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많은 비가 아니지만 한 방울도 맞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드는 비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린다. 그럼에도 모두들 우산을 쓰고 있다. 어느 할아버지 한 분만이 용감하게 우산을 접고 걸어가신다. 저분이 좀 더 젊었더라면 조금 더 조심을 하셨을까?
대학 때 수업을 듣다가 어쩌면 북한에 핵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통일 되면 그건 우리 거 아니냐? 라는 교수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막연하게 그것도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건 나중에 바람구두님 글을 보면서 깨달았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먹힐 수 없는 절대 악. 그러니 원자력 발전소 역시 그만큼 무서워하고 경계하고 함께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가 동시에...
좀 길지만 꼭 봤음 싶은 기사 하나 링크 걸어본다. 더불어 관련 책들을 좀 꼽아보련다.
프레시안 기사
히로시마. 어제 읽은 책이다. 그림책의 형식을 빌렸지만 일종의 사건 경위 보고서 내지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다. 1945년부터 1997년까지 전 세계 주요 이슈와 핵 관련 사건들의 일지를 마지막에 실었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미국은, 정말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게다가 일본은 누구보다 원폭의 위험성을 제대로 직면했으면서도 왜 정신을 차리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늘 나쁜 결정을 내리고 그것으로 위험한 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인데, 그 사람들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똑똑하면서 가장 멍청한 게 인간인 것 같다.
저녁뜸의 거리. 만화책이다. 지금은 아마 절판일 것 같은데...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한 소녀가 10년 후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와 그녀의 조카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세로 읽기가 조금 피곤했고, 연출 방식이 좀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그 정도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제목은 참 낭만적이건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은 구입해놓고서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기증을 했던 책이다.
원폭 2세 환우였던 김형률 씨의 평전이다. 똑같은 아픔을 지녔던 원폭 1세 재일 교포로부터 일본에 구걸하러 왔냐는 극언을 듣고 충격으로 사망한 고인. 찾아보니 김곰치 씨의 '지하철을 탄 개미'에도 이 내용을 실었다고 한다. 읽기에는 이쪽이 덜 아플 것 같다.
히로시마를 읽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여긴 책도 있다.
맨발의 겐은 내게 흥미를 끄는 그림체가 아니지만 기꺼이 봐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릴 것이다. 더불어 평화에 대한 그 갈급함도 저릿하게 느낄 수 있을 테지.
원폭 후유증으로 열두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사다코. 소망을 담은 천 마리 학을 모두 접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릴 때 곧잘 접곤 했던 천 마리 학에는 로맨틱함과 낭만만 있었는데 누군가에겐 이토록 절박한 사연이 있었던 게지...
어릴 적에 인상 깊게 보았던 드라마로 '달빛가족'이 있었다. 거기서 가수 김승진이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하나같이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알라딘에서는 ost가 나오질 않네.
새끼 손가락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네
할아버지가 히로시마에 살고 계셨다네
내 왼 손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있었죠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나의 왼손
우우 우~ 우~ 우~ 우~
버섯구름이 피어 오를때 우린 무엇인지도 몰랐지
할아버지의 핏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줄
내왼 손가락은 한덩어리 여서 제일 불쌍한 새끼 손가락
봉숭아 물한번도 못들이는 내손가락
우우 우~ 우~ 우~ 우~
내 왼 손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있었죠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숨어있는 나의 왼손
우우 우~ 우~ 우~ 우~
버섯구름이 피어 오를때 우린 무엇인지도 몰랐지
할아버지의 핏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 줄
내 왼 손가락은 한 덩어리 여서 제일 불쌍한 새끼 손가락
봉숭아 물 한 번도 못들이는 내 손가락
우우 우~ 우~ 우~ 우~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이 책을 보다가 분노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폰더 씨가 만난 인물 중에는 트루먼도 있었는데 그가 원자폭탄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이는 어쩔 수 없는, 인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가식을 떠는 장면이 나온다. 맨 위에 소개한 '히로시마'에 보면 실제로 트루먼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1958.2
미국의 트루먼 전 대통령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함. 히로시마 시의회가 이에 대해 항의함.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책은 히로세 다카시의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다. 구하지 못한 책인데 제목을 보고 더블이 동시에 생각났다. 알려졌다시피 존 웨인은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정복자'를 찍다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영화 관계자들이 대부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는데 존 웨인만 미 정부가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2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는 설이 있는데 그를 냉동보관하고 있는 중이라나 어쨌다나.
박민규의 더블에는 바로 그 존 웨인이 천 년이 지난 뒤 냉동인간에서 깨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천 년을 지연시킨 죽음이지만 그 끝은 천 년 전보다 더 허무하게 끝난다. 제목은 역설적이게도0 '굿모닝 존 웨인'이지만...
내가 시미즈 레이코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달의 아이'였다. 지극히 순정만화스런 제목과 그림체이고, 소재도 인어공주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들어 있다. 충격적인 전개였다. 물론, 작품에서는 그 비극적인 사고를 비튼 결말로 바꿔버리긴 하지만 충격과 공포를 전달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초판본으로 갖고 있어서 애장판을 구입하지 않았는데 절판된 것을 보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보관을 잘못 해서 책이 좀 휘었는데, 휘어진 책은 좀처럼 원형 복구가 되질 않는다. 아무리 두꺼운 책으로 눌러놓아도.... 나중에라도 미련이 계속 남으면 중고책이라도 애장판을 구해볼지도...
그러고 보니 시미즈 레이코는 이 작품 뿐아니라 월광천녀도 그렇고 비밀도 그렇고 매작품에서 '과학'적 소재를 다루며 그 득과 독을 함께 얘기하는 것 같다.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 났을 때 작가님 무사하신지 걱정이 되었었다. 별다른 소식 들리지 않았으니 무사하시겠지.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었을 때에는 저자 히로세 다카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 이번에 후쿠시마 사태를 겪으면서 책도 개정판이 나왔다.
원전을 멈춰라. 내 장바구니에도 담겨 있는데 수일 내로 주문할 생각이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그 날 죽음의 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지만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발전소 책임자인 안드레이 세로프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쳤지만 끝끝내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을 보면서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기형의 몸을 갖게 된 아이들의 사진을 자주 접했는데 임산부들에게는 차마 보여줄 수도 없는 지경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결말을 이미 확인했는데도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는 21기, 현재 추진되고 있고,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까지 더하면 34개란다. 국토가 좁기 때문에 단위면적 비율로 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에 속한다. 무섭고, 무섭다.
사진이 또 뜨질 않는데 요 책은 만화 '침묵의 함대'다.
핵 잠수함을 소재로 했는데 가장 위험한 무기를 통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사실은 그 배에 핵무기는 없었다. 작품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는데 처음에 읽을 때는 이런 내용을 일본 작가가 그려서 거부반응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시무시함을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더 호소력이 짙었다.
정치적인 내용을 곧잘 다룬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작가의 '메두사'는 구입해놓고 몇 해 동안 보지 않은 게 생각이 난다. 책들이 꽂혀 있는 앞으로 또 다른 책들이 쌓여서 탑을 이루어서 기억도 안 하고 살았다. 어휴...;;;; 이 작품이 애니로도 있다는 건 방금 알았다. 볼 기회가 왔음 좋겠다.
작품 끄트머리에 날짜 변경선을 따라 각각의 나라를 호명할 때 빛으로 호응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이었다.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인 것 같아서... 순교자 같은 모습으로 함장은 죽고 말았지만, 그런 혁명같은 일이 만화속에서 말고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