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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돌아갈래~~~~~~~"

예전부터 늘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보면서 계속 등장하는 기차의 은유에 신경이 쓰였다. "과연 기차는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일까?"

다 보고난 지금 왠지 모르게 강풀의 만화 '26년'과 비슷한 느낌이다.

"삶은 아름답다."  이 말을 함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이 구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앉아서 유목하기와 반대되는 '떠나서도 정착하기'에 다름 아니다. 아! 아름다운 삶은 어렵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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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2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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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랑줄넘기 2008-01-0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한국문학통사에 대한 설명도 감사합니다.
궁금하고 관심있던 책인데 님께서 알라딘 감상평에 남기신 글도 많이 도움이 됐구요
제 서재에 남겨주신말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전 이제 며칠
안 남은 시험 치고 나서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한국문학통사 외에도 님께서 다른 책들도 감상평을 서재에 많이 남겨 놓으셔서 참 흥미롭고 볼게 많네요^^
종종 방문해서 저도 책에 대한 공감을 많이 얻어가야겠어요~
그리고 님 보시는 시험도 열심히 하셔서 꼭 합격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언제나 행복하세요.
 



  (스튜디오 지브리 "이웃의 토토로")

  참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이며 우리의 지향점이다. ㅋㅋㅋ(너무 띄워주는 듯한 느낌이군. 그치만 맞는 말임)

  메이네 가족이 이사가는 데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아이들이 집주변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집에 대한 호기심을 불태우고 있던 그 때, 메이와 그의 언니는 마당에 있는 큰 나무를 보고 신기해라 한다. 여기까지 볼 때만해도 너무나 일상적인 아이들의 모습이라 그저 그랬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장면에서 펼쳐졌다.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이 큰 나무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자,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아이들을 향해 "녹나무란다"라고 말하며 무관심하다.

  이 장면을 보고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내가 이 장면에 놀란 까닭은, 아이들은 자연에 대해 그런 호기심과 경이로움이 있는데 반해 아빠는 '녹나무'라는 이름을 안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며 놀잇감이 되는 데 반해 어른들에겐 그저 동일한 일상이기에 모든 것에 실증내며 따분하게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메이와 그의 언니는 세상과 자연과 맘껏 소통할 줄 안다. '동그리'도 보고 '토토로'도 보며 직접 대화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녹나무라고 단정하며 더이상 호기심이 없었던들 메이 또한 토토로를 만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과 열린 마음이 녹나무를 맘껏 탐색할 수 있도록 했으며 토토로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별일이다. 이런 영화를 보며 맘껏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것도... 왠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 어렸을 때의 나 자신이 아니라, 그런 감응력을 지니고 있던 그 때의 나로 말이다. 이젠 좀더 나 자신을 해체할 때인 것 같다. 오늘은 과연 토토로를 만날 수 있을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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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0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는 내내 맘껏 웃었던 영화이다. 프랑스 특유의 그 말투가 재밌기도 했으며 영화의 큰 맥을 이루는 스토리도 신선했으니까.

  뭐 일전에 보아던 '백투 더 퓨처'의 프랑스판이라 할만 하다. 영주와 하인이 미래에 떨어지고 나서도 현실 감각을 찾지 못하고 자동차를 때려 부수는 장면은 정말 최고의 백미였다. 돈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드는 모습과 매치가 되며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착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또한 얼마나 많던가. 이들이 자동차를 보며 해치워야할 적으로 생각한 것과 동물들을 보며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해충'으로 규정하고 해치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결과이니 말이다. 때론 자기의 관점을 벗어나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과 소통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거기에 인간적인 사고를 곁들지 않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나의 고정관념들 마저 뒤집어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자연의 무수한 흐름을 절단, 채취하며 더욱 알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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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귀를 기울이면 중) 

  어린 사람은 얼른 어른이 되길 바란다.

  무언가 내세울 것이 없을 때에는 잘 하는 것이 없음을 가슴 아파 한다.

  하지만.......

  마음 아파 하지 말자. 원석과도 같은 우리들이기에.

  과연 로댕의 생각하는 상과도 같은 최고의 조각품이 될 것인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될 것인지.

  변화의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오늘 이 시간도 내 맘 속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그렇게 오늘 하루 충실히 걷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꿈에 한 발자욱 가까이 가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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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가 어떻게 하면 날 수 있을까?

  "오리 날다"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오리는 신체구조상 날 수 없단다. 퇴화되어서 그렇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훈련시키면 날 수 있을까? 아마도 수천대 동안 훈련 시켜 진화의 역사를 이루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이런 쓸데 없는 잡담을 털어 놓는 이유는?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아무 이유 없어! 피쓰!!"

  그럼에도 미련을 못 버리고 괜한 몰두를 하고 있었다. 오리는 날 수 없다. 물론 인간도 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은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날틀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지금에도 그런 욕망은 변함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선 저렇게 하늘을 날았다. 물론 마법사라는 지위가 부여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하늘을 나는 게 단지 만화적인 상상만은 아님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사회에 구속되고, 스스로 규범에 얽매인 우리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생각은 자유롭게 사유하며 날라다니고 있던가?

  이쯤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전혀 아니올시다. 어머님의 기대란 것에, 사회적인 편견들에, 내 스스로 세워둔 가치들에 얽매여 자유는 커녕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저런 장면을 보고서 내가 통쾌해 했던 것이군... 씁쓸하지만 명백한 사실들..

  오리가 하늘을 누비는 날, 나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겠지. (지금보다가 느낀 거지만, 이 밑의 사진들이 다 하나 같이 날아다니는 사진들이다. ㅡㅡ;; 내가 지금 뭘 생각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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