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上 - 사람에게 비추어 시대를 말하다, 고전을 넘어선 고전 강의
사마천 지음, 이인호 옮김 / 천지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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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공이 전공인지라 사기를 어떻게든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도무지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을 찾기 힘들더라. 해석만 되어 있는 경우엔 몰입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간단히 알고 가자니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도 들고. 해석도 되어 있고 거기에 숨겨진 내용까지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 찾게 됐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난 이 책을 샀다고 표현하지 않으련다. 사기에 관한 책을 한참이나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니깐. 발견이란 말엔 어떤 것을 찾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즐거움이란 감정이 담겨 있을거다. 내가 딱 그랬으니까^^)  

이 책은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아주 책이 도톰하니까.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 내용에 있을 거다. 과연 종이낭비와 활자 낭비를 하려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든 것일까. 이미 대답은 알고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해석 또한 현대어로 써져 있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열전 내용에 따른 강의까지 아주 충실한 편이다. 솔직히 '고전을 넘어선 강의' 부분이 더 재미있어서 두고 두고 읽곤 했다. 이 책을 통해 '이인호'라는 저자의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더라. 이 책이 워낙 충실한 사기의 내용을 담고 있고, 저자의 중국학 지식을 담고 있는지라, 이 쪽 계통에 관심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엔 20편의 열전이 실려 있다. 아마도 3권 정도로 열전강의를 계속 출간할 예정인 거 같다. 벌써 다음 작이 기대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겠지. 사기를 번역해 놓은 책들은 넘쳐나지만 본문 내용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들까지 섭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두꺼움은 오히려 반가운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람의 필독서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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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세트 (반양장본) - 전3권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4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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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열하일기의 새 완역본이 나왔다. 그동안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었고(북한에서 번역한 것을 남한에서 출판한 것임) 그린비에서 나온 '열하일기2.0'이 있었다. 열하일기를 애타게 읽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책들도 귀한 선물이 됐을터다. 나에게도 물론 그런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2% 부족한 느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우선 무엇보다, 보리에서 나온 열하일기는 완역판이고 뒤에 원문까지 있는 점은 맘에 들긴 하지만, 편집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글자체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첨부자료나 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한번 읽어보겠다는 마음만 없었으면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그린비에서 나온 열하일기는 정말 맘에 쏙쏙 들었다. 우선 사진 자료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편집이 잘 되어 있어 내가 열하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완역본이 아니라 기행 위주로만 국역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열하일기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다 읽고 싶은 이에겐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차에 이 완역본이 나온 거다. 이 책의 매력은 앞에 나온 두 책의 단점을 다 수용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책을 딱 받아보면 왠지 좋은 선물을 받은 거 같은 뿌듯함이 든다. 새 권의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왜이리 '배가 불러오던지'ㅋ 아마 이런 느낌은 열하일기라는 고전의 값어치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원문까지 수록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나와 같이 한문 전공자의 바람일 뿐이겠지. 그래도 어쨌든 이 정도의 책이 나와준 것만으로 좋다~ 다음번엔 내가 더 완벽한 책을 내봐야지. 이런 허황된(?) 착각에 빠져 보면서.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기 전에 예전 역사스페셜에서 2부로 했던 '열하일기편'을 보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미 2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박지원이 살던 시대와 우리 시대는 너무도 다르니까. 그냥 책을 집어들었다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넉다운 되기 딱 좋다. 어떤 것이든 예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접하게 되면 그냥 접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연암이 살던 당시의 풍경들과 친해지고 나면 이 책을 보는 것 또한 재밌는 여행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준비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 맘껏 열하로 떠나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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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마샤 그래드 지음, 김연수 옮김 / 뜨인돌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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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왠지 섬뜩한 노래 가사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사 뿐 아니라 노래 자체도 굉장 우울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났던 장면은 「에반게리온」에서 수많은 레이가 일제히 얼굴을 들던 장면이었다. 내 안에 있던 수많은 내가 고개를 들고서 또 다른 나에게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중적이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그렇게 여러 명의 자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엔 너무도 나약한 어린 자아도 있고 누군가에게 잘난 체 하려는 거만한 자아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자아들이 들쭉날쭉하며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다중성을 통합하여 '~한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단일한 나를 만드는 일은 가능할까?