까지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보여준 활약에 힘입어 고속승진한 게 아닐까 싶다. 토정 이지함은 이산해의 숙부인데 그를 보고 단번에 인물됨을 알아보고 이산해에게 사윗감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설명해주신 분이 이지함의 사위라고 하셨는데, 이산해의 사위가 맞다. 그리고 이항복은 권율의 사위가 되었는데, 거기에는 '감나무 주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ㅎㅎ
의자에 호피가 깔린 그림이 많았는데, 아래 늘어진 꼬리가 보여서 꼭 호랑이가 둔갑한 채 앉아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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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윤두서가 그린 심득경 초상화는 그가 죽은지 3개월 뒤에 그렸는데, 유족들이 죽은 이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느낄 만큼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게다가 인상도 좋다.
고려의 초상화는 오른뺨이 보이는 우안의 각도로 그려지곤 했는데, 조선의 초상화는 왼쪽 뺨이 보이는 좌안으로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17세기에 가면 정면 초상화가 등장한다. 전운상 전일상 형제의 초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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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18세기 인물인데 17세기 화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전일상은 무관임에도 가슴에 쌍학 흉배를 단 것으로 그려졌는데 제법 과장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피는 주로 18세기에 그려진 초상화에 등장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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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본 인물은 이재와 이채 초상화로 소개된 그림이다. 조부와 손자로 명명되곤 하지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 보면 두 사람은 10여 년의 시간 차가 있을 뿐 같은 사람이라고 꽤 힘주어 얘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까지 들이밀었지만 아직까지도 옛 주장대로 이재와 이채의 초상화라고 명명되고 있으니 꽤 답답했다. 이성낙 교수의 피부과 의사로서의 진단 얘기를 다시 들여다 보니 지난 번 유홍준-박경철 대화 때 들었던 대목도 떠올라 반가웠다. 이렇게 다시 마주치는구나!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이며 정약용의 외종조로 유명한 문인 화가다. 이 그림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른쪽 그림만 보면 얼굴만 둥둥 떠 있어서 무척 무섭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적외선 촬영 결과 왼쪽 그림과 같은 옷깃이 드러나서 그림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터럭 한 올까지도 상세히 그린 극사실주의의 진수라고 하겠다. 그나저나 윤두서는 아무리 봐도 장비를 연상시킨다. ㅎㅎㅎ
나중에 나오는 최치원의 초상화도 적외선 촬영 결과 인물 양옆에 시동 두 명이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 고가의 종이와 염료 등을 고려해서 재활용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이순신 초상화다. 그려진지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았다. 징비록 등의 기록에 근거해서 그린 그림으로 선비의 느낌을 담아 단아한 멋이 보여진다. 늘어뜨린 병부는 마치 만두를 연상시키지만....;;;;
루벤스가 그린 '한복을 입은 남자' 그림이다. 한복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동양인의 얼굴같지도 않지만, 서양인이 그렸으니 동양적 느낌이 적었을 수 있겠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은 철릭이며 상투를 틀고 있고, 손을 감춘 공수 자세가 또 조선 스타일이다. 배경에는 희미하게 '배'가 등장하는데 이는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은 미국LA 폴 게티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전시회에 나오게 되었다.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루벤스전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루벤스 그림을 보러 갔다가 생각보다 별 감흥없이 나왔는데, 그 옆에서 강세황전을 우연히 보고서 더 깊은 감격을 받고 나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막 읽은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동행했던 지인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서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들었다. 내 인생의 책 넘버5 안에 들어가는 멋진 책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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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지인이 내게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빌려주었는데, 아직도 못 읽었다. 헉, 몇 년이 지난 것인가. 나중에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읽게 되었는데 소재가 좋았지만 용두사미격 마무리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그래놓고도 '원행'을 나중에 구입했다. 나로서는 김탁환과 이정명의 느낌이랄까. 발상과 소재가 기발한데 이야기의 힘이 뒤에 가서 많이 딸리는 느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시작됐던데, 책으로 읽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장혁과 송중기가 나오니까 챙겨봐야지.ㅎㅎ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린 서직수의 초상화다. 주름의 각도가 참 예술적이다. 이렇게 근사한 그림인데도 서직수는 자신의 정신은 못 그려냈다는 총평을 냈다고 한다. 하핫, 욕심쟁이!
전시장에는 서양의 초상화도 몇 점 있었는데, 그림을 보니 일리야 레핀이 떠올랐다.
레핀이 그린 맨발의 톨스토이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169/91/coveroff/8991958176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102/76/coveroff/8960170305_1.jpg) 그러다 보니 생각이 가지를 쳐서 '대위의 딸' 표지가 떠올랐다. 저 그림을 표지로 삼은 책이 더 있었는데 제목이 뭐였더라???![](http://image.aladin.co.kr/product/461/57/coveroff/8937462192_1.jpg) 아, 안나 카레니나다.ㅎㅎㅎ
제목을 빠뜨렸는데 '자아와 일상' 파트를 지나면 '새로운 눈, 사진' 파트로 마무리 된다. 채용신이 그린 매천 황현의 초상화는 사진을 보고 그렸다고 하는데, 실제 인물과 비교해 보면 그림에 약간의 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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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황현은 어깨가 좁고 체격이 무척 왜소한데 초상화 속의 황현은 그래도 제법 다부져 보이는 느낌이다. 그렇다 해도 정말 사진이라 해도 믿을 만큼 닮은 모습이다.
전시 설명만 90분을 들어서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무척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던 전시회였다. 대부분이 조선의 그림이었고, 외국 작품은 많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특징 정도는 비교해봄직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많이들 찾아가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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