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귀를 기울이면 중) 

  어린 사람은 얼른 어른이 되길 바란다.

  무언가 내세울 것이 없을 때에는 잘 하는 것이 없음을 가슴 아파 한다.

  하지만.......

  마음 아파 하지 말자. 원석과도 같은 우리들이기에.

  과연 로댕의 생각하는 상과도 같은 최고의 조각품이 될 것인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될 것인지.

  변화의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오늘 이 시간도 내 맘 속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그렇게 오늘 하루 충실히 걷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꿈에 한 발자욱 가까이 가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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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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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2권까지 다 읽었다. 이 뿌듯함이란.. 꼭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만 같지만, 나에게 있어서 독서는 삶을 조망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까. 1권에서는 정약용이 정조의 비호 속에서 급성장하기까지의 모습이 그려졌었다. 2권에서는 그런 상황이 급반전 되어 유배지의 생활상이 담겨져 있다. 다 읽고난 소감은 어떤 대하 역사드라마 못지 않는 스케일로 인해 숨쉴 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어 재밌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잘 나갈 때가 있지만, 그로 인해 기나긴 암흑의 세월을 지내며 삶을 마무리 하기 까지, 이건 새옹지마란 성어 그 자체였다.

  잘 나가던 사람이 일순간, 역적으로 몰려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그것도 일가족이 폐족으로 몰려 죽임 당하거나 국가로부터 버림 받는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비록 노론계열의 선비들이 어떻게든 물고 늘어지려 했지만, 그는 정조의 비호가 있었기에 든든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간다. 이제 정약용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는 셈이다. 2권의 초반에 이런 상황들이 펼쳐진다. 꼭 에이리언류의 영화를 볼 때가 생각나던 장면이었다. 에이리언의 음습한 소리는 들리지만 에이리언이 보이지 않을 때의 그 경각을 다루는 두려움이 느껴졌던 것이다. 여유당이란 호를 정약용이 지었던 것도 이 때쯤이다. 겨울에 물가를 건너듯 조심조심하고, 적에게 둘려 싸인 양 두려워 한다는 당호는 그의 이 당시 심리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서학에 침잠했다는 명목으로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유배형으로 바뀌게 된다.

  그는 졸지에 폐족이 되고, 죄인이 되었다. 그런 아픔을 곱씹으며 긴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더이상 살기도 싫었을 것이다. 다 자기를 죽이려 달려드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희망이 있다고 살고 싶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는다.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것마저 승화할 수 있는 정신적인 경지에 올라 있었던 거다. 오히려 자식들에게는 호기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서 더욱 공부에 열중하라고 격려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공부에 몰두하며 다산학이란 학문적 업적을 이룬다. 그가 그렇게 공부에 몰두한 이유는 적적함을 그런 공부로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지만, 승자인 노론의 역사로 후세에 알려질 경우 자신은 극역죄인으로 몰릴 것이기에 그런 억울함을 풀고자 해서였다. 그래서 500여권의 장대한 저술을 했을 뿐더러, 해배된 후에는 자찬묘지명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담담히 그린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인생의 극단에 몰린 그 때가 더 높이 뛸 수 있는 그 때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은 우리의 선배이자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주저 앉아선 결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 때 다시 의지를 다지고 일어서야만 결국 꿈을 이룰 수 있다. 다산, 그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진정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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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반양장)
전광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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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어 가는 것, 그런 보험에 가입하기 위하여 주를 믿는 것이 믿음이란 말인가? 아니면 세상에 살면서 걱정, 근심을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주를 믿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전능한 절대자를 상정하고 나의 안위를 책임져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믿음의 본질인가?

  요즘들어 어떤 물음을 던지더라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엔 당당히 주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본질이라 되뇌이곤 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구복적인 신앙이 전제된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의 생각과는 다르면 하나님께 왜 그래야 하느냐고, 어떻게 세상에는 주를 믿는 사람들이 더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따졌었다. 주의 종이라는 거대 교회 목사님들의 자신의 밥그릇만을 챙기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볼 때면 그런 불평은 더욱 거세졌다.

  그런 신앙적인 딜레마에 빠져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고민과 고민 속에 파묻혀 진정 신앙의 본질이 무언지 모르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군에서 제대하면서 대대장님 사모님에게 받았던 책이다. 나는 중대 군종으로 중대 아이들을 이끌고 예배에 참여 했었고, 내가 제대하기 얼마 전에 오신 사모님께서 좋게 봐주셨는가 보다. 그래서 이 책을 전역 선물로 주면서 군종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담아주신 것이다. 그것만으로 나에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

  전역하고 나서 읽었을 땐 링컨의 삶에 고무될 수 있었다. 꼭 내가 링컨이나 된 듯이 기뻐 날 뛰며 행복해 했었다. 링컨은 부유한 환경 가운데 자라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난한 가운데 어머님이 주신 성경적인 가르침들은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밑바탕이 되었던 거다. 바로 신앙의 본질인 그것이지 않을까. 나의 환경 여건 따위로 주님을 제단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 자체에 무게를 두며 나를 통해 이루실 계획들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 말이다.

