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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ㅣ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평점 :
얼마 전 읽은 박민규의 소설 '더블'에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내용이다. 용산이 그리 먼 산이 아니란다... 정황은 웃기게 진행되었지만 거기에 언급된 용산이 너무 아파서, 그런 공포와 위협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처지가 안쓰러워서 웃는데도 눈물이 났다. 용산 참사, 그로부터 2년 여의 시간이 지나왔다. 무고한 시민을 폭도로 몰아가고 테러리스트로 단정하며 억압하고 죽이는 정권은, 그로부터 2년 동안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입으로는 친서민을 외치며 뒤로도 아니고 앞에서 예산을 모두 깎아내는 몰염치하고 인면수심인 그런 정권을, 우리는 앞으로도 2년을 더 버텨야 한다. 오, 맙소사!
'철거민'은 이름부터가 너무 아프다. 철거민이 나오는 드라마나 소설은 모두 눈물 바람이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그랬고, 장총찬이 주인공인 인간 시장, 잠깐 언급된 거지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철거민은 서럽기 그지 없었다. 삶의 터전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생겼는데, 살아갈 대책은 마련되어 있질 않고, 턱도 없는 적은 보상금만 내밀며 말을 듣지 않으면 용역을 내세워 겁박을 일삼으니 어느 철거민인들 가슴에 한이 풀릴 수 있을까. 더 기막힌 것은 그렇게 절박한 그들을 향해 보상금 몇 푼 더 받아내려고 버틴다는 사람들의 시선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그렇게 호도하게 만드는 언론, 그런 방향을 잡아놓고 강행하는 정부까지... 대체 이 나라에서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저 그런 어마어마한 불똥이 내게 튀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전전긍긍 살아야 하는 것일까?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철거 현장에서 여섯 명의 사람이 죽었다. 다섯 명의 농성자와 한 명의 경찰. 살려고 올라간 망루 위에서 죽어 돌아온 사람들... 그들은 모두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돌아가서 함께 밥 먹고 웃으며 정을 나눌 가족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오질 못했다.
이 작품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이렇게 여섯 명의 작가들이 각각의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다루었고, 마지막에 '망루'라는 제목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다루었다. 한대성 씨 같은 경우는 용산 철거민은 아니었으나 전철연으로 연대의 힘을 보태다가 일을 당하셨다. 이성수 씨 같은 경우는 무려 세 번째 철거를 당한 분이셨다. 삶이 이다지도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들이 다 가슴에 맺혔지만 여러 차례 철거를 당했던 이 가족 이야기가 가장 얼얼했다. 일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추운 겨울. 하지만 장례도 치르지 못했던 그 시점에서 냉동고의 아버지가 더 추울 거라는 아들의 말. 천막일지언정 함께 살 수 있는 가정을 원했는데, 그마저도 욕심이라는 듯 거대한 참화 속에서 가족을 잃었다. 단지 벽이 있는 집을 원했을 뿐인데도...
경찰은 화재로 인해 농성자들이 사망했다고 말했지만, 유족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시신은 무릎 아래 정도만 탄 상태였고 유품은 라이터 두 개다. 화재로 폭발하지 않고 멀쩡히 주머니에서 나온 라이터는 무엇을 얘기하는 것일까. 유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신원확인을 위해 치렀다는 부검은 말이 되질 않는다. 끼고 있던 장갑만 벗겨봐도 지문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대체 왜 부검까지 했을까. 똑같이 뛰어내려서 살아남은 이도 있는데 죽어버린 희생자는 대체 어찌된 것일까. 미공개 기록이 공개되면 의문이 해결될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돌이킬수가 없는 것이다.
참사 당일도 그렇지만 그 전부터 경찰과 용역 깡패들이 해놓은 작태들은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깡패가 몰려와서 사람을 때리고 집기를 부수는 데도 경찰은 수수방관, 신고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용역들이 오히려 자기들이 맞았다면서 70노인을 고소하고 노인이 수배를 받는다. 원만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원했건만 대화의 창은 열어주지 않는다. 조합회의를 할 때는 장소 제공을 해주던 교회가 세입자들 회의는 나 몰라라 한다. 조합장이 교회 장로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개발부지 3천 평을 받았다. 그들은 대체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했을까. 기댈 데가 없으니 그 높은 망루에 올라갔던 것이 아닌가. 그런 철거민들을 이 나라의 정부는 테러리스트로 단정하고 강제 진압했고 끝내 죽게 만들었다. 그런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오늘 언니는 어느 책에서 가난보다 무서운 것이 무식한 거라는 글을 보고서 흥분했다. 우리 자매들은 저자가 진짜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거라고 맞장구를 쳤다. 철거민은 되어보지 못했지만 살던 집에서 쫓겨나 집 없이 방황해본 경험이 세 차례나 있고, 여름에 전혀 씻을 수 없는 지하 방에서 살았던 기억, 겨울에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집에서 찬물로 머리 감았던 기억 같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박민규 작가의 한 마디가 머리를 울린다. 용산이 그리 먼 산이 아니란다...
이 책의 뒷면에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의 글이 실려 있다. 만화가 박재동과 영화감독 정윤철, 소설가 김연수가 글을 남겼다. 유독 김연수의 글이 눈길을 잡는다. 이렇게 말했다.
(전략)나는 중요한 전제 하나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시공업체와 용역들과 경찰총장과 서울시장과 대통령과 총리와 검사와 판사 들은 죽은 철거민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전제 말이다. 애당초,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가기 전부터.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모든 게 분명해진다. 철거민들도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한 권의 책까지 만들었다. 다른 노력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만 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증명해도 믿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믿든 믿지 않든, 사람은 사람이다. 그것만은 너무나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인 한, 당신들은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글 증명해야만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가진 게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국격'을 논한다. 그야말로 울기엔 좀 애매한 게 아닌가.
마지막 그림처럼, 그들 모두 저렇게 평화로운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모두가 누려 마땅한 권리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용산이 그리 먼 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