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일어나 담배를 찾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세상이 까마득한 새벽 4시에는 구원을 청할데가 없다. 식탁위에 놓인 아이리스는 꽃잎이 말린 채 시들어 가지만 여전히 투명하리만치 하얗다. 눈을 돌렸더니 깜빡이는 자동 응답기의 빨간 불빛이 보인다.

수키 김의 통역사 중에서

닐스 란드그렌(Nils Landgren)의 음울한 무드 보이스에 취해있다보면, 어느새 서글픈 눈물이 맺힌다.

그건 분노의 눈물도 아니요, 설움의 눈물도 아니다. 그건 상실의 눈물이다. 우린 무엇을 상실해버린걸까?

현대사회에서는 순수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 이른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어, 이른바 "소양이 없는"사람으로 취급되어 수치감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맘놓고 울지도 못한다. 때로는 비좁은 화장실에서 숨죽인 이불 밑에서 손가락을 깨물어가며 울음을 참아야만 한다. 그 눈물속에서 우린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상실해 간다.

현대인은 사랑도 cool 해야하며, 삶도 cool 해야한다. 구질구질하거나 찌질해서는 안된다.

cool하다라는 의미는 '철저하게 조작된(인위적인)'이란 말과 다름아니다. "내보기에 좋았더라"가 아닌 "남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것이 cool 하다라는 것의 진정한 본질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문제는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진정한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나?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내버려 둔 걸까?

매우 도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닐스 란드그렌의 2번째 발라드 앨범 
"sentimetal journey"는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한없이 부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음반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그저 입술을 꼭 깨문채 어깨로만 울어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밑의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길...
Ghost in this house
I don't pick up the mail
I don't pick up the phone
I don't answer the door
I'd just as soon be alone
I don't keep this place up
I just keep the lights down
I don't live in these rooms
I just rattle go around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m just a shadow upon these walls
As quietly as a mouse I haunt these halls
I'm just a whisper of smoke
I'm all that's left of two hearts on fire
That once burned out of control
You took my body and soul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 don't care if it rains
I don't care if it's clear
I don't mind staying in
There's another ghost here
He sits down in your chair
And he shines with your light
And he lays down his head
On your pillow at night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m just a shadow upon these walls
I'm living proof of the damage
Heartbreak does
I'm just a whisper of smoke
I'm all that's left of two hearts on fire
That once burned out of control
And took my body and soul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Oh,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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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1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지금이 밤 11시29분인것 같아요.
어제부터 슬픈노래들만 찾아듣고 있는데, 이곡 대놓고 슬프네요.
i'm just a shadow upon hese walls라니...

보르헤스 2006-03-1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화창한 봄날 괜히 우울하게 만들어버린건 아닌지 죄송스럽습니다.

하이드 2006-03-1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우울한거 디게 좋아해요. 허우적허우적

보르헤스 2006-03-1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에는 대 문호 톨스토이의 증손녀이자 성악가인 Victoria Tolstoy도 뮤지션으로 참가하고 있어요. 사셔도 후회 안하실 겁니다.

하이드 2006-03-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음반에 있는건가요? 대충 찾아봤는데, 이곡이 없네요.

보르헤스 2006-03-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ils Landgren의 "Sentimental Journey"라는 음반입니다. 핫트랙에 가시면 구할수 있습니다. ^^

보르헤스 2006-03-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의 또다른 곡 SPEAK LOW 도 하이드님 취향에 맞으실 듯 하네요. 뮤지컬 ONE TOUCH OF VENUS에 삽입되었던 곡인데, 정말 COOL하게 만들어졌어요 ^^ 하이드님 취향에 딱 이실 듯하네요..

