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세계지도책
DK 편집부 엮음, 브라이언 델프 그림, 강미라 옮김 / 대교출판 / 2003년 10월
절판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진짜 심심치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이 4학년 때인가 사회과부도를 받아들고는 동생들과 방바닥에 엎드려 배를 깔고는 나라 이름 찾기, 어느 나라 국기인지 알아맞추기, 각각의 대륙 이름과 바다 이름 찾기 등등의 놀이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일이다. 나의 세계지리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공부시간에 배운 것보다 이렇게 익힌 것이 훨씬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딱딱한 사회과부도를 보면서도 그렇게 재밌게 놀 수 있었는데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신났을 것인가. 그러나 만화와 컴퓨터 게임 등 재밌는 게 넘쳐나는 우리 딸들은 아직 이 책을 쳐다보지 않고 있다. 하긴 그때 우리집은 테레비도 없었으니.....

첫장은 이렇게 세계전도가 나온다. 당연한 순서라고 하겠다.

그런데 의외인 것이, 그 다음 장이 북극과 남극이다. 좀 의아했다. 남극과 북극, 우리 생각엔 가장 마지막에 나올 거라고 보통 예상하지 않는가?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 다음 장을 넘기니 뜬금없이 영국이 떡하니 나온다. 웬 영국? 표지를 다시 보니 지도를 그린 사람이 영국인이다. 이 책은 번역서였다.(그때까지 몰랐다) 그러니 철저히 유럽의 시각에서 그려졌을 터.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은 거의 마지막에 <동북아시아>란 챕터에 그야말로 눈꼽만큼 나온다.

그래놓고 미안했는지 책 부록으로 커다란 낱장짜리 지도가 한장 들어있다.
뭘 배울 때는 자기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점점 먼 곳으로 지식을 넓혀가는 게 순서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보는 세계지도는 먼저 우리나라가 나오고, 아시아, 유럽 등등으로 시야를 넓혀가는것이 아이들의 관심을 더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을 텐데, 책의 편집자들이 그런 생각을 못했을리는 없고, 아마 번역서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쪽수 조정도 불가능했을까?

일본은 당당히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 씁쓸하지만 뭐.....국력과 비례....아니겠는가.
각 챕터의 모든 지도에 그 나라를 상징하는 여러가지(특산물, 문화재, 산업 등등등)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아주 말랑말랑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챕터마다 퀴즈도 있어 친구들과 같이 놀 수도 있다. 여기 있는 퀴즈 말고도 얼마든지 퀴즈를 낼 수 있다.

챕터마다 요점정리도 있다. 자잘한 상식을 알 수 있어 좋다.

부록으로 주는 세계여러나라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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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5-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지도는 국내에서 새로 그려 끼워넣었겠군요. 쉽지 않았을 텐데 수고했네요...

풀내음 2005-09-29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네여~

분홍돼지 2007-03-2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얼핏 보고 괜찮다 싶었는데 ...
유럽의 관점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미횬 2007-10-1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토리뷰 감사요~
 

작년에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란 책을 읽고 나서 유럽만화가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현문 시리즈를 세권 사서 읽고, 저번에 폭탄세일한 <피터팬>과 <쌍브르>를 얼른 사서 읽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일본만화와 달리, 올 컬러에 한컷한컷이 그대로 회화인 이 만화들은 참 특이했다. 만화를 이렇게 정성껏 그려서 어찌 먹고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가 아는 만화란 원고 마감에 치여가며 양쪽에 어시스트를 붙이고 톤 발라가며, 색칠해 가며, 이렇게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었던가.(딸내미가 만화가 지망생이라 만화가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온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이 금방 눈에 쏙쏙 들어오는 건 아니다. 어떨 땐 오히려 집중이 안되기도 했다. 워낙에 만화책 한권을 10분이면 해치우는 불성실한 독자인 나에게 이 만화들은, 만화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며 부담을 팍팍 준다. 대충 그림 훑어보고 글씨만 읽고 페이지를 홱홱 넘기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묘한 분위기....마치 꿈 속의 대화를 읽는 듯한, 왠지 서걱거리고 뭔가가 한꺼풀 씌운 것 같은 이 분위기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대사를 읽으며 생경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아마 그것은 번역투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한데, 왜 일본어 번역투가 따로 있고 영어 번역투가 따로 있는 것처럼 프랑스어 번역투라는 것도 무슨 묘한 분위기가 있는 것인지......

