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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공주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5
안너마리 반 해링언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1년 4월
절판
작은 표지 그림만 보았을 때는 저 긴 머리 속의 공주의 표정이 몹시 우울할 거라고 상상했다.
뜻밖에도 실물을 직접 보니 공주는 웃고 있었다. 웃게 되는 이유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다.
표지를 열면 노랑 바탕에 검은 머리카락이 붓글씨처럼 늘어져 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전설의 고향 트라우마가 없다면 좋겠다. 혹은 '링' 트라우마라든가.
어느 작고 가난한 나라에 공주가 태어났다. '작고' '가난한' 나라라는 게 중요하다. 긴 머리 공주의 숙명같은 울타리니까.
공주는 쑥쑥 자라났고, 머리는 더 쑤-욱쑥 자라났다.
공주님 머리가 공주님보다 더 무거워지면 어쩌나 하인들은 걱정을 했는데, 걱정은 바로 적중!
그래도 이 작은 나라는 비교적 다양한 인종이 같이 사나보다. 하인들의 얼굴 색을 보면서 어쩐지 반가웠다.
공주의 머리 감기는 일주일의 큰 행사.
일주일에 한 번, 수영장을 통째로 빌려(!) 아홉 명의 하녀가 공주의 머리를 감겼다.
아 저 세제하며 물하며, 환경 오염은 어쩌누!
공주는 머리를 자르고 싶었지만 왕은 안 된다고 했다.
이 머리가 나라의 보물이라며, 길수록 좋다고 강조하는 임금.
공주는 하루 종일 긴 머리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세상에, 벽은 없지만 완전 감옥이다!
이동하기 위해서 고안해 낸 생각 하나!
머리를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기!
머리가 자람에 따라 가방은 자꾸자꾸 무거워졌고, 가방을 들어주는 하인을 새로 뽑게 되었다. 서커스단에서 온 튼튼한 남자.
그에게서 듣는 바깥 세상의 이야기에 공주가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당연히 자유를 꿈꿨을 것이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 했지만 아무도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가방 두 개와 서커스 남자가 딸린 공주라니...
(게다가 공주는 가난한 나라의 공주라는!)
왕은 공주의 가방에 보물이 들어 있다고 소문을 냈다.
세계 온 나라에서 금, 은, 보석으로 된 빗을 들고 몰려든 왕자들.
왕 입장에선 저 머리카락이 보물이라고 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들 상상력이 없어서야.... 하나같이 빗 선물이다.
그리고 그 보석 빗이 긴 머리 공주의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다.
임금님은 장사를 해도 되었을 법했다.
자, 그렇다면 공주의 소임은 다 했던 것일까? 이제 공주는 자신의 길을 가도 되는 것일까?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보시기를. 공주의 결심은 만점은 아니어도 90점 이상은 된다. 내 마음에...
개인적으로 치렁치렁 긴 머리를 싫어한다. 긴 머리는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살면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아주 긴 머리를 가끔씩 보긴 하지만, 그 머리가 예뻐보였던 적은 정말 드물었다. 진짜 비단같은 머릿결에 적당한 숱과 깔끔한 관리로 탐나도록 예쁜 머리카락을 못본 건 아니지만 아주 드문 경우였고, 대개는 무척 지저분해 보였다. 그렇게 긴 머리는 감기도 힘들고 말리기도 힘들고, 같이 생활하는 주변인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 그걸 지적하긴 힘들지만...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이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동양 남자든 서양 남자든 긴 머리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례를 며칠 전에 확인하기는 했다. 모두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긴 머리이든, 짧은 머리이든 본인의 개성과 자유 의지가 가장 중요한 법. 긴 머리 공주의 선택도, 또 다른 많은 이들의 선택도 존중해 마땅하다. 개인의 호불호와는 상관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