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안 손바닥 상정,野'날치기 무효'

[노컷뉴스 2004-12-06 17:01]


최재천 의원이 법안 상정후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노컷뉴스)

여야 관계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초 예고된대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6일 오후 단독으로 기습 상정했다. 한나라당은 '원인무효'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여야간 대치 상황은 최악으로 번지고 있다.


최재천 의원,상정 선포후 손바닥으로 처리


6일 오후 4시 10분 국회 법사위는 한나라당 소속의 최연희 위원장이 법사위에 불참한 가운데 열린우리당 최재천 간사가 법사위원장석에 앉아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합니다"라고 선포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회의 개회가 예정된 오후 4시가 지나도 최 위원장이 입장하지 않자 한나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위원장석을 차지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최연희 위원장이 아직까지 불참한 것은 사실상 사회를 기피하는 것"이라며 " 회법 50조 5항에 따라 여당 간사가 위원장 직무를 대행한다"고 밝히고 국보법 폐지안을 기습 상정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간사는 여야 위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위원장석을 차지한 후 방망이 대신 주먹으로 위원장석을 세번 '땅땅땅' 치며 "법안을 상정한다"고 선포했다. 기습 상정 직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폐지안이 정상적으로 상정됐다"며 전원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한나라당 위원장 사회 거부에 따라 여당 간사가 직무 대행"


최 의원은 이 자리에서 "그간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법안 상정을 거부하고 기피해 왔기 때문에 국회법 50조 5항에 따라 여당 간사가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해 오늘 법안을 상정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또 "다만 국민 여러분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국보법 폐지안의 상정만 했을 뿐이지 여당 안을 그대로 갖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 의원은 "안보와 인권에 대한 앞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청문 절차를 통해 국민 우려를 해소해 나가겠다"며 "한나라당도 저지 전술로만 일관하지 말고 하루 속히 국보법 폐지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날치기 상정 무효"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최연희(한나라당) 위원장은 4시 30분 회의장에 열린우리당 퇴장 후 늑장 참석해 "회의장을 내부 정리를 한다"며 "200여명이 넘는 취재진과 국회사무처 직원들을 회의장 밖으로 내보낸뒤 4시 40분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정식' 법사위 회의를 개회했다.


열린우리당 강수 선택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감에서 비롯


한편 열린우리당이 이날 기습 처리한 것은 더이상 늦출 경우 국가보안법 폐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 결과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국민 지지여론이 다소 상승한데 고무된 것으로 분석된다.


즉 법사위를 통과하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가 불가능한 만큼 회기가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회의에서 만약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상정될 경우 의원직 전원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자고 결의한 바 있어 실행여부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의원직 사퇴'도 검토, 연말 정국 최대 회오리


이미 박근혜 대표는 "만약 국가보안법폐지안이 상정될 경우 한나라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한나라당 역시 배수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함께 열린우리당이 손바닥으로 처리한 것이 과연 법적효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의 힘겨루기는 이제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CBS정치부 박종률기자



어느 날인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촛불집회를 하던 도중 어차피 날치기로 만든 법, 한나라당 눈치 보지 말고 날치기로 폐지하자는 발언이 있었다. 흐음, 딱 오늘 상황이네. 날치기든 뭐든 좋으니까 국보법이 폐지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서지만, 의사봉이 아닌 손바닥으로 상정된 게 영 마음에 걸린다.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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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6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안된다는 애들을 집어 넣는 법을 만들어야 겠다...에잇, 성질나...

숨은아이 2004-12-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하고, 존재 이유 없어진 한나라당은 자진 소멸하면 좋겠네요.

2004-12-06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4-12-0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갑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되면 화병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던데요. 제발 좀...

ceylontea 2004-12-0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파란여우님.. 동감입니다요.
 

