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고전연구회 사암 엮음 / 포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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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책을 한 권 얻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그것도 자기가 평소에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책을 얻었을 때의 그 희열이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게 얻은 책을 손 때가 묻고 묻어 떨어질 때가 본다. 그것이 자기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주건, 주지 않건 상관하지 않고 그 책에 흠뻑 빠져 그 안에서 유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글은 우리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삶의 동반자이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꿈은 방 가득 좋아하는 책들을 소장하며 보는 걸거다. 아니 책장 가득 꽂아진 책만으로 행복할테지. 나도 예전엔 서재란 곳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보고 싶던 책들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땐 책을 사랑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저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많은 책들 속에 살면 왠지 행복할거라는 유토피아 같은 꿈이라고나 할까. 그런 단순한 소장욕이 지금은 바뀌었다. 이젠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으니깐. 독서 자체를 어떤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취미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사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책장에 책이 가득 찰 터이다. 이제 나의 꿈은 서재를 만들어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것보다,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싶다는 걸로 바뀌었다. 출가를 해서 집을 꾸미게 된다면 그 꿈을 꼭 이뤄야지.

  이 책을 보면서 이전에 익히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난 한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태반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시 그 글들을 읽게 되니, 왠지 모르게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듯이 한 개인의 삶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서재란 측면에서 접근해서 그들의 삶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사정 없이 두들 겼던 이야기는 김득신의 '독수기'와 정약용의 '사의재기' 였다.

  김득신은 한 권의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그의 종마저 어느 한 구절을 들으면 익히 알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그의 노둔함은 어느 한 구절을 들으면 그 구절이 어떤 글에서 나오는 글인지도 모를 정도이다. 그런 노둔함을 핑계 삼아 '나는 공부와 취미가 없나봐'라고 자포자기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는 그 글을 그렇게 줄곧 읽는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는 조선 후기 한시 작가 중 뛰어난 작품을 남긴 작가로 이름을 남긴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어떤가? 그는 잘 나가던 젊은 학자였다.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었지만, 그걸 아니꼽게 보던 기득권의 시기로 인해 유배를 가기에 이른다. 일순간에 하늘에서 땅으로 내팽겨진 것이다. 그렇게 비극과 절망의 상황에서 그가 자식들에게 주문한 것은 무언가? 바로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이전엔 과거를 염두해두며 고시공부를 위한 독서를 했다면, 이젠 시간의 여유를 얻었으니 진정한 독서를 하며 자기를 갈고 닦으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말인가?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는데, 바로 정약용이 그런 진리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선조들의 서재에 쌓여진 책은 이런 사연과 깨달음이 가득한 것이었다. 단지 한 번 읽고 내평게쳐 지는 요즘의 책들과는 그 품격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 삶의 열정을 다한 독서를 통해 모두 걸출한 역사의 한 획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론 "책 읽는다고,,,, 시간이 남아도나 보구나.. 그런 사치를 하고 말이야"라는 독서에 대한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더욱이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 건 왠지 모를 호사취미나 고상한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것 못지 않게 우리의 인식도 책을 읽는걸 시간 낭비로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어떤 독서의 경험이든 헛되지 않는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순식간에 빠져 버리지만, 그걸 거듭하면 할수록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여서 읽는 그 순간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 같지만, 거듭할수록 나의 생각은 쑥쑥 자랄 것이다. 선조들의 서재, 그 곳엔 인생 담론이 있었으며,  지식 성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선조의 모습을 본받은 우리의 서재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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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내내 맘껏 웃었던 영화이다. 프랑스 특유의 그 말투가 재밌기도 했으며 영화의 큰 맥을 이루는 스토리도 신선했으니까.

  뭐 일전에 보아던 '백투 더 퓨처'의 프랑스판이라 할만 하다. 영주와 하인이 미래에 떨어지고 나서도 현실 감각을 찾지 못하고 자동차를 때려 부수는 장면은 정말 최고의 백미였다. 돈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드는 모습과 매치가 되며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착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또한 얼마나 많던가. 이들이 자동차를 보며 해치워야할 적으로 생각한 것과 동물들을 보며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해충'으로 규정하고 해치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결과이니 말이다. 때론 자기의 관점을 벗어나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과 소통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거기에 인간적인 사고를 곁들지 않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나의 고정관념들 마저 뒤집어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자연의 무수한 흐름을 절단, 채취하며 더욱 알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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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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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흐를 때에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흐르는 물을 보며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극찬을 했으며, 맹자는 '사람이 선한 까닭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물이 고이면 어떻게 되는가? 우린 이미 '시화호'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은 바 있다. 그렇다 고인 물은 그 맑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썩게 마련이고 그 본질적인 가치를 내지 못한다. 흐르는 물을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의 성현들이 고여서 썩은 물을 보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사람 또한 정체되는 순간, 모든 것은 멈추게 마련이다. 정착은 안정감을 원하는 우리이기에 자연스럽게 선택하게된 삶의 여건이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감을 위해 국가고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왜 우리는 사업을 하거나, 각자의 꿈을 펼치기 보다 국가고시에 목숨 거는 것일까? 그건 간단하다. 바로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는 안정감 때문이리라. (물론 나도 교육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런 말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ㅋ) 안정감, 그건 손에 거머쥐는 순간에 사람을 멈추게 만든다. 기존 체제 내에서 적응하고 만족하며 더이상 자기 발전을 위한 행동을 하진 않는다.

