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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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동시가 생각난다. 아기가 넘어져서 무릎에 빨긴 피가 나서 마구 울었는데, 알고 보니 단풍잎이었다는 것... 제목을 보고는 그런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 가슴이 덜컹 주저앉는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 

어린 아이가 엄마가 죽었다고 말을 한다. 내가 생각했던 가벼운 이야기의 범주를 휙 넘어서버렸다.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아이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조금 쉰 다음에 돌아오라고, 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했고 아이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렇게 빨리 가 버릴 거면 나를 낳지 말지, 뭐 하러 낳았느냐고... 

엄마는 웃었고 아이는 울었다. 아이도 알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오래오래 병석에 누워 있던 사람이라면 가족들이 이별에 대한 대비를 조금이라도 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사람들은 막연히 불행이 나를 비켜갈 거라고 기대하며 살지 않던가. 아니, 반대로 그런 불행이 나의 것이 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닥치고 나서 이게 나의 일이라는 걸 막막한 와중에 체험할 뿐이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그랬다. 암환자였고, 치료를 받지 못했고, 당연히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 당황했다. 현실같지 않았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 이 그림책 속의 아이는 그 1/3 정도의 나이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이럴 거면 왜 낳았느냐는 아이의 다그침이 마음을 울린다. 웃었지만 울었던 엄마의 마음이 손에 잡힌다.  

아이는 아빠도 막막하다는 걸 짐작한다. 그래서 떼를 쓰지도 않고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 버린다. 아침마다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발라서 반으로 잘라 먹곤 했는데, 엄마가 가르쳐주지 않은 모양이다. 짜증이 났지만 다른 수가 없다. 엄마가 죽기 전에 아빠한테 가르쳐 줬어야 했다. 아빠 혼자서는 잘 해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이는 안다. 고통을 겪고 나면 아이는 애어른이 되고 만다. 더 이상 아이로 있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고, 본능이 그렇게 알아차린다. 아이는 아빠를 돌보는 것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한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가 아빠를 가엾게 여긴다. 

아빠가 자꾸 운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젖은 수건 짜듯이 아빠를 꼭 짜면
온 몸에서 눈물이 뚝뚝 쏟아질 거다.
하지만 난 아빠가 자꾸 우는 걸 보는 게 싫다. 

아마 아이의 몸을 짜도 젖은 수건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아이가 보는 건 아빠이고 결국 자신이다. 아파도 아플 수가 없고, 울 수도 없는 상태에 아이는 처한 것이다. 그런 때가 더 위험하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를 방어한다. 엄마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창문을 꼭꼭 닫았다.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목소리가 지워질까 봐 다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하루는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 상처가 났다. 아픈 건 싫었지만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플 때마다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던 바로 그 엄마 목소리다. 아이는 엄마 목소리가 반갑다.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으로 긁어 뜯어낸다. 다시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난다. 아파서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참는다. 피가 흐르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조금은 덜 슬플 테니까. 스테프니 메이어의 '뉴문'에서 벨라가 그랬다. 자신이 위험해질 때마다 에드워드의 환영이 보여서 자해하다시피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갔다. 이 어린 꼬마조차도 마음이 아픈 것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벌써 인생을 알아버렸다.  

 

할머니가 오셨다. 엄마의 엄마. 아니는 자신이 돌볼 슬픈 어른이 둘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아파하면서, 아이는 애처롭게도 역시나 아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는 집에 오시자마자 아이에게 뽀뽀를 퍼붓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이럴 수가! 아이가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가 빠져나간다고 몸부림치는 아이. 기어이 눈물이 쏟아진다. 진작에 쏟았어야 할 눈물이 터저버렸다.  

아이도 알았을 것이다. 창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남아 있을 엄마의 체취가 아니라는 것을, 귀를 막고 입을 닫는다고 해서 붙잡을 수 있는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던 엄마의 부재. 닿을 수 없는 느낌,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 한 사람... 