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다. '동화=공주'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동화≠공주'라는 전혀 아리송한 표현이 되니까. 동화 속의 공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란 타이틀만 있으면 평생 잠만 자더라도, 평생 순진한 얼굴을 한 체 세상사에 무관심하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순수미와 백치미 때문에 핸섬한 왕자들이 다가와 구해주고 싶어질 테니까. 거기다가 좀 위험한 상황(악랄한 도적에게 잡혀간다거나 독이 든 사과를 먹는다거나)까지 연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뒷일은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 모든 건 왕자가 다 해결해줄 거니까. 공주는 그저 그 왕자를 따라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동화 속에 그려진 공주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런 동화를 보고 자라온 아이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상이다. 지금도 내 주위엔 그런 영향 탓인지 '언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거라 기대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나 순진하거나 너무나 바보이거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여지없이 깬다. 그건 이미 동화라는 유아적 상상의 공간에서 공주가 뛰쳐나왔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제목만 보고서 이 책이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왠지 코엘료의「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모습이 비슷해보여서 였던 것 같다. 길 위에 놓인 존재, 수많은 사건들은 지금까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만을 맹목적으로 걸어가던 주인공을 각성시켜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돕는다. 예전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한 모습으로 통합된 나 자신을 만들려 노력했다면, 이젠 내 속에 감춰진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만약 세상에 정답 같은 게 있다면, 그건 길 위의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 삶의 정답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공주도 처음엔 평범한 공주였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 공주'였다. 하지만 약간 다른 게 있었다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왕자만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것. 품위 있는 공주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욕망(함부로 울어선 안 되며, 왕성한 호기심이 있어도 안 된다. 그건 천박한 짓이니까)들을 거세해 나가야 했고 왕실규범에 따라 행동을 정형화해야 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엔 모두 자유분방하고 행동이 제각각이지만 훈련을 받고나선 하나의 기계처럼 정형화되듯 말이다. 처음부터 공주는 이중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비키'라고 불리는 어리고 감정적인 자아는 공주 안에 억압된 욕망들이 표현된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아를 인정하고 늘 같이 이야기하며 지내던 공주는 어느 순간부터 그걸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감정에 치우친 자신의 모습보다 이성에 의해 왕실규범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공주가 되고 싶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 때 공주는 "언젠가 진짜 사랑이 빅토리아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그 때는 이 세상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39p)"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자신을 단일한 존재로 만들려 한 진짜 이유는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로 인해 찾아올' 행복을 위해서였음이 드러난다. 자기 스스로를 불행으로 내몰면서 언젠가 그런 불행한 나를 건져줄 왕자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공주는 비키라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옷장에 가둬버린다. 이미 공주는 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이 가지게 된다. '공주는 ~~하다'와 '왕자는 ~~하다'라는 동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그런 편견들. 과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공주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런 공주는 왕자를 만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왕자는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눈 먼 그녀, 공주! 아마 그 순간 공주의 눈엔 왕자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멀면 그런 법이다^^ 그래서 둘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거다. 왜냐? 동화책엔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했다'고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 걸? 행복은 잠시 뿐이고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된 거다. 왕자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으니까. 이건 무슨 '헐크'라는 영화도 아니고~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깔깔박사'의 모습과 신경질적이고 불평과 불만에 가득차 공주는 멸시하는 '하이드 박사'의 모습. 공주는 왕자의 본래 모습이 '깔깔박사'인데 누군가 몹쓸 저주를 걸어서 때론 '하이드박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왕자의 본 모습은 뭐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선 두 가지 해법이 있다. 왕자라는 편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그 정의에 맞도록 바꾸던가, 아니면 자신의 이런 불행을 바꿔줄 수 있는 또 다른 왕자를 기다리던가. 공주가 택한 방법은 왕자의 저주가 풀릴 수 있도록 돕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도우면 도울수록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왜 둘의 관계는 자꾸 꼬여갔던 것일까? 그 해답은 이미 윗줄 어딘가에 나와 있다. 공주는 스스로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 행복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곧 왕자에게 바라는 게 많다는 이야기다. 그 뿐인가 그녀는 '왕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있다 보니, 은연중에 왕자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비극은 이런 데서 시작된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할 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모르긴 해도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 당신이 원하는 왕자라는 것도 당신이 꿈꾸었던 어떤 사람이지, 당신과 결혼한 이 사람이 아닌 거야 (125p)" 왕자의 절규다. 왕자는 공주가 바란 이상형의 인물일 순 없다. '하이드박사'의 모습 또한 왕자의 모습일 테니까. 공주는 왕자의 다중적인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곧 자신의 다중적인 모습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될 때 자신 안에 수많은 가능성이 드러나며, 행복도 그 안에 싹튼다.

