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용실에서도 잡지 책을 잘 읽지 않는 나는 좋아하는 뮤지션에 관한 기사가 실리지 않는 한 패션잡지를 사는 일이 없다. 패션 화보집도 마찬가지. 일러스트 화보는 많이 사는데 패션에 전혀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는 인간인지라 그쪽으로는 도통 더듬이가 움직이질 않는다. 다른 블로거들의 서재에서 핫하게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도통 볼일이 없을 것 같던 이 책은 순전히 호기심으로 만났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거의가 사진인지라 금방 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었다.^^ 

sartorialist 

재단사의 뜻을 지닌 라틴어 sartor에서 유래. 세계 최고의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의 명칭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라는 의미. 

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저자 스콧 슈만은 거리에서 패셔너블한 보통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왔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댓글로 소통이 오고 가고 스크랩되어 전 세계로 사진들이 퍼져 나갔다. 그 중 스콧 ㅅ만이 특히 아끼는 사진들로 모아만든 책인데 패션쇼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며 눈이 즐겁다. 무수한 사진들을 찍었지만 절반은 버렸던 것 같다. 초점이 안 맞거나 화질이 나쁘게 나오거나 빛이 반사되거나... 그 중 알아볼만한 사진들만 남겼는데도 사진이 엄청 많아져버렸다. 500여 장의 사진 중 이만큼이니 그래도 과하지는 않은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킨다.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패션이었다. 왼쪽 사진의 신발은 특히 충격적! 그러나 블로그 상에서는 그녀의 몸무게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엄청 말라깽이다. 40kg도 안 되어 보인다. 그녀의 사진은 몇 장 더 실려 있지만 흔들려서 건지지 못했다..;;; 세상에 무심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진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다.  

 

멋쟁이 노인분들. 왼쪽의 당당한 할머니도 근사하고 오른쪽의 패션 거장도 한 포스하신다.  

오른쪽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사진이다. 패션쇼가 끝나고 나서도 본인이 사진을 찍혀도 될 상태(?)가 될 때까지 사진 찍기를 허락하지 않는 자존심의 사나이! 자신의 흰 머리가 돋보이도록 까만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다 한다. 스콧 슈만이 밀라노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거절했었다. 스콧이 어둑한 구석을 배경으로 하면 당신의 흰머리가 돋보일 거라고 얘길하지 이 사내는 사진 찍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자신의 습관을 알고 있는 사진가라면 이 쉽지 않은 사내의 마음도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좀 우습게 나왔지만 책 속의 아르마니는 참 근사했다. 유독 흰머리가! 

 

확실히 블랙이 주는 강렬함은 늘 압도적이다. 전반적으로 블랙으로 색을 통일한 뒤 포인트를 주는 옷차림들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무난한 패션일 수는 있지만, 대체로 많이 어울리는 편이긴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멋지게 소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 사진은 악세서리가 없어서 더 눈에 띄었다. 드러낸 어깨가 제대로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지 않아서 효과가 더 좋아 보인다. 

 

왼쪽 사진은 열 세살 아이(?)지만 패션은 열아홉, 표정은 여덟살이라고 스콧 슈만은 말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는 소년의 1200불 짜리 운동화가 더 화제였다고 한다. 다들 눈썰미도 좋다.  

오른쪽 사진은 심플하게 입었는데 효과가 좋다는 느낌이다. 블랙 속에 흰색을 받쳐입은 것도 평범한데 훌륭한 선택이었고 허리 벨트와 목의 스카프,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어쩐지 몹시 자연스럽게 계산된 패션의 느낌이다. 소매를 걷어붙인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왼쪽의 여자들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고등학생이란 말일까? 무척 성숙해 보여서 놀라웠고, 교복 입혀서 보내는 우리네 수학여행과 비교해서 참 자유분방한 느낌이어서 또 놀라웠다. 뭐, 패션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청춘'의 느낌은 그대로 전해진다. 

오른쪽 사진의 남자는 벼룩시장에서 5달러에 산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짙은 녹색인데 아마도 직접 염색을 한 게 아닐까. 의사가운이 벼룩시장에 나오는 것도 재밌고, 그걸로 거리에서 사진 찍힐 만큼 패셔너블하게 연출한 것도 대단하다. 참, 감각적인 사람들! 

