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1.
매일 아침은 전쟁이다. 난 해람이 분유를 먹이고, 엉덩이를 씻겨주고, 세수를 시켜주고, 재워주고, 분유케이스에 분유를 덜어 가방에 넣고, 방한복을 입히고, 마로를 깨워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이고, 머리를 묶어주고, 도시락통을 챙기고, 그 틈틈이 옆지기 부탁대로 컴퓨터의 불필요한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샤워를 했고, 밥을 먹었고, 마침내 마로를 데리고 나와 어린이집 버스에 태운 뒤 출근했다.
그 사이 옆지기는 메일을 확인했고, 마로와 나의 아침을 차려줬고, 내가 출근한 뒤 해람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그런데 해람이 어린이집에 가보니 젖병이 가방 안에 없었단다.
그래서 들었다.
"왜 가방을 안 챙겼어? ... 왜 미안하다는 말도 없어?"

상황2.
어제는 마로를 찾아 퇴근하는 길에 은행에 들려 입금을 하고, 집에 와서 설겆이를 하고, 마로에게 책을 읽어주고, 해람이를 찾아와 목욕을 시키고, 분유를 먹이고, 1시간을 서성여 애를 재우고, 마로도 재우고, 젖병을 소독하고, 해람이 빨래를 삶고, 옆지기가 부탁한 자료를 만들어주고, 가래떡을 하기 위해 벌레먹은 쌀을 골라 통에 담았다.
10시가 좀 못되어 귀가한 옆지기는 주몽을 본 뒤 해람이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들었다.
"왜 고맙다는 말도 없어?"

 

 

옆지기는 안 시켜도 알아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그 일의 양도 평균적인 남자보다 많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도와주는' 사람이다. 우띠.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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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11-1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힘 내세요. 읽는 저도 안타깝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모두 초인이 되어야하는 현실. 왜 울컥 안하시겠어요...

반딧불,, 2006-11-1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주체는 절대로 될 수도 될 생각도 안하는 사람이죠.
남편은..아빠는 말입니다.
저도 이틀간 노랑이 열이 나서 잠을 못잤는데 열몇번을 깨는 동안 한번도 안일어나고 자더군요. 그래놓고도 어지간히 밥타령이길래 아침부터 정말 대판 싸울뻔했습니다. 동감동감.
--조근조근 다시한번 더 이야기해주셔요. 아침에도 님 혼자서 다 챙기지 마시고 냉장고에 다 적어서 꼼꼼하게 점검하게 하시고, 직접 챙기게도 하세요.
둘째부터는 그렇게 해야 그나마 버틸겁니다. 하나하고 둘은 천지차이니깐요.
힘드시죠?? 토닥토닥.

paviana 2006-11-1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아이가 3명이 되셨군요.옆지기님도 마로처럼 칭찬을 듣고 싶은가 봅니다.
그래도 도와주시잖아요..
에구 두서없지만, 힘내시라는 말 밖에 달리 할말이 없네요.

2006-11-14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1-1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조선인님, 마음이 무척 상하셨군요. 울컥 할 만해요. 그래도 옆지기님은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시는 마음이 훈훈합니다. 수퍼우먼이 되어야할 수밖에 없는 님, 힘내세요. 옆지기님도 점점 지금보다 조금 더 도우실 거라 믿어요.

해리포터7 2006-11-1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정말 힘드시네요....그냥 아이하나 더 키운다 생각하시고 좋은말 해주셔요..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ㅎㅎㅎ 기존의 다른 남자들보단 몇배는 많이 도와주시네요..님은 그 몇배로 힘드시구요.. 에구..이렇게 어렵게 일하는 엄마들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저는 너무 편한것만 같네요..

2006-11-14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랑비 2006-11-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그럴 때 볼기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죠. -.- 반딧불님 말씀처럼 할 일을 적어놓고 분담하시는 게 어떨까요. 토닥토닥.

건우와 연우 2006-11-1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하실만 합니다.
애둘을 키우는건 하나의 두배가 아니라 하나일때 힘든거의 제곱으로 노동강도가 증가하는것 같더라구요. 힘들때마다 애는 나혼자 낳았나하는 생각도 들고 왜 늘 남자는 도와주는 사람인가해서 서운하기도 하고...그래도 세월이 지나니 시간이 약이기도 하고 아이들과 가사노동에 치인만큼 어느날 아이들은 결정적일때 죄 내편이더라구요. 그래도 가끔 투덜대세요. 너무 잘하면 나중에 골병듭니다.
조선인님 화이팅!!!

BRINY 2006-11-1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토토랑 2006-11-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울컥 하시고 분노를 표현하셔야 해요.
왜 고맙다는 말도 없어 라니.. 물론 농담이셨겠지만..
으으..
아니면.. 음 냉장고 같은데다가 체크리스트를 주욱 뽑아두고
조선인님이 하시는 것을 체크한번 해보시죠. 옆지기 님이 하시는 것만 비워둬 보세요. 얼마나 편중되어 있는지 보고 느낄수 있게요..

조선인 2006-11-1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메신저로 결국 한 판 떴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 화해했구요.
"싸우자고 말한 거 아냐."
"나 지금 밥먹는 중이야."
"맛있게 먹어."
끝. ^^;;

2006-11-14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11-1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알겠습니다. 장부에 기록해두지요. ㅎㅎㅎ

진주 2006-11-1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신문에 난 '체질별 공부법'을 보니까
소음인 아이들에겐 칭찬을 해주면 알아서 잘 한대요.
과도하다 싶을만큼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그 아이에게^^

2006-11-14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1-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저 결혼해도 되나요 ^^;;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조선인 2006-11-1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명심할게요. 그런데 저 또한 소음인인가 봐요. 옆지기가 칭찬하는 대신 반문하면 울컥해서 입이 꽁 다물어져요. ^^;;
속닥님, 우히히히히 입 찢어집니다.
체셔고양이님, 칼로 물 베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을까 열심히 궁리하고, 어떻게 하면 앙금이 없을까 열심히 생각하는 거, 꽤 해볼만합니다. ^^

ceylontea 2006-11-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약간의 비슷한.. 아니 그렇지만 다른 일로... 냉전중이랍니다.. 그리하여 조선인님 뻬빠가 오늘 심하게 공감이 갔다는..
서운하더라구요... --;;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 하는데.. 나의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하다니.. 쩝.. 울 남편도 나름 열심히 하는 것 알고 힘든 것 알지만.. 그래도.. 화가 나더라구요..--;; 쯥... 우짤까...흑..

님은 화해하셨다니.. 잘 하셨어요...

미설 2006-1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남편은 애들 10분도 혼자 못봅니다. 애 둘을 한꺼번에 재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남자들은 아마 모를겁니다. 저는 종종 써먹는 레파토리가 '애 둘 혼자서 30분만 봐봐' 입니다. 아무리 제가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산다지만 울 남편도 심하다 싶을때가 넘 많아요ㅠㅠ 물론 바쁜것도 알지만.. 그저 앞으로 영우세대엔 그러지 않길 바래볼 뿐입니다. 알도를 잘 키워야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