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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7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이야기가 점점 지능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짜낼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늘 경이롭고 두렵다.
이번 이야기는 좀 섬뜩했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한 남자가 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그에게 남은 시간은 1년, 길어야 2년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그는 필생의 한으로 남은 어떤 복수를 하려고 한다. 제 생명과, 또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2062년. 센도 외무 대신의 열 네살 딸이 납치 되었다. 그리고 납치 용의자는 자신의 경동맥을 잘라 자살하면서 법의 제9 연구소에 본인의 뇌를 증거로 남겼다. 반드시 뇌 영상 기록을 스캔해서 볼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행한 행동이었다. 기억을 스캔하면서 센도 대신의 딸 사키 양으로 추정되는 소녀가 화물선 컨테이너에 실린 채 비교류 국가로 항해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벌써 시간이 일주일이 흘렀고,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시간은 기껏해야 열흘이었다. 법의 제9 연구소는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일을 망치는 건 외무 대신 센도였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무례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센도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우리의 마키 경시정.
그의 카리스마는 이번 편에서도 오싹하면서도 동시에 모성본능을 자극시키는 가녀린 면이 있다. 그런 양 극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면 저런 외모여야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물론 작가님의 그림 스타일이 전형적으로 저렇기도 하지만..^^
범행 동기는 분명히 잡혔다. 20년 전 외무 대신이 납치 인질범을 구출해 내는 과정에서 국익을 앞세워 교섭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그리하여 범행을 일으킨 자들의 딸이 희생되었던 것. 그들은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 놓고 센도 대신이 내놓을 카드를 짐작하며 그가 스스로 떨어질 지옥 구덩이를 보고자 했다. 물론, 부부였었던 그들 중 한 명은 말기 암 환자로 생명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뇌영상을 남기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죽은 사람의 뇌를 스캔해내는 이 놀라운 기술이 악용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온 몸으로 겪었던 마키. 생명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까닭에 '아직' 경시정이라는 그. 그렇지만 남들 보기에는 '벌써' 혹은 '세상에' 경시정이라는... (하지만 '경시정'이 얼마만큼 높은 직책인지 잘 모름....)
가장 감동 깊었던 장면은 저 속물 덩어리 센도 대신의 철면피 결정 앞에 아오키가 맞불을 놓은 순수한 박애 정신이었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현실화 시킬 수 있었던 건 그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럴 때는 이 엘리트 집단의 우수성이 정말 마음에 든다. 불처럼 뜨겁지만 동시에 얼음보다 더 차가운 마키 경시정은 필요한 때에 가장 적절한 판단력을 보인다.
내 사람을 지켜내려는 그의 의지, 그리고 확실한 실력까지 흐뭇하다. 이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정말로 더 이상의 '순직자'는 나오지 않기를...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모든 이야기는 늘 끝까지 보아야만 확실히 진.맛.을 알 수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센도 대신은 그가 저질렀던, 혹은 저지를 뻔 했던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과오와 똑바로 마주서게 되었다. 그가 감당해야 할 벌은 그가 지은 죄에 비해서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든다.
놀라운 팀웍과 훌륭한 박애 정신으로 사건을 잘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돌이키지 못하는 목숨 몇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작품처럼 뇌를 스캔해서 기억을 읽어내는 기술이야 아직 없지만(설마 없겠지.) 이번 이야기와 같은 소재의 사건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자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외교력을 보여왔던가. 어떤 마인드를 갖고서 접근했던가. 자국민을, 사랑하기는 하던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씁쓸해진다. 뉴스가, 가장 무서운 장르가 되어버린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