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사이코 테라피스트의 심리여행
권문수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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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를 보고 놀랐다. 이건 '심리학' 책이라기보다 인터넷 소설을 책으로 만든 것 같은 가벼움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무거운 책을 위주로 읽었다면 '이젠 좀 가볍고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즈음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는데, 한번 손에 들자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다 읽게 되었다. 이렇게 책에 푹 빠져서 '내가 책을 읽는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를 헤깔릴 정도로 몰입해보긴 오랜만이다. 예전에 김형경씨의 '사람풍경'을 읽으며 느꼈었던 그 느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들었던 거다.

  '심리학' 책을 권하며 읽으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인데 어찌 그런 걸 읽느냐"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신병을 어떤 특이한 질병으로 여기는 풍조에선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이미 말했듯이 정신병이란 국가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유포한 거짓말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체제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런 특이한 사람들을 정신병원으로 몰았으며 그들을 철저히 통제함으로 국가체제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병원이 생김으로 정신병원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린 '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흡족해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선 스스로 엄청난 비난을 퍼부으며 통제의 날을 세우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신병과 체제에 반하는 행동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터미네이터2에서 사라는 터미네이터가 올 거란 환상을 유포함으로 정신병에 걸린 것으로 오인되지만, 결국 그게 착각이 아닌 진실로 드러났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에 관해서 편견을 가질 필욘 없다. 더욱이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신병은 결코 남다른 다름이 아니리라. 누구나 흔히 가지고 있는 것이란 인식이 중요하다. '정신이 건강한 척' 그렇게 행동하지만 누구나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듯 그 속에 정신병이 싹트기 때문이다. 특히 '삶이 왜 이렇게 지루해!'라고 되뇌인다면 더욱이 정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즉, 나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테라피스트(정신병 상담사)로 나오는 저자는 여러 사람들과의 상담기록을 통해 정신을 밝혀 나간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그건 나에게까지 적용해보게 된다. 그만큼 '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왔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놀라며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 중점으로 다루는 '우울증'에 관한 판단법과 'ADHD의 판별법'은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외부를 보는 것은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외부만을 보고서 살다보면 무언가를 이루더라도 늘 만족이 없으며 공허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왜 이렇게 삶이 지루하지?'라는 말은 그런 공허함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이젠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리자. 그럴 때 일상의 삶조차 특별해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트라우마' 그게 무의식에 있을 땐 고통스러운 구속을 초래하지만, 의식화하면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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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고도 필이 땡기는데요~~~심리학에 관심은 많은데, 실제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군요. 감사~

leeza 2007-09-16 20:21   좋아요 0 | URL
내용이 쉽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게 되더라구요~ 비도 많이 오는 날.. 요런 책 붙잡구 읽기 딱 좋은 거 같아요

사치코 2007-09-1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달의 추천도서로 찍어놔야 겠어요~심리학책 보고시픈데,,간혹 너무 어려운지라 꺼리게 되더라고요~ㅎㅎ

leeza 2007-09-17 21:55   좋아요 0 | URL
심리학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죠~
 
한자야 미안해 "너무 재밌어서" - 어휘편
하영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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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부수편을 리뷰하면서 설명했듯이, 부수편을 보게된 이유는 '한자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보여줄만한 책을 찾다가 아기자기한 표지를 가진 이 책이 끌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펼쳐진 '부수편'은 의외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자가 지금의 모습으로만 그 쓰임을 유추하긴 어렵다. 한자의 모양이 점차 변했듯이 금석문이나 귀갑에 쓰인 한자를 알지 않고서는 한자의 뜻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선 그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번에 내리 읽게 되었던 거다. 부수 학습은 한자 학습의 기본임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런 연유로 '부수편'의 자매격인 이 책까지 보게 되었다.

  이 책의 특이점은 어휘들을 단순히 나열하고 익히도록 유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슷해보이는 어휘들을 체계적으로 엮어놓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설명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그걸 쓰면서 읽히도록 유도한다는 데에 있다. 한자어를 익히는 건 어떻게 보면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만큼 낯설고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반복되지 않고 한번의 학습으로 끝난다면 아니 한만 못하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야 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까지 샅샅이 익혀야 제대로 된 어휘 학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좀 더 처음에 한자를 접하는 초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에게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제대로 된 어휘를 익히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익히는 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어가 태반을 차지하는 우리 문자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요즘처럼 논술이 하나의 시험과목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선 그게 하나의 실력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휘를 제대로 안다는 건 글을 매끄럽게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례로 '유래'와 '유례'는 어떻게 쓰일까?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언뜻 보면 헤깔리기 쉽다. 하지만 由來는 '추석의 유래는 무얼까?'와 같이 어떤 사물의 시작점을 말하는 것이며, 類例는 '유례가 전혀 없다' 처럼 어떠한 사실이 없었음을 이야기할 때 쓴다. 한자로 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이런 단어들의 쓰임을 이 책에선 아주 재밌게 풀어가고 있는 셈이다.