 나의 다중성을 허하라. 그래서 때론 한없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론 언제 그렇게 쾌활했냐는 듯이 우울하고 외로움에 치를 떨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일 뿐이다. 때론 엄숙주의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취할 때도 있지만, 때론 기분이 들뜨면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게 모두 나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나를 하나의 관점으로만 평가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진정한 내 모습이든 아니든 난 내 내면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며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이다. 공주는 길을 떠나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애초에 얼마나 완벽하고 독특한 사람이었는지 인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자기를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주는 살아가면서 왜 그토록 오랫동안 왕자를 갈망했는지 생각 했다. 실은 때로 왕자 없이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공주에게는 자신을 사랑해줄 왕자가 필요했고, 자신이 아름답고 특별하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왕자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필요했다. 왕자니, 자신을 구해주느니, 사랑에 빠지느니 하면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니 그보다 잘못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는 이제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면서 왕자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삶의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될 뿐, 자신의 삶 자체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왕자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78p)" 공주의 변화에 동감했다면 이젠 내가 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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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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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 상처가 나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 어제 팔십 대 일로 싸웠잖아." 뭐 이 말에 XX:1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은 모두다 아니까. 그냥 우스개 소리로 흘려 듣는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정말이라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린 그런 사람을 용감무쌍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예전의 나였으면 그런 사람을 '의협심 강한 바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함부로 그렇게 단언하진 못할 거 같다. 이 책을 보고서 어찌 그렇게 함부로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서울시 교육청이 공인한 보수우파 학자들의 무분별한 역사 강의를 듣고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박차고 나와 그들에게 맞짱을 신청한 책이다. 이건 만용이 아닌 진정한 용기라고 볼 수밖에. 이로서 한홍구 교수에 대한 나의 존경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이미 '대한민국사'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의 글들은 하나의 역사 사실에 단순히 접근하는 법이 없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에 무기력하게 한일합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태를 단순히 보면 하나의 사안에 모든 죄를 덧씌울 순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지운다 해도 그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 제대로 사태를 파헤쳐 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저자는 바로 그렇게 단선적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 당시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객관적으로 사태에 접근하는 거다. 그래야만 쇄국정책의 함의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까. 그가 쇄국정책을 긍정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왔다. 그건 반대로 한미FTA를 부정하는 논리이기도 했고. 그래서 대한민국사는 여러 사실들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파헤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전혀 따분하진 않다. 우리의 현대사임에도 누구도 쉬쉬하며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의 책엔 하나 가득 펼쳐진다. 한홍구 교수님 책의 미덕은 바로 그거다. 때론 진실을 말하는 게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미덕은 이 책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우선 따분하지 않게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하나의 사안을 꿰뚫는 여러 사실들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벌써 10여가 되어 가고 있고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한 지도 20년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그 모든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정권이 바뀐 10년만에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섰고 거기에 맞장구를 치듯 사회의 구석구석이 보수화 되어 갔다. 검찰이나 경찰의 보수화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발을 맞췄다. 더욱이 서울시 교육청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교조 심판'이란 타이틀로 당선된 교육감은 강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육을 이끌었으니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현대사 특강이다. 그전에 금성교과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좌파 역사관'의 극치라며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결국 금성교과서는 저자들의 동의없이 내용을 대폭 수정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이젠 학생들을 상대로 좌로 치우친 현대사를 바로 잡아 강의하기로 한 거다.