2006-03-14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6-03-1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합니다. ^^ 하나만 사기 뭐해서 다른음반도 살까 둘러보는 중입니다. ^^

2006-03-14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24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르헤스 2006-03-2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나쁠 것 까지 있나요 ^^; 음악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참나무 숲속의 수도원/ 내가 상상하는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 이미지


 

더 이상 술에 취할 수 없다면 자신의 영혼은 타락한 것이다

Joseph Rudyard Kipling/여인들의 연인 중에서

 

 


“알콜 9단위... 담배 30개비...오전 9시. 오, 맙소사! 기분은 떡에다가... 신물이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이 끔찍한 숙취.” 브리짓 존스의 고백이 남달리 느껴지지 않는 지독한 아침이다. 오늘 하루는 철저히 몸을 사려야 겠다. 또 술마시자고 꼬시는 놈은 구석진 장소로 끌고가 입구녕에다 큼지막한 돌멩이를 쑤셔버려야지...

 


어젯밤, 디오니소스의 강렬한 유혹에 당당하게 응했던 자부심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유혹을 물리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비겁함으로 <몸 사리기>에 들어가는 내가 비참하기 그지없는 아침이다.


예로부터 술은 신성시 되어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Nectar)는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ambrosia)와 함께 영원한 젊음과 불멸의 생명을 상징했었다. 뭐 굳이 서양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술이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제물(祭物)로써 신성시 되었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현상이라 하겠다.


이처럼 술이 성스러운 음료였기에 술을 즐긴다는 건, 신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했었다. 그러했기에 술은 전장에선 용기로써, 예술에선 위대한 영감으로써, 생활에선 동지애의 상징이었다.

인류가 가장 신을 사랑했던 시기... 중세라 불리웠던 그 세기에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술에 찌들어 있었다라는 것은-여러 문헌을 통해 볼작시면-잘 알려진 사실이다.(그 시기에 물을 그냥 마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왜냐하면 여러 질병의 감염원이 물이였으니까, 중세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암흑의 시대가 아닌, 갈증을 위험한 물대신 안전한 술로 대신하던 매우 지혜로운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1인당 평균 4ℓ의 맥주를 마셨더랬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면 어찌 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술잔을 앞에 두고 경외하는 자는 유다의 자식이요.

술잔에 물을 타는 자는 저주받을 자라.


오늘날 위대한 영감을 가진 예술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은 “Fucking” Well-Being 때문일거라고 난 굳게 믿고 있다. 18세기 낭만파라 불리던 거리의 주정뱅이가 모두 사라진 지금 우리는 얼마나 각박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나?

문학은 바람난 이웃집 김씨 아저씨 얘기보다 더 재미없어졌고, 음악은 이효리의 'Get ya'가 인기가요 1위랜다. 젠장!

다시한번 Fuck이다.


20세기엔 그래도 멸종되었다고 믿었던 몇몇 주정뱅이가 아직은 남아있던 시기였다. “언제나 뜨겁게 끓어올랐던”레이먼드 챈들러, “죽어서 누워있고 싶다던” 윌리엄 포크너, “총질을 유난히 좋아하던”어니스트 훼밍웨이, “샴페인만 줄곧 마셔대던”스콧 피츠제랄드, 아! 위대한 유진 오닐, “항상 터프해지던”더쉴 해미트, “욕망이라는 전차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테네시 윌리엄스,“술쳐먹고 끄적인게 틀림없는” 레이먼드 카버, “수전증으로 물감을 떨어뜨린게 분명한” 잭슨 폴락, “나발을 멋지게 불어대던” 존 콜트레인 등등


Anyway...

지금은 Mussorgsky(1839-1881)라는 주정뱅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 역시 타고난 술꾼이었고, 또 위대한 영감의 소유자였다. 그의 황홀한 작품 <전람회의 그림>이 김동률의 “전람회”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나는 알 수 없으나, Jazz Piano의 원조 “드뷔시(Debussy)”에게 영향을 준 것 만큼은 확실하다고 알고 있다. “전람회의 그림”을 얘기함에 있어서 빼놓아서는 안될 두 사람이 있는데. “짜르(Tsar) 알렉산드르 2세(Aleksandr II)”와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artman)이다.


