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해보았지 6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느라 서재에 거미줄을 치고 말았다. 빵 만들어본지도 꽤 되었다. 

깨찰빵 믹스로 빵을 만든 것은 지난 주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믹스로 적당량의 재료가 배합되어 있으니 나는 반죽해서 굽기만 하면 되는 초간단 메뉴! 

하지만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았다. 너무 찰져서 반죽할 때 들러붙어서 고생을 했다. 괜히 거품기로 했다. 주걱으로 할 것을... 사용설명서 그림에 거품기가 그려져서 따라했더니만... 남은 믹스는 주걱으로 하리! 

오븐 토스터에 35분 구으라고 되어 있었다. 울집 바늘은 30분이 최대치니까 30분 돌리고 추가로 5분 더 돌릴 셈이었다. 그런데 25분이 못 되어서 타는 냄새가 또 나를 자극하였으니.... 

 

찜질방에서 돌멩이를 구운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저 맨질맨질 까만 껍데기를 어찌 할꼬. 

 

그래도 윗부분을 걷어내면 안은 쫀득쫀득한 깨찰빵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믹스의 힘이지. 

오븐 토스터 시간 맞추기가 참 어렵다. 울집에 있는 모델은 출력이 1100W인데, 그 다음에 출시된 모델은 800이던가, 900이던가... 너무 세서 타기 쉬워서 전력을 좀 낮춘 게 아닐까 싶다. 전기세도 많이 잡아먹게 생겼고... 

하여간 다음 번 믹스는 반죽도 조심, 시간 맞추는 것도 조심조심!! 

내 빵을 한 번도 먹지 않은 큰조카가 좋아하는 깨찰빵! 그렇지만 탔다고 안 먹겠다는 걸, 껍데기 다 발라내고 줬더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하지만 왠지 씁쓸한 이 기분....-_-;;;; 

그 다음 날이었던 지난 주 화요일은 하루종일 기생수를 보느라 바빴다. 내가 중고 등록한 책이었는데 주문이 들어와서 말이지... 오래 전에 읽고 막상 애장판으로 구입한 다음에는 한 번도 읽지 않았는데, 바로 떠나보내기 아까워서 부랴부랴 다시 읽었다. 역시 좋더라. 괜히 팔았나 싶을 만큼...ㅎㅎ
그런데 이번 주 초였던가? 원어데이에서 40% 세일을 하는데, 그래도 내가 판 책보다 두 배는 비싸더라. 나한테 사가신 분은 횡재!  
 

그리하여 수요일에 다시 빵만들기에 도전했다. 이번 주제는 야채가 들어간 카레 머핀. 나름 웰빙 빵 되시겠다. 

 

당근은 좋아하지 않지만 카레를 좋아하는 나. 감자와 당근은 집에 있었는데 쪽파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이로 대체했다. 난 파보다 오이를 좋아하지.... 이러면서. 

나름 열심히 다졌더니 저 모양새. 엄니가 집에 계셨으면 더 잘게, 더 빠르게 해주셨겠지만 엄니는 출타중. 

 

알고 보니 집에 찜질용 전용 냄비가 있었다. 오목하게 생긴 삼발이 찜질기를 쓰지 않아도 되니 한 그릇에 더 많은 베이킹 컵을 집어 넣을 수 있었다. 오븐 토스터를 이용하지 않고 끓이면 되니 탈 염려도 없고, 그야말로 성공 예감 120%였다. 

 

예정된 시간을 채우고 뚜껑을 열어보니 베이킹 파우더로 적당히 부푼 녀석들이 나를 마주하고 있다. 냄새는 그럭저럭, 카레 향이 나는군! 

 

비쥬얼은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가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쟁반에 옮겨놓으면 언제나 저리 찌그러져 있다. 미안. 한꺼번에 굽느라고 너무 좁았지? 그래도 맛만 좋으면 된단다! 

중간에 조카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느라고 다 식은 다음에 시식할 수 있었다. 유산지가 잘 떨어지지 않아서 고생스럽게 껍질을 벗기고 한 입을 먹었는데...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이건... 맛이 좀 아니었다.  

뭐랄까. 딱히 아주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맛있지도 않은.... 정말 이도 저도 아닌 니맛도 내맛도 아닌 그런 맛! 게다가 카놀라유를 너무 많이 넣었는지 느끼하기까지...;;;;; 

엄니는 카레향이 싫다고 시식을 거부하셨고, 큰 언니는 집에 오자마자 이 토한 것 같이 생긴 건 뭐냐고 한 소리를 했고, 조카들은 모두 보자마자 외면했다. 

그래서 나는 또, 나 혼자, 열심히, 치열하게, 서럽게 저것들을 먹어치워야 했다. 

