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약속한 대로 언니네와 함께 가기로 한 곳은 예전 우리 가게 하던 장소 뒷편에 있는 '대림미술관'
국내 최초의 사진 전용 미술관이라고 하던데, 요새는 좀 더 다양한 전시회를 여는 듯 보인다.
한때 대사관으로 쓰였던 건물은 그 후 가정집이 되었다가 다시 미술관이 되었는데, 4층짜리 건물에 정원도 훌륭하여 대체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 궁금했다. 일제 때부터 있던 집이라고 하던데, 평범한 인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주제는 '지구를 인터뷰하다-사진으로 본 기후변화'다. 훌륭한 전시회인데 애석하게도 내일이 마지막 날이다.
Earth Alert가 새겨진 로고 티셔츠를 5천원에 판매하는데, 그걸 사면 입장료 4천원이 면제다. 그래나 애석하게도 품절. 선착순 500장이었단다.
안 그래도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나타난 우리 두 자매는, 안 그래도 쌍둥이 소리 듣는 터에 신발까지 똑같은 거 신고 마주쳐서 서로 민망해 하던 찰나, 티셔츠라도 사입고 싶었지만 도와주질 않는다.
(유리에 비친 우리 두 자매. 속에 받쳐 입은 나시도 블랙으로 똑같다. -_-;;;)
4층은 재즈 콘서트가 3시에 있다고 하는데, 그때까진 개방 제한 공간이었고, 2층과 3층을 주제별로 묶어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촬영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었다. 홈페이지에 사진이 몇 장 있지만 사이즈가 작고 몇 개 없어서 그 분위기를 미뤄 짐작하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시 실물로 보는 게 최고!
놀라운 건, 이것이 환경 재앙을 주제로 한 사진이라는 것을 모르고 본다면, 사진들이 하나같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저 예술 작품으로만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거였다. 역시 전문가는 이렇게 다르구나... 싶던 순간.
위 사진 첫번째는 러시아인데, 얼어붙은 강 너머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두번째 사진은 배가 드나들던 곳이 메말라서 사막이 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랄해'였을 것이다. 세번째는 미국의 어느 강이었는데 물이 부족해서 식수를 공급해놨더니 영양 과다로 물고기가 너무 많이 번식했고, 어느 해 너무 더웠던 하루에만 무려 800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로 죽었다고 한다. 둥둥 떠 있는 저것들이 모두 물고기 사체. 몇 해 뒤 이 사진을 찍은 국내 사진가가 다시 그 자리에 갔더니 모두 허옇게 소금이 되었더라는 이야기.
그 밖에 우리나라 울진, 영광 등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곳의 지나치게 한가한 여름 해변과 불안한 얼굴의 어부들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수업이 생각났다. 당시 지리 샘은 일본 같았으면 원자력 발전소를 세운다고 해도 국민들이 나라를 신뢰해서 안심하고 찬성할 텐데 우리나라는 국가가 그런 신뢰를 주지 못해서 님비현상이 일어난다고....
글쎄, 님비현상도 문제라지만, 그것 이전에 원자력은 '신뢰' 이상의 문제로 여겨진다. 일본 아닌 그 어떤 나라라도 무려 '원자력'인데, 그 위험성을 무엇으로 무마시킬까.
조카가 가장 인상 깊어했던 사진은 '투발루'였다. 7개의 섬 중에서 이미 2개의 섬이 가라앉은 곳. 자신들은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이 아닌데도,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가장 먼저 입고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나마도 받아주지 않는 나라들 때문에 더 마음앓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 조카도 벽걸이용 커다란 세계지도 퍼즐을 구입했는데 거기서 투발루가 어디인지 다시 한 번 얘기해줘야겠다. 집에 가서 벌써 찾아봤을까?
황사를 얘기하면서 중국을 보여주었지만, 거기만큼 답답한 게 또 우리나라 새만금. 파도처럼 넘실대는 것처럼 보이던 진흙뻘. 죽어가고 있는 그 땅을 미리 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 인도의 어느 할아버지는 집이 두 번이나 떠내려갔는데, 그 땅을 바라보는 한숨 섞인, 체념 어린 그 표정이 어른거린다.
온통 암울한 얘기만 할 수는 없는 일. 부탄의 어느 가난한 마을에 제공된 태양력 조리 기구. 거대한 접시는 밤에는 쓸 수 없고, 날이 흐려도 못 쓰고, 태양이 이동할 때마다 방향을 틀어가면서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조리가구를 들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기만 하다. 아마도 인생의 만족도는 우리보다 그네들이 훨씬 높을 것이다.
유익한 전시였다. 이전에도 가게 있을 때에 가본 적이 있지만 뭘 보고 왔는지도 까먹었는데 이번 전시는 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구는 이렇게 뜨겁고, 봄 가을은 사라져 가고 있고, 열대지방 모기가 온대지방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는 판인데, 그럼에도 지구 온난화는 다 거짓말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 정치적으로, 혹은 어떤 의도로 과장될 수는 있을지라도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는 절대로 못 믿겠다. 지구 전체의 나이에 비하면 우리가 살아온 고작 몇 십년의 세월은 한줌보다 작은데도, 그 시간 안에서 피부로 느끼는 기온의 변화인 것을....