무소르그스키의 삶에 있어 이 두 사람의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인데, 알렉산드르 2세는 무소르그스키의 알콜중독과 빅토르 하르트만의 죽음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라 할 수 있다. 크림전쟁의 패배 후 러시아는 급격한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해방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기치아래 1861년 농노 해방령을 선포한다. 이 농노해방령은 소지주 출신의 무소르그스키에게는 치명적인 경제력 상실로 이어졌다. 귀족출신의 넉넉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별다른 걱정이 없었던 그는 생활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고, 뒤이은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절망이란 술에 의지하게끔 만들었다. 근근히 빈곤한 관리생활을 하던 그에게 빅토르 하르트만이란 친구의 존재의 절망 속에 비치는 한줄기 서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르트만은 부유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건축가, 화가로 활동하던 재능 넘치는 예술가였다. 하르트만은 가난했던 무소르그스키의 경제적 사정을 몇 번씩이나 살펴주면서 그에게 끊임없는 신뢰와 애정을 베풀어주었다.

 


1866년 운명은 절망처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어깨위에 나란히 내려앉았다.

 

알렉산드르 2세는 1866년 4월 4일 키에브(kiev)에서 벌어진 암살 시도로부터 가까스로 생명을 구하게 된다. 이에 황제는 “1866년 4월 4일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거대한 성문을 건축하기로 마음먹고 러시아 전역의 건축가들을 대상으로한 “공모전”을개최한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하르트만이 공모전에서 우승하게 되고, <전람회의 그림>의 마지막 곡의 모태가 되었던,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The Great Gate of Kiev)’은 이렇게 탄생했다. (옆의 그림이 실제 하르트만이 그렸던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 조감도)

 

하지만 성문을 건축하기 위한 자금의 부족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날의 사건이 일반 민중에게 알려지

 

기를 원하지 않았던 황제의 불편한 심사 때문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는 하르트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하르트만이 31살의 나이로 심장병으로 요절해 버리자, 절친한 친구를 잃은 무소르그스키는 슬픔의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더욱 더 술에 탐닉하게 된다. 그는 러시아 국민악파의 대부 라 일컫어 지는 “V. 스타소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여보게 친구,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나 개, 쥐 따위 동물도 살아 있는데 하르트만 같은 친애하는 사람이 죽다니! 이런 때 현명한 녀석은 우리처럼 어리석은 놈을 위로하는 말이랍시고, 이렇게 지껄일테지. “비록 하르트만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야, 그러나 그렇게 머리 잘 돌아가는 녀석이나 죽어버리라지! 라고 하고 싶다네.


음악, 문예 비평가였던 스타소프는 하르트만을 추억하는 유작 전람회를 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하였고, 전람회에 참석한 무소르그스키 역시 친구의 마지막 유작들을 그리움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웠던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악기, 피아노로 그날의 감동과 인상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10곡의 소품과 5곡의 프롬나드(promenade)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롬나드란 산책, 산책길을 뜻하는 것으로 본시 청중이 산책을 하면서 혹은 선채로 음악을 듣던 음악회를 일컫는 단어이다. 무소르그스키는 그날의 전람회에서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10개의 작품을 골라 피아노 조곡을 만들었고, 프롬나드는 그 각각의 그림이 걸려있는 회랑을 거닐면서 그가 느꼈던 감동과 인상, 생각의 단상들을 차분히 풀어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곡의 중간 중간에 삽입된 프롬나드는 무소르그스키의 곡을 이해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형식이며, 그의 생각의 단상들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편린들이다.

 

무소르그스키가 전람회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악기로 '강하게 혹은 약하게'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던 “피아노포르테”를 선택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오늘날 “전람회의 그림”은 라벨의 관현악 편곡으로 더욱 더 알려져 있는데, 라벨은 임의로 프롬나드를 생략해버림으로써 원곡의 의미를 상당부분 훼손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위대한 교주님이신 “Sviatoslav Richter" 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라벨을 무척 좋아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그가 오케스트라를 위헤 편곡한 것은 혐오스러운 일로 여긴다. 전람회의 그림은 러시아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심오한 걸작이다. 라벨의 편곡은 허울만 근사하게 해서 이 걸작의 품격을 떨어뜨린 끔찍한 졸작이다.


