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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 Countd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태건호. 그의 직업은 회수율 100%를 자랑하는 채권추심원입니다. 사채 빚을 진 사람들을 찾아가 어떡해서든 빚을 받아오는 게 그의 일입니다. 그는 좀처럼 웃는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웃으면 다른 사람 열 사람이 울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호가 운전 도중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옵니다. 의사는 간암이라고 했고 상당히 진척되어서 무척 위급하다고 했습니다. 생명은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다나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기증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처음에 건호는 자신의 병명을 거부했습니다. 다른 병원을 재차 찾았지만 같은 이야기만 들려올 뿐입니다. 어떤 의사는 웃음으로 치료해 보자고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합니다.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보라고. 이 남자의 좋았던 시절에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5년 전에 죽고 없습니다. 그에게서 좀처럼 웃음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또 발견하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이 남자,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채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건호는 아들과 예전에 살았던 집으로 찾아갑니다. 철거 직전의 아들 방 책상 서랍에서 상자를 하나 찾아냅니다. 거기에 피아노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가 있습니다. 무언가 기억이 상처를 건드리지만 좀처럼 그 지점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건호의 아들은 뇌사 상태로 죽었고, 장기 이식으로 네 명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전달했습니다. 남자는 그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가며 자신에게 간이식을 해줄 수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너의 생명을 빚졌으니 이번엔 내 생명을 살려봐라!라는 무언의 눈빛이지만, 목숨 빚을 졌다고 해서 목숨으로 되갚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그러다가 아들의 심장을 받아간 차하연과 연이 닿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보통이 아닙니다. 희대의 사기꾼으로 숨소리조차 거짓말 같다면 좀 상상이 될까요? 차하연으로 분한 전도연은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해 냅니다. 어째 나이가 들수록 더 섹시해지는 것인지, 천상 요부라고 해도 칭찬으로 들릴 만한 연기를 펼쳐냅니다.
차하연은 현재 교도소에 있습니다. 곧 형기를 마치고 나올 예정인 그녀가 선뜻 간이식 수술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나 찾아달라고 하지요. 조명석. 그녀의 사기 기술 전수자이며 동업자였고 선배였던 사람. 그리고 그녀를 배신하고 교도소에 처넣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채권추심원의 장기를 발휘해서 경찰 신원조회 기록에도 뜨지 않은 사내를 건호는 찾아냅니다. 무리해서 몸을 쓰고, 건강은 더 악화되고, 이제 수술을 장담할 수 있는 기한은 딱 열흘로 좁혀집니다. 열흘 안에 수술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교도소 출감 당일 그녀를 데리러 갔던 건호는 차하연에게 거액의 사기를 당한 옌벤 흑사파 두목과 추격전을 벌입니다. 오만석이 분한 스와이는 연극 트루 웨스턴의 느낌과 무척 흡사합니다. 성질 더럽고 악독한 캐릭터지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캐릭터가 그에게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스와이 일파는 무사히 따돌렸지만 차하연에게 속아 간은커녕 차와 지갑까지 빼앗긴 태건호. 그렇지만 그가 차하연을 포기할 리가 없지요. 이때부터 건호와 하연, 그리고 조명석과 스와이 사이의 서로 쫓고 쫓기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됩니다. 게다가 심각한 소재와 달리 시종일관 웃음 코드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웃지 못하지만 관객은 충분히 웃을 수 있지요.
여기까지만 해도 이야기는 충분히 재밌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누구든 속일 수 있고, 뭐든 가볍게 다가서는 차하연이지만, 그녀에게도 씻지 못할 원죄가 있습니다. 본인이 인정을 하든 못하든 말입니다. 건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아들의 죽음에는 분명 비밀이 있습니다. 그들의 비밀과 진실은 천천히 공개됩니다. 그리고 관객은 주인공들의 상처에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게끔 동화됩니다. 그들이 뿌린 씨앗이 얼마나 위험한 싹으로 자라났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코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가 없게 됩니다. 오히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냐고 다독여주고 싶어지지요.
아마 그들은 세상을 향해 저항하고 싶었을 겁니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세상을 향해 복수를 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얼마든지 망가져 주겠다고, 얼마든지 되갚아주겠다고 이도 악물었을 겁니다. 어떻게든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 보겠다고 아등바등 버텼는데,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은 작고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우면 생명부터 살려야 하고,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합니다. 비록 그들은 자연의 섭리에 대항할 수 없고, 인간의 숙명을 피해가지도 못하지만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의 엔딩과 함께 깊은 감동을 끌어냅니다. 작고 힘없는 인간이 크고 숭고해지는 절정의 순간이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더듬어 봅니다. 거액이 든 통장보다 따뜻한 포옹 한 번을 더 원하는 외로운 영혼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어렸던 부모, 자신처럼 실수하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부모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아이도 연민이라는 것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고, 위로해 주며 함께 살아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조리하고 부도덕하고, 말썽 많은 이 세상에서 그래도 인간들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웃었고, 많이 짠했고, 그리고 많이 좋았습니다. 누구라도 장담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니까, 아빠니까, 자식이니까-라는 당연한 입장이 아니라, 그저 그 누군가의 각별한 입장 말입니다.
강냉이를 쓸어 모아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본 영화입니다. 수영을 하루 못 갔지만(결과적으로 3회 연속 빠지고 체중증가에 식겁까지 했지만)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에 감탄했고, 허종호 감독의 이름 석 자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보여준 연출 기법은 최고였습니다. 치료와 봉합의 미학이랄까요. 올해 본 한국 영화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한다면 너무 후한 걸까요? 좀 후해도 되겠습니다.^^
영화 카운트다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