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흘렸다. 손에.
순간 '앗, 아까워' 소리를 먼저 하고 '앗, 뜨거워' 소리를 다음에 했다.
커피를 흘렸다. 옷과 컵뚜껑에.
순간 컵뚜껑의 커피부터 날름 빨아마셨다.
옆에 있던 사람이 옷에도 묻었다고 걱정했다.
'괜찮아요. 옷은 드라이클리닝하면 되지만 흘린 커피는 다시 못 담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커피 얼룩은 잘 안 빠지는데'라고 다시 걱정을 듣자 '새로 사죠, 뭐'라고 대꾸했다가
옷을 새로 사는 거보다 커피를 새로 타는게 돈이 적게 든다고 구박을 받은 뒤에야
정말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우연히 다른 팀 부장 자리에서 처음 보는 커피를 발견했다.
하등 업무협조가 없는 부서이지만 틈나는대로 놀러가고 부장을 보면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2주만에 자연스레 부장님에게 커피를 얻어마시는걸 성공하고 뛸듯이 기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모 부장님의 경우 근사한 커피하우스를 많이 안다.
사람들은 그 부장님과 제일 친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이다.
블랙커피를 마시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늘 들고 다니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한 건 고3 때부터이다.
대학교 때.
식도염으로 피를 토하기 시작하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무지 혼났고,
어머니는 집에 있던 커피는 물론 심지어 주전자까지 아낌없이 버려주셨다.
덕분에 나도 커피를 완전히 끊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커피를 끊은지 3일째 되는 날 같은 과 단짝들이 내 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걸 보고
'너희들 너무한다. 내 앞에선 안 마시면 좋겠다' 투정부리며 자판기를 발로 톡 가리켰는데,
친구들의 기억은 달랐다. 미친듯이 화내며 자판기를 발로 차고 때리는 통에 말리느라 고생했단다.
마로 임신 기간 동안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건 커피였다.
커피 마시는 꿈을 꾸다가 깬 뒤 엉엉 울기도 했다.
임산부와 커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온갖 자료를 검색해보고 책을 뒤져본 후
옆지기에게 그걸 근거로 들이대며 하루 1잔은 묽게 타서 먹곤 했다.
해람 임신 때는 초기에만 약간 자중하고 그 후로는 당연한 듯 하루 1잔씩 먹었다.
옆지기가 걱정하자 외국 사람들은 임신 기간에 술도 먹는다며 애써 무시했다.
아이를 낳은 뒤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커피를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는 사실이다.
이가 누런 게 속상하지만 별 수 없다고 다독인다.
올해 들어 장하게도 커피를 줄여야겠다, 하루에 2잔만 마셔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 커피잔 대신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사이즈의 보온컵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 커피전문점에선 반드시 톨사이즈를 주문하고 샷도 추가한다.
- 최대한 진하게 커피를 타서 약간 마시고 너무 쓰다며 뜨거운 물을 더 부어 양을 늘린다.
- 회의 때문에 커피가 나올 경우 내 취향의 커피가 아니기 때문에 셈에서 제외한다.
-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므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결심을 어겨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커피전문샵 오픈 및 커피블로그 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눈이 돌아갔지만,
지름신 강령을 막기 위해 적자가계부를 부적으로 삼아 애써 외면했다.
결국 이벤트 기간이 끝나자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