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기교
12월을 태우고 11월을 적시는 마음으로
10월을 닫고 9월을 여는 마음으로
구불구불 머리 숱 많은, 큼직한 초식동물처럼 우울한 청년과
키스하고 싶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마구 허우적대며
서로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몸 속으로 빨려 들고 싶다
8월을 버리고 7월을 줍는 마음으로
6월을 보내고 5월을 맞는 마음으로
이렇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 맞고 있음에도
죽지 않다니, 고문보다 살아 있음이 더 징그러워
미끄럽고 끈적하고 시큼한 것이 에로틱해
4월이 지나고 3월이 오는 마음으로
2월이 매장되고 1월이 부활하는 마음으로
상처 딱지에서 상처의 핏물로, 얻어 맞는 순간으로
그렇게 독하게 도치된 시간의 순서로
라면에 달걀을 풀고 유정란 껍질을 톡 까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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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마치>(4월 3월)은 <<픽션들>> 중 <허버트 퀘인>에 언급되는 소설 제목.
고문 얘기는 재독, 정독한 조지 오웰 <1984>의 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