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고스트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남자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 고아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기댈 데가 하나도 없이 홀로 맞아야 하는 시간들이 가혹해서, 마침내 자살을 하려고 약을 털어넣는 사내가 있다. 그런데, 죽는 일이 쉽지가 않다. 죽으려 들면 뭔가 일이 생겨 극적으로 부활하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둥둥 떠다니기도 하는 저것들은... 고.스.트?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넷이다. 여자를 힐끔힐끔 훔쳐보는 변태스런 할아버지 하나에, 골초 덩어리 2대8 가르마의 촌스러운 아저씨, 온종일 미안하다고 눈물을 쥐어짜는 아줌마 하나, 그리고 식신 들린 초딩 하나. 무려 네 명이 몸 하나에 덮어 씌였으니 몸 하나를 다섯이 나눈 형국이다.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빙의가 되니 죽을 수도 없다. 모처럼 이승과 통한 육신을 만났는데 한맺힌 원혼들이 쉽게 그를 놓아줄 리도 없다. 용하다는 박수 무당의 권고로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변태 할배의 소원은 카메라를 찾아달라는 것이었고, 촌스런 아저씨는 택시를 훔쳐내서 그 택시로 바닷가에 데려다 주는 것, 초딩 꼬마는 로봇 태권V 장난감과 만화영화, 그리고 아줌마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이었다.  

할배가 찾는 꼭 그 카메라여야 했기 때문에 사건이 생기고 우여곡절을 겪는다. 2대8 가르마 아저씨의 오래된 노랑색 포니 차량은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구형 자동차. 그거 타고 달리느라 무면허의 그가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한다. 그렇게 그가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호스피스 병원의 간호사인 그녀는 가족이 없어 자살하고픈 이 남자와 달리 가족 때문에 삶이 고단한 사람이다.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마음도 쉽사리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렇게 외롭고 힘든 두 사람이 만났다. 여자는 아픈 사람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곤 했던 것이 습관이 되어 이 남자의 때 아닌 보호자가 되어야 했을 때 제일 먼저 심장 소리부터 들었다. 연애라곤 해보지도 못했을 것 같은 인생 참 안 풀리는 이 남자, 귀신들의 도움으로 설레게 하는 여자에게 다가가본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심장 소리도 들어본다. 콩닥콩닥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 혹시 나 때문에? 

과속 스캔들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차태현을 앞세운 영화이다 보니 이 영화가 코믹 영화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으니 가족 영화로도 적합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도 엄마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엄마와 영화를 볼 때는 나름의 규칙이 몇 개 있는데 일단 외화는 패스하고, 한국 영화 중에서도 '황해'와 같은 잔인하다는 영화는 역시 패스할 것. 코믹과 감동이 섞이면 금상첨화가 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영화가 몇 개 있는데, 이제 그 리스트에 '헬로우 고스트'도 포함시키게 되었다. 시사회 다녀온 이들의 후기가 눈물 바람이라고 하는데 영화 중반 넘어설 때까지만 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때까지는 소소하게 웃기긴 했어도 아주 크게 웃기지도 않았고, 조금 찡하기는 했지만 눈물 날만큼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아직은 춥기만 한 바다에 수영도 못하는 그가 뛰어들었다. 이 귀신들은 대체 왜 나를 선택해서 이리도 귀찮고 괴롭게 할까.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 건강만은 열심히 지켜왔는데 담배를 내내 물게 하고, 단 것 취향에 없는데 거대한 잉어과자를 다 빨아 먹게 하니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신들과 복닥거리다 보니 조금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늘 자신의 신발만 놓여있던 현관에 여러 사람의 신발이 헝클어져 있다. 비록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게 난감하긴 하지만 둘러앉은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살아있게끔 한다.  

가족이라는 게, 참 그렇다. 없으면 당연히 서럽다. 그건 누구라도 부정 못할 것이다. 남들도 다 나처럼 외롭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등이 되면 나만 외롭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런 날은 자살율도 높다고 그는 얘기한다. 오죽 외로우면 죽고 싶을까. 이 세상에 나를 살아도 되게끔 만드는 끈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그런데 저 아저씨 말한다. 결혼을 해서 식구가 둘이 되고, 자식을 낳아서 셋, 넷이 되어버리면 힘이 네 배로 드는 것이 아니라 네 배로 힘이 난다고... 결혼하지 못한 그는 납득하지 못한다. 산수가 맞지 않다고 코웃음을 친다. 가족이 많아지면, 가장으로서 벌어먹여야 할 사람이 늘어나니 얼마나 고되겠는가. 저출산 문제가 괜히 우리의 화두이겠는가. 그런데, 이 세상에 내 편 하나 되어줄 사람이, 내가 아무리 잘못하고 나빴다 하더라도 내 맘 알아줄 이 하나 없다면, 그건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먹고 사는 일도 참으로 고된 일이지만, 그 고됨을 견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의 외로움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정채봉 선생님의 글 중에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 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 대목을 읽고서 나야말로 엉엉 울고 말았다.  정채봉 선생님은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돈 번다고 일본으로 넘어가서는 거기서 결혼해서 눌러 앉으셨다. 군대를 가고 나서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였다. 그렇게 평생 엄마 아빠 사랑을 못 받고 외롭게 컸을 그 마음이, 헬로우 고스트의 죽고 싶었던 그 사내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입학식마다, 졸업식마다 늘 혼자 찍힌 사진, 생일이건 명절이건 크리스마스건, 언제나 혼자였었던 나날들. 다니던 직장도 잘렸고, 살아갈 나날이 막막하였던 이 사내는 결국 귀신까지 만나는 기구한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그게 꼭 나쁜 일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귀신들은 이유 없이 해코지 하고 사람을 괴롭힐 것 같지는 않으니까. 혹시 모르지,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주든가 인생의 어떤 지침길을 알려준다든가...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코를 훌쩍였다. 집에 돌아와서야 김영탁 감독의 전작을 살펴보고는 그저 코믹으로만 끝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심금을 울리는 코믹을 지향하시나 보다.  