 

스파이더맨과 같이 나란히 앉은 여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옷은 무척 시원해 보이는데 신발은 꽉 막혀서 더워보인다. 맨발일 테니 냄새도 좀 날 것 같고....;;;; 어쨌거나 표정은 마음에 든다. 역시 자유분방한 느낌.  

오른쪽은 더 자유인스럽다. 그녀의 피부색과 머리 스타일과 곧은 척추, 당당한 걸음걸이까지 모두 하나의 화보다. 황금비율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색상뿐 아니라 천의 질감, 그리고 무늬도 패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왼쪽 사진의 원피스는 잘못 입으면 엄청 촌스러워질 스타일인데 싱그럽게 소화해냈다. 활짝 꽃이 핀 얼굴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다.  

오른쪽 사진도 바지의 질감이 눈길을 끌었다. 신발도 색상을 맞췄고, 목걸이와 스카프도 어떤 흐름을 갖고 통일성을 준다. 아, 당당한 그녀들! 

 

위 겨자색 바지의 여인과 이 사진의 여인은 같은 인물이다. 지오바나 바타글리아. 사실 누군지 몰라 검색해봤다. 전직 모델로 보그 편집자라고 한다. 스타일이 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었다. 온 몸에서 포스가 흐른다. 강렬하다! 

 

엄청 편한 옷을 입었는데 굽은 살인적인 높이다. 어쨌거나 다리 길이는 비할 데 없이 우월해 보인다. 스캇의 말로는 헤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을 멀리 떼어놓고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달려와서 매만지는 일이 없도록. 완벽하면 할수록 때로는 오나전히 지루한 사진이 되기 때문이라는 그의 설명에 설득력이 있다.  

오른쪽 사진은 파격적이다. 옷차림을 보아서는 직업이 드러나는 패션인데, 강렬한 표정이나 헤어 스타일보다도 이 사진을 완성시킨 것은 담배 한 개비가 아닐까 싶다. 참 건강해 보이는 사진이다. 

 

왼쪽의 여인은 사진만 찍으면 표정이 너무 굳어져서 작가가 특약을 처방한 경우다. 다 찍었다고, 수고했다며 카메라를 내려놓을 찰나 그녀가 안도의 표정으로 활짝 웃자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찍은 사진이다. 자연스럽고 예쁘게 나왔다. 상의는 스웨터로 따뜻한 질감인데 구겨진 면치마는 얇기 그지 없어서 언발런스하다. 그럼에도 조화가 이뤄진 멋진 옷차림. 

오른쪽 사진은 치마의 지퍼가 재밌어서 찍었다. 지퍼를 다 올렸더라면 매력이 줄었을 터인데 적당히 내려놓아서 오히려 완성도가 보인다.  

 

신문 보는 할아버지의 캔버스화가, 옆의 할머니의 떡볶이 코트와 부츠 등이 모두 신선했다. 아주 젊고 활기찬 느낌이다. 멋드러지게 소화해준 멋진 모델들! 

 

왼쪽 사진이 흐릿하게 나오긴 했는데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겹쳐 있는 이런 옷이 좋다. 겉옷이 더 짧아서 속의 옷이 겉옷의 역할을 하는 그런 컨셉 말이다. 멋쟁이들은 스카프를 아주 잘 활용한다. 목이 짧은 나는 아주 부러운 센스다. 

오른쪽 사진은 포즈가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표정도 아주 멋졌을 것이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의 스커트로도 이렇게 섹시해 보인다. 뭐든 다 드러내는 게 능사는 아니지... 

 

이탈리아의 군인들. 경직된 군 문화 속에서 개성을 표현하고자 단추 주변 금줄을 다르게 꿰어놓은 사진이다. 발상이 재밌는데 우리나라였다면 택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사진은 스카프를 질끈 한 번만 묶어 늘어뜨렸는데 이리 멋질 수가!하며 감탄했다. 두터운 목도리로도 연출이 되려나?? 

