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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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 뽀개기는 계속된다. 이번 책은 나도 종종 챙겨 봤던 유튜버의 그림 에세이다. 내가 이분을 기억하게 된 건, 그녀가 평소 해오던 고민들과 내린 결론이 내 것하고 너무 많이 겹쳐서였다. 삶을 지탱하고 유지해 주는 것들이 가지는 의미. 현실 너머의 것들을 위하고 바라는 인생 방식.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 남들과 잘 섞일 수 있겠냐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 이방인으로 살게 된다는 거다. 그것은 곧 존재의 쓸모없음을 뜻하므로 어떻게든 부정하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을 시도한다. 결국 같은 패턴의 무한 반복이다.


박살 난 인류애, 염세주의, 물질에 대한 인식 등등. 그동안 내가 리뷰에 적었었던 내용들이 줄줄이 언급된다. 과연 동족은 동족이다. 우리 이방인들의 삶은 나 자신보다 타인한테 맞춰져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돌보고 우선시하는 게 잘 안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그처럼 이타주의가 디폴트라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답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우리 이방인들은 남들이 내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 갈 때 그렇게나 기뻐한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봤자 그거 가지고는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거다. 이 진리에 도달한 이방인은 둘 중 하나다. 끝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각성하고 흑화 되거나. 나는 후자다.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실는지.


회사의 팀원들과는 전부 내적 손절을 해버렸다. 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묵언수행하고 있다. 해외여행, 맛집 탐방, 연예인 덕질, 스마트 기기, SNS 등 오직 플랙스와 쾌락만 좇는 것들과 있다 보니 왜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지를 알겠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라지만 1차원의 인간들과는 도저히 안되겠더라. 언론과 넷상에서 물가가 어쩌고 취업이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노조가 어쩌고 하지만 현실은 잘만 놀고먹고 있으니 이거야 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왜 나만 살기 바쁠까. 왜 나만 혼자 겉돌까. 습관적으로 자신을 탓한다. 이연 작가도 똑같았다. 사람들이 어렵지만 인정은 받고 싶어서 자신 있는 그림만 냅다 그렸단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서 그리는, 나를 위해 그려온 게 아님을 알고부터 방황했단다. 알맹이는 싹 타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그 느낌, 갑자기 자아가 부재된 그 기분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단 한 번도 성실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는데, 어째서 허랑방탕 허송세월을 보낸 것과 똑같은 결과일까.


책 내용의 절반이 가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난에 지배된 사람은 모든 게 조심스럽고 늘 극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건 주머니 사정이 나아져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힘들면 힘든 대로 잘되면 잘 되는 대로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일상과 한결같은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고 저자가 그러하다. 회사를 나오고 수입이 없는 중에도 수영을 배우러 다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상급반까지 올라간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점차 좋아지는 수영 실력이 텅 빈 마음에 평온을 채워주었다. 매일의 작은 노력이 나를 성장시키고 긍지를 갖게 한다. 그러니까 너도 도전해 봐,식의 응원과 격려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의 달라진 내가 되어, 울고 있던 과거의 나를 그만 놓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살림 걱정하는 부모님 눈치만 보며 살았던 과거에 아직도 갇혀있는 나. 가난해서 놓쳐버린 경험과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신이 가난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 하고 싶다. 어차피 공감도 못할 거니까,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빈곤함이 반복되면 속이 깊어질 순 있어도 넓어지지는 않는다. 그릇이 커지는 게 두려운 나머지 성장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거든. 그렇지만 당신이 삶에 의미를 바라는 고차원의 이방인이라면 환영한다. 겨울밖에 없었던 나와 당신의 인생에 부디 봄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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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26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리뷰가 자주 올라오니까 너무 좋다! 근데 물감님 리뷰만 말고 본인 얘기도 따로 가끔 해주시면 안되나요 저는 물감님이 좀 궁금한데 ㅋㅋㅋㅋ

물감 2023-02-26 17:00   좋아요 2 | URL
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지는 않네요 ㅋㅋ
정 듣고 싶으시면 분당에 놀러 와요~ 희로애락이 뭔지를 보여드리겠음.

coolcat329 2023-02-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수영으로 힘든 시기 이겨낸 얘기군요. 저도 한 때 수영에 광적으로 매달린 적이 있어요. 초급에서 연수반으로 6개월만에 고속 승급했고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해댔습니다. 물속에 있으면 모든 걱정근심 다 사라지고 앞 사람 발만 보며 25미터 라인을 수없이 돌고나면 나중에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ㅋㅋ저도 당시 이래저래 힘든 시기였는데 수영으로 몸과 마음 다잡았네요.

물감 2023-02-26 17:06   좋아요 0 | URL
쿨캣님도 수영 다니셨군요. 맞아요. 뭔가에 몰두하면 잡생각이 사라지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 나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정말 별개에요. 독서만 하는 것과, 읽고 쓰기까지 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3-02-26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마음이 다 전달되네요. 얼마 전에 봤던 이성민 배우의 ‘버티기‘ 메시지가 생각나네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여행 유튜버들의 말들도 생각나구요. 겨울인 듯하지만 지구의 기울기를 바꿀 수 없기에 봄은 꼭 찾아올거예요^^

물감 2023-02-26 23:24   좋아요 3 | URL
버틴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평범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처럼요. 어쨌든 계속 살아야죠. 저는 유재석씨가 절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제자리지만 그래도 세월을 머금은 지금이 훨씬 좋아요. 언젠가 봄이 올거라 믿어봅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3-03-0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지요.........ㅎㅎㅎ

물감 2023-03-08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 그 문장 쓰면서 잠자냥님 생각했어요. 잠자냥 님은 백퍼 이해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