방학 시즌인지라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많이 쏟아지겠지만, 혹은 이미 상영하고 있겠지만 이 영화가 오래오래 선전했으면 좋겠다. 가족과 함께 본다면 더 좋겠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마음 깊이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지금 당신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당신에겐 살고 싶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한 편으로 소중한 무엇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너무도 큰 수확이 아니겠는가.  

이 영화,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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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26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대문이 바뀌셨네요.
블루의 중량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 블루가 이렇게 럭셔리한 색인 줄 오늘 알았습니다.
이 영화 보셨군요, 저 연말 보고 싶은 영화 너무 많아요~

마노아 2010-12-26 10:43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가 지나니 금세 멋쩍어지는 대문인데 그래도 이런 날은 이런 그림도 걸어놔야 되겠거니 했어요. 헤헷^^
저도 보고 싶은 영화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휴, 이걸 언제 다 본대요.^^ㅎㅎ

후애(厚愛) 2010-12-26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어요? 산타는 만나보셨는지..^^
미국은 오늘인데 많이 조용해요..
저녁에 먹으려고 지금 오븐에 햄을 굽고 있어요.
맛 있으면 좀 보내드리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마노아 2010-12-26 10:44   좋아요 0 | URL
후애님! 산타는 아직 못 만났는데 산타 노릇은 톡톡히 했어요.
이모는 조카들의 영원한 산타~
후애님 주방의 고소한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져요.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고요, 따뜻한 하루 되셔요~

무스탕 2010-12-2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이군요. 광고는 계속 봤지만 늘 차태현이 나오는 영화는 안보게 되더라구요. 즉, 과슥 스캔들도 아직 안 봤다는..;
솔직히 이 영화도 볼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기회가 닿는다면 볼게요 :)

정채봉 선생님하면 꽤 예전에 회사에서 여직원 교육을 갔을때 정채봉 선생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바로 옆에 앉아서요. 강사진을 알고 미리 '샘터' 한 권을 갖고가서 사인을 받았었는데 지금 그 책이 어디 있는지..;;;

마노아 2010-12-27 01:19   좋아요 0 | URL
과속스캔들은 유쾌한 와중에 찡한 내용이 조금 있었고요. 이 영화는 소소하게 웃기는 가운데 대박 감동이 있어요.ㅎㅎㅎ

정채봉 선생님은 이름도 참 순수하고 시적이에요. 좋은 글 쓰시던 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까워요.
인용한 책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출간된 책이긴 한데 확실히 옛 글이라 참신한 맛은 조금 부족했어요. 냐핫^^;;;

프레이야 2010-12-2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도 이 영화 참 좋았어요.^^
반전이 놀라웠고 웃음과 함께 감동의 쓰나미였어요.
조연들의 연기도 좋고 차태현은 아주 적격이었구요.
1인5역 진짜 웃겨죽는 줄 알았어요.

마노아 2010-12-27 01:20   좋아요 0 | URL
반전 부분부터 미친 듯이 운 것 같아요. 어휴, 옆에서 같이 울어주지 않았으면 민망해서 혼났을 거예요.^^;;;
차태현이 영화 고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참 넉살 좋게 마음에 드는 배우예요.^^

마녀고양이 2010-12-2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을거 같았는데, 신랑과 보느라 황해를 택했네요. ^^
그런데.. 역시나 좋았군요.
그리고 마노아님의 훈훈한 리뷰 역시 너무 좋네요.

행복한 연말 되세요~

마노아 2010-12-27 01:21   좋아요 0 | URL
저도 조만간 황해를 보려고 해요. 영화가 잔인하다고 해서 크리스마스에는 일부러 피했어요. ^^
이번 주면 2010년도 정말 마무리네요. 우리 잘 매듭짓고 2011년으로 힘차게 달려가요.
마녀고양이님도 행복한 연말연시 되셔요~ ^^

순오기 2010-12-2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태현 나오는 영화 별로 안 봤는데~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온다니 봐야 할 것 같아요.
황해는 마노아님께 권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영화 잘 보는데도 힘들었어요.ㅜㅜ
게다가 믿을 놈(년) 하나 없구나,스런 감상이었어요.

클스마스는 산타 이모로만 지냈나요?^^

마노아 2010-12-27 15:44   좋아요 0 | URL
클스마스는 산타 이모와 산타 딸이 되었고요. 산타 공장장님을 만나서 아주 해피했어요. 냐하하핫^^ㅎㅎㅎ
내일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예매했어요. 광화문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보려고 해요.
연말에 톨스토이라니, 뭔가 분위기가 나는 거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