 

    제일 먼저 읽은 것. 그림이 환상이다. 보다 보면 억!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내용은 꽤 난해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참, 책이 얼마나 튼튼한지 이 책으로 한 대 제대로 맞으면 아마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색채가 예술이다. 그리고 주인공 남녀의 표정을 보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노파님의 페이퍼를 보고 구입한 것. 설정이 매우 특이하다. 갑작스런 빙하기로 인간은 다 죽고 오직 1001량의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그들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한다.

     아주 노골적인 비유이다. 이 세계에 관한.

 

 

    피터팬을 이렇게 끔찍하게도 변주할 수 있다니. 아직 1,2권 밖에 안 읽어 뭐라 말할 순 없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피터팬을 이렇게 비틀어버린 작가를 원망하고 싶다만 그건 작가를 원망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빨간 눈의 여인이 나온다. 때는 프랑스 혁명 전야. 음침한 색깔들 속에서 그녀의 빨간 눈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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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5-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해한 내용과 암울한 주제... 망설이다 결국 안샀는데요. ㅠ.ㅠ

urblue 2005-05-1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코폴 재밌죠. 정말 그 책으로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ㅎㅎ

깍두기 2005-05-17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이미지가......왠지 물만두님 필이 나는 걸요?^^ 니코폴 엄청 두껍죠. 그걸로 발등 찍으면....으....
치카님, 뭘요? 이 다섯권 다요? 하긴 다 난해하고 암울합니다^^

2005-05-17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5-1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님의 서재로 가겠습니다^^
새벽별님, 저도 볼 때는 우와우와 하면서 봤는데 책을 덮고 나니 내용이 헷길리더란 말입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봐야 할 듯.

panda78 2005-05-1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주 명가 어쩌구 하는 그게 궁금해요. ^^

깍두기 2005-05-1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무슨 말씀이신지?(어리둥절)

panda78 2005-05-1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요. ^^ 맥주 명가 스틴포.


2005-05-19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5-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처음 보는 만화네? 어디, 책소개 보러 가 볼까?^^
속삭님, 정말 고마워요. 내가 진짜로 많이 고마워하고 있는거, 아시죠?
그리고 검을 자도 있나? 내가 알기로는 자주색, 할때 자 인데. 그니까 자우림 할 때 말이어요. 자주색 구름이라니, 예쁘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도봉산의 한 줄기 이름이어요^^

2005-05-19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5-1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그 아호가 궁금해요. 뭘까? 영자? 미자? 숙자? (메롱=3=3=3)

2005-05-20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5-20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흠....그렇단 말이지요.
 

 

 

 

 

 

까만색 표지로 나왔던 그리폰 북스 시리즈 1권이었다. 내가 안 갖고 있는 것.....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는 했다.

시공사에서 이번에 새로 낸 모양인데, 번역자가 바뀌었다. 내가 워낙 김상훈씨의 번역을 좋아하는 터라 번역자가 달라진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 폼생폼사의 젤라즈니를 제대로 번역해 주었을지......

살까, 말까? 누가 헌책 줄게 새책 다오 한다면 냉큼 그러자고 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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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5-1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 같아서는 제가 드리고 싶습니다만, 제 콘래드는 물에 빠져 우글쭈글 울고 있어요.;;

물만두 2005-05-1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만돌이 책이라 그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요 ㅠ.ㅠ;;;

starrysky 2005-05-1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왜 역자가 바뀌었을까요? 김상훈씨는 완전히 저쪽으로 돌아서신 건가요..??;;
저도 막 살까 말까 망설이게 되네요. ^^;

2005-05-15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5-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어째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신 거예요?ㅠ.ㅠ
만두님, 만돌님께 제 얘기 좀 잘.....^^;;;
스타리님~~~~어서와요^^
김상훈씨가 어디로 돌아선 게 아니라 새 책 번역하느라 바빠서 절판본 재간하는데는 관여 안하는 게 아닐까요? 하나 있는 리뷰의 평이 아주 안 좋아서 아무래도 안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네요. 헌책방이나 뒤질까....근데 새책보다 더 비싸다며?

panda78 2005-05-1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폰은 희귀종이라.. ;; 우선 상태 좋은 놈도 드물 뿐더러, 그닥 안 좋은 애도 15000원 받는 판국이니.. (근데 번역이 진짜 별룬가봐요?)