건강정보에 관한 기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겉멋많은 '참살이(웰빙)' 위주가 아니라, 정말 절박한 사람들을 위한 내용으로 구성하고 싶다. 장애인/노인/출산·양육/응급처치/건강 등이 내가 생각하는 최상위 분류이다. 정보수집을 위해 오늘은 온전히 웹서핑만 했는데, 그러다가 이 만화를 만났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둔 직장맘의 육아만화인데, 장애아 이야기를 떠나 직장맘으로서, 딸아이의 엄마로서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특히 25-28회를 보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하였다.




더 보고 싶은 분은
http://www.ablenews.co.kr/Writer_News_Total.asp?page=1&search=&searchstring=&NewsId=pen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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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2-0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미누리 2004-12-0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링크된 주소를 즐겨찾기에 포함시키고 글을 씁니다.

장차현실님의 만화는 예전부터 보관함에 넣어두고는 아직이네요.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전출처 : 수수께끼 > 수련님의 백제역사재현단지 단청에 관한 小考

 수련님의 페이퍼에 말씀하신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백제 건축물(실은 이 건축물이라는 것도 백제의 건축 양식에 의한것이 아니라 일본에 남아있는 목조건축이 백제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판단하여 일본 건축물을 참고한 것이지만...)의 단청 자문작업을 맡으신 모양인데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일차적으로 동궁의 단청에 대한 작업계획을 마무리 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련님도 말씀하셨지만, 바탕색을 온통 녹색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보아서는 내록이나 양녹(이는 청동에 생기는 녹을 수습한 것으로 무척 독성이 강한 화학물이지만 목재의 장기보존을 위해 사용합니다)으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문양을 넣는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제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백제의 문양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문양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문양이 불상이건, 기와이건 또는 금속공예나 벽돌이건 백제의 문양을 찾기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 수도 지극히 적을뿐만 아니라 일단의 조형물에 나타난 문양이 과연 백제의 단청에 사용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문양이라면 미루어 짐작하여 한 시대의 양식과 조류로써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하겠으나 불행하게도 백제의 문양은 지극히 단편적으로만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백제의 유물에서 문양을 알 수 있는 것을 살펴보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머리받침과 발 받침의 문양과 왕관에서의 문양...그리고 무덤을 이루고 있는 전돌의 문양(이 전돌은 중국 양나라에서 사용하던것과 똑 같은 문양으로 수입품인지의 여부도 검토가 되었으나 백제에서 모사하여 제작한 제품임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백제 금동대향로에 나타난 문양이나 부여 외리에서 발굴된 연꽃 귀면무늬 전돌이나 산경치 귀면무늬 전돌,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우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광배에 담긴 문양과 그리고 저도 직접 가서 조사를 해 보았지만 일본 호류지(법륭사)에 있는 백제관음상(이 관음상에 백제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백제의 작품이라고 보는데는 다소 무리가 있는 불상입니다)의 광배의 화염문과 연화문... 비조사의 기와에 나타난 문양등입니다. 특히 비조사는 불 타 없어졌지만 비조사 경내에 보관하고 있는 비조사의 기와에 나타난 문양은 백제의 문양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양들이었습니다. 이런 문양에서 고구려나 신라의 문양과 비교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는것이 연꽃문양의 연잎이 6옆이 아닌 8옆으로 통일이 되어 사용되었다는 내용등 백제가 고구려나 신라와는 다른 문양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양들이 과연 백제시대의 건축물에 사용이 되었는지는 수련님의 말씀처럼 150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 타임머신을 이용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양은 당 시대의 보편적인 사용이 전제이기에 당시에 사용되었던 문양이라고 억지로 꿰맞추어 사용할수밖에 없습니다. 문양이야 그렇다치고 그럼 바탕색은 무엇으로 해야할지가 문제가 됩니다. 수련님의 글 내용으로 봐서는 말씀드린대로 내록과 양녹을 사용하는것 같은데 이런 바탕색 사용은 상당한 문젯점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단청 비용이 한 두푼도 아니고 몇 십억이 소요되는데 국적도 없는 단청이 된다면 이는 웃음거리 그 자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삼국의 회화나 건축물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서 연구가 가능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도교적 영향으로 사람이 죽어서도 이승에서의 영생불멸을 한다고 믿었기에 벽화의 구성이 사람이 살아있던 당시와 똑같이 꾸며져 있습니다. 집의 형태를 그대로 옮겼음은 물론이고 부엌과 푸주간등...그리고 수레와 사냥모습등등 생전에 망자가 했던 내용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물조차도 생전 모습 그대로 정좌한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일부 고구려 고분에는 입구가 건축물의 기둥 형태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일부 고분에는 차마 제작을 할 형편이 아니었을 경우에는 그림으로 기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구려 고분 벽화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사적 입장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며 그 형태등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그 당시의 단청 모습은 단지 문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건축물과 같이 요란한 단청은 없으며 황색, 또는 회색 바탕에 당초문등의 문양으로 단청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단청의 색상은 돌로 만들어진 기둥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석회를 발랐기에 색상 표현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고구려인들은 피부색까지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사신도에서 보면 세부 색감 표현을 위해 상당히 노력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망자에 대한 예우는 오히려 살아 있을때 보다 더욱 극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이승을 떠났을 뿐이고 저승에서 또 다시 영생을 보낸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요즘 고궁 건축물이나 절간에 칠해지는 단청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단청작업이 있었던것만은 사실입니다. 단청에 대해서는 중국의 송나라때 집필된 "영조법식"이라는 책에 건축물의 구조와 더불어 어떤 그림이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알 수 있는 단청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지금처럼 요란한 채색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하나의 규범으로 "영조법식"이 만들어 졌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조법식은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이전의 상황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불행하게도 No입니다.  그리고 바탕색으로 사용되는 양녹이나 내록도 언제부터 사용되어졌는지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단청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진합니다. 