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도 끝나고 수능 최저 등급도 필요없는 고삼에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실로 무의미하다.

전연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수업도 없고 선생님도 보통 자습을 주니 학교에 갈 이유가 없어진 느낌이다.

나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한다. 학교에서 얼마전 피에타를 보았고 또 얼마전엔 로맨틱 홀리데이를 봤다.

어제는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은 원 데이라는 영화를 반쯤 보다 미뤄둔 상태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학교에서의 시간을 영화로 보내기엔 소모적이라고 생각해 어제부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반쯤 읽은 상태다. 수시 면접 준비를 하며 외국문학을 한 편도 읽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내 유아 시절과 중학 시절을 반성하는 의미를 담아 결의를 띄고 책장에 꽂혀 있던 테스를 꺼내왔던 터였다.

읽다보니 이래서 명작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문장의 참신성이나 새로운 상상력 등이 한국 문학과는 달라서 매력을 느끼고 줄을 그으면서 읽고 있다.

테스의 깨어진 정조에 슬퍼하면서 동시에 한강의 단편 소설을 새로이 읽고 있는 중이다.

막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를 읽었다. 역시 내 사랑은 변함 없다. 내 사랑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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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11-1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예감도 틀리지 않아 이렇게 기쁜날을 맞이하는군요. *^^*
 






바람처럼 왔다 갔다

수시 원서 접수를 완전히 마친 오늘,

친구와 전화하느라 전화 요금을 다 쓴 오늘,

한강의 소설을 읽고 오랜만에 멍해진 오늘,

영화 한 편을 보고 편해지고 싶은 오늘,

내일부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오늘,

다 지나가기 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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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9-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시 접수한다니 벌써 고3이구나~~
소이진님~~~~~힘내요, 멀리서 응원합니다!!

jo 2014-10-0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도 저도 모두 아멘입니다. 제발 붙었으면!!!!! 제 앞에 좋은 길이 열리길 바라요..
 





하루하루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가 이렇게 글을 못 썼나?

이 정도로 글 쓰고 먹고 살겠다고 호기를 부리고 다녔던 건가.

물론 저는 이런 핑계를 또 대지요.

나는 자기소개서와 같은 글에는 맞지 않는다고.

뇌가 꽉 조이는 느낌이네요.

베토벤 7번 교향곡을 틀어놓았는데,

이 곡이 겨우 제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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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8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1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 님... 힘내세요. 파이팅 외쳐 줄게요. ^^

jo 2014-10-0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밋밋한 자소서가 되어 버리죠.. 1500자 쓰는게 이렇게 힘들었던 거였나요//
 






잘 모르겠다.

아직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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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5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5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이 추웠다 더웠다 제맘대로다. 


장마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더워지지 아니하고 학교에서 담요를 덮고 지내야 하는 날이 많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그런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번 토요일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증세는 이랬다. 잠을 자고 있는데 양 어깨가 아팠다. 빠질 듯이 아팠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오로지 어깨만을 두 개의 압착기가 각각 잡아 죄고 있는 통증이었다. 얕게 신음하며 눈을 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침 일곱 시였다. 맨바닥에 누워 있어서 이런 건가 하고 이불을 싸들고 소파에 가 누웠다. 그래도 아팠다. 나는 누우니까 아픈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 소파에 기대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졌다. 고모집이었고, 고모가 깨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앉아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으나 금세 통증은 재발했다.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 봤다. 한 팔을 구부려 턱을 받치고 다른 팔은 쭉 뻗어 몸 옆에 붙였다. 어라, 괜찮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자 잠이 왔다. 나는 그 자세로 잠에 빠져든다. …2014년 7월 24일에.



고모가 일어났는지 부엌이 시끄러웠다. 고모가 나를 불러 깨웠다. 일어나니 아직 어깨가 아팠다. 게다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열이 났다. 호되게 아플 징조가 보이는 듯 했다. 고모는 뭘 먹기는 해야 한다며 아픈 나를 이끌고 식탁에 앉혀 볶은 오리고기와 열무김치를 차려주었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침대에 가 누웠다. 


