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논어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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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논어는 잠언류로 알고서 읽던 시기가 있었다. 뭔가 지당하신 말씀인 듯 한 그런 교장 선생님의 훈화조처럼 지리하고 따분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성독을 하면서도 도무지 흥미가 일지 않았다. 시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읽게 된 도올의 논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의 학문적 깊이 뿐 아니라, 다방면의 서적을 참고하며 주견을 세워나가는 자세가 놀라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학문이란 자고로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끌어 내는 게 아니라, 다방면의 지식을 응축하여 자신의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적게 아는 사람은 적은 부분에서 탐구하기에 이단으로 빠지기 쉽고, 많이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만큼 여러가지를 접목하다보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기에 지도와 같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알림판이 필요한 것이다. 도올은 그런 알림판으로 정약용과 소라이와 사마천의 전적들을 사용한다. 그런 알림판을 통해 자기의 방향을 제정립하고 논어를 알려주는 것이다.

  고주와 신주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이 펼쳐지는 담론들,, 그런 것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알던 논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앎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도올의 논어가 그래서 반가웠던 것이다. 2권에선 위정편과 팔일편이 수록되어 있다. 얼마나 깊이 있는 고찰을 하는지 1권을 보신 분들이라면 2권, 아니 3권까지 내리 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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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논어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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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논어는 공자 학단을 이 펴낸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이 책을 썼다고 아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처럼 어떤 신격화된 공자의 모습이 실려 있지 않으며, 한 인간의 고뇌와 그 제자들과의 소통을 이야기 책 읽듯 읽을 수 있다. 논어는 맹자와 달리 단문으로 이뤄져 있어서 읽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런 말들이 왜 나왔는지에 대해 아리송 할때가 많다. 주자의 주까지 읽어야만 그제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단점들을 도올은 재미있게 이야기 해준다.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소라이의 논어에 관한 담론, 주자주와 고주까지 통틀어 고찰하는 그의 연구자세가 놀랍기 까지 하다. 그런 연구의 성과가 이 책에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논어를 경문 위주로 보아왔던, 그래서 좁은 물에서 주자주만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해온 나에게는 색다른 충격이었다. 그리고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다른 해석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충격으로 인해 한문을 한다는 사람의 연구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말한다는 게 얼마나 송구스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논어는 명문이다. 도올은 이 한 권에 공자의 사상과 학이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읽었던 여타 논어에 관한 책들이 비해 이 책이 가치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런 연구자적 자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루 파악하고 공자의 숨겨진 면모까지 꼬집어 내어 논어를 알아가는 자세,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상정해보고 본문에 담긴 이야기의 의도를 알아가는 자세,, 그런 것들이 담겨 있기에 나에게 논어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사서 경문으로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뿐더러, 학문에 깊이 까지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님을 잡학다식이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 말에 동의 하지 않는다. 그의 학문적 깊이와 사유는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에서 여실히 느꼈으며,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학문의 틀에 갇히지 말자. 호학하는 자세만이 자기의 영역을 넘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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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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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제목을 읽고서 看書痴라는 별명을 가진 이덕무가 생각났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버릇을 가지는 사람들을 일컬어 '癖' 또는 '痴'라고 불러주곤 했는데, 이덕무는 책만을 미친 듯이 보았기에 그런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덕무가 책만을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단순히 생각하면 중인으로서 사회 진출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기에 책을 읽음으로 위로 받으려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책은 자기의 내면을 살찌울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여룡은 말똥구리의 말똥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말똥구리는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의 사상을 잘 나타내는 주는 명문으로 그 당시 여러 학자의 글을 통해서 자주 회자되었던 말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 자기 것을 만족하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경지는 단순히 이뤄지는 게 아닐거다. 그건 부단히 자기의 것을 갈고 닦으며 내적 수련을 거친 후에야 이뤄질 수 있는 경지이리라. 바로 이덕무가 간서치가 된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책이 주는 묘한 울림과 깨달음들이 이덕무로 하여금 책을 놓치 않게 하였을 것이다.

