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아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물론 그 전에도 몇 차례나 전기장판이 뜨거워서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지만.
7시부터 9시까지는 움직이지 않은 채 조용한 시간을 즐겼다. pmp에 담아간 소설을 읽고 아침밥은 볶음밥 간택!
친구는 시험 감독을 하러 학교로 갔고 나는 집에 남아 설거지를 한 뒤 이메일을 확인했다. 알라딘을 구경하는 대신 쾌도 홍길동을 두 편 감상하고 마르기르기스로 가기 위해 집을 홀로 나서는데 지하철 표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지하철 표를 하나 사기로 결심했는데 잔돈도 없는 게 아닌가. 갖고 있는 지폐는 단위가 너무 커서 괜히 말을 섞어야 할지도 모르게 생겼다. 말 섞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섞을 말을 모르니 문제. 그래서 친구가 쓰지 말고 간직하라고 준 반짝 반짝 빛나는 1파운드 동전을 내밀고 표를 구입했다. 그러나 못 찾던 표는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가방 속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럴수가!
계단을 올라가서 바로 왼쪽편으로 오는 지하철을 타라고 했는데 반대편만 계속 열차가 오고 내가 기다리는 쪽은 아니 오는 게 아닌가. 아아, 시간은 흘러가고 이를 어쩐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한 번 방향을 확인했다. 올라가자마자 왼쪽이 맞니? 친구가 맞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서도 여전히 오지 않는 지하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말하는 '왼쪽'과 친구가 말하는 '왼쪽'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라가는 방향 바라보고서 왼쪽을 말했는데, 친구는 목적지 방향으로 180도 틀어서 왼쪽을 말한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왼쪽은 정반대!
결국 지하철 역을 서성이고 있는 경찰관에게 묻기로 했다. 어설픈 영어로 가고 싶은 곳을 말하고 친구가 생각한 방향의 '왼쪽'을 가리키며 '헤나?'하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헤나'는 '여기'란 뜻. '쇼크란(땡큐)'으로 답하고 지하철 탑승.
아랍어라곤 두 단어 밖에 아니 나온거지만 나 혼자 현지인과 대화를 했다고 막 우쭐해지려는데, 이집트 아가씨가 자리를 양보한다. 앗, 곧 내리는데, 그래도 쇼크란~
기분이 좋아서 너무 흥분했나. 하마터면 역을 놓칠 뻔 했다. 부랴부랴 내려서 친구를 만났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이곳은 오후 4시면 거의 모든 관광지가 문을 닫는다. 관공서는 오후 1시나 2시면 문을 닫고. 설마 공무원들은 점심 먹고 퇴근하는 걸까???
일단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만 구경하기로 하고 인근을 돌았다. 애석하게도 내 카메라는 아예 작동을 안 했다. 이제부터 모든 사진은 다 친구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다.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수도사들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것도 있지만 꽤 최근의 무덤들도 있었다.
빽빽히 자리하고 있어서 좀 갑갑한 느낌이 들었던 곳.
여기는 콥트 교회. 내부 양식이 성당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콥트 교회만 그런 게 아니라 친구가 다니는 한인 교회도 그랬다.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런 듯.
오래된 교회였는데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평일에도 많은 이들이 드나들며 기도를 드렸다.
섭섭해하시는 다락방님을 위해서 사진 한 컷 추가! 콥틱 교회를 나서면서 친구와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들고 있는 파카. 정말 더웠다..ㅜ.ㅜ
마기 역으로 장을 보기 위해 가는 길, 지하철 내부를 찍어보았다. 다양한 히잡이 예뻐보여서. 사진 찍는 게 실례일까 물었더니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저들도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동양인인 우리를 아주 신기하게 쳐다보니 쌤쌤이다. 그런데 사진이 흔들렸다ㅠ.ㅠ 히잡이 억압의 상징인 곳도 있지만 이집트에서의 히잡은 패션 아이콘이라고 한다. 확실히 히잡의 색깔과 디자인과 질감이 무척 다양했다. 뿐아니라 옷차림도 신발도. 전반적인 유행은 플랫 슈즈였지만 간혹 높은 힐을 신은 여자들도 있었다. 참, 콥트 교도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다. ㅎㅎ
더운 지방이라서 그런지 과일이 무척 싸다. 채소도 엄청 싸고. 여름엔 더 환상이라고 하지만 겨울이라 이 정도다. 내가 먹어본 과일들은 대체로 별로였는데 친구는 여름에 먹고 반해버린 과일들을 일제히 칭송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그렇게 과일매니아인 줄 몰랐다.ㅎㅎㅎ
유제품도 싸다. 우리나라에선 꽤 비쌀 법한 치즈도 여기선 아주 저렴하게 이용 가능했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맛으로.
우유도 농도별로 팔았는데, 그래서 잘못 고르면 아주 흐리멍텅한 우유를 고를 수도 있다. 주의 요망!
지하철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광고들. 요건 세제 광고다. 친구는 삼성 광고를 지하철 열차로 보았다는데 내가 있는 동안에는 못 마주쳤다. 다만 카이로 국제 공항 가는 도로 변에서 길을 가득 메운 광고는 꽤 여러 번 봤다. 생각해 보니 현지인이 삼성 짱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적도 있었다. 이것 참 기쁘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
이날의 일정은 여행객답지 못했지만,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보드카를 부탁했던 집사님 댁을 방문했다. 원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사주신다고 했건만 집으로 부르니 조금 난감. 결국 이 집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한국식으로 먹는 것이야 기쁘지만 바깥 집사님은 그야말로 가부장적인 인물인지라 멀리서 온 생판 남인 내가 접시 나를 때도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신 게 조금 꼴불견..ㅎㅎㅎ
커피를 마시면서 안주인 집사님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이분은 현지 가이드로 17년을 근무하신 분이다.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여행 팁을 들었다.
다시 마기 역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집사님께 물김치를 얻어서 귀가.
낮에는 너무 두껍게 입고 나가서 더워서 혼이 났고, 그래서 집에 들렀을 때 가볍게 바꿔 입었다가 밤중에 추워서 혼이 났다. 이래저래 여기선 날씨 비위 맞추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이날은 알제리와 이집트의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이집트 승!
승리의 기쁨으로 밤새 어찌나 시끄럽던지 잠을 잘수가 없었다. 여긴 이슬람 국가라 술도 마시지 않는데 그들의 광기와 흥분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술까지 들어가면 지구를 날려버리는 게 아닐까. 축구 시합이 있는 날에는 영사관에서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고 한단다. 바깥 외출 자제하라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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