연구라고 해보았자 실은 최근의 몇 몇 연구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는 회화는 하나의 기술로서 예술로 인정을 하고 있음에도 단청이라는 작업은 단순한 기능으로서 기능인의 채색작업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청에 대해서도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하나의 예술분야로서 인식이 되기 시작했으며 점차 단청 연구 인구가 늘어갈 것으로 판단이되지만 단청이란 기껏해야 200년 정도가 수명인지라 특별한 보존대책이 강구되지 않은 건축물에서의 단청을 볼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단청의 변천과정이나 문양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청에 사용되는 문양도 어떤 통일된 문양이 없이 전국 각지에서 단청 작업자의 개인적 사고에 의하여 멋대로 행해져서 단청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단한 작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제에 백제 역사단지 재현 건축물에 송대의 단청 양식도 아닌 그 후대의 단청양식으로 녹색 투성이의 단청을 한다면 과연 그 건물이 제대로 백제의 단청을 재현한 건축물로서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당시에 내록이 안쓰였다고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에 내록이 쓰였다는 확답도 없기에 대충 그러려니 하면서 현재의 단청 바탕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평양의 동명왕릉을 정비하면서 왕릉앞에 대규모의 사당 건축을 하고 그 건축물(시멘트 건축물입니다만)에 고구려 고분 벽화를 참고로 하는 단청 작업을 하였는데, 이 작업도 북한에서는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단청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단청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이마저도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이렇게 옛 단청이라고 복원한 경우가 있습니다. 부여의 정림사지에 세워진 기념관에 백제의 단청이라고 하여 단청이 되어 있지만 이 단청으로 인하여 상당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과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백제시대의 단청을 어떻게 천연덕스럽게 백제 단청의 재현이라고 했느냐는 문제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단청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요즘의 단청이 눈에 익어 새롭게 재현한 단청에는 거부감이 생길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고증에 입각한 단청이라 할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백제 단청에 수련님 말씀처럼 내록이나 양녹으로 푸르딩딩하게 바탕색이 칠해진다면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규모의 건축물인데 건축물이 온통 푸르딩딩 하다면 과연 단청이 제 맛이 날까가 걱정입니다.  아마도 문양 작업이 선행되어 그나마 극히 일부만 남아있는 백제의 유물로 문양은 대강 만들어 졌을것으로 판단이 되는데 이렇게 어렵게 만든 문양을 엉뚱한 바탕색으로 망친다면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백제역사재현단지에의 단청을 보고 각각의 기능만을 고집하는 단청인들이 어떤 말들을 할것인지는 불을보듯 뻔하다고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백제의 문양도 백제 유물을 통해 나타난 문양을 그대로 사용해야지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한다거나 또는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금제 관식의 화염문 속에는 꽃이 들어있는데 이 꽃을 현대적 개념의 단청처럼 연꽃이나 연등초의 형태로 변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변형은 백제의 단청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 해석에 의한 현대단청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수련님이 밤잠을 못이루시겠다는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백제 문양부터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상의 광배나 기타 백제의 유적에 나타난 모든 문양을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백제 금제 관식에 나타난 화염문 속에 들어있는 꽃봉오리도 단순하게 연꽃으로 넘어가서는 안될일입니다. 특히나 비조사에 있는 백제 와당은 상당한 문양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기와는 건축물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중요한 것이기에 백제 와당의 문양은 상당히 소중한 자료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바탕색에 관한 문제로 백제 당시의 단청을 내록 일색으로 푸르딩딩하게 한다는 것은 후대 단청작업자들의 어리석은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백제의 색감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지만 동 시대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나타나는 색채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 시대에 특별히 다른 채색안료가 있었다면 몰라도 고구려나 백제나 동일한 채색재료를 사용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무덤과 집은 다르다고 하여 서로간의 색상의 차이를 논할수도 있으나 분명히 인식해야 할것은 고구려 고분의 묘사는 고구려인의 실생활을 그대로 묘사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무덤이기에 그렇다고 운운하는 논리는 맞지 않는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제작 사유에 대한 명확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발생되는 오류라고 할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실은 상당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일부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해가 어려울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수련님의 짧은 단청에 관한 글을 보면서 고민하시는 내용이 제가 평시에 갖고 있는 생각이 필요할것 같아 말씀을 드리는바이며, 백제의 문화를 재현한다는 것은 최대한 그 당시의 모습과 근접해야 한다는 명제임을 생각할 때 관련되는 제반 자료의 종합적인 검토가 선행이 되어 충분한 논의 끝에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시행청에서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공기에 쫒겨 급하게 진행할것이 아니라 충분한 검토를 거쳐 시행토록 하여 막대한 예산의 낭비는 물론이고 잘못 시공됨에 따른 갑론을박도 충분한 자료나 관련근거의 제시로 마무리를 해야 할것입니다. 백제에 관한 사료나 근거가 없다하여 대충 한다는것은 오히려 백제의 예술을 왜곡시키는 사례임을 관련자들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단청업자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거나 섣부른 결론으로 시행을 하게 되면 엄청난 부작용이 뒤따른다는점을 반드시 명심을 해야 할거입니다. 특히나 이러한 작업에 관한 사항들은 역사에 남는 일로서 관련자는 모두 우리의 역사를 되새긴다는 명확한 사명감을 가져야 할것입니다. 그런 사명감이 결여되어 섣부른 결론에 이르러 전혀 엉뚱한 단청이 만들어 진다면 관련자들은 그 오명을 후대에 남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백제의 단청에 근접한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청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 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단청의 주 목적은 건축물의 장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목재의 보호라는 이유가 가장 우선하기에 몇 년 늦어졌다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것은 가장 사실에 입각한 고증작업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자료가 부족하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문양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제대로 된 단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제역사재현단지의 건축물부터 이론이 많으나 일단은 일본에 전래된 백제 양식을 역으로 되살려왔기에 별다른 시비 사항이 없다고 보겠으나 백제 단청은 일본에 있는 동사(東寺)를 비롯한 옛 백제계 양식의 속에 있는 단청들도 참고를 해야만 할것입니다.  제가 직접 가본 동사의 5중탑 내부에는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단청이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사진 촬영도 했었기에 앞으로 나오는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단청과 비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백제 재현이 현대 단청과 짬뽕이 되어 나타난다면 구태어 백제의 단청이랍시고 비싼 예산을 들여서 단청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냥 현대식 단청으로 작업을 하면 될 일이지...백제의 단청이랍시고 시행한 작업이 전혀 엉뚱한 시대불명이요 국적불명의 단청이 되어버린다면 구태어 백제 단청을 찾는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많은 예산을 들여 시행하는 백제역사재현 사업이 잘 마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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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기독인에게 고함-“예수도 ‘국가보안법’ 희생자”

