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읽고서 看書痴라는 별명을 가진 이덕무가 생각났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버릇을 가지는 사람들을 일컬어 '癖' 또는 '痴'라고 불러주곤 했는데, 이덕무는 책만을 미친 듯이 보았기에 그런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덕무가 책만을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단순히 생각하면 중인으로서 사회 진출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기에 책을 읽음으로 위로 받으려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책은 자기의 내면을 살찌울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여룡은 말똥구리의 말똥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말똥구리는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의 사상을 잘 나타내는 주는 명문으로 그 당시 여러 학자의 글을 통해서 자주 회자되었던 말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 자기 것을 만족하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경지는 단순히 이뤄지는 게 아닐거다. 그건 부단히 자기의 것을 갈고 닦으며 내적 수련을 거친 후에야 이뤄질 수 있는 경지이리라. 바로 이덕무가 간서치가 된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책이 주는 묘한 울림과 깨달음들이 이덕무로 하여금 책을 놓치 않게 하였을 것이다.

  이 책은 표정훈씨의 독서 편력과 책에 대한 애착을 탐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저자의 이런 책에 대한 애착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을 '賣文家'라구 규정하며 책을 내는 행위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해석해 놓았지만, 그의 열정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글마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가장 재밌던 에피소드는 그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책을 훔치기 위해 치밀히 계획 세웠던 부분이었다. 출입구로 책을 가지고 나오면 당연히 걸리기 때문에 복도로 통하는 창문의 유리를 열고서 책을 던진다라는 그의 계획, 그 계획을 위해 책을 사랑하던 몇 명의 친구들까지 물색한다. 비록 그 거사를 치루지는 않았다지만, 책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련해졌던 거다.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책이 흔해졌고,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흔해지면 오히려 사람 맘은 떠나는가 보다. 책에 대한 귀중함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이고, 책을 사느니 옷과 같이 실용적인 것을 산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그렇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쌓아간 탐서의 편력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될 거라는 것을...

  정민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와 비슷한 편집구조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기에 집어 들게 되었다. 워낙 재밌게 읽었던 정민 선생님의 책에 대한 향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읽으며 책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우리의 독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방면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면 그저 그런 독서였던 셈일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 독서 자체를 즐기는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간서치이며 탐서주의자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