톡톡캔디 2005-09-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폰 1권 소장하고 있습니다. ^^ 씁쓸하네요. 새로운 번역가를 개인적으로 아는데...ㅠ.ㅠ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아는 사람이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작가를 망쳐놓다니..하는. ㅠ.ㅠ
 
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품절


로드무비님이 이벤트 선물로 주신 이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그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는 이제 막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에게 알맞을 책이다. 나같은 사람 말이다. 새로운 것을 꽤 알게 되었다. 친절하고 바로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지은이의 글솜씨 때문에도 책은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그러나, 나에게 저자의 글은 어딘가 2%가 부족한 듯, 책을 다 읽고 나니 좀 허전한 감도 있었다.

소현이가 좋아하는 고흐의 자화상. 이걸 보고는 고흐놀이라며 내 목도리를 칭칭 감고 사진을 찍었었다.

이건 고갱. 다 아시다시피 고갱은 중년의 나이에 잘 다니던 회사와 아내 자식들을 버리고 그림공부를 하러 떠났다. 아, 그의 아내는 얼마나 황당했을까나. 고흐와 고갱의 그림을 보면서 옛날에 <달과 6펜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아마 그 둘의 이야기였지? 근데 어떤 얘기였는지는 가물가물.....그래서 리뷰를 써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한단락 정도로 잠깐 둘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모딜리아니. 그의 그림의 여자들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서 모딜리아니의 행각에 대해 읽으니 또 그의 그림이 달라보인다. 학대받는 여인의 초상같은.....어쩌면 그 글은 안 읽는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볼 때마다 이제 다른 상상은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흑.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이다. 이 그림은 <천천히 그림읽기>란 책에서도 보았다. 여기선 세가지 버젼의 유딧이 나온다. 그 비교가 재미있다. 아르테미시아는 여성화가가 드문 시대에 활동했던 여성화가인데 그가 그린 유딧은 두려움이나 망설임이라곤 전혀 없다.

이것은 카라바조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저게 어디 목을 따고 있는 장면이란 말인가. 파리 한마리도 못 죽이게 생겼다.

클림트는 죽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딧을 그렸다. 유딧은 알기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논개이다. 적장을 유혹해 목을 치는 장면을 이렇게 에로틱하게 표현하다니, 클림트의 유닛의 표정을 보면 살인에서 쾌감을 느끼는 정신병자를 그려놓은 것 같다.



각 단락의 맨 끝에는 세계유명미술관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다. 교통편과 전화번호까지 있는.....나는 그걸 일부러 읽지 않았다. 지금 당장 갈 수도 없는데 읽어봤자 가슴만 아프다. 언젠가 그곳에 갈 수 있는 날, 여행계획을 세울 때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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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05-05-1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독한 아름다움>과 겹치는 작품이 꽤 있군요.
2% 부족, 공감입니다.^^

깍두기 2005-05-1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2% 부족..... 뭔가 임팩트 있고 가슴을 콕 찌르는 문장이 없었다는....

하루(春) 2005-05-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좋군요.

panda78 2005-05-1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공감.. 2% 부족했어요. 지독한 아름다움이랑 이 책은 다 서점에서 읽고 왔지요.
그치만 한젬마씨 책보다는 훨씬 낫던걸요. ^^;

깍두기 2005-05-1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저도 모딜리아니 그림 좋아했는데 사연을 읽고 나니 갑자기 좋아하기 싫어졌다는.....ㅠ.ㅠ
판다님, 전 한젬마씨 책을 안 읽어서....판다님이 가장 재밌게 읽은 미술관련 책은 무엇인가요? 궁금^^

panda78 2005-05-1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제일 재밌게 읽은 걸 꼽으라고 하시면.. 꽤 어려운데요?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이게 아주 재밌었구.. 고종희 씨 책들은 다 재밌었어요. 곰브리치도 역시나 좋구요. 조근조근 설명듣는 기분이 ^^
[화가와 모델] - 이건 그야말로 화가의 사생활 엿보기라 꽤 재밌었습니다. ;;
그리구.... 음.. 생각이 잘 안나네요. ^^;;; 다카시나 슈지 책들도 꽤 괜찮았어요.



