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마로는 슬슬 '혼자 할거야'를 외치기 시작하더니, 요새는 좀 정도가 심하다.
덕분에 편해진 것도 있는데,
어린이집 갔다 오면 혼자서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는 것과
가방에서 도시락통을 꺼내 싱크대에 넣는 것을 마로가 혼자 할 일로 정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일단 노느라 바빠 막상 혼자 할 일은 빼먹는 날이 반이다. ^^;;)

마로가 혼자 할거야를 특히 고집하는 건 옷입고 벗기.
문제는 이게 일손을 더는 게 아니라, 엄마 속을 바글바글 끓이기 일쑤라는 것.
기껏 목욕대야에 온도 맞춰 물받아놨는데 20분쯤 혼자 옷벗는다 씨름하다 보면 물이 식어버리기 태반이요,
바쁜 아침시간에 혼자 옷입는다고 거들지 못하게 하니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하다 애에게 버럭거리게 된다.

오늘.
아침 준비를 하는데 마로가 갑자기 발딱 일어나더니 부랴부랴 화장실에 간다.
혹시나 해서 이불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지렸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옷이 차가워졌다고 갈아입는단다.
저 혼자 하겠지 싶어 이불 빨래를 돌리고 두부를 지지다 뒤돌아보니
아랫도리를 홀딱 벗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팬티만이라도 입으라고 한 마디 건넸지만, 그림 그리느라 엄마 얘기는 뒷전.
할 수 없이 팬티를 들고 가 입히려 들었더니
마루에 딱 소리나게 색연필을 내려놓으며 딸이 하는 말.

"엄마, 지금 뭐하고 있었어?"
"마로 팬티 입혀주려고 하지."
"아니, 그전에 뭐하고 있었어?"
"두부 굽고 있었지."
"그럼, 엄마는 두부나 계속 구우셔."

내 손에서 확 팬티를 잡아채고 혼자 입는다.
이걸 그냥. 으이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혼자 할 거야' 덕분에 확실하게 고마운 거.
지난 토요일도 그렇고, 일요일도 그렇고, 마로가 혼자 노는 동안 난 낮잠을 잤다.
혼자서 응가도 하고, 책도 보고, 창의력 기탄 수학도 풀고, 그림도 그리고, 블록도 하고.
물론 한숨자고 일어나 집안꼴에 한숨이 나왔고, 목욕시키고 빨래하느라 약간 힘들었지만,
엄마 혼자 낮잠자게 내버려둬줘서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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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1-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엄마로부터의 독립이 시작되는건가요?

라주미힌 2006-01-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질풍노도의 시기가 다가왔군요..
긴장하셔야겠습니다.

깍두기 2006-01-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구만. 좋아좋아^^
(어째 마로 대사가 꼭 소현이 대사 같네)

반딧불,, 2006-01-2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휴..귀여워요.
저희 집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게 하는데요.
이게 점점 다른 짓 하느라 엄마만 바쁘고 소리 지르옵니다ㅠㅠㅠ
(마로가 참 많이 자랐어요. 그리고 이뽀요^^)

2006-01-24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6-01-2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두부나 계속 구우셔요.
예쁜 마로 방해하지 마시고요..ㅋㅋ

세실 2006-01-2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마로도 이제 점점 숙녀가 되어가는 군요.....

줄리 2006-01-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로 넘 구여워요. 두부나 계속 구으라니 ㅎㅎㅎ

숨은아이 2006-01-2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아침에 두부까지 굽다니, 전 조선인님이 대단해 보여요!

