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내 생일은 늘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그 후로는 줄곧 가게에 매여 있었다.
올해, 모처럼 가게에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수요일이었던지라, 7시반까지는 귀가해야 하는 날이었다. 젠장.ㅡ.ㅡ;;;;
억울해서, 스스로에게 생일 선물을 주기로 했다.
대학로 S.h클럽, 뮤지컬 헤드윅 "조정석, 안유진" 캐스팅 4시 공연.
유훗! 고대했던 공연이지만 혼자서 앉아 있으려니 영 찝찝하다. 원래 혼자서 공연도 잘 가고 영화도 잘 보고 잘 노는 인간이지만, 날이 날인 만큼.. 또 서른을 코 앞에 둔 시점이라 요새 계속 싱숭생숭 모드다.
그러나, 4시 시작해서 7시에는 헤어져야 하는데 누구랑 같이 보겠는가. 표 구한 것도 용타.ㅡ.ㅡ;;;;
네 명의 헤드윅 중 조정석을 원했던 것은 지난 여름에 보았던 '바람의 나라' 때문이다. 그때 절규하던 호동 왕자의 역을 너무나 잘 소화해 내어서 180도 다른 배역이지만 내심 기대했던 것. 이츠학 역할에는 서문탁을 보고 싶었지만 날짜가 안 맞다. 신예 안유진에 만족하기.
공연장은 소극장으로 아주 작다. 예전에 여기서 클럽 공연을 본 적이 있어서 대충 감은 잡았지만 앉아서 관람하자니 앞사람 때문에 무대가 가려진다. 어쨌든 공연 시작!
처음엔 몹시 퇴폐적인 분위기로 노래 한곡 불러제낀다. 강렬한 화장, 번쩍이는 가발, 섹시한 의상까지.(허리라인 죽이더라. 대사 자체에 's'라인에 44사이즈라고 나옴.;;;;)
그런데... 극의 진행이 나의 예상과 너무 다르다. 이럴 줄 알았음 영화를 미리 챙겨보고 공부를 좀 하고 올 것을...
게다가, 오늘 내내 두통에 시달렸던 나는 그 좁은 공간의 넘치는 CO2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단다. 그리고 무지무지 피곤했단다. 그래서 결론은???
엄청 졸았다는 얘기..ㅠ.ㅠ 중간에 고개가 뒤로 넘어가서 화들짝 깨기도...;;;;
깨어 보면 노래하고 있고, 깨어 보니 의상이 바뀌어 있고, 깨어 보니 극이 거의 끝나가더만...ㅡ.ㅜ
아무래도 내용의 연결은 복습이 필요할 것이고...;;; 음악은 정말 좋았다. 노래도 뒤로 갈수록 다듬어진 느낌이고, 오늘의 발견은 안유진! 이츠학의 연기는 별 대사 없고 별 움직임 없어서 뭐라 판단할 수가 없는데, 노래는 정말 파워풀 했다. 오옷! 대단대단! 마지막에 그녀 역시 남자 옷을 벗고 여자 옷을 입고 나오는데 놀랍게도 엄청 미인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마지막에 크게 졸다가 깬 후...(..;;;;)의 모습인데, 헤드윅이 입고 있던 원피스랑 가발이랑 다 어디 가고 거의 속옷 바람으로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호곡! 어찌된 일이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몹시 심각하다. 자신을 치장했던, 감췄던 그 모든 것을 떨쳐낸 그런 비장한 분위기!
아, 그러나 그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한 나는 순간 죄의식에 빠져들고...T^T
이, 명장면을 놓쳤구나. 주르륵....
조정석은, 프로필에 키가 175로 나오지만, 솔직히 170은 절대 안 넘을 것 같다. 대단히 아담한 체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살 없이 온통 근육질이다. 오홋! (몸 만든 이승환이 이렇지 않을까????)
그래서 순간, 천계영 만화 '오디션'의 재활용 밴드가 떠올랐다. 섹쉬 그 자체!
정면에서 보면 王자 각이 잡혔던데 옆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온 몸에 땀이 흐르던데 얼마나 격정적인 무대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내내 졸아서 미안해요ㅠ.ㅠ)
그의 이미지는 언제나 뽀송뽀송이었는데(그래서 별명도 뽀드윅이라지...) 이번 작품에서 확실히 변신한 듯!
1980년 생으로 나보다 두살 어리다. 흑... 어려서 부럽군.ㅡ..ㅡ;;
나는, 오늘로서 만 28살이 되었다. 한 달 뒤가 몹시 두려운, 외로운 청춘이랄까....
어쨌든, 오늘은 미역국은 먹었다. 몇 년 만인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