당신들은 ‘불온한 반항자’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
나는 예수쟁이이다. 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정 이런 식의 약간은 자기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지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는 너무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 따라서 진실로 예수라고 하는 한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주변인이었던 기독교의 창시자의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주변성을 자기 정체성 안에 통합해 넣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비천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줄 모르는 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거하여 자신을 옭죄던 봉건성을 기독교라는 각성의 형식으로 극복했던 1세대 기독교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의 한 분이시다. 그뿐이 아니다. 집안에는 순교자도 한 분 계시고, 어머니 쪽으로도 내 가족이 기독교와 가지는 관계는 그 연원이 깊고 특별하다. 나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영락 교회 뜨락에서 보냈다. 교회는 나의 영혼의 깊은 터였다. 요컨대 나는 기독교의 딸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여전히 예수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내가 예수를 깊이 사랑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죄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의 진정한 구원자로 여기고 따른다는 의미이다. 교회 뜨락에서 보낸 유년이 지나간 후, 갈등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신음처럼 치고 올라왔다. 나의 내면에서는 비참한 사회의 현실에 진정으로 눈을 주지 않는 대형교회의 무책임한 복음주의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싹터 올랐다. 그러나 부모님은 당신들이 전생애를 투입해 넣은 교회를 떠나지 못하셨다. 정치 문제로 이따금 당회장 목사님과 충돌하곤 하시던 내 아버지는 결과적으로는 복음주의에 소극적으로 안주하셨다. 당신이 당회를 그만두시는 정도에서 소극적으로 저항하시고 말았던 것이다. 딸은 당신의 갈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가 당신의 정신 안에 설정하신 울타리 너머로 아버지가 전해주시는 종교의 메시지를 알아차렸다. 딸은 아버지의 울타리 너머로 아주 넓은 지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덕택에 딸의 기독교적 이상은 명확한 비전을 확립하고 형성되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아셨던 것같다. 딸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기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는지 모두 이해하셨던 것 같다. 종교문제를 둘러싼 어머니와의 충돌은 늘 거칠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사도 바오로의 성경구절을 적은 조그만 종이쪽지를 울고 있는 내 책상 위에 아무 말 없이 올려놓고 나가시고는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내 안에 형성된 기독교적 이상은 결코 지금 한국 기독교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예수 대신 미국을 섬기는 크리스찬이라니, 수많은 죄없는 젊은이들을 체제의 유지를 위해 감옥에 보내고 고문하고 죽이는 데 사용되던 악법을 폐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극우단체와 한 몸이 되어 시청 앞에 나와서 울고불고 법석을 떠는 크리스찬이라니.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의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하는 자가 크리스찬이라니. 그들은 나에게 이미 크리스찬이 아니다. 그들은 사제계급의 사주를 받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쳐댔던 어리석은 유태의 군중과 다르지 않다.