  어제 중학교 방과후 교실, 한자급수반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예전에 저의 꿈은 '내 손으로 이 가난을 벗어나 보자'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겠죠. 근데 우리 아이들은 가난하고 여건이 안 좋은데도, 전혀 공부의 의지가 없어요. 그럴 수록 더욱 열심히, 극복하려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라는 말..... 그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편부, 편모, 또는 조부모 슬하의 아이들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선 방학에도 방과후 교실을 열려고 무상교육 방침을 밝혔음에도 아무도 접수하지 않더라는 거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그 절규가 가슴을 시리도록 아프게 했다.

  왜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비젼이 없고, 의욕이 없고, 의지가 없는 걸까? 그것을 찾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난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쳐다볼 줄 알았던 링컨의 삶 자체가 우리의 본보기이며 해답이라는 사실 말이다. 단지 나의 부귀영화를 위해 믿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계획들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본질을 회복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윤택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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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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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은 박지원과 비견되는 인물이다. 물론 박지원보다 어리지만, 실학자로서 지금에 이르러 재조명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박지원은 노론계열의 학자로서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었음에도 탈주선을 탔던 인물인 반면, 정약용은 남인 계열로 비주류로서 시대상에 의해 주류 계열에 참여하게 된 인물이다. 그런 차이점은 둘의 배경에 따른 차이점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은 지독하게 닮아 있다. 극도의 빈곤함 속에서 바닥까지 내려 앉았을 때 진정한 빛을 바랬다는 점에서 둘의 모습은 닮았던 것이다.

  이 책은 정약용의 그런 모습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료 속에 나타난 다산의 모습을 하나 하나 짚어 내어 설명해준다. 그러하기에 그 당시의 시대상 뿐 아니라, 다산의 정계 진출과 실각의 과정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천주교와 다산은 어떠한 관계였는가?

  1권에서는 다산이 정조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정계에 진출하여 포부를 펴는 모습까지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신유사옥 전까지는 삶이 대단히 순탄했거니 했다. 그 때야말로 전성기 였다고 생각해서 아무 걱정이나 고민없이 지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다산이 정계에 진출하는 모든 과정 과정이 그의 노력과 정조의 노력이 뒷받침이 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가장 큰 발목이 된 사건은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며, 남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정조가 아무리 그 당시에 왕이였다고 하더라도, 노론이 정계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상황이라 맘대로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남인 계열을 등용함으로 균형을 이루려 했지만, 그럴 수록 노론이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남인계열이 주류가 되는 순간, 사도세자 죽음을 옹호했던 자신들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계의 모습은 어찌나 그렇게 똑같은지? 인재의 등용으로 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루려하기 보다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란... 그런 견제와 실각의 위험 속에 다산은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한다. 특히 곡산부사가 되어 펼쳤던 애민정치는 나의 마음 속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아무리 관행으로 이어져 온 것일지라도 부조리한 것이면 고쳤다. 또한 세금의 정확한 부과를 위해 일일이 새롭게 각 가정을 조사했다. 그래서 관리들이 잘못 징수해온 세금이 눈에 띄면 그를 꾸짖으며 되돌려 보냈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그의 발자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분명 실학자로서 이름이 알려진 다산이 왜 실학자로 불릴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권에는 무슨 내용들이 있는지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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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가 어떻게 하면 날 수 있을까?

  "오리 날다"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오리는 신체구조상 날 수 없단다. 퇴화되어서 그렇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훈련시키면 날 수 있을까? 아마도 수천대 동안 훈련 시켜 진화의 역사를 이루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이런 쓸데 없는 잡담을 털어 놓는 이유는?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아무 이유 없어! 피쓰!!"

  그럼에도 미련을 못 버리고 괜한 몰두를 하고 있었다. 오리는 날 수 없다. 물론 인간도 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은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날틀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지금에도 그런 욕망은 변함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선 저렇게 하늘을 날았다. 물론 마법사라는 지위가 부여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하늘을 나는 게 단지 만화적인 상상만은 아님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사회에 구속되고, 스스로 규범에 얽매인 우리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생각은 자유롭게 사유하며 날라다니고 있던가?

  이쯤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전혀 아니올시다. 어머님의 기대란 것에, 사회적인 편견들에, 내 스스로 세워둔 가치들에 얽매여 자유는 커녕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저런 장면을 보고서 내가 통쾌해 했던 것이군... 씁쓸하지만 명백한 사실들..

  오리가 하늘을 누비는 날, 나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겠지. (지금보다가 느낀 거지만, 이 밑의 사진들이 다 하나 같이 날아다니는 사진들이다. ㅡㅡ;; 내가 지금 뭘 생각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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