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8세.)  

 

 

<무질서한 이야기들>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출처를 잃어버린 인용을 좋아해

단단한 성벽에서 떨어진 회색 벽돌을 좋아해

매운 생강과자를 좋아해

헐어가는 입과 커다란 발을

(....)

 

(사족: '출처를 잃어버린 인용'^^; '좋아해', '뭐뭐해'라는 비교적 경쾌한, 그런 느낌을 주려는 어미, 기괴한 듯 말이 안 되는 듯하면서 또 말이 되는 언어 조합.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아, 그리운 '무질서한'! 시절.  밑에 <나는>도 언어 조합이 좋다.  

 

<나는>

 

너무 삶은 시금치, 빨다 버린 막대사탕, 나는 촌충으로 둘둘 말린 집, 부러진 가위,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 도마 위에 흩어진 생선비늘, 계속 회전하는 나침반, 나는 썩은 과일 도둑,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밀가루 포대 속에 집어넣은 젖은 손, 외다리 남자의 부러진 목발, 노란 풍선 꼭지, 어느 입술이 닿던 날 너무 부풀어올랐다 찢어진

 

<러브 어페어>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너와

결혼하고 싶다.

바그다드로 가서

푸른 장미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폭탄처럼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에

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

학살당한 손들이 치는

다정한 박수를 받으면서.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우리는 함께 누워

물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은빛 물고기에게,

학살자의 나라에서도

시가 씌어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를.

 

(사족: 어쩌면 에로틱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도 진은영 특유의 매력인 듯. 특히 여성 시인들로만 논의를 한정하면 더더욱 그런 듯. <훔쳐가는 노래>의 '가난한 아가씨'^^; /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 함께 누워" 이런 이미지, 사랑, 러브 어페어의 이미지로 참 좋다.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ㅋ)

 

*

 

철학 공부하는 사람답게 인용문도 좋다.

니체 인용: "나는 내 자신의 생각들로 너무 달궈져 화상을 입고 있다."

스피노자 인용: "나는 인간 행동을 조롱하지도 한탄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식하기 위해 진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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