  이 책에서는 유목의 역사 시기별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유목의 역사야 말로 오래된 인류의 역사이며 정착의 역사는 햇병아리에 불과한 역사란 걸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왜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지금은 국가체제 내에서 한 개인의 자유와 모든 사유가 안정이란 미명하에 구속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로 정착을 꿈꾸며 더이상 자기에 대한 생각, 국가란 틀을 넘어서고자 하는 생각 등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 책을 읽음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바로 이 책을 통해 현대 국가 체제 안에서의 다양한 유목적 사유를 접할 수 있다. 정착했으되 유목하는 삶 정도 될까~ 우선 근대 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 그렇다고 국가에 반기를 들며 정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산다할지라도 그건 '정착을 위한 유목'으로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맘 속으로 하나의 구심점을 만드는 순간 그 신체는 억압된 신체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린 이 책을 통해 '노마드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예전 유목민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삶이 아닐지라도 '앉아서 유목하는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구심점을 통해 세상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만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맘껏 세상과 대화하며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신체를 만드는 것... 이런 역설이야 말로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며 사람을 흘러가도록 만드는 묘법이다.

  노마드의 삶, 정착과 안정이 당연시된 사회 속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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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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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에 이르면서 국가가 성립된다. 애국가가 만들어졌고 국민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국가라는 거대한 정착지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그 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법이나 경찰, 그리고 군대라는 압박의 수단에 우린 아무 저항없이 순종하며 국가를 숭배하며 살게 되었다. 거기에 교육이 근대화되면서 초중등교육이 의무화 되었다. 근대화 교육은 개인이 주도하던 교육과는 달리 국가가 일방 통제하며 국민화하는 교육에 기본을 맞추고 있다. 즉 교육을 통해 국가에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과는 달리 중세까지의 백성들은 '국가의 국민'이 아닌 '그저 그 곳에 살던 이'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동이 자유로웠으며, 국가라는 신념체에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자기의 나라나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그 자체의 모습이 중요할 뿐이었으니까. 그런 백성의 모습이 남한 산성에 잘 담겨 있다. 우선 뱃사공의 모습을 보자. 그는 청군이 몰려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나루터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보고 사대부가 왜 떠나지 않냐고 묻자, "청나라 군대가 오면 여기를 건너려 할 것이니, 그들을 건너게 해서 먹거리나 얻어보려고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임금 등을 건네드렸지만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단다. 그들에게 있어선 삶의 문제, 그것이 중요할 뿐이지 나라나 국가의 안위는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정명수의 삶도 볼 수 있다. 그는 관노의 출신으로 온갖 냉대 속에 살았던 이다. 하지만 청의 용장군 밑에 들어가 조선어 통역인을 자처함으로 삶의 전환기를 맡는다. 그가 최명길과 면담할 때 한껏 거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뀐 지위에 따른 결과였다. 과연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매국노쯤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 곳에 살던 이가 삶을 따라 새로운 길로 나선 이로 볼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보건 상관 없지만, 그 당시가 중세 사회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정명수의 삶 또한 후자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과연 조정에선 무엇을 했던가? 화려한 말잔치만을 벌려 놓았을 뿐이다. 주화냐, 주전이냐 하는 것. 이미 대세는 명에서 청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그들을 오랑캐라 여기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 했다. 조정 대신들에겐 백성의 삶은 중요치 않았다.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할까만이 문제가 되었을 뿐인데... 솔직히 어찌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교에서는 백성들과 기쁨을 같이하고 그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줄 때에야 그들이 시장에 몰려들듯이 나라에 몰려들어 나라가 흥한다고 말한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했던 나라임에도 그런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탈해갔으며 나라는 피폐해갔던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중세에서 근대에 이른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린 이런 역사를 통해 오늘날에 어떤 것을 건질 수 있는가? 민초들이 살아숨쉬는 역사, 그런 역사가 쓰여질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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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17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함께하는 교육학 -상 - 2008
전태련 지음 / 마이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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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전태련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남자이니 오해없길~ㅋ)

그 강의에 대한 열정이나 학생들에 대한 애정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만족이 그 강의를 듣는 우리들을 들뜨게 만들거든요.

물론 저도 미래의 교사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긍정적인 영향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며, 미래에 저렇게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열정이 있고 그저 어쩌다보니 교사가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 하나 차근차근 준비된 교사가 되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사시길 바랍니다.

어느 교육학 책이나 거기서 거기인건 맞는 얘기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주는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태련 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이예요. 최선을 다해서 꼭 교사가 되어 교단에서 만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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