1881년 2월 과도한 음주와 이로 인한 신경장애, 지속적인 발작으로 괴로워하던 무소르그스키는 42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같은 해 “무고한 학살자” 알렉산드르 2세 역시 나로드니키(Narodniki:인민주의자라는 뜻으로 급진적 혁명세력)의 계파 “인민의 의지파”에서 던진 폭탄테러로 인해 사망했다.

 

 


신은 어떤 의미에선 공평하다. 가해자건 피해자건 결국 그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다만 “위대한”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헬싱키의 알렉산테린 거리에서 쓸쓸히 비를 맞고 서 있지만, (밑의 사진은 헬싱키 원로원 광장 앞의 알렉산드르 2세 동상)

 

 

"비참했던”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항상 연주되고 감상되어진다는 것이다.


 

<전람회의 그림>의 피아노 연주반으로는 호로비츠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나의 선택은 당연히 리히터다. 호로비츠는 글쎄.. 술로 따지자면 김빠진 샴페인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탁월한 기교와 영롱한 음색 모두 뛰어나지만 무언가 핵심적인 것이 빠져있는 기분이다. 그에 비해 리히터는 “영웅의 술” 브랜디를 떠올리면 딱이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브랜디를 천둥번개 1, 리무버 1, 피 튀기는 살인 2, 죽음,지옥,무덤 1.정제된 사탄 4 로 이루어진 강장제로써 1회 복용량은 “항상 머리가 깨어지도록”  새뮤얼 존슨 박사는 영웅의 술이라고 말했다. 영웅만이 감히 이것을 마시는 모험을 할 것이다 라고 평했다. 그러면 이해가 쉽겠지?

 

사랑하는 그대여!

김빠진 샴페인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영웅의 술 브랜디를 마실 것인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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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6-03-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 음악파일 올리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리히터의 전람회의 그림 올리려고 하는데... 저작권법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있으시면 알려주시길..
 


LOST

떠나가는 사랑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풍부한 시련이어서

이발사까지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만든다.

Written by Emile Cioran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제 내 나이도 마냥 화창한 봄날을 즐길 수만은 없는 나이에 와 버렸다. 화사한 봄날 그리고 시들어가는 내 청춘! 누구도 함께 울어줄리 없는 작은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곡이 떠올랐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별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별은 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화창한 날씨든 우중충한 날씨든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왔다 또 그처럼 불쑥 가버린다. 이별은 항상 그러하다. 플로베르처럼 퐁텐블로 숲에서 Adieu! 라 외치며 목소리에 눈물이라도 양껏 담아내야지만 이별의 슬픔이 더해질까...


화사한 봄날에 찝찔한 이별얘기라니 나의 구질구질함에 나도 지친다.

봄날에 징징대는 소리를 했던 나만큼이나 구질구질한 친구가 하나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브람스(Brahms).

이 친구는 봄에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Brahms란 이름은 bram에서 그 어원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북독일 방언으로써 금작화 덤불을 지칭한다고 한다. 금작화는 양골담초(scotch broom) 라고도 하는데, 4월이나 5월 즈음에 피어나는 황금색의 꽃이 아름다운 작은 관목이다.)


 


브람스가 내 나이 즈음일때, 그는 어머니를 잃었다. 그의 가족 중 그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으며,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던 어머니가 그의 곁을 떠났다. 평생을 혼자 살아야만 했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던 브람스에게(브람의 꽃말은 박애(博愛)이다. 박애주의자치고 평생을 고독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진정한 인류애를 발휘하려면 세속의 영욕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박애는 고독과 비통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애로웠던 어머니를 애도하며, 초월자에게 어머니 영혼을 맡기는 진혼곡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LUKE 23:46) 아마도 브람스에게는 그의 영혼이 아닌 어머니의 영혼을 부탁하는 것이었겠지만 그의 심정은 비통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간구처럼 절실했으리라는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또한 그러했을 것이니까.