깍두기 2005-05-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판다님. 이런.....읽을 책이 이렇게나 많다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7 세트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있음)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발생한 산업문명은 수백년 동안 전 세계로 퍼져, 거대 산업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대지의 비옥함을 앗아가고 공기를 더럽히며 생명체마저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거대 산업문명은 1000년 후에 절정기에 이르렀다가 이윽고 급격한 쇠퇴를 맞게 되었다. <불의 7일간>이라 불리는 전쟁에 의해 도시들은 유독 물질을 뿌리며 붕괴했고, 복잡하고 고도화한 기술체계는 소실되었으며 지표의 대부분은 불모의 땅으로 변해 버렸다. 그 후 산업문명은 재건되지 않았고, 인류는 영원한 황혼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런 배경을 깔아두고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우시카가 사는 세계는 지금보다 천년도 더 나중의, 인류의 산업문명이 스스로 자멸하고 난 뒤에, 지구가 산업문명의 무덤이 되고 난 뒤에, 그 무덤 위에 세워진 세계이다. 그 세계는 땅 속의 오염물질 때문에 독기를 내뿜는 숲, 부해가 있다.

 
                                 <부해에 사는 식물(왼쪽)과 이야기의 배경 지도(오른쪽)>

부해는 엄청난 속도로 세상을 덮으려 하며 사람들은 독기를 피해 마스크를 쓰고 가까스로 살아간다. 부해에는 또 엄청나게 커진 곤충들과 '오무'가 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피하고 그것들과 싸워가며 살아야 한다. 그 와중에 또 두 나라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이 이야기는 물질문명을 맹신하고 서로간에 전쟁을 일삼는 인간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두 나라는 전쟁의 와중에 전대의 문명이 봉인해 놓았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안그래도 황폐한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인다. 그 속에서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특별한 아이다. 그애에게는 적과 나의 구분이 없다. 그애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느낀다. 곤충도, 오무도, 적군도, 아군도 그에게는 생명이다. 숲사람 세름에게 나우시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생명의 흐름 속에 몸을 두고 있어요. 나는 하나하나의 생명에 연연하고 말지만.....나는 이쪽 세계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인간이 더럽힌 황혼의 세계에서 나는 살아가겠어요.

설령 어떤 계기로 태어났다 해도 생명은 다 같아요. 아마 히드라조차도....정신의 위대함은 고뇌의 깊이에 의해 결정되는 거예요. 점균의 변이체조차도 마음이 있어요. 생명은 아무리 작아도 그 밖에 우주를, 그 안에 우주를 갖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하나하나의 생명을 사랑하는 나우시카가 내린 결론은 어찌보면 의외이다. 그는 전 문명이 세워놓은 원대한 계획을 거부한다. 지구를 정화하고, 인간을 고결하고 우아한 존재로 만들려는 계획을.....

아니! 그건 당연하다. 어찌 생긴 존재이건 생명은 그 자체로 자유의지를 가진다. 높은 자의 계획 따위에 맞춰 살 존재는 아니다.

소녀여, 너는 재생으로의 노력을 포기하고 인류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것인가?

어리석은 질문이군. 우리는 부해와 함께 살아왔다. 멸망은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어.

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는 점점 줄어들고....너희들에게 미래는 없다.인류는 내가 없으면 멸망한다. 너희들은 부활의 아침을 넘어설 수 없어.....너희는 위험한 어둠이다. 생명은 빛이야!

아니, 생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다! 모든 것은 어둠에서 태어나서 어둠으로 돌아간다! 너희들도 어둠으로 돌아가라!

이야기는 여기서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제 이야기는 생명의 의미, 인간존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생명은 그냥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라고, 생명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존재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신이 깃든 존재라고 나우시카는 말한다. 그것이 대답이 아닌 '질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나우시카에게 동의할 것인지 아직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뱉어놓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인간은 그렇게 나아가야만 하는가?

나우시카가 청정한 세계가 돌아왔을 때 쓰여질 새로운 인간의 알을 파괴하며 "제가 지은 죄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우리처럼 흉폭하지 않은, 온화하고 현명한 인간이 되었을 알이에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왕이 한 말.

"그런 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응?"

슬프지만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저 대목을 보면서, 결국은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고.


폐허가 된 땅을 허무가 담긴 긍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우시카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에, 인간은 긍정할 만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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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1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이미 오염된 환경에 적응해버렸다는 대목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리뷰 멋지게 잘 쓰셨네요~

깍두기 2005-05-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참 슬펐어요. 인간이란 존재가....마치 바퀴벌레가 자기가 더러운 존재란 걸 깨달았을 때 같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