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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컴퓨터를 쓸수 없는 시간이었고, 날은 너무 더웠다. TV를 보고 싶지 않았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읽기였는데, 그런 날에 무거운 책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감정이 좀 볶이고 있었다.) 그래서 심사숙고(?)해서 책을 골랐다. 이런 날 내게 딱 좋을, 감초같은 책을...
그리고, 그 선택은 아주 적중해서 대만족을 가져다 주었다. 작년에 구입하고 일년을 미뤄온 독서였는데, 작년의 그 어떤 날보다 이 책을 잡은 이때가 내가 만날 가장 적시였던 듯!
박현욱의 책은 처음이다.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이 책이 재밌다는 입소문은 많이 들었다. 사람들의 평가에 나 역시 동의를 표한다.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다. 이렇게 발칙한 발상을 어떻게 했을 지 신기하다.
주인공은 축구 때문에 아내를 만났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결과 때문에 아내와 가까워졌고, 그러다가 구애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대단히 독특하다. 아니, 부부가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가 독특하다. 그녀의 결혼관이라든지 연애관은 너무나 남다르다. 그래서, 결혼을 유지한 채 또 다시 '결혼'을 해버린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결코 납득이 되지 않을 그런 설정이다. 이 책의 화자인 남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아내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매번 설득 당하는 쪽은 그였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아내의 그 설득이 정말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윤리 기준으로는 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듯 하면서 또 놀라고 아니라고 하면서 또 끄덕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남편은 아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을 유지한다. 아내는 두집 살림을 모자람 없이 아주 능력있게 해나간다.(이럴수가!)
이 독특한 설정만으로도 독자는 놀라움과 재미를 같이 맛보는데, 여기에 더 특별한 양념이 가미된다. 바로, '축구'다.
그들을 연결시켜준 운명적인 그 축구 이야기. 대한민국의 축구뿐 아니라 스페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 등등... 그 모든 나라의 축구 이야기가, 그 모든 나라들의 스타 플레이어가, 역사적인 축구 경기에 관한 이야기가, 또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관하여 남긴 명언들이, 어떻게 그렇게 조화를 시킬 수 있을까 싶게 이들 부부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면서 명문장으로 탄생한다.
얼마만큼 유쾌하고 재밌었냐하면, 성석제의 그 '말빨'이 떠오르면서 박민규의 그 '엉뚱함'도 같이 생각나는 문장들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그 남편의 입장에서 독자는 흥분도 하고 감동도 먹고 화도 내면서 이야기 속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축구불모지인 나같은 독자도 축구의 이런 색다른 매력에 눈을 뜨면서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맛본다. 세상에나! 이건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
작품 속 아내가 주장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기면 가정을 유지(?)한 채 재결혼을 통해서 또 다른 가정을 만들라고, 혹은 그게 '옳다'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그녀가 주장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어볼만 하다.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결손'가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여기는 것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대개 있어왔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해서 고민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윤리적 규범도 분명 있다. 'all'은 아닌 거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그녀의 지적들이 날카롭다. 작품 속 그녀는 사학과 출신으로 나오는데, 그녀가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공통점을 읊을 때는 작가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이런 전문적인 내용도 대화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놓아서 말이다.
굉장히 무거울 수도 있는 묵직한 주제를, 어찌나 가볍고 재밌게, 또 신나게 풀어놓았는지, 책장 넘기는 게 아깝다 여기면서 읽었다. 박현욱을 만난 행운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재밌단 입소문을 내기 무섭게 나의 지인이 이 책을 빌려갔다. 아핫, 다음엔 박현욱의 재치와 유머에 대해서 서로 깔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 전에 박현욱의 다른 책도 더 읽어야겠다. 이렇게 열대야가 판을 칠 때에는 이런 소설이 더 필요하다. 만세(>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