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키노 > 영화에서 발견한 재즈의 시대 [2] - <버드>

시대를 앞서간 자유정신

1940∼50년대 중기 밥의 시대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

“파커는 최근 10년간 레코드를 만든 거의 모든 재즈 연주자를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레니 트리스타노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그의 별명이 ‘버드’다)의 삶을 다룬 <버드>는 지켜보기에 안타깝고 슬프고 그래서 마음에 남는 영화다. 우리는 마치 버드의 아내 챈처럼 그를 낯익은 선율과 리듬 안에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는 마약과 술로 망명을 떠난다. 버드의 선율 또한 낯익은 ‘스윙’을 떠나 자유로운 밥의 선율로 월경한다. 그 위태롭고 고독한 운명은 ‘밥’(bop)의 운명을 닮았다. 스윙처럼 쉽지 않고, 까다로우며,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밥’의 운명. <버드>(1988)에서 밥 시대를 선도한 트럼펫 주자이자 지지자이며 친구인 디지 길레스피는 찰리 파커에게 “바는 열었는데 예매는 꽝이야. 아직 관객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미국 서부의 라디오들이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밥 연주를 금지시켰다는 소식과 함께. 찰리 역을 맡은 포레스트 휘태커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종이봉투에 담긴 술을 마시며 힘겹게 연주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파커는 시대를 앞선 자유정신과 방탕으로 고통받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찰리 파커는 더 멀리 날아올랐다.

오랫동안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지만 찰리 파커는 “테이프로 칭칭 감고 풀로 여기저기 붙인 아주 낡은 (밥 알토) 색소폰” 하나만으로 자신의 위대한 경쟁자들을 감동시킨 천재였다. 그리고 ‘여전히 관객이 도착하지 않는’ 불운한 선지자였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부터 찰리 파커다운 음을 뽑아낸 블렌딩 마스터였다. 레스터 영으로부터 우아하고 느리면서도 깊이있는 솔로를, 오페라 <카르멘>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로부터 클래식의 느낌을, 블루스로부터 즉흥적인 선율을 이끌어냈다. 재즈의 역사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것이었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재즈의 자유로움과 독창성은 숱한 전통을 자기만의 것으로 뽑아낸 찰리 파커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드가 이해받지 못한 천재의 음악만 들려주는 건 아니다. 버드에게도 달착지근한 선율은 있다. <Bird and Diz> 앨범에서 버드와 디지 길레스피는 그들 못지않게 개성적인 델로니우스 몽크의 자유로운 피아노 선율을 타고 <My Melancholy Baby>를 연주한다. 선율을 풍요롭고 유장하게 이끄는 버드의 숨결은 어떤 색소폰 주자도 주지 못한 아름다움을 안긴다. 그가 영화에서 싸구려 바에서 달착지근한 현악 오케스트라와 <Laura>를 연주할 때, 결혼식 밴드를 전전하며 푼돈을 벌 때조차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Relaxin’ With Lee>에서 오페라 <카르멘> 선율을 살짝 인용하고는 시치미 뚝 떼고 예기치 못한 밥 선율 속으로 디지와 함께 뛰어드는 대목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 이유라면, <At Storyville> 앨범에서 거침없이 비상하는 버드의 선율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의 보수적인 공기가 버드의 비상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버드의 음악은 참신하고 새롭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찰리 파커의 밥 선율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찰리 파커의 복잡한 내면을 탐사한다. 디지 길레스피에게 가불하고도 월급을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약속된 연주를 펑크내기 일쑤였고, 수시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도 마약과 술과 여자를 끊지 못한 불규칙적인 삶의 리듬과 그의 재즈의 리듬을 조응시킨다. 그리고 평생 마약값을 대느라 쩔쩔맸던 천재의 우울 속에 갇혀 있던 그의 찬란한 선율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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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영화에서 발견한 재즈의 시대 [1] - <스윙걸즈>