 


브람스는 성경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고 영감을 얻었던 구절을 레퀴엠의 가사로 삼기로 결심한다. 음악칼럼니스트 박종호씨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독일 레퀴엠이 슈만의 죽음을 계기로 쓰여졌고, 그 완성에 10년이 걸렸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은 그와 다르다. 물론 정신적 스승이었던 슈만의 비참한 죽음은 브람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고, 또 그의 죽음에 애통하며 슬픈 선율의 곡을 착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독일 레퀴엠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였고, 브람스는 단지 예전에 썼던 선율의 일부분만을 다시 떠올렸을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내 생각은 브람스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에서 따온 가사에 있다.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Ich will euch trö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ö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n sterben,

von nun an.

Ja der Geist spricht,

das sie ruhen von ihrer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가 행한 일이 따름이니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라는 구절은, 비통에 빠진 그를 돌아가신 고인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 주기를 마다하지 않으려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1868년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인 어느 화사한 봄날, 브람스는 브레멘 교회의 단상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작은 지휘봉이 들려있었다.

독일 전역에서 그의 진혼곡을 듣기 위한 수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그 수많은 청중 안에는 “평생을 바라만 봐야했던 戀人” 클라라 슈만도 있었고, 그의 친지, 가족들도 와있었다.


그의 손안에서 어머니의 영혼을 맡기며,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숭고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3년만에 비로소 완성된 <독일 레퀴엠>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당시 브람스의 지휘로 연주된 독일 레퀴엠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선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브람스의 친구 디트리히는 그날의 연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한마디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공자는 어버이가 3년동안 품에 안고 길러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 3년喪을 치른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의미는 3년이란 기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서 어느 정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리라. 브람스가 6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레퀴엠을 완성해 낸 것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딱 3년만이었다.


Brahms!  내 영혼의 친구

난 음대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 음대 다니는 친구조차 없다. 난 브람스의 교향곡 총보 또한 읽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감동은 흉내낼 수 있어도, 정서는 흉내낼 수 없다라는 말을 난 믿는다.

진정한 친구란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난 독일 레퀴엠을 들으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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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보르헤스 2006-03-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노래 링크할려고 했는데... 저작권법에 저촉될까 두려워 못했답니다. 아쉽네요. 물만두님이 좋아하신다니 저두 좋네요 히히
 
 전출처 : 로즈마리 > [퍼온글] 언어철학 관련 책들2

아래 글에 이어...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사진은 제가 넣었습니다.

K. 포퍼, '추측과 논박'(1, 2권)
- 비엔나 학파를 격침시켰지만, 동시에 후계자로도 여겨지는 포퍼의 저작입니다. 보통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꼽지만, 절판된 탓에 이 책을 꼽았습니다. 포퍼의 입장들을 잘 반영한 여러 편의 글들을 싣고 있습니다.
- 여러 철학적 입장들에 대한 포퍼의 입장이 잘 나타나있고, 그의 입장을 대표하는 반증주의에 대한 설명도 잘 나와 있습니다.

 

필립 커, '철학적 탐구'

- 언어 철학의 두 주류를 형성한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대표적인 후기 저작입니다. '논고'와 달리 요약적이지 않고, 많은 예와 실례를 곁들여 독자와 대화하는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이 쉽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하죠.
- '논고'와 마찬가지로 여러 참고 문헌과 함께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J. 오스틴, '말과 행위'


- '철학적 탐구'에서 비롯된 언어 철학의 거대한 흐름인 일상 언어 철학을 대표하는 오스틴의 강의록입니다. 총 12개의 강의를 싣고 있으며, 오스틴의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발화효과행위 등과 같은 초기 화용론적 견해가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이후 설에 의해 정교화 됩니다.