병원에 가는 길이 천리만리였다. 차에 오르는 것도 계단을 오르는 것도 고통이었다. 걷는 것이 힘들었던 나는 병원 계단을 오르며 할머니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힘겹게 접수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열이 높았다. 간호사가 9.8입니다, 하더니 의사가 심각하군, 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당시엔 못 알아들었는데 39.8도를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이마를 짚어보았을 땐 그리 뜨겁지 않았는데 39.8도라. 나는 수액실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삼십 분 정도 잠들었다 일어나니, 등이 흥건히 땀에 젖어 있고, 뭐랄까 정신이 밝다. 하루종일 힘이 없고 어지러워 정신이 흐릿했던 것이 명확해진다. 온몸의 힘과 수액의 영양소가 모조리 정신으로 향한 것처럼 밝다. 어깨 통증도 괜찮고 몸에 힘도 어느 정도 있다.


나, 링거를 맞아 힘을 차린 몸을 이끌고 남해로 향했다. 도중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곧장 집에 가지 말고 읍내에 들르라는 거였다. 나는 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읍내 도서관에 갔다. 나를 만나기 위해 보충수업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친구와 만났다. 그는 목적지를 묻는 내 말을 철저히 무시한 채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자주 가는 노래방도 제치고 PC방도 제친다. 우리는 유동인구가 적은 외곽지의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그는 나를 두고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 나왔다. 거기엔 술이 두 병 있었다. 나는 불만을 표했지만 그는 강경히 나를 두고 과자와 탄산음료를 더 사왔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근처의 고층 정자였다. 그는 성큼성큼 정자 위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속절없이 그 옆에 앉았다. 그는 종이컵의 1/4 정도 술을 따르더니 내게 건넸다. 내가 받지 않으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다짜고짜 손에 쥐어줬다. 그 뒤로 나는 두 잔 정도만 더 마시고 그가 다 마셨다. 두 시간 정도였을까. 바람을 맞으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오래 했다. 술 때문일까, 왠지 싸한 배를 움켜쥐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일요일이었다.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새벽 네 시. 화장실에 갔다. 설사를 했다. 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그 새벽, 계속해서 잠에서 깼다. 장염의 시작이었다. 배가 아파 교회 사모님께 소화제를 얻어 먹는다. 소화제를 먹어도 그대로다. 결국 오후 예배 반주를 하지 못했다. 나,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설사는 자꾸 나온다. 달팽이처럼 초록색 물만 나온다. 월요일은 결석하고 화요일에 학교 보충에 나갔더니 친구들이 몸이 얇아졌다고 걱정한다. 내가 봐도 많이 수척해졌다. 그리고 사흘이 더 흘러 금요일이다. 보통은 사흘이 지나면 몸이 낫는다는데 나는 근 일주일 째 몸이 낫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설사의 횟수가 줄었고 음식의 섭취가 가능해졌다. 다 나았나 싶었다. 다시 토요일이 돌아왔다. 순환인건지, 머리가 아프다. 쿡쿡 쑤시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지 못할 통증이다. 두통은 일요일까지 이어진다. 반주를 하는데 몸에 힘이 없다. 집에 돌아와 내리 잤다.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있다. 머리가 싸해지고 눈 앞에 노래졌다. 동일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탈수 증세였다. 나는 당장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이렇게 나는 이주 동안 링거를 세 대 맞았다. 


아직 설사가 멎지 않았다. 몸은 이제야 괜찮아진 것 같다. 국밥을, 어제는 순두부찌개를 푹푹 떠 먹었다. 쓰고보니 글이 너무 장황하다. 아무도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속에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나가는 것이, 방학인데도 더위를 뚫고 학교에 나가는 것이 꽤 억울했나 보다. …2014년 8월 2일에.



…비가 쉴 새 없이 내린다. 태풍이 북상한다고 하더니 정말 태풍이 부는 것 같다.


엊그제, 그러니까 목요일이었다. 사흘 정도 강렬하게 해가 빛을 뿜어냈다. 공기는 텁텁했고 날은 뜨거워서 우리는 고생을 꽤 해야 했다. 나는 매일 등교하며 해가 투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오롯이 떠 있는 태양은 노랗다 못해 밝은 빛을 냈다. 다행히 에어컨을 틀어주어서 우리는 꼼짝없이 반 안에 갇혀 생활했다. 밖에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속에서부터 열이 나 옷자락을 펄럭이며 수업에 들어갔다. 한창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라리 조금 습한 것이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후로 이틀, 비가 내린다. 나무가 휘어질 듯 바람이 분다. 나는 창가에 서서 언제까지 비가 내리나, 중얼거린다. 입이 심심해 간식거리를 사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공기가 차갑다. 팔 월, 공기가 차가워 나는 어색하다. 선풍기를 강하게 틀고 창문을 꽁꽁 닫는다. 공기가 탁하다. …2014년 8월 2일에.