To swing or not to swing? 스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스윙걸즈>가 던지는 질문이 혹시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재즈의 공작으로 알려진 듀크 엘링턴 가라사대, “스윙이 거기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윙걸즈>는 재즈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스윙의 즐거움과 흥분과 미각을 알아차리게끔 해주는 애피타이저 같은 영화다. 재즈 음반 한장 없어도, 스윙이 뭔지 알지 못해도 재즈를 즐길 수 있다. 그 첫걸음은 <리플리>의 감미로운 쿨 재즈 선율일 수도, <버드>처럼 격렬하고 뜨거운 비밥 재즈일 수도, <스윙걸즈>처럼 초심자들이 가볍게 흥얼대며 장단을 맞추는 스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첫걸음을 어디서 시작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횡단보도에서 나오는 시그널 뮤직인 <Coming Through the Rye>에서도 재즈를 발견하는 ‘스윙걸즈’의 발랄함만 있다면 되는 거 아닌가.

느낌으로 따라가는 빅밴드의 경쾌한 선율

1930∼40년대 스윙의 시대 -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걸즈>

“재즈는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음악이어야 한다.” - 아트 블래키

이 영화 한편으로 바로 스윙을 알게 됐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 한편으로 스윙이 뭔지 어슴푸레 느꼈다고 한다면 그건 참말일 것이다. 재즈의 초심자로 하여금 아껴둔 쌈짓돈으로 중고 색소폰을 사고 싶은 마음을 일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겁다. 식중독에 걸린 학교 밴드부 대신 급조된 보충학습반 아이들이 재즈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스윙걸즈>(2004)는 재즈의 역사를 혼자 써내려간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도, 재즈 마니아를 식별하는 표지인 찰리 파커로부터도, 이름만 재즈 카페지 재즈다운 곡은 하나도 틀지 않는 카페에서 겨우 인색하게 흘러나오는 쳇 베이커나 스탄 게츠로부터도 시작하지 않는다. 바로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으로 시작한다.

급조된 밴드부가 처음 연습하는 곡이기도 하고, 맨 마지막 밴드부 경연대회에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스윙 소녀’의 연주곡이기도 하며 1930∼40년대를 풍미한 ‘스윙의 시대’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10명 이상의 대규모 밴드가 연주하는 빅밴드 시대였다. 빅밴드를 대표하는 이름들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베니 굿맨, 글렌 밀러 등이다. <스윙걸즈>는 이 빅밴드의 시대에서 유독 우리의 귓가에 오랫동안 친숙한 선율을 남겼던 글렌 밀러의 <In the Mood>,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 등으로 재즈가 어렵기만 한 음악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짧은 검은 스타킹 차림으로 발로 박자를 맞추는 우에노 주리(스즈키 토모코)의 경쾌한 스텝처럼 말이다. 그건 굳이 배우지 않고도 느낌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는 선율이다.

재즈의 모차르트로도 불린 듀크 엘링턴은 재즈 역사상 가장 멋쟁이였고, 쉴새없이 떠오르는 멜로디로 재즈의 아름다움을 알린 장인이었으며, 데이브 브뤼벡(<The Duke>)과 스티비 원더(<Sir Duke>)까지 곡을 써서 헌정할 정도로 존경받는 예술가였다. 그의 빅밴드엔 자니 호지스(알토 색소폰), 벤 웹스터(테너 색소폰), 지미 블랜튼(베이스) 등 재즈계의 명장들이 수십년간 몸을 담았다. 1941년에 녹음된 <Take the A Train>은 지금 들어도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흥겹고, 자기도 모르게 우에노 주리처럼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장단을 맞추게 되는 곡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곡이 실린 <In A Mellotone> 앨범에 대해 “진정 뛰어난 음악이 불현듯 내 몸에 다가왔을 때, 어디에선가 조용히 샘솟는 깊은 공감과 넉넉한 자비”라고 썼다(<재즈 에세이>). 듀크 엘링턴이 우아하면서도 재치있는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면, 바로 색소폰 파트가 그 선율을 받아서 멜로디로 진행시키는 라인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우에노 주리가 자신의 왼편에 있는 색소폰 파트의 친구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음정도 안 맞는 선율을 불 때, 그 표정은 얼마나 상쾌하면서도 아름다운가. 그들의 서툰 연습 덕분에 스윙 소녀들이 눈에 갇힌 기차 안에서 라디오 선율에 맞춰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연주한 <Take the A Train>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스스로 흥겨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스윙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너무 ‘일본적인’ 일사불란함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연주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당연히 스윙시대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이다. 이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다만 그 감동의 크기는 예상하기 어렵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처럼 원초적이고 화끈한 스윙의 리듬은 없지만, 각 솔로 파트를 독립시켜 악단의 최상의 기량을 뽑아내는 감각이 있다(그래서 스윙 소녀들의 개성이 두루 발현될 수 있다). 맥주광고로도, 숱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여 귀에 유독 익은 멜로디다. 듀크 엘링턴으로 가기 위해 베니 굿맨을 우회로로 택할 수도 있다(물론 찰리 크리스천과 함께한 진지한 작업도 있지만). 스윙 소녀들은 우리가 재즈의 정문이 높게 느껴질 때, 친숙하게 타고 넘을 수 있는 담장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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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the First