J. R. Searle, 'Speech Acts'
- 언어 행위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오스틴의 입장을 이어받아 정교화 시켰으며, 'Speech Act'(언어 행위)라는 이름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H. G. Gadamer, 'Truth and Method'
- 언어 철학자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해석학에서의 '언어적 전환'(물론, 하이데거가 선구적이지만)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다머의 대표적인 저작입니다. 심리학의 문제로, 혹은 심리학적 방법의 문제로만 여겨지던 이해를 언어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J. 하버마스, '탈형이상학적 사유'


- 언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지만,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사회 이론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하버마스의 저작입니다. 하버마스는 오스틴, 설의 언어 행위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날카로운 비판과 더불어) 가다머를 잇는 대표적인 해석학자이기도 합니다.
- 하버마스의 언어 철학에 대한 태도가 잘 정리되어 있는 글입니다.

 

 


W. 레제-쉐퍼, '칼 오토 아펠과 현대 철학'
- K. O. 아펠은 가다머, 하버마스와 함께 해석학의 거두로 꼽히며, 하버마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승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하버마스의 선험 화용론은 아펠에게 힘입은 바 큽니다. 아펠은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언어적 전환을 독일 철학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하버마스에 대해서도 입문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 글에서 아펠의 선험 화용론을 중심으로 그의 전반적인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소쉬르, '일반 언어학 강의'
- 소쉬르는 비트겐슈타인도 그러했듯이 보통의 의미에서 '저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대표적인 저작은 그의 강의를 모아놓은 글이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달리 소쉬르는 언어학적 전통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양자 사이의 유사성을 꽤 발견할 수 있죠.

 

 

R.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 현대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서로 간에 어떠한 교류도 없었던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을 다루고 있는 글입니다. 둘 모두 체스 게임과 언어 사이의 유비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양자 사이의 유사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저자는 대부분 소쉬르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 규칙이나 문법과 같은 주요한 내용을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W. V. O. 콰인, '논리적 관점에서'
- 콰인은 프레게-러셀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현대 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분석철학계의 거장으로 꼽힙니다.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많이 수행했고, 철학의 고전적 문제인 분석성, 종합성, 동일성 등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존재론적 개입'은 그의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표어로 등장하지만, 이는 조금 극단적인 해석이긴 하지요.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번역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번역 불가능성 테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본 저작은 그의 대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글입니다.

 

S. 크립키, '이름과 필연'
-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로 꼽히는 크립키는 '고정 지시어'라는 개념을 통해 동일성, 필연성, 선험성 등과 같은 고전적인 철학적 개념들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을 탐구합니다. 필연성, 가능성 등을 다루는 양상 논리학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죠.
- 본 저작은 3회에 걸친 강연을 모은 것으로, 프레게-러셀의 고유명사에 대한 기술 이론을 비판하면서, '고정 지시어' 개념을 통해 필연성과 선험성을 구분하고, 동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법을 제시합니다.

 



R. 로티,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 로티는 언어적 전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트겐슈타인, 듀이, 하이데거를 위대한 철학자로 분류합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기반하고 있고, 언어는 기본적으로 관행을 따른다는 점에 기초하여, 우리의 사고는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는(혹은 해야 하는)거울과 같다는 이미지를 깨는 데 그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허상임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그는 분석철학적 입장에서 가다머의 해석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대화를 지속시키는 중개자로서의 철학 개념을 구상합니다. '자민족 중심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종횡무진 나열되고 있어서, 그 현란한 지식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혹은 반감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N. 촘스키, '언어 지식'
- 촘스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생성 문법' 개념을 통해 현대 언어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국내 번역된 촘스키의 저작들은(정치적 에세이를 제외하면) 대개 그의 기본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 하며,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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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얼마 전 브뤼노 몽생종의 <리흐테르-회고담과 음악수첩>을 읽게 되었다.

리히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난 다음부터, 난 리히터의 광팬이 되었고 지금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소장하지 못한 리히터의 음반이 보이면 정말이지 안달이 났다.

