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시집 세 권을 샀다. 이 중 한 권은 두번째 주문이다. <훔쳐가는 노래>부터 읽었다. 눈에 들어오는 시들이 몇 편 있지만, 단연코 웃겼던, 재미있었던 것은 <멸치의 아이러니>. 고급한^^; 말 속에 든 엄마의 한마디, 압권이오!
<멸치의 아이러니>
멸치가 싫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시를 쓰면서
멸치가 더 싫어졌다
안 먹겠다
절대 안 먹겠다
(도시락..)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몇달간 떠들기 시작했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그 말이 듣기 싫어 나는 멸치를 먹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
표제시 <훔쳐가는 노래>: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N개의 기억이 고요해진다> - 시 자체보다도 심보선의 무슨 시에 나오는 낱말들로 구성했다다니, 이런 시쓰기도 가능하구나 싶다. <빌뇌브의 피에타> : 최근 시 <스타바트 마테르>가 생각난다. 이런 식의 이미지, 모티브가 계속 시인에게 있었던 것이다. 쭉 읽다가 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나 또(!) 시인의 말. 시인들은 자신의 책의 처음과 끝을 이렇게 장식(시작, 마무리)하는구나.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 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문학은 나에게 친구와 연인과 동지 몇몇 을 훔쳐다주었고 이내 빼앗아버렸다. (...) 2012년 8월 진은영
신문 기사를 보니 올해 작가의 신작 시집이 나오는 모양인데 그 전에 빨리 마저 읽어야겠다. 대체로, 시를 읽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 한 20년만인데 참 좋다. (유시민이 암시한 대로^^;) 가장 고급한, 수준 높은 글쓰기는 시, 그다음 소설, 그다음 에세이인 것 같다. 학술논문과 학술서는 그다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