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주연의 영화는 언제나 극과 극을 갔던 것 같다. 아주 나쁜 놈이거나, 아주 웃긴 놈이거나. 아마도 꽤나 강렬한 인상 덕분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는 나빴고, 웃기기도 하지만, 또 좋은 놈이기도 한... 그런 역할이다.
보험 챔피언도 먹었었던 영업사원 배병우는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연봉 10억을 받지 못하면 짐승 새끼라는 다짐을 날마다 새기며 일어나는 그는 이직을 일생 최대의 기회로 여긴다. 여자 친구는 10억 씩이나 벌어야 행복할 수 있는 거냐고 묻지만 당시의 그는 소박한 행복의 맛도 멋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갈 뿐.
그런 그에게 적신호가 떨어졌다. 그의 고객이 그의 충고와 정보를 바탕으로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유족은 자살 방조 혐의로 고소를 했고 그는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여자 친구는 몹시 실망해서 떠나버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년 전에 가입시켰던 불량고객이 떠올랐다. 과거에 자살 시도 경력이 있었던 그들은 이제 보험금을 노리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배병우는 그들 수상스런 고객 네 명을 쫓아다니며 생명보험을 해지하고 연금보험으로 전환할 것을 설득한다. 하지만 작정하고 보험을 들었던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윤하는 영화에서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어린 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나온다. 자신의 꿈과 생계를 함께 책임져줄 최적의 직업으로 가수가 되고 싶지만 현실의 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이승환은 윤하를 몹시 좋게 보고 있어서 공연의 게스트로 곧잘 초대하곤 했다. 그래서 윤하의 노래는 라이브로도 종종 들어봤지만, 난 그녀의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부른 그녀의 노래들은 모두 좋았다. 내가 싫었던 것은 단지 그녀의 노래였구나. 다른 노래를 부르니 이렇게 좋은 것을....;;; 첫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보 티나지 않게 잘 소화해냈다.
정선경은 무려 네 아이의 엄마로 나오는데 남편을 잃고 혼자 어렵게 아이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좁은 집의 디테일한 풍경이다. 저런 형편에서는 깔맞춤 가구란 나올 수가 없는 법!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인 서랍장들이 빈궁한 살림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어린아이들이있는 집인지라 몇 권의 동화책과 귀여운 스티커들도 붙어 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장녀와 달리, 아직은 마냥 해맒기만 한 세 동생들. 엄마를 돕고 싶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길목에서 나물을 팔아보려고 하지만 장사가 될 리가 없다. 저 모습을 목격한 엄마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반항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존심만 내세우는 큰 딸이 답답했는데, 아이가 갖고 있던 배신감의 무게를 들었을 때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2/3 지점이 넘어가서야 슬퍼지지만 그 전까지는 꽤 코믹하게 진행된다.
이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도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
잠깐 출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수미. 잔돈은 절대 내주지 않는 실력을 선보이신다. 아마도 손님의 상태(?)를 보아가며 그런 결정을 내리시는 듯. 그나저나 영화 보면서 맥스봉이 참 먹고 싶었다. 후후훗!
윤하의 동생으로 나오는 정성하.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기타 치는 것을 보고서야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았던 소년임을 떠올렸다. 정말, 윤하의 기를 팍팍 죽이는 솜씨였다. 찾아보니 아직 중학생이다. 어휴!
정성하 연주
하루종일 아무와도 얘기하지 못했다면서 낯설고 수상한 아저씨를 붙잡는 아이. 학교도 가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가 내민 그 손이 무척 아팠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하루종일 집에 갇혀 있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댄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울까. 그런 노인과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대사가 딱히 많았던 것도 아니고 큰 액션을 요구하지도 않는 배역이었지만, 그냥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야구장 씬도 무척 재밌고 멋졌다. 대가는 썼지만, 일생의 여인을 만났으니 그대에게는 행운!
처음엔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될까 봐 가입자들을 쫓아다니던 배병우는 어느덧 그들의 인생에 깊이 개입되어 그들의 '삶'이 끝나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몽블랑을 목표로 했을 때는 갖지 못했던 마음들이다.
내 죽음으로 나오는 보험료를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을 먹었다면, 그 마음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10억 연봉을 목표로 발에 땀이 나도록 달리지만, 누군가는 자식들 입에 풀칠이라도 시키려고 새벽 바람을 맞으며 쓰레기 봉투를 치운다. 그 극단적 대비는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더 불편하다.
틱 장애를 갖고 있으며 노숙자 생활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청년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적는다. 인위적인 설정인 것일까. 누군가는 그렇게 냉소를 날릴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사람도 있을 거라는 안도와 한숨을 같이 품어 본다.
그들의 삶을 그토록 버겁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끝까지 살아남게 만드는 동아줄도 가족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가난해서 아프고, 가난해서 더 서러운 그들에게 가족마저도 없다면 어떻게 이 무서운 세상을 살아갈까. 하지만 그들처럼 늘 힘이 되어주는 가족만 있는 것은 아니니, 버리고 싶은 가족도 분명 있는 법이니까....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가족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사실은 이 사회가 제도적으로 그들을 벼랑 끝까지는 밀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그들을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것은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이곤 하니까.
그래서 모순을 느끼면서도, 고객님의 행복이 곧 저의 행복입니다!라는 멘트에 희망을 걸어 본다. 노동자의 행복이 자본가의 행복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기업가가 있다면, 학생의 행복이 곧 교사의 행복이라고 믿는 학교가 있다면, 이웃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모두가 믿는다면, 그 세상은 정말 행복한 세상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