극우 기독교인들이여, 대답하라. 대체 예수가 누구였던가. 예수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바로 당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빨갱이”였다. 무슨 말이냐고? 예수는 기존의 질서에 전격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불온하기 짝이 없는 반항자였다. 그는 당대의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다. 예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희생되었다. 그는 종교적 의미에서는 당대의 지배계급이었던 유태의 사제들이 설정해놓은 율법의, 그리고 정치적 의미에서는 로마의 위정자들이 지정해놓은 법의 울타리를 파괴한 자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잡혀 죽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바가 체제와 제도에 의거하여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신과 막바로 맺는 관계 안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나는 그가 “나는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인간 각자가 “신의 아들”이라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질적 층위에서 전격적으로 제도가 설정한 존재의 개념에 저항할 것을 가르쳤다. 그는 바깥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외적 관념과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깊은 부름 외의 그 무엇에게도 귀기울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을 찾아와 “아들”이라고 부르는 마리아를 향해 “누가 당신의 아들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엘리야”라고 부르는 제자들의 명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아들”이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신의 아들”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선언은, 인간 각자가 인간 각자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깊은 내면의 부름과의 관계 안에서 “신의 아들”로 격상될 것을 주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아들의 자리에서 신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사제계급과 정치가들이 그어준 존재의 금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안식일을 조롱했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세상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를 분양해주는 자는 세속의 제일인자인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우주의 왕, 우주인 바로 그분, 존재의 무한 허공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는 문둥이들, 병자들, 창녀들, 세리들, 가난한 어부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세상의 거지들과 함께 지냈고, 그 거지들이 유태의 사제들과 로마의 고위 정치인들만큼, 어쩌면 그들보다 더 높은 존재의 가치를 가진 자라는 것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에, 체제의 종교적/세속적 울타리를 부수고 존재의 이상을 가르쳤기 때문에, 힘센 부자 사제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손에 잡혀 죽었다. 부자들과 독재자를 위해 기도하고, 신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진정한 천국을 잊게 만들고, 그들을 형이상학적으로 협박하여 일년에 수십억씩 긁어모아 제 배를 기름지게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예수는 국가보안법의 희생자였다. 그는 체제가 허용하지 않은 사상을 지닌 죄로 죽었다. 예수는 당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상범으로 잡혀 죽었다. 부활의 도그마는, 나에게는,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는 의미보다는, 체제가,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던 비겁한 제자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결단을 내린 전격적인 신앙의 내면화가 이루어진 영적인 기적으로 여겨진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스스로 예수가 되기로 한 사건, 인간의, 제도의 아들 딸들이었던 자들이 신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해 몸을 일으킨 것이 나에게는 부활의 기적이다.

















