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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그는 18세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웨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교육이라곤 받아보지 못한, 그저 인도의 밑바닥 계층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평범할 것 같은 인생살이가, 또 그의 인생 역전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퀴즈쇼에 출연했고 12개의 문제를 모두 맞추어 무려 십억 루피의 상금을 받기로 된 그런 놀라운 인물이었다. 사건은, 여기서 출발한다.
방송사는 발칵 뒤집혀졌다. 적어도 프로그램 시작하고 8개월은 되어야 본전을 다 회수하는데, 첫 출연자가 무려 10억 루피의 상금을 따냈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불법 체포, 감금, 고문까지 자행하며 이 청년의 퀴즈쇼 우승을 무마시키려고 애쓰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뜻밖의 변호사가 등장하여 그를 보호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여변호사는 주인공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쉬게 해준 뒤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어떻게 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는지...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라고 알고 있고 FBI도 모르고 닐 암스트롱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12개의 문제를 모두 풀어낸 청년의 인생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 이게 그의 이름이었다. 출생에서 성장까지도 기구했던 그의 운명은 이름에서부터 이미 드러난다. 그의 이름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크리스트교까지 세 개의 종교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의 흔적은 그의 삶에서 마주친 무수한 사건과 인물들과 무관하지 않다. 어려서는 티모시 신부로부터 보살핌을 받았고, 그 덕분에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살림은 이슬람 교도이지만 그가 뿌리 내리고 사는 그곳 인도에선 힌두교도가 가장 많았다.
거의 2년 터울이었던 듯 하다. 티모시 신부의 죽음 이후 전전긍긍한 그가 정착했던 곳에서 머문 시간은.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눈을 잃은 뒤 앵벌이에 팔려갈 뻔 했고(다행히 무사히 도망쳤고) 호주 출신 대사관의 집에서 집사 노릇도 했고, 왕년에 인기 있었던 여배우의 집에서 가정부 노릇도 했다. 힘껏 번 돈을 기차에서 강도에게 홀라당 털리고, 정당방위긴 했지만 그 강도를 죽여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했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타지마할에서 관광안내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놀랍게도 퀴즈쇼의 문제들과 맞아 떨어지면서 그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퀴즈쇼 진행자 측의 술수로 위기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는 기찬 운으로 그 장벽들을 모두 피해간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로또보다도 더 기막힌 그 우연과 행운과 운명도 독자는 즐겁게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기지와 재치, 그리고 정직한 노력의 자세에서였다. 그가 성장했고 또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 빈민촌들은, '짐승처럼 살다가 벌레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그가 사랑한 니타는 12살에 엄마 손에 사창가에 팔렸고, 그녀를 창녀로 만들고 놓아주지 않는 포주는 친 오라비였다. 오늘 굶어죽는 것보다 내일 에이즈에 걸리는 게 더 낫다고 당당히(!) 말을 하는,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분명 인생이 있었고 교훈이 있었다. 자폐아 아들을 버리고서 그 아들이 광견병 걸린 개에 물려 죽어갈 때도 나몰라라 하는 무정한 모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름답게 단장한 채 자살한 여배우가 죽은 뒤 한달 뒤에나 발견되어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모습,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던 자가 뜻밖의 농간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 당하는 모습 등등.
인도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모든 인간 군상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삶의 모습들이 책 곳곳에 주인공의 삶과 맞물려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퀴즈쇼의 마지막 진행 부분에 가면 작가가 준비한 두 가지의 반전(?)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주 쇼킹한 반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자의 흥미를 더 돋우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인도의 외교관이라고 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했다. 이미 그 정보를 알고서 읽은 탓인지 조금은 거칠은 듯한 구성도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신선했으며 발상이 재밌었고 독특했다. 가독성은 좀 떨어지지만 제목의 Q&A 글자 디자인이 참 예쁘고 개성적이다. 가벼운 재생지도 내 맘에 드는 조건 중 하나. 인도 문학을 접한 것은 거의 처음이지 싶다. 미처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만남을 더 찾아야겠다. 마음이 분주하여 읽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몹시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