비로그인 2006-01-2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부나 계속 구우라는 말, 핵심을 찌르면서 너무 귀엽습니다.ㅎㅎㅎㅎ

플레져 2006-01-2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두부나 구우셔!!
넘 귀여웡... (댓글이나 다셔! 웃다가 댓글 달고 갑니다~ ㅋㅋ)

그루 2006-01-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엄마는 두부나 계속 구우셔." 완전 자지러져요~ 캬캬캬캬캬. 미치겠다 키득키득

조선인 2006-01-2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리건곤님, 네, 이제 독립 시작인가 봐요. 혼자 우물우물하는 걸 보면 천불이 일 때도 있지만, 아주 바쁠 때 외에는 참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라주미힌님, 5살에게 질풍노도는 좀 ㅎㅎㅎ,
깍두기님, 소현-주하-마로가 계보를 잇는 게 아닐까요?
반딧불님, 그래도 저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어야겠죠? 으, 힘들어요.
속닥이신 분, ㅎㅎㅎ 알았어요.
파비아나님, 또 마로 편만 드시네요.
세실님, 천둥벌거숭이죠, 숙녀는 무슨. ㅋㅋ
줄리님, 정말 어안이 벙벙했답니다.
숨은아이님, 옆지기랑 마로땜시 아침을 거를 수가 없어요. ^^;;
쥬드님, 핵심일까요? 캬햐햐
플레져님, 댓글이나 다셔!!! 마로가 좋아할 만한 말입니다.
그루님, 흐음, 나중에 님도 겪을 일 아닐까요? 흐흐흐

아영엄마 2006-01-2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마로 너무 똑 부러진 딸입니다. 애들이 어지르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엄마 자게 두고 " 혼자서 응가도 하고, 책도 보고, 창의력 기탄 수학도 풀고, 그림도 그리고, 블록도" 하다니, 느무~ 멋집니당. 흑 우리 집 작은 딸냄이는 8살인데도 아직 뒷처리를 못한다고 엄마를 찾는데 너무 비교됨..ㅜㅜ


울보 2006-01-2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벌써요,
류는 요즘 종종 너무같이 하자고 해서 제가 너무 힘든데,,
그렇게 혼자 독립하겠다고 하면 저도 한순간 서운해질것 같기도 해요, 편안하기도 하겠지만,..
마로 동생이 생긴걸 안걸까요,

balmas 2006-01-2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
마로 화이팅!!
이제 조금 있으면 동생 돌봐야지, ㅎㅎㅎ.

토토랑 2006-01-2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후후~~ 마로 넘 귀여워요~
(저 논리력 대단한데요 ^^;;)

비로그인 2006-01-24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캬 .. 마로가 저러면 예쁠 거 같은데, 마로만할 때 제가 그랬다고 상상을 하니 바로 웩--;; 제 자신을 한대 갈기고픈 충동이;;;

인터라겐 2006-01-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마로가 벌써 엄마를 생각해 주는거 아닌감요... 마로의 행동이 눈에 보이는 듯 해요.. 귀여운 마로... 조선인님 건강하게 잘 보내고 계시죠? 인사가 늦었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구요..마로 떡국 많이 먹이세요.. 나이 후다닥 먹게...^^

2006-01-2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5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1-25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아마 첫째와 둘째의 차이 아닐까요? 히히
울보님, 동생이 아니라 '내 애기'라고 합니다. ㅋㅋㅋ
발마스님, 시로요, 시로. 큰애라고 동생을 돌봐야 하다뇨. 그럼 첫째가 너무 불쌍해요. 그냥 친구로 지내주면 좋겠어요.
토토랑님, 여자애라 그런가 가끔씩 마로 말솜씨에 얼얼해져요. 꽤 매워요.
평범한여대생님, 님은 절대 안 그랬을 거 같아요. ㅋㅋ
인터라겐님!!! 와락!!!! 정말 오랜만이에요. 부비부비.
속삭이신님, 우와, 고마워요. 진작에 물어볼 것을. 혼자 머리 끙끙 앓았답니다.
새벽별님, 가끔 울화통이 터지지만, 일단은 마로 하고 싶어하는데로 놔두려고 노력중입니다. 잘못해서 제가 자립심을 해칠까봐 조심하는 중이에요. 쉽지는 않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