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는 친구가 뮤지컬 표가 있다고 만나자고 했다. 제목은 여우비
예전에 미라클을 감동깊게 보았던 그 극단에서 올린 작품이다. 장소도 같은 미라클 씨어터.
외화번역으로 아르바이트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발랄처녀 나광년은 새 오피스텔로 이사 온 다음날아침 앞집에서 들리는 소음에 분노하며 잠을 깬다.
시끄러운 그 집으로 쳐들어간 나광년은 그 곳에서 너무너무 좋아하는 배우 서대협을 만나게 된다. 광분하던 광년은 서대협이 친구 김우진과 그곳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것은 '운명'임을 예감한다. 계속 서대협의 집을 드나들던 광년은 김우진의 여자친구인 강민경과도 알게 되고 서대협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애인이 있는 김우진이 갑자기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뉴욕으로 유학 가는 걸로 해달라고 부탁하자 몹시 혼란에 쌓인다. 허나 곧 강민경을 떠나려하는 김우진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 광년은 김우진을 돕자고 마음먹는데... (시놉시스)
광년이 역을 맡은 배우가 엽기 발랄 코믹을 제대로 보여주어서 자칫 신파로 기울 수 있는 작품을 제대로 이끌어 주었다. 우진이 앓고 있는 병은 루게릭병.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헤어지려고 유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게 안 통하니 앞집 여자를 사랑한다는 둥 갖은 애를 쓴다. 그것도 안 통하자 대협은 우진과 자신이 사실은 사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놓인 상황은 비극이건만 관객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라면 차라리 웃게 만드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이를 테면 영화 만추에서 포크 씬이 웃음과 슬픔과 감동을 함께 전한 것처럼.
근육병을 생각하니 물만두님이 떠올라서 침을 꼴깍 삼켰다. 시간이, 참 빠르다.
노래의 임팩트와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다소 부족해서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본 느낌이 더 강했지만 소극장 공연의 즐거움을 많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나도 공짜표로 보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소문이 잘 안 나서 좋은 작품을 찾는 관객들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런하기를!
토요일에는 마이 블랙 미니 드레스를 보았다.
이 영화가 꼭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시간대에 딱 볼 수 있는 작품이 이거였다.
스물 넷.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고만 네 친구들의 좌충우돌 사회 적응기라고 할까.
제법 웃게 하고, 제법 볼거리도 많고, 제법 생각할 거리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수박 겉핡기 느낌이 가득했다. 보통은 너희들보다 훨씬 고약하고, 훨씬 열악한 상태로 산단 말이지. 마치 비스틀리에서 야수가 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 환심을 사고자 명품 백을 내밀던 야수의 서툰 발악같은 느낌이었다. 스물 넷은... 참 좋은 나이지. 훗...;;;
일요일에는 뮤지컬 아이다를 보았다.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선뜻 보러 가지 못했는데 3월 27일이 막공이어서 B석만 50% 할인을 했던 게 나를 움직였다. 아, 성남은 너무 멀었다. 난 버스 한 번에 지하철 세번, 다시 버스 한 번을 타고서야 성남아트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연도 보기 전에 이미 기진맥진.
게다가 이 럭셔리 공연장은 자가용 몰고 오는 손님만 우대하는지, 버스에서 내려서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다. 표를 찾고서 밥먹을 데를 찾는데, 공연장 내 레스토랑 두 개는 너무 비싸고, 인근 식당을 찾아 그 넓은 공간을 다시 걸어나왔다. 신호등을 몇 차례 건너고 아파트 주변을 배회했는데, 도통 먹을 데가 없는 거다. 우동이나 돈가스 정도를 먹으면 좋겠다 여겼는데 신호등 너머 멀리 '우동' 간판이 보였다. 열심히 걸음을 재촉해 도착해 보니, 그 간판은 '무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대실망!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이나 빵집, 김밥천국 정도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없다. 정말 한 개도 없다. 가끔 보이는 식당도 일요일이라고 모두 문 닫았다. 세상에, 레스토랑을 지나친 관객은 대체 밥을 어디서 먹으란 말인가. 도시락 싸와야 했단 말인가? 여기까지 오는데 20분. 다시 되돌아가면 40분. 아, 성질나...
결국,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부실하고 맛없는 저녁에 화딱지가 났지만 배고픈 건 더 참을 수 없는 일!
공연장에 다시 도착해 보니 1층 홀에서 아까 없던 샌드위치를 판다. 내가 식당 찾으러 나간 다음부터 팔기 시작했나보다. 쳇...;;;;
포스터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지만 붙일 데가 없으니 패쓰. 프로그램은 만원이고, 시디는 13,000원이다. 어디 보자. 보유 현금은 달랑 11,000원이네. 시디가 아쉽지만 온라인으로 팔겠지 싶어 패쓰.
내 자리가 3층이었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나중에 기립박수도 칠 수 없었다. 일어나면 어지러울까 봐. 암튼 거기서 막 올리기 전 무대를 찍은 모습이다. 저 눈동자는 지구였는데 이야기의 배경인 아프리카 대륙이 정면으로 보인다. 아름다웠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의 사랑 이야기는 흡사 쿼바디스나 황미나 작품 아뉴스데이를 떠올리게 한다. 원톱 배우를 내세운 장기 공연이었는데 홀로 몇 달에 걸친 무대를 다 소화했다고 생각하니 배우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노래가 많은 옥주현 같은 경우 체력이 감당이 됐을까 싶다. 몬테 크리스토랑은 공연 일정이 안 겹쳤나 몰라...
모든 노래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좋았고, 몇몇 곡은 정말 좋았다. 고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적 느낌이 강한 의상과 무대 연출, 조명 등 종합 예술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긴 공연을 마치고 울먹이며 인삿말을 하던 옥주현.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소개를 하는데, 통도사 주지 스님과 오세훈 서울 시장 등에게 왜 관객이 함께 박수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고마운 건 너희지 우리가 아니지 않나. 아이다의 작곡가나 작사가가 참석했다면 관중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말이다.
남주인공 김우형은 멀리서 실루엣으로 보는 게 더 멋있었다. 작품 때문에 일부러 근육 운동을 많이 했지 싶다. 역시 남자는 팔뚝이랄까.ㅎㅎ
홀에 나가 보니 프로그램은 이미 매진되었다. 다소 아쉽다. 뭐, 시디에 비할까.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한국판 아이다 ost가 없다. 얼라, 라이센스가 안 났나? 그럼 공연장에서 팔던 것은 오리지날 버전인가? 영어로 된??? 확인을 해보고 온 게 아니라서 알 수가 없다. 아, 번번이 아쉽구나. 예술의 전당처럼 다시 갔다 올 수도 없고..ㅜ.ㅜ
월요일이었던 어제는 친구와 명동에서 약속이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만난 친구는 명동 성당 앞에서 로열 패밀리 촬영현장을 보았다고 한다.
아직 남아 있을까 싶어 둘이 같이 가보니 염정아와 전노민이 보인다. 촬영을 막 마쳤는지 밥 먹고 1시간 뒤 다시 집합하자는 스텝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정아는 생각만큼 키가 크지 않았지만, 기대만큼 날씬했고 참 예뻤다. 역시 미스코리아! 난 그녀가 결혼했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는데 애까지 있다는 걸 그날 친구한테 들어서 알았고, 무려 아이가 둘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오, 그랬구나! 전노민은 생각보다는 덜 작았다.^^
그리고 지금은 만추ost를 듣고 있다. 가사가 없는 곡은 지루해하곤 했는데 이 앨범은 참 좋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렇게 많은 곡들이 차분하게 깔려 있었구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