 

왼쪽의 그녀는 치마의 무늬와 양말 디자인을 맞춰서 입었다. 블랙 계열임에도 교차된 무늬로 인해 발랄한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의 그녀는 한때 암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다가 지금의 탐스런 머리카락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머리카락은 그녀에게 삶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미소에서도 한껏 생명력이 느껴진다. 

 

개구쟁이 느낌의 할아버지다. 편안한 차림새지만 나름의 품위와 개성을 살렸다.  

옆의 여인도 그런 느낌이다. 편안하지만 품위와 개성을 품은 느낌. 공교롭게도 두 사진을 붙여놓으니 포즈가 비슷하다. ^^ 

 

모두모두 당당하다. 누군가는 황금 비율의 미친 몸매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진 속 인물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었고, 그리하여서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다. 

 

모두 바람직한 기럭지를 자랑하고 있다. 첫번째 사진의 왼쪽 인물은 남자... 맞겠지? 남자 같아 보이는데 킬힐이 걸린다. 여잔가?? 

어떤 인물은 구두가, 어떤 인물은 허리에 찬 쇠사슬이, 누군가는 담배가 누군가는 치마의 가죽 재질이 눈길을 끌었다. 이쪽은 의도한 바가 아닌데 거의 블랙으로 사진을 묶어버렸다.  

 

모자건 가방이건 자전거건, 모두 괜찮은 소품이 되어 인물들을 더 빛나게 해준다. 마지막 사진의 화이트 옷에 검정 모자와 장갑, 구두를 매치시킨 그녀의 패션이 눈에 확 들어온다. 특히 신발 디자인이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자꾸 끌어당긴다. 스모크 화장도 좋은 선택이다. 

 

사진을 찍은 스콧 슈만의 딸과 본인의 사진이다. 이렇게 봐서는 아빠를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온 저 포즈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일등 모델감이다.  

여전히 패션을 잘 모르고, 옷을 잘 입을 자신도 없지만, 이렇게 거리의 패션을 둘러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모두 저마다의 드라마를 옷차림에 닮았달까.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로 패션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지나치게 유행을 쫓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내보인 이 책 속의 모델들은 (전문 모델이거나 아님과 상관 없이) 모두 당당해서 더 멋져 보였다. 스콧 슈만의 다른 사진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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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색이 너무 좋아서, 이번 겨울 사들인 열 벌 남짓의 옷들이 단 한 벌 빼고는 전부 다 검은색이었어요. 제외한 단 한 벌은 빨간색.
제가 왜 그리 검은색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지금도 검은색 원피스), 언제나 가장 섹시한, 언제나 가장 화려한, 언제나 가장 단아한, 언제나 가장 반짝이는, 천의 얼굴의 색상이라 생각했는데 이 사진들에서 느껴집니다.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군요! 멋진 리뷰 고마워요!

마노아 2010-12-20 09:4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11분에서도 가장 정숙해 보이는 검은색 원피스로 가장 섹시해 보이는 마리아가 나왔던 것 같아요.
Jude님에게 검은색이란 거의 신앙이군요. 음, 상상을 해보아도 가장 근사하게 어울릴 것 같아요. 이 책 Jude님도 재밌게 보실 거예요.^^

마녀고양이 2010-12-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퍼져서 말이죠, 집에 좌악~ 늘어져 있거든요.
그랬더니 몸무게는 점점 늘고, 탄력은 사라져가고......

그래서일까, 사진들을 보니 화끈하고 짜증나고 머 그래요. 아하하.
정신 좀 차려야겠어요. 크.

마노아 2010-12-20 16:48   좋아요 0 | URL
좀 부럽고 그래서 한편으로 화도 나고, 뭐 그것도 이 책의 효과 중 하나였어요.^^;;;;

섬사이 2010-12-2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발이 받으려면 일단 날씬해야겠다는 생각이...^^;;

마노아 2010-12-20 16:48   좋아요 0 | URL
그거슨 진리랄까요...ㅜ.ㅜ

같은하늘 2010-12-2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사진이 가득 들어있는 책이었군요.
옷발에는 날씬도 필요하지만 길이도 중요하다는~~~ ㅜㅜ

마노아 2010-12-24 02:07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역시 길이보다는 너비가 절대적 같아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