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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스위퍼 1
키타가와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연간 자살자 약 3만 명. 매일 이 나라 어딘가에서 90명의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그리고, 그 여름에 형이 자살했다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자살 미수에 그친 사람, 그리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이웃 나라 일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지금도 곳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든 없든, 그들 나름의 이유에 따라서.
작품은, 그 형의 죽음을 계기로 다른 세계로 한 발자국을 내딛은 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평범한 스무 살의 대학생이었다.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심야 영화를 같이 보는 게 귀찮은, 약속이 있었다는 것도 여친이 화내면서 말했을 때야 기억에서 떠올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형은 의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지 1년. 가끔 들여다 보며 자취방에 방세를 전달해 주러 가는 게 동생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어느 날 형은 지나가는 말투로 자살을 내비쳤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무심히, 무신경하게, 무성의하게 지나쳤는데, 그 형이 죽어버린 것이다. 곡기를 끊은 채로.
사체가 썩은 냄새로 이웃 집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그 바람에 문을 열고 들어간 현장에서 마주친 형의 죽음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살아 생전 피가 돌던 그 인간의 형체가 아닌 부패한 고깃덩어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데스 스위퍼가 나타난다.
그는 사체 현장을 청소하고 뒷정리를 해주는 청소 업체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시크하고 쿨하게 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현장을 청소하는 낯선 직업의 사내. 형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 던져준 질문과 회의, 그리고 슬픔에 대한 항거로 주인공 히로유키는 이 일에 뛰어든다. 물론, 무수한 시행착오와 함께.
영화 굿바이에서 첼로를 켜던 남자 주인공은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면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수익을 보장해주던 납관 일을 하게 된다. 시체를 닦아서 염을 해주고 성불을 기원해주는 숭고한 작업이었지만 썩어가는 사체와 마주하는 일은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간혹 곱게 숨지는 분도 계시지만 방치되어서 부패한지 오랜 시체라든가 자살한 시체나 사고로 죽은 시체 등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순간이 예고도 없이 찾아든다. 심하게 부패한 사체를 닦아주고 돌아오던 날,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내의 살냄새를 격하게 들이키던 그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삶의 슬픔이 느껴졌었다. 그 느낌을, 이 작품에서도 같이 읽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마주친 진짜 죽은 사람은 아빠가 전부였다. 위암이셨던 까닭에 식사를 거의 못하셔서 거의 해골 수준으로 마르신 채 돌아가셨다. 너무 말라서 눈을 채 못 감으셨던 게 오래오래 마음이 아팠는데, 그래도 가족이 감당하기에 최악의 사체는 아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모든 죽음과 이별은 아픈 거지만, 그래도 자살이나 사고사는 아니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히로유키의 파트너가 되어준 미와 레이지.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 남자는 형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히로유키에게 빨간 두건 아가씨의 이야기를 해준다. 늑대에게 우걱우걱 잡아 먹히면서 끝나버린 끔찍한 동화의 이야기. 그 속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감당해내는, 죽음의 청소부인 그가 말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일을 걱정하기 마련이고, 세입자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집주인은 다시 세입자를 들일 수 없을 거란 부담에서 먼저 허덕인다.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 안타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버거움을 먼저 생각할 뿐이다. 그 역시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었다. 그 걱정에 싸인 주인 아주머니 앞에 미와 레이지가 보내준 반응은 이것이다.
저 무심한 얼굴과 냉혹한 한 마디라니. 그는 어줍잖은 위로를 던지지도 않고 과분한 비난을 쏟지도 않는다. 그저 치러야 할 견적을 얘기해줄 뿐.
지금도 수시로, 사람들은 죽고 또 죽어가고 있고, 그렇게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해줘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든, 혹은 숭고한 사명감이든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다음 주 개봉하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여주인공 하지원이 맡은 역할은 '장례지도사'다. 죽음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엄연히 전문직이고 꼭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청소부'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겠지만 그 속에서 담아내는 죽음의 의식과 산자가 망자에게 보내는 예의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이 책은 현재 4권까지 나왔다. 4권이 지난 주 말인가 나왔을 거다. 사람에 따라서 내용에 깔린 의미를 좇아가기도 전에 사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호불호가 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기대치가 점점 커질 것 같은 작품이다. 호문쿨루스나 이키가미 등을 만났을 때 받았던 그런 기묘한 충격 같은 것.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일본 만화의 강점 말이다. 일단은 소재의 특별함 때문에 흥미를 끌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감동 같은 것이 작품 안에 있다. 생과 사에 대한 좀 더 심각한 접근과 사고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