PHILPS에서 발매된, 리히터의 을 미루다 미루다 결국 못 사게 된 건 아직도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차에 리히터의 자서전 겸 평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터라 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냉큼 사버렸다. 리히터의 시선을 쫓아 부지런히 읽어나가던 중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의 고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난 전문적으로 음악공부를 받지 못했다. 그냥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간단한 상식수준의 지식과, 내가 관심이 있어서 몇 권의 책을 통한 독서로 아주 간단한 이론정도만을 습득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지 난 내가 과연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쭉 해왔다.


틈틈이 CD 내지에 있는 편린들을 읽어나가며, 가끔씩 CD Guide Book이나 잡지들을 사보며 나름대로 자위 아닌 자위를 해왔다. (여기선 자위란 므흣한 뜻이 아닌거 아시죠 ^^;)


나에게는 교주님이신 리히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악은 연주하거나 듣기 위한 것이지 분석하거나 비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난 녹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략.. 그래도 몇가지 예외가 있다. 역시 페렌치크와 함께 녹음한 리스트의 <헝가리 환상곡>이 그런 예다. 물론 바보 같은 비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아니면 영국의 비평가였다... 중략... 그 비평가는 <헝가리 환상곡>의 녹음을 두고, 아마도 자기 딴에는 칭찬을 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멍청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다. ‘종결부는 더 이상 리스트의 것이 아니었다. 하차투리안의 <劍舞>를 연상케 했다.’ 세상에! 나는 그 검무보다 더 혐오스러운 작품을 알지 못한다. 리스트의 헝가리 환상곡이 다소 가벼운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 고약한 검무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돈 크레머와 마르타 아르헤리치 <프로코피예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회였다. 하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들은 리허설도 하지 않고 바로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수치스러울 따름이다(특히 바이올린) 이런 태도로 예술에 임한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이 그렇게 행동해도....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다.


리히터는 그 자신의 녹음에게도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 모든 평론가들이 Beethoven Piano Trio의 명반이라고 손꼽는 로스트로포비치,오이스트라흐,그리고 카라얀과의 협연은 리히터 자신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정도쯤이면 그건 나에게도 악몽이다. 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음반을 극구 추천해 주었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평론의 떨거지들을 신나게 읊어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언어 논리의 오류-부적합한 권위에의 호소-들을 어떻게 덮어야 하나? 순간 낯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여기다 조지 버나드 쇼의 멋들어진 촌평을 더하자면... 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음악회의 프로그램이나 cd 설명서의 음악평론의 한 예


“부드러운 현악기의 반주 속에서 잉글리쉬 혼이 낭만적인 제 1 주제를 노래한다. 전개부는 확장된다. 두 개의 혼이 약한 소리로 주제를 연주하고 나면  C# 단조로 바뀐다. 대조적인 주제의 짧게 변화하는 경과구가 대위법과 피치카토로 콘트라베이스를 지나 목관악기로 제 2주제를 이끌어간다.”


조지 버나드 쇼의 음악해설가적 햄릿 평론


“세익스피어는 흔한 도입부를 생략하고 부정사를 써서 주제를 직접 제시한다. 같은 분위기의 짧은 연결부분이 이어서 나오는데, 이 짧은 부분에서 우리는 ‘또는(or)'과 ’부정형(not)'를 만난다. 곧이어 나오는 반복(to be)의 의미는 바로 앞에 있는 ‘or not’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콜론(,)과 관계대명사에 악센트가 들어가는 지시된 명확한 구절에 이르는데, 이것은 우리를 첫 번째 마침표로 이끌어간다.”

 

정말이지 잉글리쉬 혼이 편성된 그 어떤 연주에 위의 평론을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릴 것이다. 이건 음악을 감상하는데 정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난 이런 해설을 숱하게 접해왔고, 나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몇 번 끄적대기까지 했더랬다.


음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음악을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난 부끄러움으로 한껏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리히터의 음악수첩을 살며시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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