이틀을 내리 내린 비가 그쳤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은 세게 불었다. 언제라도 비가 다시 내릴 것 같았다. 교회에 갔다와서 집에 누워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옷을 챙겨 입고 동생을 데리고 나오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창고 지붕이 날아갈 것 같아 고정을 해야겠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투덜거리며 슬리퍼를 신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낭패였다. 창고에 가는 길이 공사 중이었다. 온통 흙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걸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끄러지고, 발에 진흙이 묻고. 할아버지는 공사장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인 파이퍼 두 개를 각각 하나씩 들고 오라고 했다. 창고에 도착했다. 얇은 철판 지붕이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거렸다. 동생이 지붕 위로 올라가 파이퍼를 받아 들고 고정시켰다. 파이퍼를 밧줄로 묶어 고정시키려는 찰나에 무언가가 얼굴을 때렸다. 비였다. 바람을 타고 빗방울은 얼굴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쫄딱 젖은 채로 지붕 고정 작업을 계속했다. 


동생과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간다. 공사 중인 도로 바로 옆에 개울이 흐른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물이 더해져 마치 계곡처럼 유속이 빠르고 물이 맑다. 나는 주저없이 개울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동생도 뒤따라 들어와 발을 담근다. 비는 계속 내린다. 몸이 으슬으슬 춥다. 동생은 자꾸 가자고 재촉한다. 나는 개울에서 몸을 꺼내 동생의 뒤를 따라가다 진흙을 밟고 미끄러진다. 다리가 더러워졌다. 다시 개울로 되돌아가 몸을 씻고 집으로 간다.


감기에 걸릴 듯하더니 몸이 괜찮다. 역시 튼튼하다. 한 번 열병을 앓게 되면 한동안은 괜찮다. 원체 몸이 튼튼하다. 잘 아프지도 않고 철도 소화할 정도로 장이 좋다. 가끔 저렇게 아플 때가 있다. 아플 때면 심하게 아프다. 오래 아프다. 그래서 힘들다. 열병처럼, 지나간다. …2014년 8월 3일에.



아픈 동안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었다. 나의 집중 시간은 단편 소설을 한 자리에서 읽어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많아봐야 삼십 분. 내킬 적마다 단편 소설의 분량씩 그 긴 소설을 읽어나갔다.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서술자의 감정선을 따라 흘러가듯. 한강의 소설을 읽으며 형성된 독서법이 신경숙에게도 적용된다. 역시 다르다. 한강과는 다르다. 신경숙의 감정선은 한꺼풀 더 막혀 있다. 한강의 감정선은 해안가의 파도 같다면 신경숙의 감정선은 스노우볼 안의 물결이다. 감정선에 몸을 싣고 흐르기 어렵다. 더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번 편승하게 되면 수월하다. 잔잔히 물결을 따라갈 수 있다. 스노우볼 안의 눈송이도 즐기고 눈사람도 보고 고요도 느끼면서.


'외딴방'을 읽으면서는 한숨을 자주 쉬지 않았다. 한강을 읽을 때에는 장을 넘길 때마다 꽉 막힌 가슴을 뚫어주기 위해 크게 숨을 쉬어줘야 했다. 신경숙에게서 그런 숨막힘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마지막 장, 희재 언니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자주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추어야 했다.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나도 안다. 어렴풋이나마. 내 마음을 읽는 듯한 문장이 나올까봐, 그 문장을 읽고 더는 버티지 못할까봐,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까봐, 나는 두려웠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 문장에서 퍼져나오는 떨림을 안다. 그 대상이 내가 부모를 떠나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었을 때의 고통을 안다. 어렴풋이나마. 나는 겪지 않았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죽음을 겪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요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믿지 못했고, 실감하지 못했고, 지금도 떨떠름한 그 죽음에 우리는 휘청거렸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어깨를 붙들고 울면서 쓰러지려는 몸을 지탱했다. 울음, 나는 담담히 그를 받쳐주었다. 아팠던….


희재 언니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되었다고 느꼈을 신경숙의 마음이 읽혔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글에 적어두진 않았지만 나는 글 저편에 놓인 그녀의 마음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녀의 말못할 주저가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리하여 자신의 영원한 문학적 숙제를 풀어내고 싶어했지만, 그녀에게도 일말의 한계점은 있었던 것이다. 한계선을 넘어가면 그녀 자신이 버티지 못했으리라. 아니라면, 오랜 세월이 그것을 덮었을지도. 먼지처럼, 더께처럼, 살점처럼 그것을 덮어 그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겼을지도.