이 해석은 예수의 육체적인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어느 날 정말로 부활한 예수의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의 인식이 지극한 경지에 다다를 때, 상징은 진실로 육화된 모습으로 한 인간의 내면 안에서 현현한다. 나는 예수의 에피파니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비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내면적 혁명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진정으로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던 일은 오순절, 즉 성령이 바람처럼 임하여 제자들의 혀를 강타했던 언어의 도래와 함께 일어났다. 따라서 오순절의 기적은 제자들 각자가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한 사건이다. 그날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자신의 말로 내면화하면서 스스로 비겁한 겁쟁이의 위상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 잡혀간 예수는 “네가 왕이냐?”라고 묻는 로마 총독에게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예수는 침묵한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능멸과 조롱을 당하면서 예수는 그 혹독한 심문 동안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네가 너의 진정한 말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너는 나의 존재 원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따라서 나는 너를 너의 무지 안에 던져놓는다고. 깨달음은 네가 너의 진정한 언어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결코 너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시청 앞에 모여서 세상의 왕인 미국대통령을 향해 찬가를 불러대는 크리스찬들, 인공기를 태우며 사상이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로 동족을 증오하며 어떤 야만적 트랜스 상태에 빠져드는 소위 예수의 신도들을 향해 예수는 다시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것은 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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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2-03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이런 멋진 글을 쓰신 분이, 이 글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일이 없었으면.

글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드는 것은....왜일까요? 입맛이 쓰네요.