  어떤 시험을 염두하며 하는 공부는 공허하다. 실컷 시험보기 전까지 달달달 외우다가도 시험이 끝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란 즐기면서 할 일이다. 한자 공부가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런 겁을 먹을 필욘 없다. 그저 우리말 제대로 익힌다고 생각하며 한번 도전해보자. 그런 작은 발걸음이 당신의 지적 능력을 살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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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2007-09-3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책들은 싸여가고~보지는 않고 그럼에도 또 사게되는 ㅋㅋ~ 사고시픈데~정말 끝까지 볼수있을까?싶어요~꾸준히 잘보고계세요? 저에게 없는 끈기력..ㅎ

leeza 2007-09-3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더미 속에 파묻혀 보는 꿈일 때가 있었죠ㅋ 근데 그거 허영심이더라구요. 그저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게 이젠 더 좋아요. 사치코님두 책을 좋아하시니~
 
한자야 미안해 "너무 쉬워서" - 부수편
하영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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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자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다보니 주위에서 자주 "한자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가 내가 하는 하는 대답이란 한결 같다. "한자... 한자... 하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구 우리가 쓰는 말 중 50%이상이 한자어잖아요. 지나가다 글귀를 보더라도 거기엔 꼭 한자어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걸 자주 한자로 변형시켜 보세요... 그렇게 일상화하다보면 어느 순간 한자의 달인이 되어 있을 거예요."라고 말이다. 한자를 흔하게 볼 순 없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우리말의 태반은 한자어이니 그걸 연결시키는 작업만 나날이 해줘도 한자는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한자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가 있느냐가 관건일 뿐~

  이 책을 보게 된건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책을 추천해주면 좋을까 하고서 한참 이 책 저 책 찾아볼 때였다. 우선 다른 책과는 다르게 책 표지가 깔끔했으며,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아기자기하다고 해야겠다, 왠지 학습욕을 불러 일으키게 생겼다. 그래서 펼쳐들고서 그 내용을 훑어봤는데 역시나 내용도 참신하고 재밌더라.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읽게 되었다.

  부수편은 부수에 대한 해석과 그 부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한자 학습의 기본은 부수를 익히는 것이리라. 한자는 육서로 만들어지는 그 중에 형성자(한 쪽은 음의 역할을 하고 한 쪽은 뜻의 역할을 함)가 70% 이상을 차지 한다. 형성자는 이미 만들어놓은 한자들을 결합하여 만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냐가 중요하다. 즉, 부수를 잘 알고 있다면 그 한자의 음과 뜻을 대충이나마 유추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부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한자를 만나더라도 어느 정도 유추해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기본이 되는 부수들을 아주 재밌게 풀어내고 있다. 부수가 왜 그런 뜻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쓰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자를 이제 막 공부하게된 사람이라면 한번 정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책인 셈이다. 한자를 왜 공부하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한문을 좋아하기에 한자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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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남경태 지음 / 그린비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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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종횡무진 한국사와 연이어져 있는 역작이다. 한국사를 다 마치고 난 다음에 바로 읽으려 했는데 이리저리 일이 생기는 바람에 바로 읽지 못하고 어제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종횡무진한국사'를 보면서 식민주의 사관이라며 비판하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마 이 책을 보더라도 그 불편은 기분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동저자가 쓴 책답게 이 책에서 한국의 역활은 미비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는 속담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에선 중국의 역사, 인도의 역사, 일본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솔직히 세 나라의 역사를 한 책에 다룬다는 게 어려울 거라 걱정했었다. 그것도 종횡무진 서양사가 600페이지가 넘는데 반해 이 책은 400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으니, 얼마나 소략한 역사를 서술해 놓은 걸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보게 되었던 거다. 그런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각 나라의 역사들을 그 발아기부터 성숙기, 그리고 동서양의 만남을 통해 세계에 나오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 역사적 서술 방식이 참신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식견에 감탄하기하게 한다. 보편적 역사관은 늘 고대, 중세, 근대의 서술법을 따르는데 저자는 그런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책을 서술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저자의 폭넓은 역사관이지 않을까 싶다. 바로 경계에서 사유하기를 하고 있는 셈인데, 한국사를 서술할 때도 동양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했듯이 동양사를 서술하면서도 늘 서양사와의 비교와 대조를 한다. 그런 역사적 관점의 맥락을 이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역사란 어느 한 군데서 자체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보다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흘러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니 말이다.