글을 쓰고 있는 내 집중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한 곳에, 글에 모이지 않는 정신.  …2014년 8월 3일에.











몸에 힘이 빠질 때,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을 때, 집중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외딴방'을 읽을 때마다 들었던 노래가 있다. 흑인 여가수의 노래다. 잔잔한 알앤비의 노래인 이 노래는 영화 'The Help'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우리 삶에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영화인 The Help의 OST답게 이 노래는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거라고 밝히면서 노래는 시작한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거야. 아주 높은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을 거야.  …물론 아주 힘들 거야. 외로운 밤이 닥치기도 하겠지. 그러나 난 나아갈 준비가 되었어. 내 삶을 가로막던 것들이 사라졌어. 기뻐. 난 이제 살아갈 수 있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아. 마침내, 숨쉬는 게 두렵지 않아. 당신이 말했던 것들, 당신이 했던 모든 것, 당신은 진실을 부정할 수 없어.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니까.


노래의 감동이 영화의 감동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려다가 그만둔다. 그저 가슴에 응어리지는 뭉클함을 만진다. 영화가 내게 주었던 용기와 희망이 가슴 속 어딘가에 묻어져 있다 피어나려 한다. 신경숙의 제주도에서의 단상들이 스쳐간다. 영상으로 내 머리를 흘러갔던 모습들. 파도가 치고, 그 파도에 앉아 바닷물을 맞는 여성의 모습. The Help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된다. 인적 없는 긴 거리를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응축된 여인의 등.  …너무 많은 감정이 내게 닥쳐온다. 


창가에 걸어간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이제는 비가 그친 것 같다. 아니 아직 그치지 않았다. 눈물을 쥐어짜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 떨어질 때가 아닌 은행잎이 초록의 몸을 물웅덩이에 담근 채 짓이겨진다. 은행잎 무더기를 한참 바라본다. 맞은편 창문을 건너다보다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본다. 까맣다. 감정을 정리한다. 내일 입을 빨래가 잘 마르도록 뒤집어준다. 제습기를 틀어 빨래를 향해 놓는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다. 선풍기 소리만이 고요를 뚫는다.


낮에 좋은 문장을 하나 생각했었는데 메모해두지 않아 잊었다. 신경숙은 문장을 메모해두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글과 생각이 그 문장에 한정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글의 자유성을 존중해주는 그녀의 말에, 그녀조차도 글이 완성될 때까지 무슨 글이 나올지 모를 때가 있다는 말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글의 구조를 짜놓을 집중력이 없는 내게 글의 시작은 늘 어려웠다. 시작만 어려웠으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글을 시작하니 도무지 글이 전개되질 않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펜. 그렇게 공책에 흔적으로 남은 짧은 글이 수두룩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 소설을 써야할지 갈피가 잡히는 것 같다. 일단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큰 플롯을 잡는다. 구조를 짜겠다는 압박감을 갖지 않고 대강의 흐름만 잡는다. 머릿속으로. 그리고 무작정 써보는 거다. 어떤 글이 나올지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문장을 차분히 기다린다. 그것이면 될 거 같다.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안심하고 있었더니 자소서가 나를 억누른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이 내겐 버겁다. 나는 나를 소개하는 일이 영 어색하다. 나는 남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일엔 자신이 있다. 나는 남을 누구든 사랑하니까. 그러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곧바로 답할 수 있다. 답은 아니오, 이다. 나는 나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 몸을 위해본 적도 없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데 자기를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스러워서 자기소개서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나 자기를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담은 영화와 소설을 보아와 놓고서는. 


이제 나는 전혜린을 읽어볼까 한다. 우연히 발견한 그녀. 내게 어떠한 울림을 줄는지. …2014년 8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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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4-08-0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오랜마에 보는 이진님문체에엥! 이제 보니 문체가 제가 아는 어떤 아이의 문체와 비슷합니닿ㅎㅎ 외딴방이란 책 한번 읽고 싶네요. 건강해지셨다니 다행이고요, 자소서 화이팅입니다! 저도 이진님도 자소서ㅠㅠ

2014-08-25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4-08-2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그간 고생을 하셨네요. 건강이 제일입니다. 늘 단련하고 몸을 보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