 

왜 현대사에 집착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자신들의 영욕(과연 '榮'이 더 많을까? '辱'이 더 많을까?)이 스며 있는 만큼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로 바꾸어야 한다. '욕'은 지우고 '영'을 드높여라. 강사진이 '극우드림팀!'으로 구성된 건 당연하다. 이들이 설파한 것은 '신자유주의란 진리'와 '이승만,박정희 미화'이였다. 20세기엔 '반공교육'이 있었다면 21세기엔 한물 간 '이념교육'이 횡횡하고 있었다. 바로 이 책에선 그렇게 설파된 내용들을 하나 하나 묻고 따지고 있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그래서 가슴 후련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왜 잘못된 것인지 하나 하나 깨달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통쾌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심각한 듯 하지만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그저 물 흐르듯 맘껏 읽고 무엇이 옳은가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 책이 반가웠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솔직히 나만 읽긴 아깝다. 그래서 바라는 점이 있다. 이 책을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08년 촛불 시위는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들은 어쩌면 무기력에 절어 있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본 적이 없는우리 20대보다도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더이상 10%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국가의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의식화되어선 안 된다. 자신의 의식을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한다. 아무 말 필요 없다.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보자.

 

  여담으로 진중권 교수는 위의 강의 장면을 '아동학대'라 규정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 말이 이해가 안 되면, 뉴라이트 강사 여러분은 직접 밤에 잘 때 의자에서 주무셔 보세요. 그리고 가족한테 시켜서 잠들만 하면, 깨우도록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 동안만 주무셔 보시면, 왜 제가 이런 제안을 하는지 몸으로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잠 안 재우기 고문당하는 학생들, 부모님이 투표 잘못한 죄를 뒤집어 쓴 희생양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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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4-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입니다. 와우 사진이 예술이군요!

leeza 2009-04-0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볼때마다 참 맘이 아팠었는데.. 그래도 한홍구 교수님의 이 책 덕에 좀 나아졌죠..

꼬마요정 2009-04-1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장바구니에 슬그머니 집어넣었어요~ 그나저나 애들.. 맘이 아프면서도 멋져요! 사실, 저렇게 자는 것도 저항의 일부분이지 않겠어요? 아무도 깨어있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니는 씨부려라 나는 듣기 싫다..라며 온몸으로 외치고 있잖아요.
 
예스맨
대니 월러스 지음, 오득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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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스맨'을 다 읽었다. 처음엔 소설인 줄 알고 있었을 땐 별 느낌 없었다. 의식에서 구성해낸 픽션이라면 보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내가 결혼 생활을 해보지 않고 연애하던 그 마음을 확대하여 결혼 이야기를 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니 이건 소설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을 쓴 수필이었다. 그 때부터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정말 누구도 감히 못 해볼 엄청난 일을 하고서 그 소감문을 쓴 거니까.

 
 이 책이 좀 더 와 닿았던 이유는 나도 남들이 감히 해보려 하지 않는 일을 해보려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동병상련이다. 남다른 무언가를 했던 사람의 자취를 쫓아가며 거기서 메시지를 얻는 것도 좋다. 실상 이 책은 뜻밖의 서연으로 읽게 된 책이다. 예스맨이 영화로 개봉한 건 알았지만 책으로 있는 건 몰랐으니까. (내가 이 책이 소설일거라 착각한 이유는 영화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평생 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희에게서 문자가 왔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Yes Man'이라는 책이 좋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 문자를 통해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박준씨의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도 다 읽었으니 바로 읽을 수 있겠구나 하고 집어 들게 되었다.