  식민주의 사관을 가진 책이라 이 책을 폄하하며 보지 않는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구는 격이리라. 난 우리 역사를 과감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물론 한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게 근거도 없는 단순한 우월주의적 바람이라면 고쳐져야 하리라. 이 책을 보고서 어떤 생각을 하건 맘이지만, 그렇다고 지레 판단하고 아예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역사에 대해 무지할 때 과거의 불행은 반복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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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정수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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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집어들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아니 한국 사람 뿐 아니라 한국 사람에 대하여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호언장담하는 것이 모두에게 통용되지 않을 것이란건 알지만, 한번 읽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으니깐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과 그 해법'에 대해 열띤 토론이 펼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앉아서 유목하기'  '당연한 것 전복하기' 이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걸거다. 이미 진중권씨가 쓴 '호모 쿠레아니쿠스'를 보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인지 느낄 수 있었으며, '수유+너머'의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얼마나 무조건 반사적인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게 뒤얽힌 이 때, 이 책을 만난 것은 오히려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오고 있던 것을 아주 일목요연하게 풀어주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몇가지로 나누어 계보학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우릴 보고서 우리의 단점을 논한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지적들은 지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 것들이 태반이기에 보고 나서도 그 편협한 관점에 화가 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사람이 가진 문화적 문법을 그 자체로만 판단하고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계보학적으로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도 있고 수긍하게 된다. 물론 그걸 지나친 일반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문화적 문법을 알고 그 당연한 것들과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한번 읽고 읽었다고 덮기에 아까운 책이다. 그래서 두고 두고 읽을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문화적 문법들이 바뀔 때까지 말이다.  

  기계란 무엇인가? 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한데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물체를 기계라고 한다. 그 기계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그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만 파악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기계라고 할 수 있는가? 아마 이런 질문을 던지면 태반이 화들짝 놀라면서 '뭔 시덥지 않는 질문을 던지냐는 듯'이 째려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은 기계이다. 이 말을 듣고 너무 성급하게 화내진 말라. 차근 차근 이유를 들어보며 반박해도 늦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동감하게 된다면 인간 기계를 이해하려면 프로그램을 이해하면 되겠다는 논조도 가능할 것이다.그럼 이제부터 이유를 들어보자.

  "불행히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기준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잣대, 그리고 우리가 되고 싶은 이미지, 가장 갖고 싶은 것,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 등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게 아니다. 그것들은 어느샌가 우리 머릿 속에 프로그램화된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에 비추어 다른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 프로그램이 입력되는 과정은 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실존하는 방식 그 자체이므로 완전히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다."

  이 글은 고병권씨가 쓴 '공각기동대'의 감상평이다. 이미 나의 페이퍼에서 인용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일방적인 프로그래밍의 과정일 뿐이다. 국가관, 화폐관, 그리고 종교관에 나라는 개체가 포섭되는 순간 난 국가적 기계, 화폐적 기계, 종교적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프로그래밍된 것들을 이 책에선 '문화적 문법'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문화적 문법을 더욱 세세히 파고든다. 단순히 현재의 것들만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라, 과거 종교관에 의한 사상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 한국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과거의 연속이라면 그 말 또한 거부할 수 없으리라. 이 말을 듣고 있으면 이런 반문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은 뭐란 말이냐?". 물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순응만 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머지 않아 그 반항과 비판을 멈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반항과 비판엔 무조건적인 거부나 신체의 자유을 만끽하고자 하는 바람만 있었을 뿐 어떤 철학이나 체계적인 비판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를 알게 되었다면 그걸 넘어서려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터. 

  그렇다면 어떻게 기계적인 순응의 삶을 떠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바로 해답은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 이다. 이 말은 함석헌씨가 했다는 말인데, 짧지만 강한 여운을 주는 말이다. 생각한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나 여건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들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판단해본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능동적인 주체를 만들어갈 수 있고, 세상을 어떤 굳어진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런 능동적이며 편견 없이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개인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문화적 교양층'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문화적 교양층에 대한 설명은 본 책을 읽으며 맘껏 사유해보도록 하자. 이런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우린 나라고 규정되었던 갖가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버리는 게 왠지 줏대 없어 보일지라도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안다면 2보 전진을 위해서 1보 후퇴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술렁임으로 인해 스스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힘겹게 싸워 얻은 것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타고 온 뗏목을 깡그리 불쌀라버린 것이다. 강을 건넌 우리에게 남은 길은 '용감해지는 길' 뿐이다. 이제 우리는 오로지 '걷기로 하자'. 아무튼, 이곳에서 빠져나가자.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널 수는 있지만, 강을 건넌 후엔 뗏목을 버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거다. 뗏목이 아깝다고 그걸 짊어지고 나아가려 한다면 결국 뗏목도 자신도 주저 앉을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자. "문화적 문법을 바꾸는 일은 생각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까지 나가는 작업이다. 삶의 방식의 변화는 곧 사람의 변화다. 그러므로 문화적 문법을 바꾸는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러기에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530p)"라는 본문의 말처럼 힘겨운 싸움이지만, 이걸 끊임 없이 이뤄낼 때 "개인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재확인하면서 자신이 몸담고 살고 있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397P)" 하게 됨을 잊지 말자. 능동적인 신체가 되었을 때,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능동적인 신체들과 맘껏 접속하자. 그럴 때 변화의 강도는 더욱 세지며 탈력을 받게 될 것이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와 아이들 3집 '교실이데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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