  이 책은 표정훈씨의 독서 편력과 책에 대한 애착을 탐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저자의 이런 책에 대한 애착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을 '賣文家'라구 규정하며 책을 내는 행위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해석해 놓았지만, 그의 열정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글마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가장 재밌던 에피소드는 그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책을 훔치기 위해 치밀히 계획 세웠던 부분이었다. 출입구로 책을 가지고 나오면 당연히 걸리기 때문에 복도로 통하는 창문의 유리를 열고서 책을 던진다라는 그의 계획, 그 계획을 위해 책을 사랑하던 몇 명의 친구들까지 물색한다. 비록 그 거사를 치루지는 않았다지만, 책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련해졌던 거다.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책이 흔해졌고,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흔해지면 오히려 사람 맘은 떠나는가 보다. 책에 대한 귀중함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이고, 책을 사느니 옷과 같이 실용적인 것을 산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그렇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쌓아간 탐서의 편력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될 거라는 것을...

  정민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와 비슷한 편집구조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기에 집어 들게 되었다. 워낙 재밌게 읽었던 정민 선생님의 책에 대한 향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읽으며 책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우리의 독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방면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면 그저 그런 독서였던 셈일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 독서 자체를 즐기는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간서치이며 탐서주의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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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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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한복을 입은 여인 같다. 빈틈이 없고 단정하며 깔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노라면 자칫 지루해질 때도 있음이 사실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선 지식인의 고뇌와 세상에 대한 못다 피운 열망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보다 나에게 더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취업에 실패한, 그래서 사회에 대한 못다 피운 열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던 까닭이다.

  처음에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고전에 대한 공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서는 한번씩 읽어봤기에 노자나, 한비자 등의 사상을 음미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고전에 대한 공부의 일환으로 선택하게 된 책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단순히 그런 맥락에서 읽기엔 뭔가 부족한 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관망을 할 수 없이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몇 구절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고전 공부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첫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바로 고전이 가지는 핵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서 외의 글들이 가진 깊이 있는 사유를 맘껏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문득 노자를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들뢰즈는 '책은 외부의 주름'이라고 했다. 그 주름이란 곧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들을 심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시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가 좋은 시인 것처럼 다양한 의미로 읽혀지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이 좋은 책이다. 강의라는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고전들을 인간관계론의 시각에서만 풀었다는 단점만을 제해 놓고 본다면 이만큼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고 느끼게 해주는 책은 드무니 말이다.

  '고전'은 왜 읽는가? 단지 아는 체 좀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과거의 지식을 통해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인가? 어느 목적을 가지고 읽던지, 강의라는 책을 통해 한문 원문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전제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정답, 아니 그런 생각들을 찾아간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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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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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지식 채널 e'를 책으로 편집한 편집자에게 갈채를 보낸다. 영상과 책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 영상에선 화면의 전환이 자연스러울 뿐더러, 음악이란 요소로 사람의 마음에 미묘한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책에선 그런 모든 게 불가능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어떻게 구성할까 고민하고 만들지 않는 이상 영상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편집자의 수준 높은 편집법은 영상에서 보여주던 메시지와 감동을 그대로 전해준다.

  '지식 채널 e'를 봤던 시청자이건, 이 책만을 처음보는 사람이건, 상관 없이 모두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마음 편하게 책을 들고 보게 되지만, 그 안에 무수한 생각이 점철된다. 또한 나의 생활에 대한 반성까지... 긴 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보다, 짧은 영상과 짧은 글들이 전해주는 여운과 메시지가 더욱 강렬함은 무슨 까닭일까.

  며칠 전에 '지식 채널 e'에서 했던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짧은 영상과 몇 줄 되지 않는 글 속에서 난 초등학생들의 비운을 느꼈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교육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건 그 부모님의 문제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문제이며, 대한 민국의 교육 정책의 문제일 것이다.

  '지식 e'에서 전해주는 지식은 활자화된 죽은 지식이 아니다. 이처럼 나의 마음 속에 던져주는 하나의 울렁거림이며 삶에 대한 환기이며, 깨달음인 것이다. 이 책이 궁금한 사람은 재미 삼아서 한 번 봤으면 한다. 그런 시작이 어떤 결론을 낳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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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빠 2008-06-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