깍두기 2004-12-0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글이군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수수께끼 2004-12-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리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것 같습니다. 더구나 법이나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범접할 수 없는 종교적 인물에 대하여 이런 결론으로 봉합하는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국보법폐지를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회에 대한 반론임은 알겠으나 일방적 비판론임은 아쉬움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솔직히 양비론적인 입장이며 더 나아가서는 어느쪽이던 종교인들은 정치와는 무관심해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추키지도 침소봉대하지도 말고...왜냐하면 모든것은 그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다"는 극단적인 언어도 종교로서의 신앙적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평가로는 아무리 비유라고 한들 적절하지 않습니다. 한가지...저는 무신론자이자 我信敎입니다.....

가을산 2004-12-0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의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기독교 내부의 비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밖에서 아무리 '그러면 안된다'라고 해보았자, '그들'은 '그들이 아닌 자'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거든요.

'종교는 정치와 무관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이해합니다.

다만, '정의'를 외면하기 위한, '불의한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당대의 개혁자였다는 지적, 그로 인해 고난을 당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을산 2004-12-0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노통 시대에 '대통령과의 조찬 기도회'에 대통령과 정권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주던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그 시대에는 왜 요즘처럼 적극적으로 사회 비판을 하지 않았는지, 그러고도 이제와서 무슨 면목으로 나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 2004-12-0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그들이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단지 그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릴케 현상 2004-12-0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들이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특별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정도로 얘기해야지 않을지...

가을산 2004-12-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신도 아니면서,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인양 신을 팔아먹는다는게 문제죠. --;;

숨은아이 2004-12-03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께님 말씀에 딴지 거는 거 용서하세요. 그런데 70년대 80년대에 정권을 비판하던 문익환 목사님은 신이어서 그러셨을까요?

수수께끼 2004-12-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숨은 아이님...그런 의미가 아니라 신 조차도 완벽하지 못한데, 목회자인들 완벽하겠느냐는 의미였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아신교도로서 양비론적 입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인지라 이런 문제에 제 자신이 끌려드는것 조차도 비판적이랍니다. 저는 "필론의 돼지"가 되렵니다...^&^~~

수수께끼 2004-12-0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가을산님....신은 팔아먹어야 먹고 살 수 있답니다. 신발 장사가 신이 안팔리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열심히 신을 팔아야 먹고 살지요~~

가을산 2004-12-0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수수께끼님, 아직 그런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으시다니, 대단하세요. ^^

sweetrain 2005-01-07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정말, 기독교인으로서 요즘은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내세우기가 민망한 순간들이 많습니다. 더 기도해야 하는 거겠죠.^^
 

수두
발진의 색깔이 빨갛습니다. 몸 어디에도 날 수 있어요. 머리속, 입안, 손바닥, 발바닥, 항문 주변이나 생식기에도 날 수 있습니다. 한 개씩 떨어져서 납니다. 물집, 고름, 딱지 등 여러 형태의 발진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물론 초기에는 작은 몇개의 물집만 있기도 합니다. 가슴, 배, 몸통 부위에 먼저 나타납니다. 물집은 가렵고, 흉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물집이 작게라도 잡히고 퍼지는 속도도 빨라서 쉽게 알 수 있지만,   예방접종을 한 경우에는 발진이 한두 개가 났을 경우 모기 물린 자국과 잘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가을산님의 말씀에 따르면 모기에 물린 자국은 만지면 약간 부기가 있어 단단한 느낌이 드는데, 수두에 의한 자국은 단단하지 않고 말랑말랑한 경향이 있습니다.  구분이 모호한 경우는 계절과 유행 여부, 나이를 감안해서 하루 정도 경과를 봅니다.