첫번째 책은 최근에 나온 건데 읽어보진 못했다. 제목만 보면 지구 온난화는 거짓말이다!라고 외치는 느낌인데 내용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두번째 책이 바로 지구 온난화는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엄청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이 열심히 대처 중이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구절도 있다. 헐~ 세번째 책은 사진만 봐도 감이 팍팍 온다. '승자는 혼자다'에서 나온 얘긴데, 이러다 인류는 정말 지구로부터 '퇴출'될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일이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서 분수대에서 애들 물놀이를 시키는 거지만, 아무래도 국장 중이라 분수대 가동을 안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 예감 적중. 아주 작은 분수대만 틀어놔서 발목 적실 수준은 되었지만, 그냥 패쓰하기로 했다. 둘째 조카가 잔뜩 기대 중이었는데 좀 미안하더라. 다음 기회에 다시 오자~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간 곳이 바로 그 앞에 있는 KT 1층 전시관이었다. '녹색성장전시관'이란 이름에서 이미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 약자인 'egg'만 눈에 들어와서 '어, 이승환 7집 앨범 제목이랑 같네!'만 생각하고 무심코 들어갔다. 앞서 보고 온 전시회처럼 그냥 정말 환경 전시관으로 여겼던 거다.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자전거 발전기. 선풍기를 돌리기도 하고 휴대폰을 충전시켜 주기도 한다. 잠깐 돌려봤는데 제법 운동이 되더라는.
입구 왼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2인승인데도 꽤 묵직해 보인다.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에 나오는 귀여운 자동차처럼 생겼다. 붕붕붕~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노래가 절로 나오네.
풍력 발전의 원리와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아이들은 확실히 불 들어오는 것에서 껌벅 죽는다.
하긴, 나도 불 들어오는 게 멋져보이긴 하더라.
해당 층의 버튼을 누르면 그 층이 바깥쪽으로 나오는 장치인데, 다 나오진 않고 '파프리카' 심어진 농장 층만 이동했다. 불은 다 들어오고. 서로 누르겠다고 막 싸우던 녀석들.
사진을 거의 언니가 찍어서 내가 못 본 것들도 보이는데 지금 보니, 오른쪽 사진의 제목은 '꿈을 이루는 희망 에너지 원자력'이다. 그 꿈은 대체 누가 꾸는 것일까? 또 누구에게 희망일까? 어려운 문제다. 에너지란......
둘째 조카가 도슨트를 같이 들으면 꼭 사고를 치기 때문에 나랑 홀에 남아 있고, 큰 조카만 제 엄마랑 들어가서 영상과 설명을 들었다. 그 사이 둘째 조카 다현이랑 나는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전송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갖고 놀았는데, 내 메일로 두 장이나 보냈건만 집에 와서 보니 도착해 있지 않다. (무려 안내 직원의 '안내'까지 받아서 해보았건만! 그녀들의 유니폼은 이뻤지만 온종일 높은 굽 구두 신고 참 힘들겠더라...)
아씨, 보내줄 것도 아니면서 이메일 주소는 왜 적으라 그래? 스팸 메일 오는 것 아닌가 몰라...-_-;;;
영상 설명이 끝났는지 모두들 밖으로 나왔는데 바깥 전시물들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얼라, 저건 뭐지???
으악! 전시 코너 중에 하나가 '4대강 살리기'다. 삼성 TV에 떡하니 나오는 4대강의 현재 모습과 사업 후의 변화될 모습이 비쳐진다. 하.하.하.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옆 코너엔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를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홍보하는 책자와 팸플릿과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기도.
앞서 갔던 대림미술관의 감동에 비하면 너무 인위적이고 체감되지 않는 가상 느낌의 전시관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체험관을 만든 의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게다가 이 전시관에는 화장실도 없다. 식수대도 없다. 옆 건물로 이동하란다. 거 참 기본도 하지 않는 '녹색 성장'이라니, 정말 누구를 위한 성장이라는 건지...;;;;;
이 체험관 만들면서 세금 무지 썼을 것 같은데 영 입맛이 쓰다. 타미플루나 많이 비축해 두지..;;;;
생각보다 덥지 않은 날이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쌈박질 하는 어린 두 녀석 데리고 두 곳 전시관을 다니고 나니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허기져서 들른 버거킹에서 조카 녀석 콜라 엎질러 주시고, 햄버거 바닥에 떨어뜨려 주시고!!!
버스 안에서 잠든 녀석을 언니가 안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나도 일단 널브러져서 한 시간 반 동안 눈부터 붙였다. 그 사이 꿈도 몇 개를 꿔버렸다. 어이쿠!
그나저나 조카의 체험 학습은 아직 한 개를 더 채워야 한단다. 아, 그 다음은 모르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