아, 괴로웠다.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아.  

사흘째 되던 날 최후의 두 개가 남았을 때, 하나는 둘째 언니가 나에게 지은 죄가 있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시식을 했고, 맛은 괜찮네.... 라며 울 것 같은 얼굴로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도 남은 하나는, 도저히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 다시 이틀을 방치시켰는데, 어느 순간 엄니가 갖다 버리셨다. 이제 제발 그만 만들라면서 막 화내시고......ㅜ.ㅜ 

너무 의기소침해져서 다음 빵을 만들 엄두가 안 나기도 했지만, 그 후로 열흘 간은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데 올인해 버려서 빵을 만들지 못했다.  

좀 전에 다시 한 번 밥통 케이크 책을 쭈욱 훑어보았는데 지나치는 엄니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크림 치즈로 빵 만들려고 파리바게뜨 기프티콘도 사놓았는데....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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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리를 해보았지 8-마지막회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5-09 15:17 
    깨찰빵과 핫케이크는 지난 4월 26일에 만들었으니 한참 전이다. 남아있던 믹스 가루를 다 쓰기로 결정, 두 번째 만들어보는 거라고 여유만만한 손동작으로 아주아주 대충 만들었다. 지난 번 만들 때 반죽이 손에 찰싹찰싹 달라붙었던 게 싫어서 그냥 숟가락으로 뚝뚝 떼어서 오븐 토스터의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귀차니즘의 대가는 찬란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양철나무꾼 2011-04-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마노아님이다~~~
제가 엄청 느긋해서 영타로 버벅거리는 일은 없는데...막 치다보니 영타인거 있죠.
넘 오랫만이예요, 반가워요~^^
와락~한번 안아봐도 돼죠?

근데 말이죠.
진짜 꿋꿋하세요.
제가 와플메이커 사서 반죽해서 딱 한번 해먹어보고 다시 잘 싸서 보관중이거든요.

저 빵은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해당사항 아니예요?@@

마노아 2011-04-23 17:15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반가워요, 부비부빗(^^ )( ^^)
저도 방금 급히 치다가 막 오타나서 수정했어요. ㅎㅎㅎ
우리 와락! 한 번 안아보고 시작해용~(응, 뭘??)

아, 저의 꿋꿋함이 흔들릴 뻔한 최대 위기였어요.
지금까지는 흉측해도 맛은 좋았다라는 것으로 버텼는데, 단팥의 단내를 능가하는 능글능글함과 부담스러운 조화였어요. 카레도 좋아하고 감자도 좋아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ㅜ.ㅜ

다음 빵은 엄니 안 계실 때 도전해야겠어요.ㅋㅋㅋ
그나저나 와플 페이퍼 보고서 와플 기기도 사고 싶다고 침 흘렸어요.^^

순오기 2011-04-2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빵 페이퍼가 반가웠는데~ 맛은 아니었군요.
아마도 야채가 많이 들어가서 그랬지 싶은데...
어머니가 갖다 버리고 화내고~~~~~마노아님의 빵 도전기 최대의 위기로군요.ㅋㅋㅋ

마노아 2011-04-24 01:04   좋아요 0 | URL
아핫, 야채가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이군요. 그 생각은 못했는데 그럴 수 있겠어요.
어휴, 무난한 제 입맛에도 영 아니었답니다.
진정 빵 도전기 최대의 위기예요.^^ㅎㅎㅎ

무스탕 2011-04-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도구 하나 찾으셨네요. 찜 전용 냄비. 이걸로 뭔가 더 그럴듯한게 탄생할거에요.
깨찰빵은 저도 좋아하는데 저런 믹스가루가 있다니 빵은 빵집에서를 외치는 저도 슬쩍 사볼까 싶은 마음이 드네요.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사게 된다면 실험(?)결과를 저도 밝혀 볼게요 ^^

마노아 2011-04-24 14:03   좋아요 0 | URL
찜 전용 냄비는 무척 큰데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설거지가 두 배로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찜 삼발이보다는 훨씬 편해요.
저도 깨찰빵 믹스가 있는지 몰랐는데 언니가 사다줘서 알았어요.
무스탕님의 활약도 기대해 볼게요.^^

꿈꾸는섬 2011-04-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엔 너무 맛있어 보여요. 깨찰빵도 맛있을 것 같구요. 저도 믹스가 있다니 한번 사서 해봐야겠어요.ㅎㅎ

마노아 2011-04-25 13:34   좋아요 0 | URL
하하핫, 위로 감사해요..ㅜ.ㅜ 그치만 저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머핀이었답니다...;;;;
깨찰빵 믹스는 좋은 선택이 될 거예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