물론 나는 이마빼기로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만한 힘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코 이 벽과 화해하지는 않겠다. 왜냐? 내 앞에 돌 벽이 서 있으나 나는 그걸 무너뜨릴 힘이 없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Written by Dostoevskii, 지하생활자의 수기 중에서


신화의 원형에 있어서 영웅은 언제나 버림받고,(Wasted) 상처받으며(Wounded), 그리고  정처 없이 어디론가 방랑을 떠나야만 하는 존재(Waltzing Matilda)로 묘사되어왔다.

이런 신화적 원형은 현대에 이르기 까지 여전히 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새로운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만약 영웅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힘을 발휘하는 숙명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도 방랑자의 운명일 것이다. 운명에 쫓겨 사살당하는 삶이 아닌 운명을 지배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절대적 자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부자유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고귀한 분노를 머금은 채 방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영웅에게 주어진 전사의 삶이다.


난 21세기에 있어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남은 Roman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방랑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방랑자를 이렇게 노래했다.


“방랑자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을 누리는 사람이다. 기쁨이란 한 때 뿐이라는 걸 머리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랑자는 잃어버린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한 때 좋았던 장소에 뿌리를 내리려 안달하지 않는다.”


또한 방랑은 카프카에게 있어서는 이러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도 몰라” 나는 말했다.

“여기를 떠날 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까지라도 가보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럼 가실데가 있으시군요?” 하인이 물었다.

“암! 그럼.” 나는 대답했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기서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 목표야!”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Tom Waits 도 그런 방랑자의 운명을 타고났다라는 단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Tom Waits



그의 운명은 “1949년 캘리포니아 포모나(Pomona)의 달리는 택시 안에서 태어났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요약되어 질 수 있다. 그 후로도 그는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낡은 차 안에서 기거해야 했으며, 69년 L.A.의 트라우바도(Troubadour)에서 열린 그의 첫 공연이 열릴 때까지 차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느새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거리의 부랑자요, 방랑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언제나 끊임없이 부유해야만 하는 도시 빈민의 삶에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들풀같은 노래 안에는 수많은 부자유에 맞서 기꺼이 싸우려는, 강인한 삶에의 의지와 방랑자의 고귀한 분노가 녹아있다.


영화 바스키아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바스키아(Basquiat)"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는 거리의 부랑자이자 포스트모던의 위대한 화가였던 Jean-Michel Basquiat의 생애를 그린 전기영화로, 어디에서도 소속될 수 없었던 방랑자 바스키아의 삶을 너무나도 잘 그려내고 있다. 한  쪽에선 노예적 삶을 위해 자신의 창조적 재능을 부유한 백인들에게 팔아먹고 있다는 비판을 다른 한 쪽에선 그저 마약에 찌든 'Nigger' 낙서쟁이에 불과했던 바스키아는 이중적 삶에의 정체성 혼란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차에 유일한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앤디 워홀의 죽음을 맞게 된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워홀의 영상을 지켜보면 소리 없는 절규를 부르짖던 바스키아의 눈물이 Tom Traubert's Blues과 함께 유유히 흐른다.

