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추 - Late Autum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내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럼에도 울적했습니다.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영화 한 편 보자고. 귀차니즘의 절정 속에서 일주일에 하루만 외출하고, 그 날에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하곤 했던 친구는 나오기 싫어 갖은 애를 쓰다가, 결국 나와 함께 이 영화를 봤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배경에 어찌 보면 내용도 가라앉는 편인 이 영화는 우울한 날에 보기에 적당하지 않을 지도 몰랐습니다. 더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고민도 했는데, 뜻밖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어쩐지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애나와 훈 덕분이었지요.

애나는 살인죄로 7년을 감옥에서 형을 살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3일 간의 짧은 외출을 하게 됩니다.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 남자, 훈을 만납니다. 사랑을 파는 남자 훈은 고객의 남편으로부터 쫓기는 형편이었지요. 버스비가 부족했던 그는 동양인 애나에게 버스비 30달러를 빌립니다. 갚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에게 굳이 시계를 맡기며 전화번호도 남기지요. 꼭 갚겠다면서요. 하지만 애나에겐 이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마주친 세상은 어렵고 막막하고 먹먹합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르르 몰려왔다가 우르르 사라져버리는 가족들. 그들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지 못합니다. 집밖에서는 한때 목숨도 내줄 수 있을 것 같던 옛 연인과 마주칩니다. 그때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그 역시 마찬가지지요. 해야 할 말들을 서로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애나는 다시 거리를 걷습니다. 쇼핑도 했지요. 절대 속을 보이지 않을 것처럼 온몸을 덮었던 코트를 벗어버리고 여성스러운 옷을 걸쳐봅니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서 막혀버렸을 귀에 억지로 귀걸이를 끼우고, 창백한 얼굴과 다크 써클을 덮는 하얀 분칠에 붉은 입술로 마지막을 장식하지요. 하지만 잠깐의 변신은 금세 막을 내려버립니다. 수시로 체크하는 교도소의 호출. 수감번호와 현재 위치로 모든 것이 설명되어지는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온 거지요. 부질없음에 다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은 애나는 어머니의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돌아갈까 고민합니다. 표를 살까 말까 괜히 공회전하는 발걸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서성이던 애나가 다시금 훈과 마주칩니다.
사랑을 파는 남자 훈은, 직업 정신을 발휘해 애나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사해 주고자 애씁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의 무한 서비스지요.
영화 속에선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입에 문 저것은 오리 꽥꽥!의 정체가 아닐까 싶군요. 저 버스 안에서만큼은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즐겁게 구경도 하고 감탄도 하고 어리광도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지요. 공사중이라 문닫힌 놀이공원에서도 훈은 애나를 즐겁게 만들어주었어요. 입을 떼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으니까요. 훈이 아는 중국어는 '하오' 하나였지요. 좋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애나에게 좋지 않다라는 뜻의 '화이'라는 말도 배웁니다. 애나는 자신의 과거를 중국어로 얘기합니다. 훈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적당히 하오/화이로 추임새를 넣지요. 어이 없는 곳에서 화이가 나오고 엉뚱하게 하오가 나오기도 하지만 애나는 한결 편안해집니다.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서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엄마에게 갈 수 있게 됩니다.
엄마 앞에서 그녀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고 순수해집니다. 일어날 수 없고 대답할 수 없는 엄마이기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그편이 지금의 애나에겐 더 편할 것도 같습니다. 조금만 디테일에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했던 아쉬운 실수가 이 장면에서 나오지만 그 정도는 슬쩍 눈감아줘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애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다음날, 엄마의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애나가 돌아가야 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장례식장에 뜻밖에 훈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화제의 '포크' 장면이 나오지요. 대사만 생각하면 사실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센스 있는 한 마디 대응이 몰고 온 파장은 그러나 매우 컸습니다. 억눌려 있던 애나의 가슴을 열어주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웃음을 뱉지만 애나의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웃지만 애잔한 마음으로 그 떨림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 곁에 훈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말이지요. 어느 곳에선, 언제든... '미안해'라는 한 마디는 참 중요해 보입니다. 짧은 그 한마디가 해줄 수 있는,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참으로 크건만,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미안해는 더 큰 미안함과 설움을 불러오곤 하지요.
현빈은 인터뷰에서 훈은 몸을 파는 남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을 합니다. 극중 훈은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는 듯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에스코트를 해주고, 따스함을 나누지요. 물론 거기에는 물질적 대가가 따라오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생업을 순수하게 인정해주는 이는 드물 겁니다. 당연히 위험 부담도 크겠지요. 자신의 앞날도 예측할 수 없는 그가, 그럼에도 위험한 약속을 합니다. 지킬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그 보장 없는 약속 한 마디가 한 여인에게 줄 수 있는 힘을 알고 있던 거지요. 애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울렸던 그 사이렌 소리를 돌이켜 볼 때, 그녀는 이미 어떤 전조를 읽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희망과 기대를 품어보는 약속은 그녀에게 생기를 제공해 줍니다.
마지막에 그녀 앞에 놓인 커피와 스콘은 이제까지의 분위기에 비해서 밝고 달콤한 선택이었지요. 비록 한입도 대지 못했지만 입을 떼었을 때 그녀에게서 나온 말은 그녀에 대한 관객의 걱정을 덜어줍니다.
현빈의 연기가 모자랐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철저히 애나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빛나는 비쥬얼의 현빈이라 할지라도 탕웨이가 더 빛나보입니다.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의 그녀이건만 오히려 응축된 에너지와 삶의 기둥이 느껴집니다. 작품 속 탕웨이는 정려원과 이요원을 섞은 듯한 얼굴인데 주변에서 동의해 주는 사람이 없네요.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
벌써 네번째 리메이크고 원본 필름도 사라진 상황이지만 이국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국적의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쓴 건 감독의 현명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괜찮은 영화를, 그것도 제목이 무려 '만추'이건만 부산 국제 영화제 직후 상영관을 구하지 못해 개봉일이 늦춰졌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결과적으로 시크릿 가든의 성공으로 관객 몰이를 더 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요.
여백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렇다고 말을 아낀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온몸으로 스며들 것 같은 물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잡고 있어서 그리 느낀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칫 무거울 법도 하건만 무겁지 않게, 또 지나치게 경박하지도 않게 중심을 잡아준 배우들과 감독의 힘에 박수를 보냅니다. 맥락도 없이 위로받은 느낌을 갖게 한 것도 고맙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