홍역
귀뒤에서부터 생기지만, 대개는 얼굴에 나타난 후에 엄마들이 알게되죠. 얼굴, 목, 팔, 몸통 상부에 나타나고, 다음날은 허벅지, 다음날은 발까지 퍼진 다음 발진이 나타났던 순서대로 없어집니다.
발진의 양상은 말로 표현하긴 좀 힘들지만, 수두처럼 한 개씩 떨어져서 나타나지 않고, 여러개가 융합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약간 가렵기도 하고, 발진이 없어지면서, 약간 검게 살색이 변하고, 살갗이 벗겨집니다.
홍역은 발진이 나타나기 전부터도 고열에 몸살, 목이 아픈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유행시에는 이런 증상이 있을 경우 입 안 점막에 나타나는 특유의 하얀 발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한 열감기 증상을 앓은 지 몇일 후에 붉은- 갈색의 좀 큰 반점(손톱만한)들이 얼굴부터 돋아나면 홍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바탕 큰 일을 당했을 때 "홍역을 앓았다" 라고 하는 것은 회복기의 얼굴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고생해서 핼쑥해진 얼굴에 발진이 있던 자리가 껍질이 벗어지는 등. 단, 흉터는 남지 않습니다.

수족구
손발에 주로 물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입안이 헐기도 합니다. 심하면, 다리, 무릎, 팔꿈치까지도 나타나고, 몸통에까지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족구의 발진은 손-발, 항문 주위에 많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손발에 약간 노란색 고름이 든 듯한 물집이 잡히고, 손바닥- 발바닥에는 좀 더 깊어 보이는 듯한 1자 모양의(slit - like) 물집이 잡힙니다. 수두와 달리 물집이 터지지는 않습니다.  큰 후유증 없이 낫기 때문에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 입안에도 수포가 생기는 경우는 수포가 헐어서 통증이 심하고, 열도 많이 납니다.  (마로도 입안이 헐어 아픈 것보다 못 먹는 것 때문에 무척 고생했더랬습니다.)

열꽃
주로 열이 떨어진 다음에 나타납니다. 대개는 몸 전체에 골고루 퍼져서 나타납니다. 애기 상태는 열이 있다가 떨어진 상태이므로, 기분은 보통 좋습니다. 홍역이나, 알레르기성 피부염의 발진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많이 가라앉고,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돌발진
고열이 몇일간 계속되다가 열이 내리면서 전신에 좁쌀만한 발진이 납니다.
가렵거나 우둘두둘하지 않기 때문에 약의 부작용에 의한 발진이나 두드러기 등과 구분이 됩니다.
발진 자체는 큰 문제가 없고, 회복기의 징조로 생각하면 되고, 오히려 그 전 단계에서 열로 인해 고생이 많은 질환입니다.

가와사키 병
열과 발진이 있을때 늘 염두에 두고 구분해야 하는 병입니다.
고열이 계속되고,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유난히 빨갛고, 임파선이 붓는 증상이 있으면서 열꽃은 하루이틀 정도 살짝 왔다가 없어집니다.   그 후에 손가락 끝, 발가락 끝, 항문 주위의 피부가 한꺼풀 일어나 벗겨집니다.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빨개도 ' 열 때문이겠지' 하고 그냥 넘겨서 놓치기 쉽습니다.
이 병의 치사율은 3% 정도이나 합병증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앓고 난 아이의 경우 초기에 25%, 그 후에는 10-20% 정도 심장의 혈관에 합병증이 생기기 때문에 조기 발견해서 조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동맥류가 생겼을 경우의 치명율은 0.3-0.5%입니다.

* 간혹 예방 접종의 효과로 또는 기타 원인에 의해 교과서와는 다른 비정형적인 홍반(붉은 점)이 있을 수도 있으니,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세요.


가을산님, 마립간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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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지난주 열이 나고 발진이 생겼는데요, 혹시 수두일까봐 걱정해서 검색해봤더니, 이렇게 가을산님, 마립간님이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참고하려고 페이퍼 만들어 두는 거에요. ^^

ceylontea 2004-11-1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밑에 것이랑 같이 퍼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