 

Tom Traubert's Blues

 

Wasted and wounded, it ain't what the moon did
Got what I paid for now
See ya tomorrow, hey Frank can I borrow
A couple of bucks from you?
To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I'm an innocent victim of a blinded alley
And tired of all these soldiers here
No one speaks English and everything's broken
And my Stacys are soaking wet
To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Now the dogs are barking and the taxi cab's parking
A lot they can do for me
I begged you to stab me, you tore my shirt open
And I'm down on my knees tonight
Old Bushmill's I staggered, you buried the dagger
Your silhouette window light
To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Now I lost my Saint Christopher now that I've kissed her
And the one-armed bandit knows
And the maverick Chinaman and the cold-blooded signs
And the girls down by the strip-tease shows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No, I don't want your sympathy
The fugitives say that the streets aren't for dreaming now
Manslaughter dragnets and the ghosts that sell memories
They want a piece of the action anyhow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And you can ask any sailor and the keys from the jailor
And the old men in wheelchairs know
That Matilda's the defendant, she killed about a hundred
And she follows wherever you may go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go a waltzing Matilda with me

And it's a battered old suitcase to a hotel someplace
And a wound that will never heal
No prima donna, the perfume is on
An old shirt that is stained with blood and whiskey
And goodnight to the street sweepers
The night watchman flame keepers and goodnight to Matilda too


 

하루 위스키 1병과 2갑의 담배를 꾸준히 피어대야만 만들어질 것 같은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인간의 슬픔을, 존재로서의 고독을, 구속되어지지 않는 자유를 노래한다. 굳이 인간으로서의 톰 웨이츠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짐 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를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톰 웨이츠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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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 전의 것이다.

Written by Sigmund Freud


오후 2시의 일요일은 언제나 따분하다.

오후 2시라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서 권태를 벗어던지고자 무얼 하려고 하기엔 너무 이르거나 혹은 너무나 늦은 때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권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권태의 고수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이상, 다자이 오사무 등등)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로 했다.

“언제나 따분했을 것이 분명했을” 소로우는 나에게 ‘영혼이 자유로운 길’을 걸으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제길! 어디에 영혼이 자유로운 길이 있다라는 거냐? 어딜 둘러보아도 시커먼 아스팔트뿐이요. 그나마 간간히 보이는 잔디밭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붙어있는데...


오랫동안 광활한 타타르의 스텝을 여행했던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작지 안에 다시 들어서는 순간, 문명의 소용돌이와 혼란, 동요가 우리를 압박하고 숨 막히게 만들었다. 공기는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으며, 매순간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헐! 그럼 경작지 안에 죽치고 사는 나는 전신주에 목이라도 맬까? 영혼이 자유로운 길을 찾고자 산책을 나섰던 나에게 구원은 어디에도 없는거냐! 나의 비명어린 절규를 어디서 용케 들었는지 신은 나에게 다행히도 메시아를 내려주셨다. 내 눈앞엔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로날드 맥도널드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좀 쉬었다 가! 총각.” 나에겐 더 이상 그의 친절을 거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는 단지 동전 몇 푼이면 맛있는 “아이스크림 콘”을 먹을 수 있다고 날 유혹했다.


그렇게 난 몇 푼의 동전으로 구원을 샀다.


돈으로 산 구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한적한 골목길에서 난 <두려운 낯설음>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 감정은 프로이트보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것에 더 가까웠다.


 

 

 

 

 

봄이면 아무렇게나 바람에 날려와 돋아난 식물로 가득 찬 정원의 화분들이 언제나처럼 화사했다. 오랑캐 꽃도 피어났고, 수선화도 피어났다. 그러나 한 낮의 정적과 화사함은 밤의 혼돈과 법석 못지않게 기이하게 보인다. 나무들이 거기 서 있고, 꽃들이 거기 서서 앞을 바라보고 위를 바라보지만 눈이 없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니 너무 끔찍했던 것이다.


To The Lighthouse 중에서


낯설음... 수 백번이나 오고 간 골목길이 그 순간 나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마치 술잔을 앞에 대고 시시덕거리던 친구의 얼굴이 한 순간 전혀 낯선 이의 얼굴로 변모하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이 친숙한 공간이 한 순간 일그러지고 비틀어지는듯 한 왠지 모를 기괴함이 엄습했던 것이었다.


