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소통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아이들
1953년 7월 27일

서른 다섯 승민은 야근과 밤샘을 밥먹듯하는 건축 사무실에 근무한다. 여전히 밤을 새서 피곤에 찌들어 있던 어느 날, 미모의 여성이 자신을 찾아와 말을 건다. 누구...세요? 하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냐는 얼굴로 자신을 소개한다. 스무살 대학 새내기 시절 첫사랑 그녀와 다시 만난 순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나운서 시험에 몇 차례 떨어지고 의사 남편 만나서 결혼을 했다던 그녀가 제주도의 고향 집에 집을 짓고 싶다고 건축을 의뢰한다. 승민은 내키지 않아 했지만 결국 이 일에 뛰어든다. 처음엔 집을 새로 지으려고 했지만 낯설어서 싫다는 그녀에게 승민은 증축을 권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추억이 깃든 집은, 그 추억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어릴 적 키가 얼마나 자랐나 높이를 재던 눈금이 담긴 벽이 살아 있고, 시멘트를 발라놓은 수돗가에 실수로 찍은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연못들이 그것이다. 심지어 피아노를 들이기 위해서 빠듯한 일정에 설계를 변경해서 2층을 올려 방을 지었는데, 그 앞은 아랫층의 옥상으로 무려 한옥 기와가 얹어 있다. 영화 속의 집은 누구나 살고 싶은, 누구나 갖고 싶은 그런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의 실력이 뒷받침 된 것이겠지만, 첫사랑 그녀에 대한 마음 한조각이 거기에 끼어들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스무살의 풋풋한 나이는 배우 이제훈과 배수지가 연기했다.(이제훈은 엄태웅의 16년 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은꼴이다. 특히 긴 콧날이!) 워낙 동안을 자랑하는 이제훈은 스무살의 설익음과 대책없는 순진함과 가없는 설렘을 잘 표현했다. 배수지의 딱딱한 연기는 한가인의 딱딱한 연기와 비슷해서 이 아이가 자라 저 사람이 되었다는 설정이 설득력 있다. 다만 한가인은 빼어난 미모에 비해 부족한 연기력으로 쏟아지듯 튀어나오는 욕설을 잘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녀와 그닥 어울리지를 않는다. 좀 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면 그 고아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좀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지만, 한가인의 욕설 연기는 NG!

 

 

 

 

(옷 예쁘다! ♡)

 

 

 

 

이제훈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지금 패션왕에서 못된 성깔 자랑하는 재벌 2세의 느낌과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 파수꾼에서도, 고지전에서도 그의 연기는 매번 훌륭했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더더 기대되는 멋진 배우다.

 

 

 

 

눈을 즐겁게 한 상대로는 조정석도 있었다. 어린 승민의 친구로 재수생인 그는 재수까지 하는데 공부까지 열심히 해야 하냐며 퉁퉁거리는 캐릭터다. 독서실에서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는 두 여학생을 가리켜 '싱숭'과 '생숭'으로 부른다는 이 친구는 순진한 승민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졌다. 최근에 '킹 투 더 하츠'에서 이순재의 아들로 나오는 조정석은 내가 처음 만났던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그 앳된 얼굴의 '호동왕자'에서 조금 삭아버렸다. 몸이 너무 좋아져버렸어. 운동을 많이 해서 남성호르몬이 과다 배출된 게 아닌가 싶다.ㅜ.ㅜ 어쨌든, 연기만은 역시 발군!

 

 

 

 

 

 

 

영화속 96학번의 대학 새내기 시절, 있는 집 자식인 선배의 새 팬티엄 컴퓨터는 하드 용량이 무려 1기가. 1000메가라고 신입생을 기죽인다. 아, 이 놀라운 디지털 시대의 속도감! 그 시절에 최고 사양 컴퓨터가 지금은 쳐다도 보지 않을 똥컴이라니, 진정 세월의 힘이 놀랍다.

 

영화는 첫사랑 그들의 재회 시점에서, 그들이 언제 어떻게 만나 가까워졌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하필이면 보지 못한 것 때문에, 하필이면 본 것 때문에 오해는 쌓이고, 오해는 서로를 향한 감정의 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밀어낸다. 애석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확인했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돌이키기엔 지나치게 멀리 왔고, 잡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게 잡기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지극히 많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첫사랑에 매달리기엔 우린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들. 그리하여 영화는 판타지를 보여주면서 현실적인 결말로 귀결한다. 그럼에도 그 아련함이 오히려 완성도를 더 높였달까. 영화같지만 영화같지 않은... 환상 같지만 환상같지 않은 접점을 잘 찾은 듯하다. 다행히.

 

영화에 삽입된 전람회 '기억의 습작'은 이 영화의 아련한 향수를 극대화시키는 최대의 무기다. 김동률의 목소리는 얼마나 깊고도 아득하고 또 가슴을 파고드는가.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음악, 추억의 삐삐, 추억의 문화까지... 이 영화속에는 많은 향수가 담겨 있고, 그래서 많은 기억을 자극하고, 그래서 참으로 아련하고 뻐근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작품에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우리 동네다. 하하핫! 극장 안의 아주머니들이 우리 동네 나왔다고 어찌나 크게 웃으시는지...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문구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잘 묘사했다. 한때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그대, 한때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나...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지만, 추억으로만 남았기에 서럽기도 한 법. 그래도 처음이기에 더 특별한 우리 모두의 첫사랑. 첫사랑을 아득히 기억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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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2-03-2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거 봐야하는데~~~ㅎㅎ

마노아 2012-03-28 10:27   좋아요 0 | URL
여유있는 아침에 보고 오셔용~ ^^

프레이야 2012-03-2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마노아님도 보셨군요. 드뎌.ㅎㅎ
조정석은 일부러 이 영화를 위해 8킬로그램 찌웠다고 하더군요.
재미난 양념역할 좋았어요.
이제훈은 마냥 기대주에요.^^
우리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겠지요? 아마? ㅎㅎ

마노아 2012-03-29 23:41   좋아요 0 | URL
오오오, 일부러 몸을 망가뜨리는 연기 투혼을 불사했군요.
그래서 지금 드라마에서 더 극적으로 멋있게 보이긴 해요.^^
이제훈 완소 배우~
아아, 나의 첫사랑은 지금 뭐하고 살려나...ㅎㅎㅎ

순오기 2012-03-3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영화 정말 좋았어요.
이제훈과 엄태웅~ 정말 한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는 듯하죠.^^
첫사랑과 집~~~~ 잘 엮어냈어요. 저런 집~ 정말 부럽더라고요.
서연아~ 서연아~ 부르며 좋아하던 저 거리에서 엉엉 울어버린 승민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이 내렸죠.ㅜㅜ

마노아 2012-03-30 11:33   좋아요 0 | URL
그쵸? 참 좋았는데 넘넘 싫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아서 의아했어요. 한가인 때문인가, 정말 영화가 싫었던가 궁금하더라구요.
아, 승민의 애달픈 첫사랑... 서연아~ 하고 동네방네 떠들던 그 장면 진짜 벅찼는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