이런 아이의 마음을 할머니가 왜 모르실까. 할머니의 위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만큼 애잔한다.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아 가슴 위에 올려주신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 

아이는 무서웠던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엄마를 완전히 잊게 될까 봐. 잊어버리면 정말로 잃어버리게 될까 봐. 아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안간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아이는 달렸다. 온 힘을 다해서. 심장이 쿵쿵 뛰어서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러면 꼭 엄마가 가슴 속에서 아주 세게 북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그렇게 엄마의 숨결을 느낀다.  

저녁이 되어 보니 무릎에 매끈매끈한 새살이 돋았다. 딱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딱지가 떨어진 것이다. 아이는 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울지 않는다. 상처가 덮이고 새살이 돋는 것이 섭섭할 때도 있다. 상처라도 남아서 잡고 싶은 흔적도 있는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그것이 아이든 어른이든... 

 

아이는 가슴 위 쏙 들어간 곳에 손을 올려놓고 잠이 오길 기다렸다. 심장이 편안하게 뛴다. 잠이 솔솔 온다. 어느새 잠이 든다. 

아이에게 편안한 꿈이 스며들 것이다. 엄마를 만날 수도 있다. 아직은 울면서 깨어날 날이 더 많겠지만, 차차 익숙해질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주는 유일한 선물이니까.  

가족과의 이별은 상상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망자의 삶이 살아 생전 연민 그 자체였다면 더욱 그렇다.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이별은 없는 법이지만 유독 아픈 죽음들이 있다. 나는 이 책을 화요일에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물만두님 생각이 났다. 남겨진 가족들이 안타까웠다. 13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아빠'라는 이름 만으로도 눈물이 나게 만드는 그 존재가 아직도 버거웠다. 그리고 어제 읽은 '내가 살던 용산'도 생각났다. 그래서... 시간이 완벽한 해약은 아님을 알고 있다. 조금 무디게는 해줄 수 있지만 시간도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다. 함께 상처를 보듬어 주며 위로해 주며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있고 할머니도 계시다. 이제 아이는 무릎 딱지보다 더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줄 비법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어린이 대상의 그림책에서도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난다. 어쩔 수 없다. 어린이라고 해서 죽음이 그 주변에 서성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이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필요하다.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짐작해 보면서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은, 어른이 읽어도 마찬가지의 위로와 성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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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16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슬퍼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0-12-16 21:21   좋아요 0 | URL
리뷰 쓰다가 막 울었어요.ㅜ.ㅜ

후애(厚愛) 2010-12-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엽당~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이름을 안 적고 보냈다는 걸 그 다음 날 알았어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마노아 2010-12-16 21:21   좋아요 0 | URL
후애님, 돌아오셨군요!
안 그래도 문자 받고서 후애님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돌아오면 후애님 맞죠? 하고 막 아는 척 하려고 했는데 말예요.^^
축하 감사해요. 생일 전날이어서 가장 먼저 받은 축하 인사였어요. ^0^

코코죠 2010-12-1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고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저는 이 책을 결코 읽을 수 없겠군요.

마노아 2010-12-16 21:22   좋아요 0 | URL
행복한 신부는 이렇게 슬픈 이야기 말고 밝고 즐거운 이야기책을 읽어야 해요.
어휴, 책 읽을 틈이 어디 있어요. 피부 맛사지도 받아야 하는데 말예요.^^

비로그인 2010-12-1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맘 한켠에 뭔가가 남을것 같은 기분에..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맘이 드네요.

마노아 2010-12-16 21:23   좋아요 0 | URL
각자 생각나는 다른 얼굴들이 있을 거예요.
가끔은, 그런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섬사이 2010-12-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야단칠 수가 없겠어요.
저에게나 남에게나 좋은 기억을 남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마노아 2010-12-17 13:52   좋아요 0 | URL
늘 다짐하지만 지켜내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요.
그것도 다 살아가는 과정이겠죠?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좋은 사람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