   대니는 이제 막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저 방 안에만 갇혀 시간을 보내고 있는 26살의 청년이다. BBC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은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프리랜서이기에 한가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 사람의 한 마디 이야기를 들음으로 인생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그 한마디는 뭐였을까? 이미 책 제목에도 나와 있다시피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좀 더 자주 예스를 말하세요" 특별함이라곤 눈꼽 만치도 없다. 우리말로 굳이 바꾸자면 "자주 좋아라고 말하자구요" 쯤 될 텐데 과연 이 말을 듣고 바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주인공은 이 말에 충격을 받고 직접 실천까지 한다. 대니처럼 자신을 송두리 째 흔드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지만, 현아의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봐"란 말은 나에게 국토종단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한 마디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걸 말하는 사람의 마음 이상으로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맘 자세가 되어 있냐, 그렇지 않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즉, 모든 것이 맞물려 시의적절할 때, 한 마디 말이 큰 파장을 일으켜 내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 고로 대니의 그와 같은 반응은 변하고 싶은 마음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친구 한 명에게 그 한 마디 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오로지 'Yes'만 말하기로 했다는 결심을 털어놓는다. 이런 결심 앞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엔 좋은 제안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는 초반에 사기를 당할 뻔도 했고 자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 없는 자동차와 건강식품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뭐랬는가? 예스도 분별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어제 진규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초등학생 때 쓰레기를 줍는 게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쓰레기를 주우면서 갔거든. 그게 너무 많아 도무지 다 주울 수 없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줍다가는 집에 갈 수 없겠구나 생각하며 그만 두었어"라고 말했다. "바로 그런 게 융통성 아니겠냐?"라고 나는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과연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며 옳다고 생각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게 융통성일까?"라고 반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맞다! 융통성이란 때론 핑계가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 'No'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통 일에도 예외를 들며 No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합리화의 귀재인 인간이기에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 가능성을 꼭꼭 닫아둔 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각오했던 일은 흐지부지 될 것이다. 그런 우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대니는 완벽하게 모든 제안에 예스라고 말하기로 하였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결과적으로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평생 만나보지도 못했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곳을 가볼 수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우연에 몸을 맡기고 그 안에서 충분히 즐겼다. 그 우연은 완전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 무언가를 했다고 해서 그게 어떤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기대 심리로 'Yes'를 말한다면, 그건 보험이나 새로운 종교에 다름 아니니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Yes'를 말하면 말할수록 'Yes'는 다른 삶으로 인도하는 자유여행권이 되기보다 저주가 될 것이다. 그저 'Yes'를 통해 새롭게 펼쳐질 삶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대니도 초반엔 분명히 그런 기대심리를 드러낸다. 우연하게 25,000파운드에 당첨되었던 것처럼 '예스'라고 하다보면 그와 같은 대박 횡재가 올 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스페인 복권 사기 사건을 겪고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예스가 내 판단력을 흐려놨다. 냉소주의로 날 무장시켰어야 할 순간에 낙관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나는 그 어떤 의심도 물리쳤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지는 생각지도 않고, 가능성에,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난 아마 또 한 번의 행운을 찾고 있었나 보다. 다시 한 번 흥분과 놀라움으로 충전되고 싶어서. 25,000파운드에 당첨됐다가 너무도 허무하게 다시 잃었던 그 날처럼, 난 그날 영광을 맛보았고, 그걸 더 원했던 것이다. 아마 '예스'에는 중독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저 '믿습니다!'만 외치면 그 믿음이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는 희망에 젖어 살았던 것 같다.(219p)" 이런 깨달음 후에 진정 자신의 삶에서 '예스'를 실천하며 사는 다른 사람을 만난 후에야 그 기대심리를 버리게 된다. 그저 현재를 긍정하며 다가오는 기회들을 손으로 꽉 쥐고서 가는 것 뿐. 그 때부터 자신의 '예스'가 의무감에서 벗어난 참된 자유의 발언이 된다. 예스도 맹목적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차후를 생각하는 어떤 흑심이 들어갈 때, 그 예스는 '노' 못지않은 부정적인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 Yes라 말했다면, 그 때부턴 그 의사를 존중하고 그게 어떠한 변화를 낳는지 지켜보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린 어떤 선택을 하고서도 시시때때로 이 선택이 옳은 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의심하지 않던가. 현재를 부정하고 언제나 '만약...'이란 상상 속에 살고자 하는 욕구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책을 읽으며, 참 많은 힘을 얻었다. 내 마음을 활짝 열 수만 있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활기찬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건 세상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이건 나의 한계를 넘어 이질적인 사물과 마주치고 전혀 취향이 다른 사람과 만날 마음만 있다면 세상은 한결 살기 좋아질 것이다. 난 그 예감을 맘 속 깊이 느꼈다. 내가 'No'라고 말했기 때문에 놓쳤던 수많은 기회들을 이제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맘도 먹었다. 그 첫 시험대가 바로 국토종단이다. 열린 마음을 점검하고 우연성에 나를 던져 과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지 몸소 경험하고 싶다. "내가 한 일이라곤 놀랄 만큼 긍정적인 태도로 사안에 접근하고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켜본 것뿐이었다. (181p)"라던 대니의 말처럼 그런 마음으로 길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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