“뭐냐 이건... 이 불쾌한 감정들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거지?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들고 낯설게 느끼게 만드는 건가. 이 주위에 무언가 바뀐 게 있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 구조물이나 사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늘 보아온 것처럼 그냥 그 곳에 있어야할 곳에 다 자리잡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다만 나만 변모한 것이었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 콘을 집어던져 버리고, 난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StingFragile을 들었다.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쉬지않고 비는 계속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별에서 떨어지는 눈물처럼, 별에서 떨어지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쉬지않고 비는 계속 속삭이리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우리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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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네요~

보르헤스 2006-03-2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물만두님 르네 마그리트입니다. 음악이랑 잘 어울리는 듯 해서요 ^^
 

 



에로티즘은 죽음까지도 파고드는 삶이다.

Written by Georges Bataille


새벽 4시, 알콜 그리고 구토

토사물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그렇게 난 4시의 밤을 삼켰다.

침대에 누워 한 얼굴을 떠올린다. 처음엔 웃음,, 때로는 분노... 하지만 결국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훼스탈 2정과 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다.

바타이유가 말했던 서로 교통하려 애쓰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원래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마치 거대한 심연과도 같은...


침대에 똑바로 누워 Baruzi의 글귀를 떠올렸다.


밤은 어두웠으며,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모든 종류의 위로받을 수 없는 비탄도 시간과 더불어 스러져 가는 법이라지만, 때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버거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땐 한 모금의 담배와, 방안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음악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새벽 4시에 Mahler를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교향곡 5번의 Adagietto는 그렇게 조용히 내 방안의 밤을 밝혀주고 있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듣노라면 언제나 루키노 비스콘티의 <Death in Venice>가 떠오른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탐미적이고, 에로틱한 영상과 더불어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정서가 말러의 선율로 완벽히 장식되어 있는, 정말 치명적인 작품이다.(아마도 여성분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미소년 비요른 안데르센과 함께)



소설과 영화는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비스콘티는 토마스 만이 말러의 죽음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을 떠올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 라는 인물을 작가에서 작곡가로 바꾸어 놓았는데, 이는 철저히 말러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에로티즘은 오로지 응시라는 수단만으로 표현되어지는데, 욕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사랑의 열정이 시작되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게 된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고독하다. 태어나는 순간에도 혼자이며, 모든 사건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각자 자신만을 가리킬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바라보게 되고 또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 순간만큼은 바타이유가 말했던 그 거대한 심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매혹의 과실이 그만큼 달콤했기에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사랑하는 소년 Tazio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치욕적인 삶 대신 의연한 죽음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누워있는 이 순간 난 영원을 떠올리고, 다시한번 그리움을 떠올린다.



영원(아르뛰르 랭보)


되찾았도다!

뭐가? 영원성이

태양과 함께

바다는 떠나가고


영혼, 나의 파수꾼이여

그토록 무가치한 밤과

불타는 낮의

고백을 속삭이도록 합시다.


인간적인 간구와

평범한 충동,

거기서 벗어나 그대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사탄의 잉걸불이여

그대에게서만

[결국]이라는 말도 없이

의무가 터져버린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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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보고 싶어요.
이 책은 꼭 베니스에 들고 가서 읽을꺼에요. 이왕이면 토마스 만이 머무르며 썼다던 그 자그마한 호텔이서면 다 좋겠죠.

보르헤스 2006-03-2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디비디 나와있으니까 한번 보세요 가격도 싸던데... 그리구 잘못 기입된 주소때문에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어요. 그리고 책은 낼 온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하이드 2006-03-2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하두 잘못 보낸 전적이 많아서 ^^:; 주의 하는라 하는데, 제가 이렇습니다. ^^: 그런김에 목소리도 듣고 좋죠 뭐.알라딘에 유포되고 있는( 혼자 유포하고 있는) 하이드 섹쉬허스키고음 보이스의 진실은 비밀입니다. 흐흐
디비디는 거진 품절이던데, 한번 더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