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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프레지던트 - Good morning, Presiden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장진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엔 늘 유쾌하고 신선한 유머가 깔려 있고, 그러면서도 때로 서늘한 풍자를 잊지 않고, 무엇보다도 따뜻한 인간애가 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무려 세 명의 신선한 대통령이 나오는 이 작품은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이미 관객을 만났고, 어제 나와도 조우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492934.jpg)
작품의 시점은 2009년의 8월이다. 임기 말년의 노 대통령. 월드컵 복권에 번호를 적으면서 만약 당첨된다면 이제껏 마음만 있고 맘껏 못했던 '기부'를 원없이 하겠던 그가 정말로 복권 1등에 당첨되면서 200억을 훨씬 넘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화투의 기본도 모를 만큼 곁길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늙은 대통령도 수백 억원의 돈 앞에서는 잠시 머리가 어찔해질 만하다. 심장도 무리가 올 만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장진 식 유머로 재밌게 소화해낸다. 특히 회의 자리에서 보좌관들이 채팅으로 주고 받는 말들이라니.ㅎㅎ
고민에 고민에 싸여 잠못 이루는 그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상대를 해준 것은 장 조리사.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붙인, 그린?) 장조리사(장조림으로 읽을 뻔...;;)가 제시해주는 해답은 의외로 싱겁다. 그리고 오히려 그래서 더 맛깔 났다.
토라진 영부인의 심난한 얼굴도 우리는 십분 공감한다. 누구라고 아니 그럴까. 지난 주 점심 시간에 같이 식사하던 어느 샘이 내게 물었다. 만약 9만원이 생기면 뭘 할 거냐고. 글쎄, 대출 이자나 갚을 생각이라고 하니 웃는다. 그럼 9천 만원이 생기면 어쩔 거냐고 하길래 독립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럼 200억은? 그 정도 돈이면 '재단'을 세워서 사회에 공헌을 해야지 했다. 자신은 9만원이든 9천 만원이든 똑같이 은행에 저금할 거라고. 200억은 생각 안 해봤다고 한다.(근데 왜 물으셨을까???) 사실, 말이야 저렇게 했지만, 정말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마인드를 사람은 9만원 가지고도 좋은 일을 할 것이다. 내게 정말 200억이 생긴다면 나를 위해서도 얼마간은 분명 쓸 거다. 잠시 곁길로 샜다.ㅎㅎㅎ
임기 말년의 노 대통령의 뒤를 이은 이는 젊고도 젊은, 게다가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잘 생긴 이 남자다!
아, 포스터의 저 문구를 보시라. 대통령 덕분에 9시 뉴스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이라고. 맞다! 실감 난다. 작년부터 난 9시 뉴스를 거의 시청하지 않고 있다. 뿐인가. 신문 기사를 볼 때도 눈길을 피하느라 꽤 애를 먹고 있다. 보기만 해도 핏기가 싹 가실 어떤 얼굴 때문에.
장동건 편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일본이 북한 해역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이에 북한이 무력으로 대치할 상황이 처해지자 미국 측에서 먼저 청와대로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결코 영화적이지 않은 이 상황.
대통령은 서민표를 의식해서 떡볶이 하나를 먹는 '쇼'를 보여주는 것보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게 더 필요한 거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 옆집의 정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구할 수도 없다는 부친의 말씀이 가슴을 후려친다. 북한을 돕는 얘기만 나오면 온갖 비아냥들이 떠올랐다. 사람이 굶어 죽고 있는 데 다른 그 어떤 정당한 명분이더라도 그건 명분일 뿐인 것을.
작품 속에서 장동건 대통령이 내놓는 카드들, 선택들은 실로 낭만적이고 그야말로 영화 같다. 그래서, 사실은 눈물이 났다. 저렇게 멋진 대통령을, 저렇게 소중한 대통령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으니까.
일부러 의도했겠지만, 세 명의 대통령이 보여주는 행보나 제시하는 정책들은 우리의 전전전 대통령들의 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무려 한 해 동안 두 명의 좋은 대통령을 잃어버린 국민으로서 북받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담배를 끊은 대통령이 담배 한 개피 얻어 피우는 공간도 역시 장 조리장의 주방. 알게 모르게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대통령의 조리사는 그에게 어떤 힌트를 준 것일까.
세 번째 대통령은 전직 법무부 장관인 고두심 씨. 남편은 주부의 날 행사도 뛰어주는 최 교수님 임하룡.
임하룡이 영화 속에서 교수님인 건 사고 터지고서야 알았다. 모든 교수님이 다 그럴 리는 없지만, 명예교수가 아닌 이상 이분이 보여준 행동거지들은 좀 아니올시다~였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국민이니 우리의 대통령님은 챙기고 건사해야 할 말썽쟁이 식구가 바로 옆에 있는 것.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492942.jpg)
앞의 대통령들과는 다른 장조리사와의 만남의 시간. 대통령도 행복해야 마땅하다는 그 얘기에 또 눈물 글썽.
정치란 비정한 게 아니라 슬픈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492943.jpg)
참 좋았던 장면 중 하나. 왈츠를 추는 대통령 부부. 조명도 없고 음악도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인 이들.
때로, 그렇게 각자의 진심에 올인했을 때 그것이 정치적으로도 해법이 되기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말하는 정책이, 소신이 정말 진심 그대로 정의로운 것이기를, 우리는 또 얼마나 바라던가.
초당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 미국 앞에서도 할 말은 하고, 일본의 도발에 따끔히 혼도 내주고, 북한에게는 전폭적인 신뢰도 주는 대통령. 강남 엄마가 아니어도 자녀 교육에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밀어주는 대통령. 기꺼이 큰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저도 받지 않고 연금받는 것도 고마워하며 자족하며 지내는 대통령. 아, 너무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거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착취'하지 않는 대통령. 제 주머니만 채우지 않는 대통령을 원한다. 즐거운 영화를 재밌게 보고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덧글) 한채영은 4학년 2학기 국어책을 읽었다. 영화 속에서도 그저 바비인형이더라.
박수칠 때 떠나라...부터 알게 된 장영남씨. 칼칼한 대사들이 늘 맛깔스럽다.
자매품으로 영화 '데이브'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