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 대한 리뷰가 올라와서일 것이다. 반응들이 좋았고, 그러다 보니 영화에도 흥미가 생겼다. (딱히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다.)
몇 주 전에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작품의 줄거리를 대강 알게 되었는데, 그게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영화는 판타지 영화로서의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해 주면서 소소한 것들로 작은 웃음들을 자꾸 유발시키면서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심어준다. 미셸 파이퍼와 로버트 드니로는 중견 연기자다운 무게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는데, 로버트 드 니로는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임을 알고 있어서 크게 놀라울 것도 없었고 비중도 좀 적었지만, 그에 비해서 미셸은 확실히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어 내게는 명배우의 반열에 새롭게 오른 셈이 되었다.(그녀가 내년에 쉰이라니 믿기 어렵다.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미 50이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녀에게 청혼한 다른 놈에게 이기고 싶어서 별을 가져다 주겠다고 큰 소리친 트리스탄.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월(wall)에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담장'이 있는데, 별을 가지러 담장을 넘어가면서 모험은 시작된다. 아니, 이미 그의 출생에는 아버지 대의 담장 넘기로 인한 인연이 엮여 있었고, 그는 인연을 넘어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영화는 마녀가 등장하고 마법이 펼쳐지고, 하늘을 날으는 해적선에, 유니콘(좀 뜬금없이 등장하기는 했지만...)도 나타나는 등 판타지물로서 내세울 수 있는 패는 모두 다 보여준다. 내용의 전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고 각별한 결말을 보여준 것도 아니지만, 소소한 웃음들이 쌓여 영화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를테면 염소에서 사람으로 변신한 배우라던가, 차례로 죽어가는 왕자들이 유령이 되어서 보여주는 액션 등등.... 아마 집에서 비디오로 혼자 시청했으면 덜 즐거웠을 것들이,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웃음으로 시너지 효과가 더 생긴 듯하다.
주인공 트리스탄은 신인 배우가 연기했는데, 초반에는 아버지의 미모에도 부족하고 도대체가 주인공다운 구석이 없는 찌질이(...;;;;)로 나오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외모다 가꿔지고(드 니로 아저씨 만세!) 생각의 폭도 커지고 마음의 그릇도 넓어진다. 이 영화는 판타지물이면서 동시에 트리스탄의 성장영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
훈련을 통해서 힘을 키우고 각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표정을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은근 멋있었다고 고백하련다.
왕국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형제들쯤은 눈하나 깜짝 않고 죽일 수 있는 비정한 왕가의 사람들, 눈앞에서 아들이 아들을 죽여도 나무라지 않는 왕이라니... 대놓고 비교육적이고 몰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가 '오락'으로 인정되고 웃어질 수 있다는 것은 솔직히 서글프다.(나 역시 재밌게 보고 웃었지만...)
영화 음악도 인상 깊었는데, 중간중간 삽입되어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음악들이 즐거웠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악들로 감초 역할을 해준 것도 좋았으며, 엔딩 곡도 (제목은 모르지만) 몹시 좋아서 자막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면서 들었다.
영화는 대략 2시간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지루할 새 없이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무더운 여름철 기분 전환용으로도 딱 좋을 영화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국사랑으로 똘똘 뭉친 은유와 직유가 남발되지만, 그것들이 모두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신선하고 정겨운 맛이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가시라. 짐작한 것 이상의 재미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